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누군가는 말한다.
연기는 경력이라고.
“지랄.”
배우 경력 10년 차.
박유진은 그 말을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배우는 아우라지, 아우라.”
유진은 터덜터덜 걸었다.
그는 아까부터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몇 분 전.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진이 봤던 드라마 주연 배역 오디션.
그 불합격을 알리는 전화였다.
그래도 전작에서 인연을 맺었던 PD다.
그래서 조금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래, 그래. 나도 알지! 유진 씨 진짜 든든하지. 음, 스페어 타이어 같은 느낌?’
유진에 대한 PD의 평가였다.
스페어 타이어.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그러나 평상시에는 별달리 필요가 없는.
‘그런데 우리 작품이랑은 안 맞아서.’
주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그가 떨어진 주연 오디션만 벌써 스무 번이 넘었다.
“아. 신호 놓쳤네.”
상념에 젖어있던 유진.
정신 차리고 보니 녹색 신호등이 깜빡거리는 중이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이라 유진은 가만히 멈춰섰다.
그런데.
“!”
그 사이.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 도중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고.
멀지 않은 거리에선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해!”
유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
그로부터 2년 후.
서울의 한 드라마 촬영장.
“계속 실패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와 함께해줄래요?”
“······바보 같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요?”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
발랄하고 귀여운 매력의 여자 주인공.
서로 자신의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제 알았어요? 나 바보인 거.”
“진즉 알았죠. 그러니까 입 좀 다물어요. 분위기 깨지 말고.”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도.
눈에서는 꿀이 떨어지는 두 사람.
이윽고 두 사람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얼굴에 번져가는 행복감은 해피엔딩을 암시한다.
이후 둘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로우 앵글로 담아냈다.
그 과정을 수많은 스태프들이 지켜보고 있다.
그건 TV를 통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과 다를 바 없었고.
“OK!!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수고하셨습니다!!”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소리쳤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마치 축제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
“이야, 이렇게 한 작품 또 끝나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한 남자.
커다란 검은색 마스크를 쓴 젊은 남자였다.
다소 후줄근하고 초췌한 인상.
“······.”
그의 이름은 박유진.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였던 남자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유진의 표정.
매우 복잡해보인다.
마치 아주 그리운 고향을 바라보는 얼굴.
“어? 유진이 형!”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 주인공.
이혁준이 유진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아, 혁준아. 오랜만이다.”
그제야 유진도 정신을 차림 모습.
“소식 들었어요. DV 엔터에서 일하신다고요?”
이혁준은 유진이 활동하던 시기.
함께 조, 단역을 뛰며 친해진 배우다.
그런 그가 지금은 어엿한 주연 배우로 거듭난 것.
“그래. 너는 이번이 첫 주인공이라고?”
“네! 어후, 긴장 엄청 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좋은 기회 얻어서 기분 좋네요.”
“혁준 씨! 거기서 뭐해!”
“아, 네! 그럼 형, 나중에 또 봐요!”
작품의 마무리.
그를 맡은 주연을 위해 세팅된 오늘.
끝난 뒤에도 주인공들은 이리저리 바빴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진.
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깃든다.
‘나도 혁준이처럼 계속 연기를 했으면 주연을 맡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유진은 곧 자조적으로 피식 웃었다.
그는 곧 마스크로 가려진 제 입가를 매만졌다.
“이런 얼굴로 무슨.”
“야, 유진아!”
그때.
유진을 부르는 걸걸한 목소리.
“······동석이 형, 아니. 차 팀장님.”
몸집이 두껍고 머리가 휑한 중년의 남자.
DV 엔터테인먼트의 팀장, 차동석이었다.
그는 과거에 영세 엔터를 운영했다가 쫄딱 망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일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직급은 겨우 팀장.
“어때? 드라마 촬영 현장은 오랜만아니냐?”
“네. 조금 낯설기도 하고, 그러네요.”
유진은 배우를 관두고 차동석 밑에서 일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차동석을 따라 촬영장에 나온 것.
배우가 아닌, 기획사 스태프로.
“다들 신났구만. 하긴 이번 작품은 시청률도 잘 나오니까.”
시끌벅적 떠드는 스태프들과 배우를 보며 차동석이 중얼거렸다.
“곧장 회식하려나 본데. 너도 가야지?”
“가봤자 뭐해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허. 이게 다 사회생활인 거 몰라? 자식이, 일을 배우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야지.”
“그래도 전 안 갈래요. 알잖아요. 제가 가면 분위기가 어떨지.”
버릇처럼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를 매만지던 유진.
그를 지켜보던 차동석 역시 조금 씁쓸해진 눈빛이 되었다.
“그래? 쯧, 나도 안 갈란다.”
“네? 왜 형까지 빠져요.”
“괜찮아. 매니저만 붙어있으면 되지, 뭘. 넌 나랑 따로 술이나 한잔 까자.”
그렇게 현장이 아직 시끄러운 틈을 타 촬영장을 벗어나는 두 사람.
차동석은 유진을 한 순댓국집으로 끌고 갔다.
“술 마셔도 괜찮냐?”
“몇 잔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형이야 말로 괜찮은 거예요? 잦은 음주는 탈모에 안 좋다는데.”
“떽! 이놈이. 어디서 머리숱 얘기를 해? 너는 언제까지 풍성할 것 같냐? 어?”
킥킥대는 유진과 달리, 제법 진지한 표정의 차동석.
곧 소주와 잔 두 개가 나왔고.
차동석은 유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아프거나 이상하면 바로 말해.”
“나 참. 내가 무슨 앤줄 아나.”
“얌마. 너랑 나 나이차가 20이 넘는다. 내 눈에 넌 애새끼야, 애새끼.”
물을 마시기 위해 유진이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커다란 상처.
턱 끝부터 인중까지, 제법 기괴한 상처였다.
“어머 깜짝이야!”
“헐, 뭐야 저 사람?”
“저 상처. 설마 박유진인가?”
“그 애 구했다던 듣보잡 배우?”
서빙하던 이모도.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도.
유진의 상처를 보고 흠칫 놀랐다.
누군가는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리기도 했고.
“쯧. 나갈까?”
차동석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유진은 그저 피식 웃을 뿐.
“뭘 나가요. 이제는 익숙해.”
짠.
둘은 술잔을 부딪치고 술을 들이켰다.
“부럽냐?”
잠시 후.
뜸을 들이던 차동석이 입을 열었다.
“뭐가요?”
“모르는 척하지 말고. 너도 얼마 전까진 배우하던 놈이었잖아.”
“······부럽다기보단, 그냥 그리워요.”
“어휴. 네가 갑자기 그렇게 될 줄이야.”
차동석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착한 일 한 새끼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약 2년 전.
빨간불에 신호등을 건너려던 아이를 구하려 몸을 던진 유진.
아이도 유진도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유진은 허리에 큰 충격을 입었고.
설상가상 바닥을 구르며 얼굴이 크게 찢어졌다.
허리는 재활을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버렸다.
도무지 배우로 활동할 수 없을 정도.
“사고 직후엔 다들 빨아재끼지 못해서 안달이었는데 말이야.”
차동석의 말대로.
유진의 선행은 크게 기사화되었다.
<배우 박유진, 횡단보도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다! 경찰 “‘용감한 시민상’ 수상 검토 중”>
<네티즌들 “박유진응원챌린지” 시작... ‘#박유진님감사합니다’ 유행 중>
<박유진의 흉터는 흉터가 아닌 훈장이다. 연예계를 너머 사회의 귀감이 된 그의 행동!>
<배우 박유진, 영화 ‘오늘의 운세’ 오디션 봤었다······관계자 “캐스팅 논의 중이었는데 가슴 아파. 쾌유를 기원한다”>
그러나 모든 뉴스가 그러듯.
유진의 선행도 한때의 가십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머지않아 대중과 언론의 관심도 식어갔고.
<박유진? 걘 애초에 연기가 노잼 아님?
ㄴ아니 이런 좋은 뉴스에도 꼭 악플을 다네
ㄴㄴ 연기 노잼인 건 팩트자너 ㅋㅋ
발연기는 아닌데 몬가...몬가 좀 그럼...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배경인줄;
배우계의 젠지ㅋㅋ 이새끼는 걍 노잼임ㅋㅋ
ㄴ롤충 껒
ㄴ정색 빠는거 보니 박유진빠임? 난 웃기기만 한데ㅋㅋ
ㄴ저런 듣보도 빠가 있음?? ㄹㅇ 얼빠인가 보네
ㄴ노잼에 발작하는 거 보니 젠지빠인 듯 ㅇㅇ
마치 클래식 연주를 듣는 느낌. 남들은 좋다는데 그냥 나는 졸림...
유진 가수님~ 사회의 영웅! 언제나 응원해요^^
ㄴ이 사람 배우예요 아지매;
ㄴ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
ㄴ그래서 박유진이 누군데 이 씹덕들아>
찬양 일색이던 댓글창도 점점 변질되었다.
노잼 연기자.
사고 이후, 댓글 보는 낙으로 살던 유진이다.
흉터보다도 대중의 평가가 아프게 다가왔고.
결국 유진은 은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현재.
차동석의 밑에서 연예계 일을 배우는 중이다.
“조우재처럼 마약하는 새끼들도 잘만 복귀하는데. 진짜 더러운 세상이다.”
“걔네는 주연급이잖아요. 난 듣보잡이고.”
차팀장 말처럼.
심지어 마약한 놈들도 쉽게 복귀하는 게 이 바닥이다.
고개 푹 숙이고, 반성하는 척하며.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그 한 마디면 만사 OK.
그럼 대중들도 욕하다가 어느 순간 잊는다.
왜냐고?
그놈들은 주연이니까.
마약을 하든, 폭행을 하든.
그들의 연기를 보기 위해 대중들은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니까.
“아휴! 넌 진짜 잘 될 수 있는 놈이었는데.”
차동석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말했다.
“하하. 말이라도 고마워요.”
“아니, 진짜라고! 너 원래 비주얼 끝내줬잖아. 자연스러운 연기 지향한다고 살 찌우고, 관리 엉망으로만 하지 않았어도.”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예요.”
차 팀장의 말대로, 유진은 어릴 때부터 인물이 엄청났다.
잘 생겼다는 얘기만 하루에도 수십 번을 들었을 정도.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이목을 끄는 제 특출난 외모를 좋아하지 않았다.
연기를 시작하고서도 마찬가지.
무기가 될 수 있던 그 잘난 외모를 과감히 버렸다.
튀지 않고,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내릴 수 있는 연기.
그걸 지향했으니까.
‘당시엔 주목받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고, 그냥 연기가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멍청한 결정이었나.
이미 배우 인생이 끝장난 지금, 후회해 봐야 늦었겠지만.
“진짜. 내가 아역들 키웠을 때 널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임마,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아역배우 계의 이건희, 이재용이었어 임마.”
“어휴. 또 라떼는 말이야. 형 취했어요?”
그렇게 순대국밥에 소주를 잔뜩 마신 뒤.
차동석과 헤어져 집으로 가던 유진.
‘박유진 씨. 네. 연기 잘하죠. 자연스럽고.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능력이 없어요. 그걸 매력이라고 하죠.’
불현듯 한 영화감독의 충고가 떠올랐다.
“후우.”
허공을 향해 한숨을 내쉬는 유진.
“매력이라.”
유진은 천성이 소심했다.
남에게 주목받는 걸 매우 부담스러워했고.
배려와 양보를 미덕으로 삼았다.
그래서 삼은 목표.
‘어떤 상황이든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연기자가 되자.’
그 목표는 확실히 이뤘다.
그러나 녹아든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이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선을 확 끌어야 한다.
그래야 배역을 따내고, 인기를 끌고, 롱런할 수가 있다.
그게 바로 주연 배우들.
하지만, 유진은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다.
“나도 주목받으며 연기하고 싶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와중.
“찾았다.”
낯설고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인 유진.
거기엔 예상치 못한 얼굴이 있었다.
“너, 너는!”
다름 아닌 유진이 구했던 꼬맹이였다.
“너, 너 괜찮아? 연락처도 모르고, 소문도 안 들려서 엄청 걱정했어!”
아이가 무사하다.
그 얘기 외엔 행방이 묘연해 걱정하던 유진이다.
그런 유진에 비해, 아이는 매우 침착해 보였다.
“이제야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어요.”
“뭐라고?”
“아저씨. 몇 가지 물어볼게요. 후회 안 하세요? 저 구한 거요.”
가타부타 없이 직구로 들어오는 질문.
당황한 유진이었으나 아이의 눈빛이 너무 올곧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문했다.
정말 후회한 적이 없는가?
“······후회는 안 해. 안 하는데. 미치도록 아쉬운 게 있어.”
“그게 뭐예요?”
“한 번도 주연을 해보지 못한 거. 아저씨가 말이야, 배우였거든.”
“그게 아저씨의 소원이구나. 그럼요. 옛날로 돌아가면, 가능할 것 같아요? 주연을 따내는 거요.”
대뜸 찾아와,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그러나 술에 취해서일까.
유진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응. 무슨 일이 있어도 따낼 거야.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깜짝 놀랄 연기를 보여줄 거라고.”
내성적이던 유진이 처음으로 드러낸 야망.
‘하지만 너무 늦었어.’
그러나 때늦은 야망은 미련일 뿐.
“그렇구나.”
아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럼, 이제부터 잘 해봐요. 그 무엇도 양보하지 말아요. 대중들의 시선을 모두 빼앗아오라고요. 그게 바로 배우예요.”
마치 훈수하는 것 같은 말투.
아이는 등을 돌렸다. 하얀 원피스가 나풀댔다.
“그게 무슨. 얘야. 너는 대체······?”
“아, 그리고. 구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싱긋 웃더니.
총총 달아나버렸다.
“······대체 뭐지?”
유진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느낌.
제법 독특한 아이인 모양이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저 왔어요, 아버지.”
곧 집으로 들어온 유진.
고인이 된 아버지의 사진에 인사를 남기고.
유진은 대충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으음...”
술을 마신 탓일까.
유진은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잘 해봐요. 그 무엇도 양보하지 말아요. 대중들의 시선을 모두 빼앗아오라고요. 그게 바로 배우예요.’
그런 와중.
아까 아이가 했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럼요. 옛날로 돌아가면, 가능할 것 같아요? 주연을 따내는 거요.’
그 아이의 말처럼, 진짜 과거로 돌아간다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가 될 거다.’
노잼이 아니라.
배경이 아니라.
듣보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유명한 주연 배우.’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연기만 해도 좋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욕망을 품기 훨씬 이전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응애!”
음?
이렇게 과거는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