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케이블 채널 온플러스.
드라마국의 회의실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온플러스에서 절찬리 방영 중인 드라마 <유별난 친구들>.
그 스태프들이 모여있는 상황.
“아니, 진짜!”
쾅!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가 울리고.
주먹을 쥐고 있는 검은 뿔테 안경의 남자.
CP(Chief Producer, 책임 프로듀서) 정승복.
일명 정CP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거리야!”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단단히 생긴 모양.
다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정CP가 대표해서 화를 내는 느낌.
그 정도로 회의실 안에는 공통적으로 불만 어린 감정이 가득했다.
“야, 석기야!”
그 말에 달려온 것은 빼빼마른 체구의 남자.
연출PD인 고석기, 일명 고PD다.
“어떻게 됐어?”
고PD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고.
“아오, 아역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냐고!”
정CP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난동을 부렸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바로 2화 뒤에 아역이 등장하는 장면 때문이다.
딱 한 장면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아이도 아니다.
주인공 친구의 아들.
그런 조단역을 캐스팅하지 못해 모두가 곤란한 지경인 것.
“아니 무슨 아역 비주얼을 이렇게 따져대는 건데?!”
대본 및 배역표에 쓰여있다.
매우 귀엽고 천사 같은, 깜찍한 아이.
그야말로 좋은 수식어는 모조리 때려박은 수준.
그런데 어떤 아역 프로필을 가져가도.
작가 송미연이 모두 퇴짜를 놓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비주얼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당장 다음주에 방영해야하는데! 아오!”
한국 드라마 제작은 생방송 버금가는 쪽대본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작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수준.
영화와 달리 화수가 나뉘어져 있고.
한편한편이 시청률, 작품 전체의 평가와 직결되니까.
“깐깐하다고 말은 들었지. 설마 아역 하나로 작품을 인질잡냐. 엉?”
“지상파 있을 때도 유명했답니다. 신인 때부터 PD들이랑 대판 싸웠다고요. 자기 작품은 자기가 완벽히 핸들링해야하고, 연출이 손대는 거 극혐한다고 하고.”
드라마 계약 이후.
정CP도 송미연 작가와 잦은 의견충돌이 있었다.
케이블 채널 짬밥은 정CP가 한수 위.
그러나 이땐 아직 케이블 드라마가 2류 취급받는 시기다.
지상파 드라마 작가 출신이라면 케이블에서 모셔가려 하는 수준.
게다가 송미연은 지상파에서 히트작도 제법 만든 작가.
물론 그 이후 줄줄이 실패해 결국 케이블까지 굴러왔지만.
그래도 위상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냥 아역 나오는 장면 빼고 먼저 촬영하죠.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방법인데.”
“그게 말이 되냐? 그럼 그 작가가 무슨 지랄을 할지 어떻게 알아!”
계속 테이블만 두드려대던 정CP.
곧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PD에게 물었다.
“야, 석기야. 진짜 다 별로래? 아역 에이전시한테 다 프로필 받아냈을 거 아니야!”
“네! 설마 저도 다 퇴짜 놓을 줄은 몰랐다니까요? 뭐랬더라. 디렉터님 눈에는 얘네가 예뻐보여요, 이러는 거 있죠?”
“애들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바라는 거야! 대체! 야. 어제 네가 연락넣은 그 포토그래퍼는? 그 사람은 뭐래?”
“아, 그게 말이죠······.”
고PD가 대답하려던 그때.
끼익-!
회의실 문이 열리고 등장한 여자.
동그란 안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신경질적 외모.
온몸에 둘둘 두른 명품 옷과 명품 가방.
송미연 작가였다.
“회의 중이셨나보네요? 드라마 회의를 작가 빼고 하면 쓰나요.”
회의실 전체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마치 집단으로 송미연 작가 뒷담을 하다 걸린 모양새.
“하하. 회의는요. 별 얘기 안 했습니다. 게다가 작가님은 집필하느라 바쁘실 것 같아서요.”
그 분위기를 겨우 깬 것이 고PD였다.
눈치 좋게 송미연을 띄워주며 화제를 바꾸려 했다.
“아, 그러고보니 슬슬 저녁 시간이네요. 오늘은 뭐 먹을까요? 감자탕 맛집 아는데 거기로 가는게.”
“알아요. 아역 얘기하고 계셨던 거죠?”
그 노력이 무색하게.
송미연이 직구를 꽂아버렸다.
그러자 회의실 안에 있던 스태프들이 모두 뜨끔했고.
그 반응을 보고선 송미연이 피식 웃었다.
“스태프들도 연기 좀 배워야겠어요. 이렇게 쉽게 들켜서야.”
그제야 스태프들은 깨달았다.
송미연이 던진 미끼에 단체로 낚여버린 것이라고.
과연 히트작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저는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도저히 그 엄청 예쁘고 귀여운 아역을 찾을 수가 없네요.”
이미 들킨 거 어쩌겠냐는 듯.
지칠대로 지친 정CP가 다소 비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의외로 송미연은 동요하지 않았고.
“저 괜히 CP님이랑 힘싸움 하려고 지랄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아역 비주얼이 중요해요.”
대신 힘을 주어 강조했다.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주인공 이해라의 친구 장하연. 그 아들이 엄청 유명한 키즈모델이란 설정이죠. 등장은 안했지만 장하연이 계속 아들자랑을 하고, 작품 내에서 예쁘고 귀엽단 언급을 엄청 많이 했다고요. 그래서 장하연 아들이 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 이미 시청자들의 기대가 엄청 높아져 있다고요.”
송미연의 말대로.
<유별난 친구들>은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군상극.
그중 장하연은 만나기만 하면 아들자랑을 하는 팔불출 캐릭터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여태 장하연의 아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등장하지 않으면서 등장인물들보다 존재감을 키운, 특이한 전략.
그리고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장하연 아들이 궁금하다는 내용이 다수 올라와있다.
“이 기대감을 채우려면 진짜 비주얼이 좋아야 한다고요. 어중간해서는 오히려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이탈할 거예요.”
이에 대해선 정CP, 고PD도 공감하는 바였다.
‘그럼 애초에 언질이라도 주던가!’
문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말도 없던 송미연의 태도다.
연출을 맡고 있는 고PD조차 장하연 아들이 이렇게 중요한지에 대해 언질을 못 받았다.
최초 기획 및 시놉시스는 있었다.
그러나 쪽대본으로 진행하며, 송미연 마음대로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
‘게다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면 미리 원하는 배우라도 말해주던가. 이제와서 찾으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차마 말은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고PD.
그런데 그때.
우웅-! 우웅-!
진동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고PD의 휴대폰.
눈치를 보고 서둘러 끊으려던 고PD.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액정에 뜬 게 제이미의 전화번호였던 것.
“아,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잠시 복도로 나온 고PD.
곧장 전화를 받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어, 제이미!”
“PD님. 어제 말씀드린 아이 사진, 방금 직원 시켜서 보냈어요.”
“응? 사람을 보내? 등기로 보내지 그랬어. 아니, 우리가 가져가도 되는데.”
“하루라도 일찍 보여드리고 싶어서······크흠! 아니, 그냥. 빨리 처리하면 좋잖아요?”
“자네같이 바쁜 사람이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참 고마워. 그런데 그 애 비주얼이 그렇게 좋아? 제이미가 그렇게까지 칭찬한 건 처음 본 것 같은데.”
“비주얼도 비주얼인데······아니다. 그냥 직접 보시는 게 제일 확실할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찍은 사진이니 실물보다 더 잘 나왔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고마워, 제이미! 나 진짜 말라죽기 일보직전이야. 나중에 술 한 잔 살게.”
뚝.
전화가 끊긴 뒤, 고PD는 방송국 출입구로 나갔다.
잠시후 정말 멜랑꼴리 스튜디오에서 보낸 사람이 도착했고.
“감사합니다.”
갈색 종이봉투를 건네받은 고PD는 곧장 사진을 확인했다.
그런데.
사진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그건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
다다다다-!
고PD는 곧장 다시 회의실로 달려갔다.
쾅!
급하게 회의실 문을 열어젖힌 고PD.
그는 헥헥대며 종이봉투를 송미영에게 건넸다.
“헥, 헥! 찾았습니다. 비주얼 좋은 아역. 얘 아니면 저 진짜 포기합니다, 작가님.”
영문을 몰라 눈을 끔뻑이던 송미연.
그녀는 고PD가 건넨 봉투를 받아들고, 사진을 확인했다.
그리고 송미연의 표정 역시.
아까 사진을 본 고PD와 똑같아졌다.
“이 애한테 연락 넣어요. 당장.”
*
한편.
박유진과 박태종이 사는 단칸방.
“신기하네.”
박태종은 이른 아침부터 출근했고.
홀로 남은 유진은 자신의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세 가지 컨셉에 맞는, 세 가지 프로필.
유진의 비주얼과 제이미의 실력이 합쳐져 좋은 사진이 나왔다.
물론 그에 비해 경력란은 텅텅 비어 있었지만.
“앞으로 채우면 그만이야.”
똑똑.
그때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어른일지 몰라 경계해야할지 모르지만.
유진은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유, 유진아. 나야.”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
바로 유신애였다.
“안녕! 어서와!”
“내, 내가 이렇게 놀러와도 돼?”
“응! 아빠 일갔거든.”
“그, 그렇구나. 고마워.”
자신의 집보다 훨씬 좁은 단칸방이지만.
유신애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유진의 집에 왔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으니.
“그, 그럼 뭐하고 놀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유진은 <리플레이>의 대본을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 역할놀이 하자!”
“······응?”
“내가 주인공인 명준 역할을 할게! 네가 반 친구 역할을 해줄래?”
유신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본을 받았다.
자신의 엄마가 쓴 대본이지만.
유신애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다.
거기엔 로맨스도, 멋진 남자 주인공도 없었으니까.
‘이 종이가 이렇게 너덜너덜했나?’
그 두툼한 종이뭉치가 꽤 닳아있었다.
정말 여러 번 읽었다는 흔적.
“우리가 역할놀이 할 장면은 이거!”
유진이 대본을 펼쳐 한 장면을 짚었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짚었던 장면.
“나, 나 연기 잘 못하는데.”
“괜찮아! 그냥 노는 거잖아? 해주면 안될까? 응?”
얼굴을 들이밀며 부탁하는 유진.
그러자 유신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알았어!”
“아싸! 고마워!”
그러자 금세 얼굴이 멀어지는 유진.
치고 빠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난 왜 유진이가 얼굴만 들이밀면 마음이 약해지지?’
아무튼.
유신애는 대본을 들고 대사를 살폈다.
그런데 대본이 하나 뿐이라, 유진이 빈손이었다.
“너, 너는 대본 안 봐도 돼?”
“응. 다 외웠거든!”
유진의 태연한 대답.
하지만 유신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가 커졌다.
‘이 두꺼운 대본을 다 외웠다고?’
매일 인소를 재탕하는 유신애지만.
그 소설을 통째로 외우지는 못한다.
“자, 그럼 시자악!”
놀랄 새도 없이 유진이 스타트 신호를 끊었고.
유신애는 허둥대며 대본을 훑었다.
[#S10. 초등학교, 교실 내부.
하교 시간. 저마다 떠들어대던 아이들. 명준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보고 키득댄다. 곧 그들의 시선이 명준이 들고 있는 실내화 주머니로 향한다. 곧 아역 단역A가 달려가 명준의 실내화주머니를 빼앗는다.]
대본에 쓰여있는 지문을 읽은 뒤.
유신애가 대사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어, 그, 그. 야, 야! 이명준. 너, 실내화 주머니 새로 샀냐?”
유신애의 목소리는 벌벌 떨렸다.
놀이라고 하긴 했지만.
유진 앞에서 연기한다는 게 엄청 떨렸으니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혹시나 싶어 유진을 흘긋 쳐다본 유신애.
그런데 유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유신애는 몸을 벌벌 떨었다.
‘······유진이 맞아?’
유진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으니까.
텅 빈 동공과 살짝 벌어진 입.
거기에 묘하게 움츠러든 어깨까지.
언제나 밝고 활기찬 유진이었기에.
유신애에겐 그 변화가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돌려줘어.”
평소의 유진과는 전혀 다른.
어눌하고 느릿느릿한 목소리였다.
비주얼과 합쳐지니 예쁜 바보 같달까?
“뭐, 뭐? 지, 지금 돌려달라고 한 거야? 그 바보 이명준이?”
그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연기에 몰입한 유신애.
아까보다 목소리의 떨림이 줄어들고, 발음도 좋아졌다.
“내 보물이야. 선물로, 받은 거야아.”
“실내화 주머니가 네 보물이야? 진짜 웃기다!”
나름 비열한 척을 하려 애쓰는 듯.
말투가 익살스러워지기까지.
“빨리이 돌려줘.”
유진이 연기하고 있는 명준.
그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간절해졌다.
[그 실내화 주머니는 명준이 태어나 처음으로 선물받은 물건. 명준은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의사표시를 시작한다]
대본에 그러한 설명이 붙어있었으니.
그를 반영한 모양.
“그럼 네가 가져가보든가.”
소심하게 손을 흔드는 유신애.
나름 제 손에 실내화 주머니가 있다고 상상 중인 모양이다.
“아, 이거 내가 더 멋지게 꾸며줄게! TV에서 봤어! 리폼이랬나?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서 다 찢은 다음······.”
자기도 모르게 몰입한 유신애.
거의 대본에 빨려들어가기 직전이다.
흥분한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을 때.
탁!
유진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
순간 대본에서 눈을 떼고 유진과 얼굴을 마주한 유신애.
유진의 눈동자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까 그 텅 빈 눈동자와는 달랐다.
아니, 진화했다고 표현해야 옳을까.
그 텅 빈 눈동자에 점차로 번져가는 이상한 기운.
유신애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유신애는 알지 못했으나.
그건 명백한 살기였다.
[손목을 낚아채는 명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빠른 움직임이다. 곧 명준이 강하게 손목을 붙잡는다. 붙잡힌 아이는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지만, 명준은 놔줄 생각이 없다.]
대본에 적힌 지문.
그를 보며 유신애는 덜컥 겁을 먹었다.
저 유진의 눈동자를 보니.
제 손목을 결코 놔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 저······.”
“자, 끄읏!”
그런데 그런 우려가 번져가기도 전에.
유진은 깔끔하게 유신애의 손목을 놔줬다.
아까 그 느릿한 말투와 텅 빈 눈동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평소처럼 밝고 쾌활한 유진만이 있을 뿐이었다.
“와, 신애야. 너 연기 잘 한다! 깜짝 놀랐어!”
“응? 어, 응.”
유신애는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유신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제 손목을 내려다봤다.
아프진 않은데.
어딘가 쎄한 느낌.
“마실 것 좀 가져올게 너 보리차 조아하니?”
“응? 어, 응.”
“잠깐만 기다려.”
냉장고로 도도도 달려가는 유진을 보며.
유신애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저런 게······배우구나.”
유신애가 감탄하고 있을 때.
유진은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
“와, 진짜 잘 뽑혔네.”
멜랑꼴리 스튜디오에서 전해받은 유진의 사진.
차동석은 사진들을 한참이나 보며 감탄하는 중이었다.
“브로마이드로 뽑아서 방에 걸어둘까?”
“뭐래, 진짜.”
장미소가 태클을 걸었다.
“애가 그렇게 갖고 싶어?”
“아니, 뭐. 당신이 힘들면······어쩔 수 없지.”
유진의 영향인지.
부쩍 아이를 낳고 싶다고 티를 내는 차동석이다.
장미소는 여태 별 생각이 없었고.
잠시 고민하던 장미소가 넌지시 말했다.
“수입 좀 안정되고. 회사 잘 굴러가서 여유 생기면 그때 생각해보자.”
“진짜? 진짜지? 응?”
장미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뛸 듯이 기뻐하는 차동석.
‘물론 그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업계에서 고수입과 여유로움은 공존할 수 없다.
잘 되면 잘 될수록 바빠질 수 밖에.
장미소가 판단하기에 유진은 잘 될 수밖에 없는 배우다.
‘그 이후엔 새로운 아역배우도 영입해야지.’
즉, 장미소는 일을 쉴 생각이 없는 것.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오빠가 또 삐치겠지.’
그래서 장미소는 일부러 두루뭉술한 조건을 내건 것.
역시 차동석 다루는데에는 선수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감상은 그만하고. 이제 프로필 좀 뿌리자.”
장미소가 차동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았어. 일단 기본 프로필 위주로 뿌리고, 그 뒤에 반응 좀 보고 분위기에 맞게 다른 사진도 캐디(캐스팅 디렉터)들한테 돌리자.”
힘이 불끈 나는지 열의에 불타는 차동석.
물론 장미소 역시 프로필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홍보팀에서 아역배우 프로필을 질리게 만들었는데. 박유진, 얘는 볼 때마다 새롭단 말이야.’
프로필을 돌리기 시작하면 연락 꽤나 올 것 같다.
장미소의 직감이었다.
“그럼 난 방송국 가서 직접 좀 뛰어볼까.”
그때.
♪~♬~
한동안 울린 적이 없던 주역 매니지먼트의 전화기.
그게 힘차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차동석과 장미소.
차동석은 곧 얼떨떨해하며 수화기를 들었고.
“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거기가 주역 매니지먼트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아, 안녕하십니까! 온플러스의 정승복CP입니다. 거기가 아역배우 박유진의 소속사 맞죠?”
“네? 그걸 어떻게······.”
그리고 잠시 후.
전화가 끊어진 뒤.
차동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 모습에 궁금해서 장미소가 궁금해하며 다가왔다.
여전히 헛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차동석.
“아니, 얘는 무슨 프로필 뿌리기도 전에 캐스팅 연락이 와?”
아역팀을 혼자 키워냈던 차동석.
그런 그조차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