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널 자유롭게 해줄게
(191/199)
191화. 널 자유롭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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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널 자유롭게 해줄게
2022.10.31.
이클리트와 에드조프의 검이 오직 살기만을 품고서 격렬하게 움직였다.
에드조프 역시 반인반수였기에, 힘에서 이클리트에게 완전히 밀리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세인트가 이클리트를 공격하고 있었고, 이클리트는 끝까지 세인트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에드조프를 공격하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인트의 사나운 발톱이 이클리트의 어깨를 스쳤고, 이클리트가 어떻게든 뒤로 몸을 움직여서 피하려고 했으나, 에드조프가 이를 놓치지 않으며 세인트 쪽으로 몰아세웠다.
“네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그나마 살 수 있는 길은 세인트, 저놈을 네가 죽이는 것뿐이야!”
이클리트는 이를 악물고서 에드조프의 검을 모조리 막아냈다.
하지만 세인트의 날카로운 이빨이 이클리트의 어깨에 정확히 박히려는 찰나.
탕-!
“크르르르릉!”
바람의 마탄이 정확히 세인트를 공격했고, 세인트도 포효하며 이클리트에게서 물러섰다.
에드조프는 아멜리아의 공격에 순간 멈칫했고, 이클리트도 놀란 눈동자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멜리아…….”
하지만 정작 아멜리아는 오롯이 세인트를 바라보았다.
세인트도 자신을 공격한 아멜리아를 향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세인트의 저 희번들한 눈동자는 그녀가 기억하는 그 어떤 모습도 담겨 있지 않았다.
겨우 방아쇠를 당겼던 아멜리아는 자꾸만 떨려오는 손끝에 힘을 준 채, 울먹임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도 지금 그 모습을 원하지 않지? 내가. 내가 널 자유롭게 해줄게.”
아멜리아는 글썽였던 눈물을 완전히 삼켰다.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기서 망설여서 세인트가 이클리트를 다치게 하거나, 더한 짓을 저지르게 한다면, 나중에 기억이 제대로 돌아왔을 때 괴로워할 테니까.
‘온 힘을 다해서 세인트를 막아야 해.’
“나는 지금부터 세인트를 지킬게요. 그러니까 대공 전하는 대공 전하의 일을 하도록 해요.”
아멜리아는 에드조프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클리트와 에드조프 사이에 너무 오랫동안 얽혀 있는 악연이 이젠 끊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과 에드조프 사이엔 이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분노도 원망도 없어. 나는 이미 그때, 에드조프와의 모든 것을 정리했으니까. 이젠 조금도 얽히고 싶지 않아.’
에드조프는 아멜리아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한 채 등을 돌려버린 모습을 보자, 불안감에 숨이 타들어 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를 봐야지. 내가 저놈을 저렇게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나를 봐야지!’
에드조프가 아멜리아에게 가려고 했으나, 이클리트의 날 선 검이 섬뜩한 바람을 일으키며 그의 걸음을 막아섰다.
“이제부터 조금이라도 한눈팔면 넌 죽을 것이다.”
“이클리트…….”
“그리고 두 번 다시, 단 한 걸음도 그녀에게 가지 못해.”
아멜리아와 자신의 사이를 완전히 차단해버린 이클리트의 모습에 에드조프의 감정이 점점 더 날 것으로 튀어 올랐다.
“닥쳐…… 이미 아멜리아가 네 것인 것처럼 말하지 말란 말이야!”
아까보다 더한 힘으로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
에드조프는 금방이라도 이성이 나가버릴 듯, 위태로운 눈빛으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자꾸만 자신을 외면한 아멜리아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결코 좁혀지지 못할 벼랑을 본 것 같아서.
그사이에 너무 당연하다는 듯 서 있는 이클리트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서로의 검이 날 선 비명을 지르며 뒤엉켰고, 두 사람의 시선 또한 비슷한 감정으로 서로를 그어 내리고 있었다.
에드조프는 파들거리는 입술을 겨우 달싹였다.
“우린 악연이다. 너도, 나도 전부 가짜였고, 거짓이었고, 애초에 이용당하고자 태어난 거야. 너도, 나도 복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
“내가 네 것을 빼앗은 건 없어. 그런데 왜 나만 다 잃어야 하는 거지? 너나 나나 똑같은데!”
“…….”
“여기서 살아나가는 사람만이 진짜가 되는 거야.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그래. 태어난 이유가 뭐가 중요해.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이 숲을 차지하고, 솔라의 황제가 되어, 그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때, 이클리트의 검이 에드조프의 목덜미를 깊이 스쳤다.
“윽!”
선득한 감각과 함께 피가 새어 나오면서, 에드조프가 곧장 목을 짚고서 뒤로 물러섰다.
조금만 더 검이 깊이 들어갔어도, 급소를 찌를 수 있을 만큼 치명상이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빠르게 에드조프를 몰아붙였다.
더는 저 목소리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오지 않길 바라니까.
“그녀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뭐?”
“그녀를 그저 소유하고자 하는 너는, 절대로 안 돼. 그때도 말했지. 설령 내가 여기서 죽어도. 너 역시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어느새 점점 에드조프의 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점점 더 거세게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너와의 악연 따위 상관없다. 운명이 뒤바뀌었다느니,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저 너의 존재가 그녀에게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길 바랄 뿐.”
에드조프가 바라는 대로, 그 어떤 형태로도 그가 그녀에게 남아 있는 걸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불행을 지워줄 거다. 그녀가 널 미워하고 증오했던 그 시간을 모조리 지워줄 거야. 그녀의 새로운 생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니까!”
에드조프를 벼랑까지 몰아붙인 이클리트가 그의 한쪽 팔을 잘라내려는 순간, 에드조프의 팔찌에서 뱀이 튀어나와서는 그대로 이클리트를 물어뜯었다.
“하!”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이클리트가 가쁜 숨을 삼키며, 곧장 검으로 뱀의 머리를 찔렀다.
에드조프는 온몸으로 이클리트를 막아내고선 사라지는 뱀을 보면서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이 팔찌를 준 사람은 키르케, 그녀였으니까.
‘반드시, 원하는 걸 전부 가지셔서······ 살아남으세요.’
‘키르케…….’
에드조프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굳어지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그 여자의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그는 품에 무언가를 숨긴 채, 이클리트 너머에 있는 아멜리아와 세인트를 응시했다.
‘아멜리아. 난 널 어떤 형태로든 가지기만 하면 돼.’
***
아멜리아는 세인트를 진심으로 막아 세우며,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마탄을 연발로 쏜다고 해도, 광기에 사로잡힌 반인반수와 싸운다는 것이 쉽진 않았다.
워낙 세인트의 덩치도 컸고, 이성을 잃은 이빨은 무조건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기에.
아멜리아는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 망설임을 저버린 채, 끊임없이 마탄을 쏘아 올렸다.
탕- 타당-!
마탄이 세인트에게 상처를 입히긴 했으나, 그렇다고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너무 빨라. 게다가 수인의 힘으로 은연중 마탄의 위력을 상쇄시키고 있어.’
세인트는 반인반수인데, 대체 뱀의 독으로 얼마나 중독시켰으면!
아멜리아는 세인트에게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방심하고 빈틈을 보이면, 그 순간을 세인트는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러다간 자신의 체력이 전부 고갈되고 말 것이다.
‘세인트도 저 독에 계속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아멜리아는 제 품 속에 있는 루베르가 준 우리를 떠올렸다.
혹시 몰라서 지난번 루베르가 줬던 것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때 공방에서 밀주에 중독된 반인반수들이 그 우리에 갇혀서 어느 정도 진정됐었어. 어쩌면 통할지도 몰라.’
아멜리아는 세인트가 서 있는 땅을 향해, 바람의 마탄을 연속으로 사격했다.
한 발로는 세인트를 움직일 수 없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탄에 대지가 흔들리자, 세인트가 순식간에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좋아!’
세인트가 옆으로 움직이도록 동선을 유도했던 아멜리아는 곧장 루베르의 마법 도구를 던지고서 세인트가 피하지 못하게, 불의 마탄을 눈앞에 바로 겨냥했다.
펑-!
“크으으윽!”
뜨거운 열기에 한순간 시야가 차단되면서, 세인트의 머리 위로 정확히 우리가 떨어졌다.
“하아…… 됐어…….”
다행히 작전은 성공했고, 우리에 갇힌 세인트는 포효하며 끊임없이 우리에 몸을 들이박기 시작했다.
쿵-! 쿵-!
마나로 이뤄진 철창에 몸을 부딪칠 때마다, 세인트의 새하얀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아멜리아는 또다시 마탄으로 세인트의 움직임을 붙들며 외쳤다.
“세인트, 그만해. 너만 다쳐. 너만 아프다고. 조금만 참아봐.”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아멜리아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랐으니까.
“너도 이러고 싶지 않잖아.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잖아. 네가 이겨내야 해. 네가 거기서 벗어나야 해!”
괴롭게 몸을 비틀던 세인트의 눈동자와 아멜리아의 시선이 한순간 허공에서 제대로 맞닿았다.
아멜리아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까까진 분명 광기에 휘말려 있던 눈동자였는데, 눈가에 분명 습윤한 물기가 서려 있었다.
아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이러고 싶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건지.
하지만 심장께를 찔러 드는 그 아릿한 시선에 아멜리아는 몸이 떨렸다.
“걱정 마. 내가 널 원래대로 돌릴 거야. 그때도 지금도 내 약속은 유효해. 널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내가 어떻게든 그 약속만큼은!”
“……그냥. 날…….”
그때, 귓가로 쇳소리처럼 긁히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숨을 멈췄다.
“……날, 죽여주세요…….”
절망 섞인 어조 끝에 간절한 애원.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는 죽여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안 돼. 네가 왜 죽어…… 네가 왜. 왜!”
그때, 에드조프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한 방울의 독이 바닥으로 번졌다.
그 독은 주춤했던 세인트의 광기를 또 한 번 증폭시켰다.
“으으으으악!”
“세인트!”
세인트는 결국 철창을 뜯어내고선 그대로 아멜리아에게 달려들었다.
이클리트는 그 모습에 곧장 그녀에게 날아가고자 했다.
“아멜리아!”
하지만 그가 날개를 펼치자마자, 에드조프가 검으로 그 날개를 찢었다.
이클리트는 순간 크게 휘청거리며, 에드조프를 향해 외쳤다.
“뭐 하는 거야. 그녀를 죽일 셈이야!”
에드조프는 완전히 뒤틀린 시선으로 섬뜩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멜리아가 죽으면, 너 역시 제대로 살 수 없겠지.”
“뭐?”
“난 죽여서라도 그녀를 가질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에게서 빼앗을 거라고. 그렇게 넌 그녀를 잃은 비극을 알게 될 거다. 그렇게 내 복수를 완성할 거라고!”
에드조프에게 더는 아멜리아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가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것이 설령 시체라고 해도.
그녀의 곁에서 이클리트만 치워내면.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일한 태양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에드조프의 비명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악!”
세인트가 아멜리아가 아닌 에드조프의 어깨를 물어 뜯어버린 것이었다.
에드조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온몸을 파들파들 떨면서 세인트를 응시했다.
“네, 네가 어떻게…… 흐윽!”
그때, 이클리트의 검이 그대로 에드조프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네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