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영화 <리플레이>의 촬영 다음날.
화창한 주말, 유진은 오랜만에 외출에 나섰다.
“유진아. 그렇게 좋아?”
“네. 아빠랑 오랜만에 외출이잖아요. 신나!”
잠깐의 여유로운 시간.
하지만 유진은 쉰다는 사실보다.
아버지와 함께 외출한다는 게 기쁠 뿐이었다.
연기를 하는 매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나.
아버지와의 보내는 시간도 매우 소중했으니.
“유진아. 힘들진 않아? 어제 늦게까지 촬영했는데.”
“전혀. 엄청 재밌어요! 그리고 아조씨가 잘 해주고. 촬영장 가면 스태프 형아, 누나들이 재밌게 해줘요.”
하지만 유진은 쾌활히 대답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그랬으니까.
오히려 더 연기하고, 더 미친 듯 일하고 싶었다.
‘오히려 아역배우 보호를 위한 활동시간 제한이 거치적거리게 느껴질 정도니까.’
하지만 조급함을 느끼진 않았다.
이제 8살이다. 시간은 유진의 편이었다.
한편 박태종은.
‘내 아들이지만, 어쩜 이렇게 완벽할까. 외모 잘났어, 성격 좋아, 거기에 연기까지 잘해.’
어딜 가든 사랑받을 제 아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아버지로서 팍팍 지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배달을 다니느라 곁에 있어주지도 못하니까.
“우리 유진이 참 장하네.”
하지만 유진에게 미안함을 티낼 순 없었다.
그랬다간 유진이 가슴 아파할 것을 알고 있으니.
정말 나이답지 않게 눈치가 빠르고.
아버지를 배려하고 있는 유진이 아닌가.
“그래,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아빠가 다 사줄게!”
그래서 이런 기회에라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하다못해 외식에서라도 비싸고 좋은 걸 먹여주고 싶은 기분.
그러자 유진이 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나! 저기요, 저기.”
그 말에 박태종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 이거면 되겠어?”
“응. 나 순댓국 먹고 싶어요.”
유진이 가리킨 가게.
그곳은 길거리에 흔하게 널린 순댓국집이었으니.
하다못해 어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데려갈 생각이었던 박태종이다.
“아빠는 싫어요? 나 먹고시픈데. 얼큰한 국물에 깍두기!”
유진이 그렇게 말하고서야 박태종은 허허 웃었다.
제 아들의 식성이 아재입맛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 저기 가자.”
손을 잡고 들어온 두 사람.
주말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제법 붐볐다.
자리에 앉은 뒤, 유진은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이모오! 여기 순댓국 2인분이요! 그리구 순대 많이 넣어주세요!”
“그래요, 그래. 뭔 애가 이렇게 예쁘대요? 허허. 아버지가 좋으시겠네.”
“저 이뻐요? 우와. 감사합니다아!”
“호호! 얘 말하는 것 좀 봐!”
유진의 넉살이 그저 귀엽게 보이는지.
호탕하게 웃는 직원.
잠시 후, 순댓국이 나오고.
“이모가 특별히 더 많이, 더 맛있게 해줬어.”
그 사이 유진에게 홀린 것인지.
유진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정이 듬뿍 묻어나왔다.
거기다.
“자, 이건 서비스.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알았지?”
순대 한 접시를 서비스로 내오기까지.
“아니, 이렇게 안해주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아! 잘 먹으께요!”
부담이라 느끼는 박태종과는 달리.
넙죽 받아먹는 유진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깨가루, 다대기, 새우젓을 야무지게 넣고.
곧장 밥을 후루룩 말더니.
그대로 한 숟갈 크게 퍼먹었다.
“으어, 조오타!”
마치 얼큰하게 술 한 잔 걸친 뒤 해장하는 아재 같은 반응.
그를 지켜보던 직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박태종도 마찬가지.
“아, 우리 유진이. 대체 누굴 닮았는지 몰라.”
“궁금하다아. 난 누구 닮았어요?”
“얼굴은 확실히 엄마를 닮았고. 성격은······누굴 닮았다고 해야하나. 아빠가 어릴 적 완전 소심이었는데. 우리 유진이는 어쩜 이리 당당해?”
박태종은 그리 말했지만.
“음. 난 진짜 아빠 아들 맞나보다.”
“응? 뭐라고?”
“암것도 아니에요.”
유진은 자신이 박태종의 아들이란 사실을 실감했다.
‘전생에 내 소심했던 성미는 아빠를 닮았던 거였구만.’
제 성격의 근원을 뒤늦게 깨달은 유진이었으니.
“어, 쟤 걔 아니야?”
“박유진? 재오 연기 스승이라는 아역배우?”
“헐, 미친! 진짜야? 진짜냐고!”
“와, 실물 미쳤다. 엄청 귀여워!”
“설마 저런 애를 순댓국집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그때.
식당에 들어선 젊은 여성들이 유진을 보며 웅성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저기.”
박태종보다 먼저 후루룩 식사를 끝낸 유진.
그러자 여성들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 <유별난 친구>의 주원이. 그 배우 맞죠?”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 당황할 법도 한데.
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 맞아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아.”
그 미소에 여성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했고.
“와, 진짜 대박!”
“눈웃음 대박이다 진짜.”
“저, 저기. 실례가 안 되면 사인 한 장만······.”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만류했다.
“야, 미쳤어? 무슨 애한테 사인을 해달래!”
“그래도 기념이잖아! 나 진짜 요즘 ‘유친’ 엄청 재밌게 보고 있는데. 진짜 본방사수 맨날 하거든요!”
‘유친’.
드라마 <유별난 친구들>의 줄임말이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친’ 매니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네. 사인 해드릴게요!”
기꺼이 대답하는 유진.
여성팬은 가방 속에서 공책과 사인펜을 꺼냈다.
‘회귀 전엔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줄 일이 없었는데.’
사인이라곤 계약서에 이름 석 자 기입해본 게 전부던 인생.
그런데 지금은 조그마한 손으로 사인을 하고 있다니.
조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슥, 스윽, 슥.
사인을 끝마친 유진.
곧 씨익 웃으며 코멘트를 덧붙였다.
<쭉쭉 성장 중인 유진이가>
공책을 돌려주며 유진은 90도로 인사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
그러자 여성팬이 오히려 황송하다는 듯.
안절부절 못하다가 곧 자신도 90도 인사를 했다.
마치 맞절이라도 하는 분위기.
“내가 더 고맙지! 진짜 요즘에 주원이 보는 맛으로 살아.”
마지막으로 가볍게 악수까지 나눈 뒤.
제 일행 곁으로 돌아가는 여성팬.
“와아, 미쳤다. 미쳤어. 심장 터질 뻔했네!”
“와. 애가 진짜 예의바르네.”
“가정교육을 엄청 잘 받은 거지.”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아버지 박태종이 곤란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흡, 흐윽.”
박태종의 상태가 영 말이 아닌지라.
“괜찮아요, 아빠?”
“먹다보니 순댓국이 좀 짜더라······.”
유진은 박태종이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회귀하기 전의 아버지는 항상 든든한 사람이었으니.
결코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흔들리는 아들을 지탱해주는 거목과도 같았다.
‘어쩌면 나 때문에 일부러 강한 척하신 걸지도 몰라.’
뭉클해지는 유진.
‘어서 아버지를 편하게 해드려야 해.’
물론 최근 유진의 벌어들인 돈.
그것만 해도 꽤 된다.
당분간은 생활비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작품에만 참여할 수 있으면,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거야.’
그때.
갑자기 웅웅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
유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표시된 번호는 장미소의 것.
훌쩍대는 박태종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유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사모님. 무슨 일이예요?”
“유진아. 내일 잠깐 얼굴 좀 보자. 얘기할 게 있어서.”
“무슨 얘기요?”
“너한테 캐스팅 연락이 왔어.”
“와, 진짜요? 어떤 영화인데요?”
“정범 감독의 영화야.”
장미소의 대답을 들은 뒤.
유진은 눈썹을 찌푸렸다.
‘정범이라고?’
기다리던 작품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
다음날.
주역 매니지먼트를 찾아간 유진과 박태종.
“왔구나, 꼬맹이.”
“어? 오늘은 전화기가 잠잠하네요.”
“전화 선 뽑았거든. 하도 울려대서. 이러다 잠복취재라도 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
장미소의 계획대로.
유진의 신비주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드는 중이었다.
남들이라면 노을 저었을 타이밍인데.
유진은 갑자기 심해로 잠수한 셈이니까.
게다가 아직 최희숙 측은 유진의 <리플레이> 참여 소식을 공개하지 않았고.
<유별난 친구들>은 종영을 앞두고 있는 상태.
즉, 유진의 행보가 오리무중인 것.
이어질 행보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예상한 것보다 더 큰 대어가 낚였어.”
그렇게 말하며 대본을 내미는 장미소.
그 가장 첫 장에 쓰인 글자.
[영화 <짐승> 시나리오
각본 : 정범]
“저, 정범이라면, 영화 <죽기 딱 좋은 날> 만든. 그 정범 맞습니까?!”
그 이름을 보자마자 놀라는 박태종.
장미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크게 벌렸다.
영화를 잘 모르는 박태종조차 잘 알 정도로.
정범은 스타감독이었으니.
“대, 대박이네요. 완전!”
영화감독 정범.
액션영화가 특기인 감독이다.
최근 찍은 영화 모두 관객수 500만 이상을 기록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충무로의 4번 타자’다.
영화만 만들었다 하면 안타를 때린다나.
“유진이에게 캐스팅 제의가 왔어요. 준수 역할로.”
영화 <짐승>의 스토리는 간단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려져 산속에서 혼자 살아온 남자.
세상은 그를 ‘짐승’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짐승은 산 속에서 ‘준수’라는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기묘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준수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짐승은 준수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산을 내려온다는 이야기.
정범다운 시원한 액션이 기대되는 영화다.
“비중도 거의 주조연이고. 분량도 꽤 됩니다.”
“그, 그 대단한 감독이 유진이를 중요한 역할에 캐스팅했다는 거죠?”
“네. 유진이의 비주얼이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딱 좋을 것 같다고 컨택한 것 같아요.”
케이블 드라마, 독립영화를 찍던 유진.
그런데 곧장 정범에게 캐스팅 되다니!
인생역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충무로의 흥행보증 수표인 정범.
그가 제안한 주조연의 자리.
이런 천금같은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그럼 일단 오케이하고, 캐스팅 발표 시기만 제작사 측이랑 잘 조율하면······.”
그렇기에 곧장 일을 진행하려던 장미소였는데.
“음, 저 이거 안 할래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유진.
“이거 말고, 제가 부탁한 거요. 그거 하고 싶어요!”
“······뭐?”
그 냉정한 장미소의 얼굴이 흔들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유진아. 네가 찾아봐달라고 했던 그 작품. 어떤 작품인지는 알고 있니?”
“네.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있다던데.”
유진이 선택한 작품.
블루컬쳐 스튜디오의 <날개>다.
국산 애니메이션.
뮤지컬.
둘 중 하나만 들어갔대도 뜯어말리고 싶은데.
심지어 두 개가 공존한다.
“뮤지컬 애니메이션······그 휘즈니 작품들 같은 거 말이죠? 그럼 유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게 애니메이션 더빙인가요?”
“네. 맞습니다.”
곧장 표정관리에 들어간 장미소.
유진도 어린애니까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수 있다.
그래서 우선 박태종을 설득하기로 했다.
“일반적 연기와는 달리 목소리 연기는 또 다른 영역이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전문성우가 아니라면 유명배우가 해도 이질감이 느껴지기 쉽죠. 그런데 화제성, 흥행 모두 기대값이 낮습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장은 수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즉.
장미소가 보기에는 <날개>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처럼 보이는 것.
“그냥 그 <날개>랑 <짐승>. 둘 다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빠. 저 이 영화는 안 할래요.”
박태종의 질문에 장미소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콕 집어 영화 <짐승>을 거부하는 유진.
“유진아. <짐승>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대본을 조금 읽어봤는데, 별로 재미없어요. 진부한 느낌? 그리고 뭔가 안 좋은 기운이 있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럼 <날개>를 하고 싶은 이유는?”
“하고 싶어서요! 뭔가 잘 될 것 같아요.”
지극히 어린애다운 감정적 판단.
‘이상해. 유진이라면 반드시 이 기회를 잡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태 어린애답지 않게 기회를 만들었던 유진이니까.
무엇을 해야 성공할지.
그 촉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어린애는 어린애인 걸까.’
장미소는 타깃을 박태종으로 바꿨다.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유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줄 생각입니다. 유진이는 항상 좋은 선택을 해왔으니까요.”
하지만 박태종을 설득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항상 칠칠맞게 눈물을 보이던 박태종이지만.
유진을 향한 애정과 믿음만큼은 정말 확고한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이 좋은 기회를 날린다고?’
정범의 감독을 까고 애니메이션 더빙을 선택한다니.
장미소도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아까웠다.
“자기야.”
그때.
여태 잠자코 있던 차동석이 끼어들었다.
“사실, 나 <날개>에 들어가는 노래 들어봤거든.”
“그걸 어떻게 들었는데?
“내 정보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녹음실 쪽 아는 사람 통해서 들었지.”
장미소가 작품을 찾아본 뒤.
흥미가 생긴 차동석도 나름 발로 뛰어본 것.
역시 인맥왕 차동석다웠다.
“그런데 그거 노래 진짜 좋아. 이거 잘만 하면 꽤 색다른 커리어가 될 거야.”
“하지만 오빠.”
“그리고 꼬맹이의 선택이잖아. 절대 실패할 리가 없어.”
“오빠는 그게 문제야. 낭만, 열정. 이런 게 밥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 냉철하게 생각해야지. 어떻게 정범 감독 작품을 까?”
“자기야. 저 꼬맹이가 여태 해낸 것들. 그게 다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일이었어?”
그 말에 장미소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유별난 친구들>이 거둔 기대 이상의 성적.
<리플레이>의 오디션 발탁.
공익광고를 통한 아이돌 재오와의 친분까지.
유진은 항상 장미소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으니.
“그리고 우리 주역 매니지먼트의 신조가 뭐야? ‘배우의 의견을 존중하고, 최대한 보호한다’잖아. 배우가 하고 싶다면 밀어줘야지.”
그 말을 듣고서.
장미소는 가만히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 역시 눈을 피하지 않고 장미소를 똑바로 바라보았고.
‘그래, 나도 은연 중에 계속 유진이를 어린애라 무시했던 걸지도 모르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는 배우.
그게 바로 유진 아닌가.
“하긴. 내가 너무 급하게 굴었어. 큰 그림을 그린다고 해놓고, 정범의 이름값에 홀렸나봐.”
스스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까지 냉정하다.
과연 장미소다웠다.
“그래.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면 그만이지. 알았어, 유진아. <날개> 제작사 쪽에 연락 넣어볼게.”
“감사합니다아, 사모님! 사모님 최고!”
환하게 웃으며 쌍따봉까지 날려주는 유진.
그 모습에 웃을 법도 하지만.
장미소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었다.
곧장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
“오빠. 아직 기자들하고 연락하고 지내지?”
“응? 물론이지. 왜?”
차동석이 되묻자.
<짐승> 대본은 멀리 치워버리는 장미소.
“그 애니메이션, 우리가 최대한 흥행시켜 보자고.”
*
그날 밤.
박태종도 곯아떨어진 늦은 시간임에도.
유진은 아직 잠들지 않고 있다.
대신 식탁에 독서등을 켜놓고 무언가를 읽고 있었으니.
“흠.”
바로 영화 <짐승>의 대본이다.
“다시 봐도 진부하네.”
정독을 끝낸 뒤 혹평을 내리는 유진.
곧장 대본을 치워버렸다.
“역시 정범은 믿고 걸러야지.”
충무로의 4번 타자라고 불리는 정범인데.
유진은 어째서 이 영화를 왜 거부했는가?
<[단독] 영화감독 정범, 과거 학교폭력 논란······피해자 단독 인터뷰>
<“진짜 짐승은 정범이었다” 피해자의 한 맺힌 증언. 영화 <짐승> 어쩌나?>
<관객수 10만도 못 찍었다······영화 <짐승> 혹평 속 연달은 흥행악재.>
바로 <짐승>의 흥행참패와 정범의 학폭 논란을 알고 있기 때문.
평생 잘 나갈 것 같은 사람들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가는 곳.
그게 바로 연예계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박이 터지는 곳이 또 연예계지.’
곧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유진.
“무거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저 별을 향해 날아올라.”
유진이 흥얼거리는 노래.
몇 십 년이 지났음에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다.
바로 <날개>의 대표곡.
‘날아가’다.
‘화제성은 차고 넘치는 상태. 이제 그걸 환전할 시간이야.’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유진이다.
그리고 이제.
그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