171화. 처형대에서 울린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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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처형대에서 울린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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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처형대에서 울린 비명
2022.08.22.
광장에 서슬 퍼런 단두대가 세워졌다.
보통 죄인의 처형식에 황제가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공개 처형은 예외였다.
이번엔 무려 태양의 제단이 공격당한 중차대한 사건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사건에 반인반수도 얽혀 있었으니, 제국민으로서는 황제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불안함을 달래주길 바랐다.
잠시 후, 단두대 옆에 세워진 단상으로 아스란과 에드조프가 함께 나섰다.
귀족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세스가 황자도 굳어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세스가는 고개를 올려 단두대를 응시했다.
은밀히 루베르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특히, 어느 순간 루베르와 연락조차 어려웠다.
그들도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인데…….
‘피오레 가주는 알고 있으려나.’
어쩌면,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스란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백 개의 눈을 응시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외쳤다.
“친애하는 솔라 제국민이여. 솔라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 이토록 참혹한 일에 함께하게 되어 유감이고, 황제로서 그대들을 볼 면목이 없도다. 하지만 태양의 제단에서 벌어진 그 끔찍한 일의 대가는 반드시 황명으로 치르겠다는 약조를, 여기서 지키고자 한다.”
아스란의 말이 끝나자, 단두대에 아이냑이 올라오게 되었다.
그는 급소 부위만 겨우 가려진 채, 전부 벌거벗겨져서는 군중 앞에 치욕스럽게 세워졌다.
불안감과 두려움을 감추고 있던 제국민들은 아이냑의 모습에 가슴께에 걸려 있던 분노를 토해내며, 그를 향해 마구 돌을 던지고 욕을 내뱉었다.
“천하에 죽일 놈!”
“어디 어울릴 것이 없어서 그런 괴물과 어울려서는!”
“같은 솔라 제국민? 웃기지 말라고 해. 저것들은 전부 저주받은 이방인이라고!”
“네놈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었다! 우리 가족이!”
“얼른 죽여요! 얼른!”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제국민의 분노 앞에, 아이냑은 그저 무심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알렉드라가 잡아 온 다른 루베르도 함께 단두대에 세워지면서, 성난 반응이 더 과열되었다.
알렉드라는 분노하는 솔라 제국민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저것들을 단두대에 세우는구나. 좀 더 일찍 해야 했던 일이야. 저것들의 본성은 야만적이라고. 달라지지 않아.’
이걸 시작으로 솔라에서 루베르를 모조리 몰아낼 것이다.
“그런데 카힐로, 그놈은 왜 안 보이는 거지?”
그때, 기사가 알렉드라에게 은밀히 읊조렸다.
“공작 각하, 카힐로가 없어졌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경비를 어떻게 했기에!”
“죄송합니다.”
“그 계집 짓이다. 피오레, 그 건방진 계집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 대체 어떻게 구출한 거지?”
아니, 그보단 왜 카힐로만 구출하고 저자는 구출하지 않은 걸까.
그 계집이 루베르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일단 조용히 찾아. 반드시 이 광장 어딘가에 있어. 이번만큼은 절대 그 계집이 함부로 나대지 못하게 해야 해.”
광장 내 끓어오르는 분노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아스란이 잠시 뒤로 물러나고, 마침내 에드조프가 황금 종을 들고서 앞으로 나섰다.
황제의 권한인 태양이 새겨진 황금 종이 10번 울리면, 처형이 선언된다.
제국민들은 단상에 나선 에드조프의 모습에 다들 예를 갖추었다.
이로써 에드조프가 솔라 제국의 유일한 황위 계승자임이 알려지는 것이었다.
에드조프는 이 벅찬 순간을 초 단위로 새기며, 천천히 종을 위로 올렸다.
“비록 솔라의 정신을 해친 죄인이나, 태양신의 자비가 함께 하길 바란다.”
마침내 황금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국민들 사이에서 얌전히 몸을 숨기고 있던 아멜리아는 소매 끝에 숨긴 리볼버를 꽉 쥐었다.
‘주변에 피해가 없도록, 하늘을 향해 마탄을 쏘자.’
그럼 곧장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겠지.
포르티셰 공작가 기사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에드조프의 정체를 외쳐야한다.
아마 어딘가에 있을 칼렌 경과 카마리 경이 도와줄 것이다.
‘대공 전하께서 나서는 게 가장 불안하긴 하지만.’
마침내 8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아멜리아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 숨을 길게 삼켰다.
마침내 황금 종이 10번 울리고, 아멜리아가 곧장 마탄을 쏘려고 하는데.
탕-!
“꺅!”
어디선가 울린 총성이 에드조프의 황금 종을 박살내 버렸다.
에드조프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어떤 새끼가 감히!’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황제 폐하를! 바스티얀 대공 전하를 보호해!”
포르티셰 기사단과 황실 근위대가 에드조프와 아스란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비명이 난무하는 제국민들 사이에서 눈을 크게 떴다.
‘뭐지? 누구지? 설마 칼렌 경인가?’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들은 죄가 없다! 우리들도 솔라 제국민으로서 제대로 조사받길 원한다!”
“황제 폐하! 저희는 억울합니다! 저희도 적합한 절차에 따라 조사받게 해주십시오!”
제국민들 곳곳에 숨어 있던 루베르들이 손을 번쩍 들고서 아스란을 향해 구호를 외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점점 많아지는 루베르를 바라보았다.
그들 중, 피오레 영지령 루베르도 눈에 띄었다.
‘벌써 모여 있었다니…….’
제국민들은 경악했으나, 성난 루베르는 멈추지 않고선, 무기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농기구를 높이 들어 올리며, 단두대와 단상을 향해 전진했다.
“우리는 죄가 없다! 우리도 솔라 제국민으로서 제대로 조사받길 원한다!”
“황제 폐하! 저희도 적합한 절차에 따라 조사받게 해주십시오!”
“이번 반인반수 사건과 저희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는 인원에 넋 놓고 있던 알렉드라는 이를 갈며 외쳤다.
“기사단은 뭐 하는 거야! 당장 저들을 막아! 폐하를 보호하라!”
기사들은 그제야 정신 차리고서, 루베르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루베르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서, 서로서로 팔짱을 낀 채, 온몸으로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스란을 향해 공정하게 조사받게 해 달라며, 한목소리가 되어 광장이 울리도록 외쳤다.
아스란은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주 반군으로 죽고 싶어서 발악하는군.’
그는 근위대에게 짧게 읊조렸다.
“모조리 잡아들여. 저들은 황명을 어긴 반군이다.”
“루베르가 반군을 일으켰다!”
제국민들 사이로 터져 나온 고함과 함께 기사들이 장벽을 만든 루베르를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흐윽!”
“악!”
모여 있던 제국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지만, 루베르는 칼을 맞고도 끝까지 그 자리에서 버티며 아스란에게 외치고 또 외쳤다.
“우리는 죄가 없다! 우리도 솔라 제국민으로서 제대로 조사받길 원한다!”
그 모습은 두 눈 뜨고 보기 불편할 만큼 처절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억울하다는 고함이 아닌 적합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조사해달라는 비명이었다.
아스란과 에드조프와 키르케가 일으킨 악행을 덮기 위해 루베르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처럼 공평하게 심판해달라고 외치는 울분이었다.
“반군이다! 이들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전부 체포해!”
기사들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이들의 목소리를 막고 있었다.
아스란과 에드조프 역시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들을 외면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날뛰어주는 것에 고마워하는지도 모른다.
명분을 얻고 더 철저히 이용할 수 있을 테니.
이들의 억울한 외침은 저들에게 그저 기회일 뿐이었다.
아멜리아는 피부로 와 닿는 이 끔찍한 현실에 이가 갈리고, 몸이 떨렸다.
“……안 돼…… 제발 그만둬. 저들은 잘못 없어. 대체 저들이 왜. 잘못은. 잘못은…….”
그녀는 핏발 서린 눈동자로 에드조프와 아스란을 노려보았다.
“저들이 했잖아!”
아멜리아가 결국 방아쇠를 쥐었다.
여기서 포르티셰 기사단이나 근위대를 공격하면 끝이다.
하지만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이미 광장 바닥으로 쓰러진 루베르에게서 나온 피가 흥건했다.
그중엔 피오레 공작령에서 함께 웃었던 루베르도 있었다.
저들은 훈련받은 기사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제국민이었다.
결국, 아멜리아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이클리트가 뒤에서 그녀를 잡아당겼다.
“조금만 참아요.”
“대공 전하?”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까지 다칠 필요 없어.”
“하지만 이러다가 다 죽겠어요!”
“진짜 다쳐야 할 놈은 따로 있잖아요. 여기서 가장 고통받아야 할 놈이.”
“예?”
그때.
탕-!
펑, 퍼퍼퍼펑-!
한 발의 총성이 또 한 번 울리더니, 갑자기 뭔가가 하늘에서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의 제단이 폭발하던 그때처럼.
“포, 폭탄이다!”
“도망쳐!”
하지만 그때처럼 땅이 무너지는 대신, 하늘에서 뭔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지? 비인가?”
그런데 비치고는 이상했다.
사방으로 퍼지는 알코올 향기.
입안으로 그 액체가 스며들면서, 제국민은 의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수, 술인데?”
아멜리아는 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멈칫했다.
‘술이라니. 설마?’
그녀가 이클리트에게 입을 열려는 순간.
“하아, 하아, 악!”
어디선가 익숙한 절규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절규의 정체를 보게 된 아멜리아는 확신했다.
‘그냥 술이 아니야. 밀주야…….’
이클리트는 괴괴할 정도로 싸늘한 시선으로 발악하는 에드조프를 응시했다.
아스란을 보호하던 에드조프는 온몸을 휘청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흐으으윽! 으윽! 아악!”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발작처럼 온몸을 비트는 에드조프의 모습에 아스란이 경악하며 그를 붙잡았다.
“대체 무슨 일인 것이냐?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해! 여기 치료사! 치료사를 당장 불…….”
하지만 아스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고개 숙인 에드조프의 목덜미에 기이한 것이 보였다.
바로 돋아난 뱀의 비늘.
아스란의 동공이 마구 흔들리면서, 홀린 듯 목덜미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에드조프가 아스란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만지지 마!”
그와 눈이 마주친 아스란은 온몸으로 소름이 쫙 끼쳤다.
인간의 것이 아닌 섬찟한 눈동자가 곧장 박혔다.
게다가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뱀의 비늘.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누가 봐도 지금 에드조프의 모습은…….
“네가. 네가 대체 왜…….”
“에드조프 라이엇 바스티얀은 인간이 아닌 반인반수다. 황제의 아들도! 반인반수란 말이다!”
그때, 아이냑의 옆으로 나타난 이사나가 마법 도구를 던지며 외쳤다.
마법 도구를 통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말도 안 되는 진실 앞에, 제국민 모두가 얼어붙었다.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뭐라고?”
“반인반수라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모두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밀주에 취한 에드조프가 끓어오르는 광기를 누르지 못한 채, 포효했다.
“시끄러…… 시끄럽단 말이야!”
헝클어진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에드조프의 모습에 지켜보는 시선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배, 뱀이야. 정말로 뱀이라고…….”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정말로, 반인반수…….”
귓가에 송곳처럼 박히는 비명에 에드조프는 번뜩 주변이 보였다.
점차 핏기가 빨려가며,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를 향해 단두대의 칼날처럼 비명과 경멸을 쏟아내고 있었다.
일순, 머릿속이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괴물이야! 대공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괴물이라는 말이 들린 순간.
에드조프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 온몸을 떨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야. 괴물이 아니야…… 난 이 나라 대공이야. 이 나라 황태자야. 보지 마. 다들 보지 마. 보지 말란 말이야!”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에드조프가 그대로 단상 아래로 뛰쳐 내려가 버렸다.
가까이에서 본 귀족들은 충격에 입을 열지 못했고, 알렉드라 역시 둔기로 맞은 것처럼 밀려든 진실에 숨을 헐떡였다.
‘바스티얀 대공이 반인반수라니. 황제가 수인과 사통했다는 거야? 아니면 클로에 황후가 애초에 수인이라는 거야? 뭐가 되었든, 지금 황실이 그 더러운 수인과 얽혀 있다는 거잖아!’
알렉드라가 아스란을 찾았으나, 아스란은 웅웅거리는 비명 속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에드조프가 반인반수라니? 내 아들이잖아. 내 핏줄이잖아. 클로에와 나의 아들이 어떻게…….’
“반인반수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