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남자.
박태종은 요즘 고민이 생겼다.
모든 아빠들이 한 번쯤은 거쳐가는 고민.
요즘, 아들의 애교가 줄어든 것 같다.
“으음.”
박태종은 제 턱을 쓰다듬었다.
누가 보면 팔불출 아빠의 주접인줄 알겠으나.
‘우리 유진이가 좀 특별했어야지.’
유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애들과 달랐다.
기어다니는 것, 두 발로 서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까지.
모두 비교가 안 되게 빨랐다.
무엇보다 아들은 또래에 비해 무척이나 의젓했다.
떼를 쓰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반찬 투정을 부리거나,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다.
“우리 유진이. 먹고 싶은 과자 없어?”
박태종은 병으로 아내를 잃고서, 단칸방에서 아들과 함께 산다.
아들한테 과자 하나 사주는 것도 벅찬 지갑.
그런 박태종을 이해라도 하는 듯.
“없어요.”
유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슈퍼만 가면 애들은 과자 하나라도 더 사고 싶어서 난리인데 말이다.
“난 아빠가 만들어준 누룽지가 좋아요.”
달콤한 초코과자 다 놔두고.
후라이팬에 먹다 남은 밥으로 만든 누룽지가 더 좋단다.
“유치원에서도 얼마나 의젓한데요. 모두 유진이를 따라요! 애들이 싸우면 그러지 말라고 혼내고, 화해까지 시켜준다니까요?”
유치원 선생은 그리 말했다.
어딜 가서도 사랑받는 아들이다.
‘내 아들이지만, 가끔은 애가 아니라 건실한 청년 같단 말이야.’
그런 위화감이 가끔 들 때도 있지만, 아무렴 어떠랴.
남들은 애 키우는 게 지옥이라는데.
박태종에게는 힘들기는커녕, 매일 행복했다.
삶의 이유가 아들, 그 자체였다.
“아빠!”
“응? 왜 그러니, 유진아.”
“내가 크면, 꼭 아빠 호강시켜주께요!”
치킨 배달로 돈을 버는 박태종.
아들에게 못 해준 게 많아 항상 한으로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못난 아빠를 둬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허허. 그래. 우리 아들만 믿을게!”
그런 아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을 해줄 뿐.
‘유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해.’
무더운 더위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웃으면서 배달을 할 수 있는 건, 제 자랑인 아들내미 때문.
그런데.
그런 유진이가 8살을 먹고 나니, 조금 달라졌다.
“유진아.”
“아빠!”
“또 TV 보고 있는 거야?”
유진은 어릴 적부터 TV를 너무 좋아한다.
파워레인저나 뽀로로를 보는 게 아니다.
드라마, 영화를 엄청 좋아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액션, 스릴러, 로맨스, 심지어 공포까지.
키스신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면 박태종은 깜짝깜짝 놀랐고.
“유진아. 이런 건 아직 네가 보면 안 돼!”
“응. 알았어요”
그럴 때마다 유진은 떼도 쓰지 않고 순순히 TV를 껐다.
그러나 박태종이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어느 샌가 다시 TV를 몰래 보고 있더라.
밝기를 최저로 줄인다든가.
볼륨을 최저로 줄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속을 썩이지 않는 유진이지만.
아들이 허구언날 TV만 보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래. 저놈의 TV 때문에 애교가 줄었어!’
빠빠, 빠빠 거리며.
양손을 벌리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유진.
안아주면 볼에 뽀뽀해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것만, 이것만 볼래요!”
지금은 영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모양.
아들이 보고 있던 건, 드라마 <너만이 내 사랑>.
조연보다 주연 두 사람의 서사가 짙고,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로맨스 드라마? 또 키스신 같은 게 나오면 어쩌지.’
박태종은 고민했다.
아들은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커다란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를 가졌던 아내를 쏙 빼닮은 아들.
박태종은 아들의 얼굴을 볼 때면 마음이 약해졌다.
거기에 애교까지 부리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 그럼 그것만 보는 거다?”
“네! 아빠 사랑해요!”
쪽.
볼에 뽀뽀를 해주는 유진.
그러자 박태종의 불안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오랜만에 보는 유진의 애교였으니.
‘이래서야, 아들 훈육은 제대로 못 하겠군.’
물론 유진은 훈육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고 있지만 말이다.
유진의 옆에 자리 잡은 박태종.
구형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유진아. 유진이는 TV가 좋아?”
“으음, TV가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럼?”
“배우들! 배우들이 좋아요.”
의외의 대답에 박태종은 놀랐다.
아직 어린아이라 TV 속 인물과 배우를 헷갈려할 줄 알았는데.
“우리 유진이도 배우가 하고 싶어?”
그러자 유진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내가 연기 보여줄까요?”
“오! 아빠 보고 싶어! 보여줘!”
박태종은 아들 앞에서 발까지 동동 구르며 기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제 아들의 연기에 압도된 박태종.
“우리 아들 완전 연기 천재였어!!!”
*
‘아버지, 아버지!’
한 병원의 응급실.
한 청년이 침대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아버지, 제발요!! 눈을 뜨세요. 저예요, 유진이라고요!’
하지만 청년의 절박한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침대 위 청년의 아버지는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아버지가 왜!!’
청년이 의사에게 소리치듯 물었다.
‘오토바이 배달 도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그대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살 수 있죠? 네? 살릴 수 있는 거죠?!’
‘죄송합니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위독하신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호송 도중······사망하셨습니다.’
청년의 동공이 풀리고.
곧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안돼. 아버지······제가 집 사드린다고 했잖아요, 흑, 흐윽. 배달 일 그만두고······편안하게 모시려고 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청년.
‘못난 아들이라 죄송해요······제가 일찍 성공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슬픔이 가슴 속에서 넘실거렸다.
그와 동시에.
“헉!”
유진이 잠에서 깼다.
악몽을 꾼 탓에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설마······!”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유진.
그러자 바로 옆에는 제 아버지.
젊은 박태종의 얼굴이 보였다.
“꿈이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크게 한숨을 내쉬는 유진.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던 때와 달리 발음이 매우 또박또박하다.
“후우. 아버지······.”
유진은 박태종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온기가 전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이 28살이던 해.
겨울 새벽에 배달을 하다가, 미끄러진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자신이 배우로 일찍 성공했다면.
그래서 배달 일을 그만두고, 편히 쉴 수 있게 해드렸다면.
항상 그런 죄책감을 달고 살던 유진에게 주어진 기회.
“회귀해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 회귀했다.
어린 시절로.
회귀 시점이 갓난아기라 좀 당황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전생에 서먹했던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그런데 갑자기 회귀 전 꿈을 꾸다니. 아까 그 연기 때문인가?’
아까 유진이 박태종 앞에서 보여준 연기.
최근에 봤던 드라마, <가족끼리 이러지 마!>에 나오는 한 장면.
여러 가족의 군상을 그린 일일연속극으로.
유진이 연기한 건, 그처럼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 역할.
매번 통닭을 사오던 아버지가 밤늦게까지 돌아오질 않는다.
아이는 겁쟁이지만 아빠를 찾아 밤거리로 나선다.
사고를 당한 아빠와, 그런 아빠를 찾아 울먹이며 헤매는 아들.
두 장면이 교차되어 비극성과 안타까움을 고조시켰던 장면.
‘아빠. 아빠아아······어디 있어. 아빠,나 배고파. 통닭 먹고 싶어. 빨리 집에 가자. 아빠아······.’
겁에 질렸으면서도, 아빠를 찾아다니는 모습.
그런 와중에 통닭을 찾는, 웃기면서도 슬픈 요소까지.
아역임에도 불구하고 꽤 어려운 연기다.
‘아빠 안 추워? 나, 난 추워. 집에 가자. 아빠, 아빠아······흑, 흐흑.’
전생과 달리 유진의 연기는 매우 실감났다.
유진 스스로도 체감할 정도.
그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유진이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있다는 것.
둘째,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유년 시절을 겪었다는 것.
아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연기자로서 큰 수확이었다.
“이번엔 꼭 집 사드릴게요, 아버지.”
잠든 박태종 앞에서 재차 결심하는 유진.
회귀하기 전, 일찍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아버지를 서먹서먹 대했다.
애정표현도 잘 못 했고.
그래서 더더욱 애교를 부리고.
마음의 짐을 하나라도 덜어드리려 노력했다.
환갑이 되도록 오토바이를 몰고 치킨 배달 일을 하시던 아버지.
연기라는 불확실한 길을 가는 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셨던 아버지.
“빨리 성공해야만 해.”
전생에선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창 돈을 벌던 와중 나락에 갔으니.
“이제 슬슬 움직일 때야.”
달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유진.
전생에서 유진이 배우로 데뷔했던 나이는 스물한 살 때.
그러나 유진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
다음날.
“유진아!”
유진은 현관문에서 헐레벌떡 들어오는 아버지를 반겼다.
“아빠, 어디 갔다 왔어요?”
“가게. 가게 갔다 왔지.”
“오늘 아빠 쉬는 날이잖아요?”
“가게에 컴퓨터가 있잖아. 거기서 연기학원 좀 알아왔지!”
이 당시 유진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아버지 박태종은 휴일임에도 가게로 향한 모양.
컴퓨터로 아역 연기학원에 대해 검색해보려고 말이다.
“아빠가 찾아보니까 <스타플레이어>라는 곳이랑 <아이키움>이라는 곳이 유명하대!”
두 학원은 유진도 알고 있었다.
연예계 업계에 오래 있던 유진이다.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
그래서 그 학원들이 얼마나 유명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싼지 잘 알고 있다.
‘비싸다고 내색도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밀어주시려고 가장 좋은 곳들만 찾았겠지.’
학원비가 얼마나 비싸든.
박태종은 투잡을 뛰어서라도 마련할 것이다.
그런 아버지였다.
8살이 되도록 유진이 배우가 하고 싶다 말하지 않았던 이유.
그게 아버지에게 부담이 될까 두려웠던 탓이다.
‘물론 연기학원에 가면 이득이 많다고 듣긴 했어.’
무엇보다 그곳에서 구축하고 있는 네트워크가 있다.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까지.
좋은 학원을 가면 제법 풍부한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
즉, 학원은 아역들을 꽂아주기에 가장 좋은 커넥션인 것.
“아빠! 나는 학원 안 가도 돼요.”
하지만 유진은 과감히 포기했다.
‘내 배우 짬밥이 있는데, 굳이 돈내가며 연기를 다시 배울 필요 없지.’
기본기만큼은 회귀 전부터 완성형이었으니까.
박태종이 보지 않는 사이, 기본기 연습도 틈틈이 했고.
“그, 지식아웃에 검색해보니까 아역들은 꼭 학원에 가야한대!”
관련 정보가 전무한 박태종은 인터넷에 의지할 수밖에.
그렇게 학원을 보내려는 박태종과 거부하는 박유진.
두 부자 사이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전 그런 곳 안 가도 잘 할 자신 있어요.”
유진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래,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천재라 학원 같은 거 필요 없지! 암!”
결국 박태종이 한 수 접었다.
저렇게 아들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혹여 학원을 강요하는 게 상처로 느껴지진 않을까 싶었던 것.
무엇보다 박태종은 제 아들의 능력을 믿었다.
“그래. 그럼 이제 어떡하나. 오디션인가 뭐시긴가, 그거부터 봐야하나?”
“갈 곳이 있어요.”
8년을 준비한 유진이다.
데뷔 플랜은 이미 다 짜놓은 상태.
유진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어, 어디 가려고?”
박태종의 물음에 유진이 해맑게 대답했다.
“주역 매니지먼트요!”
전생의 인연을 떠올리며, 유진은 피식 웃었다.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호형호제했던 그 사람을 말이다.
‘차 팀장님, 아니. 동석이 형. 젊었을 적엔 좀 풍성했으려나?’
*
“오빠. 요즘 정수리가 휑하다?”
“뭐라고?!”
미래 차 팀장이라 불리는 남자.
차동석은 아내, 장미소의 말에 황급히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휑하기는! 아직 울창하구만!”
“울창은 무슨. 겨울나무처럼 잎새가 줄어가는 게 안 보여? 그리고 오빠 머리 감을 때마다 하수구에 빠진 머리카락 좀 봐.”
“으아아악! 아냐! 아니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차동석.
장미소는 휑한 사무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전기세도 안 나오겠네, 이러다가.”
<주역 매니지먼트>
벽에 걸어둔 회사 로고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벌써 1년인가.”
두 사람은 1년 전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렸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다.
DV엔터에서 오래도록 매니저를 했던 차동석.
어느 날 아역팀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거대 기획사라지만 아역 관련 네트워크는 전무했던 DV엔터다.
당시 입지가 애매했던 차동석 짬처리 당하듯 아역팀을 맡게 된 것.
그러나 차동석은 혼자 힘으로 아역팀을 업계 최고 레벨로 끌어올렸다.
확실한 일처리와 풍부한 인맥, 일을 설계하는 능력까지.
“그런데 설마 회사가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
그러나 아역배우들의 처우와 관련.
차동석과 회사 간의 이견이 크게 갈렸고.
DV엔터는 차동석을 단번에 잘라냈다.
말 그대로 토사구팽.
“우리가 제대로 된 기획사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아역은 물론, 그냥 배우들도 모두 적극 키워내는 회사.
그를 지향하며 세운 것이 바로 주역 매니지먼트다.
당시 차동석과 인연이 있던 몇몇 배우들.
그들은 계약종료 후 주역 매니지먼트에 들어왔다.
DV엔터 홍보팀이던 차동석의 아내 장미소도 자연스레 합류했고.
인맥과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 갖추고 시작한 셈이다.
“신인에 중견급도 있어서, 입에 풀칠은 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배우들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해서, 회사도 세를 불려가고 있었는데.
“설마 그 새끼들이 다 이적할 줄은 몰랐지.”
대형 엔터 쪽에서 배우들을 쏙쏙 빼갔다.
처음에는 의리니 형제니 하며 뭉쳤던 배우들인데 말이다.
“역시 아역 에이전시를 했어야 하나.”
“아니, 어차피 DV새끼들이랑 싸움 안 됐을 거야. 알잖아. 부모들은 이름값 엄청 보는 거. 우리 같은 영세한테 누가 애를 맡기겠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는 차동석.
그의 말대로.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부모들은 결코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동석이 유능하건 말건.
무조건 대형 기획사를 찾아가는 것이고.
“사실 며칠 전에 전화 왔어. DV 쪽에서.”
슬쩍 눈치를 보던 장미소가 넌지시 말했다.
“DV엔터? 걔네가 뭐라는데?”
“다시 돌아올 생각 없냐고. 오빠 얘기도 많이 해. 없으니까 빈자리를 느낀다, 이러면서. 오빠 엄청 그리워하더라.”
“허. 있을 때 잘할 것이지.”
개고생을 하며 일궈낸 아역팀을 통째로 빼앗긴 탓일까.
다시 DV 엔터에서 일하는 것도.
아역과 함께 일하는 것도.
차동석은 이제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생각 좀 해본다고 했지.”
“그냥 까버리지 그랬어?”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자기들이 급한 모양이던데. 게다가 우리 지금 파리만 날리잖아. 돌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자기야. 자기는 그 홍보팀으로 돌아가고 싶어?”
“못할 게 뭐 있어? 돈 벌려면 뭐든 해야지. 돈도 못 버는데 따박따박 사무실 월세 내는 것보단 합리적이잖아?”
동글동글한 인상과는 달리.
장미소의 눈빛과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반면 차동석은 거대한 덩치로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 진짜 죽어도 돌아가기 싫은데.”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어.”
“우리 자기는 너무 냉정해. 어휴. 어디 우리 좀 먹여살릴 신인 안 나오나? 확 시선을 휘어잡을 수 있을 놈.”
“그런 애가 우리한테 오겠어?”
장미소의 태클에 차동석이 피식 웃고 있을 무렵.
똑똑!
갑자기 들린 노크 소리.
아무런 약속이 없었기에, 장미소와 차동석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누구지?”
“몰라? 따로 연락온 것도 없는데.”
장미소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거기서 나타난 것은.
“안녕하세요, 차동석 사장님! 머리숱이 풍성하시네요!”
웬 당돌한 꼬맹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