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3화 (23/237)

23화

선유도역 근처에 위치한 한 녹음실.

키치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내 몸이 가벼워져

난 이제 날아올라

모든 아픔들

모든 고민들

무거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저 별을 향해

날아올라

가슴이 웅장해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듣는 이로 하여금 뭉클해지게 하는 가삿말.

말하듯 노래하다가 절정부에선 청량한 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뮤지컬 노래 같은 구성.

“고생하셨습니다!”

녹음이 끝난 이후.

녹음실에 남은 것은 두 사람이었다.

“노래 가이드도 뽑았고. 이제 더빙만 남았네요, 감독님.”

귀가 유난히 큰 사운드 디자이너인 곽용재.

“그러네. 시간 참 빨라. 아이디어 회의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홍삼캔디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 여자.

블루컬쳐 스튜디오의 감독, 이선화였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것.

바로 뮤지컬 애니메이션인 <날개>였다.

“그래서, 연예인들한테 연락 넣은 건 어떻게 됐어?”

“다 거절당했어요. 역시 페이 문제가 크죠.”

“내 그럴 줄 알았다.”

몇몇 유명 배우들에게 더빙 연기로 섭외를 넣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모두 거절.

아무래도 배우들에게 더빙 연기는 생소할뿐더러.

페이가 그리 많지도 않고 화제성도 적으니까.

“전문성우들로 퀄리티 높이는 게 최선이겠네.”

“그러면 화제성은 좀 떨어질 텐데요.”

“방법이 있냐? 여기서 괜히 성우들 말고 어중간한 배우들로 세팅했다간 화제성, 작품성 다 망칠 텐데.”

그들이 애초에 성우가 아닌 유명 배우들을 노린 이유.

바로 화제성 때문이다.

한국은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부실하다.

그나마 있는 회사들도 외주를 통해 근근히 먹고살 뿐.

창작을 내는 건 엄두도 못 낸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만큼 한국에 수요가 따르지 않기 때문.

그나마 마니아들도 퀄리티 높은 해외 작품에 열광한다.

그런 애니메이션 불모지에서 시도하는 창작 작품.

거기다가 뮤지컬이라니.

그야말로 전례없는 시도였다.

“망할 걸 알면서도 만들고 있다니. 나도 참.”

들이는 시간과 노력, 예산에 비해.

기대되는 수익은 극히 적다.

마치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모양새.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원.”

“‘라이온 퀸’ 때문이라면서요. 어릴 때 그거 보고 30분 동안 엉엉 우셨다고도 하셨고.”

“어릴 때 ‘라이온 퀸’을 보지 말고 수학책이나 볼 걸. 그럼 이과생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아, 그리고 제발 홍삼캔디 좀 그만 먹고요! 냄새나 죽겠네.”

“왜? 맛있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사탕도 하나 못 먹니?”

오독오독.

홍삼캔디를 씹어먹으며 말하는 이선화와.

그런 이선화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곽용재.

말은 그렇게 하지만.

창작 뮤지컬 애니메이션 제작은 이선화의 평생 꿈.

반드시 제 손으로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노라 다짐했던 이선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진행 중인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

<날개>인 것.

“전 이 작품 잘 될 것 같아요.”

“잘 돼야만 하는 게 아니고?”

“노래도 좋고, 스토리도 좋고, 그래픽도 좋잖아요. 우리가 휘즈니랑 비교해서 뭐가 꿇려요?”

그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 <날개>.

동화 같은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사들이 모두 새하얀 날개를 갖고 있다는 설정.

하지만 주인공 솔은 천사지만 날개가 없다.

이 때문에 따돌림을 받던 솔.

결국 인간 세계로 쫓겨나게 되고.

자신의 날개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진짜 주인공 성우는 어떻게 하죠?”

곽용재가 제 귓불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그냥 전문성우한테 맡길까요? 아역 잘하는 성우들도 많은데.”

목소리 연기, 더빙은 일반적인 연기와는 조금 다르다.

성우들만의 전문적 영역이라고 할 정도.

“흐음, 그러기엔 조금 아쉬운데. 아역들 쓰면 안 되나?”

하지만 주인공만큼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이 녹음을 했으면 좋겠다.

이선화가 주인공 ‘솔’에게 바라는 것.

바로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소년미’니까.

“아시잖아요. 아역들 더빙은 화면이랑 잘 안 붙는 거.”

유독 한국은 보여지는 연기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기존 배우들 중에서도 발음, 발성이 수준 미달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성우와 비성우 간의 자연스러움이 커보이는 것.

“요즘 핫한 박유진! 걔는 잘할 것 같은데. 그치?”

문득 이선화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바로 요즘 인터넷을 뒤흔든 아역배우 박유진이다.

“드라마 보니까 쿠세(버릇)도 없고, 발성이랑 발음 다 좋던데. 화제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은 <유별난 친구들> 속 유진의 비주얼로 난리였지만.

이선화는 유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풋풋한 소년의 목소리.

그러면서 발성이 탄탄하고 발음도 정확하다.

음색도 좋아서 노래를 해도 아마 잘 해낼 터.

“거기 소속사 전화도 안 받는데요. 그래서 요즘 난리잖아요.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고 있던데. 재오랑 가족관계다, 의도적으로 밀어주는 거다, 뭐 약점을 잡았다.”

그러나 꿈깨라는 듯 바로 반박하는 곽재용.

“아! 진짜, 걔만 잡으면 대박인데.”

“걔가 뭣하러 뮤지컬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겠어요? 요즘 찾는 곳이 얼마나 많을 텐데. 꿈 깨고, 빨리 캐스팅 확정짓죠?”

그림의 떡이라는 게 이런 걸까.

입맛을 다시던 이선화.

홍삼캔디를 하나 더 까 입에 넣으며 말했다.

“주인공 캐스팅은 일단 조금 더 고민해보자고.”

*

한편.

경기도 인근의 산.

어둑해진 날씨 탓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인기척이라곤 없을 것 같은 그곳에.

조명과 오디오, 카메라가 세팅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영화 <리플레이> 촬영이 이뤄지기 때문.

“아, 진무 씨. 어서오세요.”

촬영준비가 한창이던 그때.

최희숙이 촬영장에 찾아온 하진무를 반겼다.

“오늘 분량 없으신데도 나와주시고. 감사해요.”

오늘은 아역, 즉 유진의 분량만 촬영한다.

출연도 하지 않는 하진무가 굳이 찾아올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다. 저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곧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최희숙.

“죄송해요, 진무 씨.”

“감독님? 갑자기 왜 사과를.”

“갑자기 대본 수정한 거요. 배우분들에겐 충분히 불쾌한 일이었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고 욕심을 부렸어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영화판에선 흔한 일 아닙니까.”

“하지만 정말 유진이의 화제성 때문은 아니에요. 오디션에서 본 그 아이의 연기가 제게 영감을 줬거든요. 바로 매혹당했죠.”

그 말의 진정성은 하진무도 알고 있었다.

리딩날 유진의 연기를 지켜봤으니.

“크흠.”

곧 가볍게 헛기침을 하는 하진무.

“저도 사과드려야 합니다. 대본 수정된 거 보고 감독님을 오해했습니다. 화제성만 보고 대본을 바꾼 줄로만 알았죠. 죄송합니다.”

하진무는 분명 연기 꼰대지만.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했다.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곧장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두 사람.

이후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 때.

“어? 안녕하세여!”

멀리서 유진이 뛰어왔다.

캐릭터를 위해 분장을 한 터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

피부도 톤다운을 해야했고,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래. 반갑구나.”

지금은 오후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본래라면 아역배우 보호법에 의해 활동이 불가능한 시간이지만.

촬영 다음날이 학교 휴무일이고.

보호자의 동의를 받으면 자정까진 촬영이 가능했다.

‘학교도 다녀왔고, 저녁 늦은 시간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유진에게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기대감이 깃든 얼굴.

‘저게 진짜 모습이란 말이지.’

이후 하진무는 유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첫인상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고 했던가.

그 어수룩한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오히려 하진무의 눈엔 지금이 연기같아 보이는 것.

그만큼 리딩날 유진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실제 배우들과의 리딩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8살짜리가 메소드 연기라니. 듣도 보도 못했어.’

그래.

하진무는 유진이 보여준 연기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연하지. 8살짜리가 감당할 수 있는 연기법이 아니야.’

대중들은 흔히 메소드 연기를 대단하게 여긴다.

배우가 극중 인물에게 완전히 동화된다니.

멋있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극중 인물에 동화된다는 것.

그건 어마어마한 감정소모와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다른 캐릭터도 아니고, 연쇄살인마의 어린시절. 심지어 설정이 바뀌어서, 태어나길부터 악한 싸이코패스야.’

8살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배역.

그런데 그런 배역에 동화되어 연기를 한다니.

하진무로선 유진의 정신건강이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다.

많은 후배들이 똑같은 고충을 겪었으니.

이번엔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의 걱정.

“유진아.”

“넵?”

“너 괜찮니?”

그러자 눈을 끔뻑이며 제 얼굴을 만지작대는 유진.

“어? 저 아파보여요? 저 완전 쌩쌩해요! 어제도 푹 자고왔거든요.”

근심, 걱정, 스트레스.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얼굴.

“슬슬 촬영 들어가야겠다. 가자, 유진아.”

“네. 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하지만 저 괜찮아요!”

하진무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 최희숙을 따라가는 유진.

하진무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할 따름이었다.

*

타닥, 타닥.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와 함께.

산속을 달리는 아이의 그림자.

백이면 백, 무언가에서 달아나는 중일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뒤쫓는 속도는 느리지만.

아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투두둑-!

곧 무언가 퍽 쓰러지는 소리가 나고.

아이의 그림자가 그 앞에 멈춰선다.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유진.

정확히 말하자면.

유진이 연기 중인 명준이다.

“후아.”

사냥감이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느릿하게 다다가는 명준.

명준은 누굴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

동물인가? 사람인가?

그도 아니면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인가?

명준의 얼굴을 봐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고.

화면 속에도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을 하게 만들고.

그게 무얼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

“겨우, 잡았다.”

헥헥대는 숨소리 속.

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드는 명준.

그리고.

퍽-! 퍽-!

주저없이 내리친다.

명준답게 그 행동이 느릿하고 굼뜨지만.

확실하게 상대방을 내리치고 있다.

이 모든 광경이 어두운 숲속 그림자로 보일 뿐.

직접적인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들리는 건 간헐적인 명준의 숨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무언가로 내리치는 소리 뿐.

하지만.

그게 더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곧 행동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는 명준.

순간 달빛이 내려와 명준의 얼굴을 비춘다.

“하, 쓰읍. 춥다아.”

삐죽 흘러나오는 콧물을 쓰윽 닦는 모습.

추위 때문에 덜덜 떨며 몸이 움츠러든다.

영락없는 예쁜 바보의 모습.

그러나.

목덜미에 튄 선혈.

그 부조화가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하고 있다.

“······집에 갈래.”

명준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기적 움직이는 꼴이 미끄러질 법도 한데.

결코 넘어지질 않았다.

꼭 인간이 아닌 것처럼.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컷!”

얼마나 몰입했는지.

감독인 최희숙은 컷 사인마저 늦었을 정도.

“대박. 완전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바스트 숏만 한 번 따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컷 사인을 듣자마자.

“넵! 알겠습니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유진이 해맑게 대답했다.

목소리 톤부터 눈빛, 행동거지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귀신이 빙의했다 떠나간 것처럼.

하진무가 보기엔.

리딩날 보았던 유진의 모습.

그 연장선이었다.

“······허.”

또 헛웃음을 흘리는 하진무.

분명 유진의 연기를 분석해볼 생각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몰입해버렸다.

마치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그만큼의 리얼리티였다.

‘한 가지는 확실해. 저 애는 극중 인물의 감정의 여운에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질 않아.’

마치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처럼.

유진은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도.

빠져나오는 것도 매우 손쉽게 해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메소드 연기법의 단점.

오랜 시간을 들여야하고, 배우의 스트레스가 막대하다.

그런데 유진은 이 두 가지 단점을 전혀 겪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걸 메소드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하진무가 여태 가지고 있던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

그게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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