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딱 봐도 비싸보이는 고급 승용차 안.
<리플레이> 오디션 대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
그 주인공은 바로 유진과 같은 반인 양진우였다.
“아으! 멀미나.”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대본을 보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지.
앓는 소리를 내는 양진우.
“괜찮으십니까? 창문을 좀 내릴까요? 아니면 조금 쉬었다가 갈까요?”
운전석의 수행원이 물었다.
하지만 곧 양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창문 내리면 집중 안 될 것 같아. 이번엔 꼭 붙고 싶단 말이야.”
양진우는 다시 대본을 붙잡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백미러로 지켜보던 수행원.
곧 두 사람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겹네.’
양진우가 저렇게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다.
양진우의 합격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니까.
건설사 사장인 양진우의 아버지.
그는 양진우가 해달라는 것을 뭐든 해줬다.
일이 바빠서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이를 망치고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니까 최고급 장비 다 사주고, 뮤지션이 되고 싶다니까 실용음악 학원 보내주고.’
하지만 그게 한 달을 넘어가질 못했다.
배우가 된 것도 마찬가지.
느닷없이 TV를 보다가 배우가 하고 싶단다.
‘그래도 이번엔 열의가 제법 대단해.’
마치 적성을 찾은 것처럼.
양진우는 연기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물주를 잡은 <아이키움>에선 전폭적으로 양진우를 밀어주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빠르게 고급반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
물론 양진우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키움> 선생들이 평가하기에.
양진우는 충분히 아역배우로서의 자질이 있었으니.
“박유진, 걔는 벌써 기획사에 들어갔대.”
그런데 갑자기 양진우가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고급반인데! 빨리 영화 출연해야돼!”
바로 유진의 존재 때문.
학기 초부터 유진은 친구들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했다.
학급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양진우다.
유진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영화에만 나오면 관심이 제게 쏠릴 거라 생각하는 모양.
양진우는 친구들에게 ‘영화배우’라고 으스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유진이란 애도 아역배우를 한다지.’
거기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오디션을 통해 기획사에 들어갔단다.
이대로라면 유진이 자신보다 먼저 배우로 데뷔할 것이다.
그 생각에 조급함을 느끼는 모양.
그러나 최근 본 아역 오디션에서 줄줄이 떨어졌고.
그때마다 양진우는 분한지 엉엉 울었다.
‘그런데 유진이라는 애, 케이블 드라마에 나오는 모양이던데.’
수행원도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양진우는 아직 유진이 <유별난 친구들>에 참여했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케이블 채널엔 관심도 없다.
양진우의 머릿속에 TV란 지상파.
그리고 애니메이션 채널이 끝이니까.
하지만 이 사실을 양진우가 알아차린다면?
양진우가 어찌 나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수행원은 일부러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제작비 5천 미만 독립영화 쪽으로 알아봐. 분량은 적어도 임팩트 있는 걸로. 분량이 많으면 진우가 힘들어하거나 싫증 낼 수도 있으니까.”
보다못한 양진우의 아버지가 나섰다.
아들을 돈으로 꽂아주기로 결정한 것.
그에 걸맞는 조건을 찾아내 한 독립영화에 투자제의를 했다.
그게 바로 영화 <리플레이>였다.
유진이 회귀하기 전.
영화 <리플레이>에 캐스팅 되었던 아역.
그게 바로 양진우였던 것.
“진우에겐 알려주지 마. 자존심이 강한 아이니까. 조용히 처리하라고. 알았어?”
크리스마스 날.
부모들이 아이들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선 산타가 다녀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일종의 산타 행세를 하는 셈.
‘고심하던 감독이 결국 승낙했다고 그 직원이 말했지. 그래, 그럴 수밖에 없어.’
내수시장이 부족한 한국 영화계의 문제다.
다양성 대신 대중성을 따라야 겨우 매출을 얻을 수 있으니.
그러나 이미 오디션 공고를 뿌렸고.
지원자들도 제법 있는 상황.
그래서 보여주기 식으로 오디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다.
지금이 바로 그 오디션 현장으로 가는 길.
“이 부분에서는 조금 소심하게. 이 부분부터는 강하게 소리지르기. 그리고 또.”
그 사실도 모르고.
양진우는 나름 열심히 오디션 연습 중이다.
이미 오디션 대본을 <아이키움> 선생님들이 다 분석, 지도해주었다.
양진우는 그걸 기계처럼 반복 연습하는 중이었다.
창조적이진 않지만.
오디션에 붙기 위해 선택한 지름길이나 다름 없다.
‘저 정도 노력이면 조만간 어디든 붙을 것 같은데. 굳이 몇천씩 돈을 써야 할 일인가,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양진우의 노력을 부정하고 있는 셈.
그 때문에 양진우가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는 수행원이었다.
‘더럽다, 더러워. 애들 뽑는 것까지도 돈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이래서 어른들이 문제지.’
물론 수행원 자신도 그 돈 때문에 묵인할 수밖에 없다.
수행원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먹고 살기 참 힘든 세상.
“도착했습니다.”
장소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오디션 장소는 제작사 측이 대여한 연습실이었다.
양진우가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듯.
이미 10명 내외의 아역이 복도에서 대기 중이었다.
모두 저마다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긴장한 듯 잔뜩 얼어있는 아이.
눈이 빠질 듯 대본을 보고 있는 아이.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이 등.
그런데.
“어?”
양진우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거 누구야. 박유진 아니야?”
요즘 양진우를 제일 거슬리게 만드는 친구.
박유진이었다.
웬 험상궂은 아저씨와 함께 서 있었다.
<리플레이>의 대본을 들고서.
“박유진이 오디션을 보러 왔단 말이야?”
그러자 양진우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갔다.
아무래도 제대로 경쟁심이 불붙은 모양.
“가서 스태프한테 부탁 좀 해줘.”
양진우는 수행원에게 말했다.
“나랑 박유진이랑 오디션 같이 보게 해달라고.”
*
한편.
연습실 복도.
“아조씨!”
“응? 왜?”
“오디션이 뭐예요?”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가 여태 보러 다닌 게 오디션이잖아? 지금도 오디션 보려고 대기 중인 거고.”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나.
차동석은 의문을 갖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곤 하니까.
“배역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는 자리다.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고, 캐스팅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거지.”
스스로 제법 멋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차동석의 어깨가 조금 들썩였다.
입꼬리가 조금 씰룩거렸고.
“음, 좀 어렵나? 내 말 이해했냐?”
“네. 근데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오디션도 막 채점하고, 그런 게 있어요?”
“채점? 음, 그건 좀 애매하네.”
영화에 배우를 뽑는다는 것.
그건 학교 시험처럼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다.
PD와 작가 등.
제작진의 주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남들이 보기에 납득하지 못할 선택을 하더라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긴 힘든 것.
“아하. 그럼 오디션엔 정답이 없구나!”
차동석의 설명에 유진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럼 막 나쁜 일도 벌어질 수 있겠다. 막 돈 같은 거 줘서 배역 따내고. 그죠?”
“야, 꼬맹이.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뉴스에서 봤어요! 그럼 나도 돈 때문에 오디션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네요?”
“걱정 마라. 그런 일 없게 하는 게 아저씨 같은 어른들의 역할이야.”
“와, 아조씨 멋져요!”
마지막 말은 차동석의 진심인 듯.
아까처럼 입꼬리가 실룩이지 않았다.
‘역시 동석이 형이야.’
DV 엔터에서 토사구팽을 당한 직후임에도.
이 연예계가 결코 정정당당한 곳이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는 차동석이었다.
하지만.
‘이 연예계 업계에서 정정당당이라는 말은 너무 달달하지.’
그때.
누군가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아는 애냐?”
차동석이 물었다.
양진우가 유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네. 같은 반 친구!”
유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 진짜냐? 신기하네. 잠깐 가서 얘기 좀 할래?”
“아뇨. 괜찮아요. 진우는 저를 싫어하거든요.”
“뭐? 널 싫어해? 왜?”
“음, 몰라요!”
차동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래도 오디션에 참석하긴 하네.’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양진우가 <리플레이>에 아역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오디션이 그저 보여주기식이란 사실을.
회귀하기 전.
아이돌을 뽑는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조작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다.
그런데 영화 오디션에서 그런 일이 안 벌어질까?
‘독립영화라고 다를 거 없어.’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독립영화를 찍기도 하지만.
자본을 받지 못해서 강제로 독립영화를 찍기도 한다.
‘내가 알기로 <리플레이>는 반반이야. 그래서 최희숙 감독님도 엄청 고심하셨던 거고.’
하지만.
최희숙은 결국 자본을 택했다.
‘동석이 형한테 말할 수는 없어.’
‘회귀를 해서 알고 있어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섣불리 말할 순 없다.
‘동석이 형도 이런 일은 그냥 들이받는 스타일이니까.’
차동석이 왜 DV엔터에서 토사구팽당했나.
아역배우의 처우에 관해 공식적으로 항의해서다.
협상 능력과는 별개로.
차동석은 불의를 보면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닌 것.
이번 일을 알게 되면 차동석이 어찌 나올지.
유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외에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연줄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이런 독립영화 오디션에 관심을 가질 언론이 어디 있겠나.
‘어쨌든 난 최희숙 감독님과의 인연을 놓고 싶지 않아.’
최희숙과 그의 딸 유신애는 평생 가져가야 할 인연이다.
이런 일로 얼굴 붉히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전생에 최희숙이 얼마나 크게 후회했는지 알고 있으니.
“박유진 배우님. 양진우 배우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복도에 울려퍼지는 스태프의 목소리.
유진은 양진우를 바라보았다.
양진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꽤 긴장한 모양이네? 자기가 붙을 걸 알고 있으면 저런 표정일 리가 없는데.’
설마 양진우는 모르는 일이라는 건가.
어찌 되었든.
“우와, 진우야! 우리 같이 들어가네? 재밌겠다!”
유진은 이 상황을 기꺼이 즐기기로 했다.
“우리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알았지?”
*
“왜 이리 화장실을 들락거려?”
배준석이 옆자리의 최희숙에게 물었다.
“못 해먹을 짓이야. 진짜.”
“너무 마음 쓰지 마. 이제 마지막 차례니까.”
투자금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최희숙.
결국 딸을 생각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디션도 보지 않고 배우를 뽑아야 한다니!
“개같은 돈. 돈이 문제지, 결국.”
다음작부턴 반드시 상업적 영화를 만들겠다.
그렇게 다짐한 최희숙이었다.
“박유진, 양진우 배우 들어옵니다.”
스태프의 안내와 함께.
박유진과 양진우가 들어왔다.
같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대비가 되었다.
몸집이 커다랗고 선이 굵은 양진우.
예쁘고 귀엽게 생긴 박유진.
‘확실히 내 영화엔 저 양진우라는 친구가 맞긴 해.’
커다란 체구며 얼굴까지.
흔히 말하는 골목대장의 느낌이다.
살인마의 어린시절로 딱 어울릴 비주얼이다.
‘역시 박유진 저 애는 너무 예쁘네.’
마치 키즈모델에나 어울릴 비주얼.
명준 아역 역할에 잘 매치가 안 되는 게 사실이다.
크흠. 한 번 헛기침을 한 최희숙.
곧 눈앞의 두 아역배우에게 말했다.
“들으셨겠지만 오디션은 2인 1조로 진행됩니다. 서로 역할을 바꿔서 명준, 친구A 한 번씩 연기하면 되고요.”
명준은 주인공의 이름.
“연기 보여주세요. 먼저 양진우 배우부터.”
“네.”
오기 싫다고 떼쓰던 양진우였다.
그래도 학원을 다닌 경력이 있어서인지 퍽 여유로운 모습.
“자. 여기 대본입니다.”
유진에게 대본을 내미는 스태프.
하지만.
“아, 전 괜찮아요!”
유진은 그를 거부하며 당차게 말했다.
“다 외웠거든요!”
“······뭐라고?”
최희숙과 배준석은 물론.
양진우까지 깜짝 놀랐다.
오디션 역할인 명준의 대사를 외워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단역인 친구A의 대사까지 외웠다니.
‘물론 몇 마디 없다지만 오디션이야. 자기 대사 외우기도 바쁘지.’
그래서 최희숙은 더더욱 미안해졌다.
이렇게 준비를 해왔는데, 오디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양진우는 ‘뭐야 이 녀석?’이라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디션이 진행 중.
겨우 표정을 가다듬고 역할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독백으로 시작하는 오디션 대본.
“날 좀 봐. 내가 묻잖아.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가감없이 분노를 드러내는 양진우.
커다란 발성으로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그리곤 곧 지문에 적힌대로 쭈그려앉았다.
무언가를 갖고 노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리 서 있던 유진, 아니. 지금은 친구A가 달려왔다.
“명준아! 거기서 뭐해?”
“잠자리.”
“잠자리?”
“잠자리랑 놀고 있어.”
“진짜? 잠자리? 나도 같이 놀래!”
친구A는 명준의 곁으로 뛰어온다.
하지만 곧 그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잠자리와 놀고있다던 명준.
사실 잠자리의 날개를 찢고 있었으니까.
“야, 명준아! 뭐하는 거야?”
“잠자리랑 놀고 있다니까.”
“날개를 찢고 있잖아!”
“그냥 장난이야.”
“이게 장난이야? 괴롭히는 거잖아!”
“왜? 맞잖아. 내 친구들은 나한테 이렇게 장난쳐. 꼬집고, 할퀴고, 때려.”
곧 명준이 고개를 들어 친구A를 바라본다.
“내가 친구들이랑 놀 땐 아무도 방해 안 하던데. 넌 왜 방해해?”
그 얼굴엔 명백한 분노가 실려있다.
씩씩거리며, 당장이라도 때릴 것처럼.
명준이 잠자리와 ‘놀고 있다’고 표현한 이유.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퍽 때리고는 그냥 장난이라고.
심하게 꼬집고는 그냥 노는 거라고.
명준이라는 캐릭터의 선악 기준이 무너졌다는 걸 표현하는.
영화상에서 아역이 가장 많은 대사를 쳐야하는 부분.
‘기대보단 좋아.’
최악을 상정했던 최희숙.
양진우의 연기를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양진우의 연기는 부분부분 어색했다.
좀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표현하려는 바가 명확했다.
억울함, 분노.
그 감정을 매우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굳이 꽂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양진우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을 정도.
“생각보다 훨씬 잘하지?”
옆에 있던 배준석이 조용히 물었다.
최희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였지만.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지만.’
캐스팅 된 성인 배우를 생각하면 이질감이 든다.
최악은 피했지만, 차악에 걸린 느낌이랄까.
“네. 잘 봤습니다.”
연기가 끝났음에도.
양진우는 한참이나 씩씩댔다.
마치 유진을 정말로 때리고 싶은 것처럼.
“준비되면 박유진 배우, 바로 시작해주세요.”
“네에!”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진.
‘하. 못 보겠어.’
죄책감 때문일까.
유진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과연 저 아이의 연기를 지켜볼 자격이 있을까?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하던 유진.
곧,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시작을 알리는 유진의 독백.
그걸 듣자마자, 최희숙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날 좀 봐. 내가 묻잖아.”
양진우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저 귀여운 외모에서 나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매우 싸늘한 목소리였다.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최희숙에게 그건 연기가 아닌.
자신을 다그치는 목소리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