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고 있는 움짤이 하나 있었다.
[박유진 리즈짤 갱신...GIF]
바로 <호구>에 나온 유진의 비주얼 때문.
극중 유진이 호구를 벗고 이지혜를 향해 해맑게 웃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대박이 난 것.
[어? 누나!]
호구를 쓰고 있어서 땀에 잔뜩 젖은 유진의 머리와 얼굴.
그게 오히려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고.
거기에 유진 특유의 해맑은 미소가 더해졌다.
덕분에 짙은 소년미가 뿜어져나온 것.
[이런 미친...이런 미친...아니 욕하면 안 되는데 욕나오게 예쁘고 잘 생겼네...
진짜...진짜 저게 실존하는 인물임? CG 아니고?
아니 호구 벗을 때 이렇게 멋질 일임?? 9살짜리가??
아기천사가 아니라 완전 아기전사인데? 저 늠름함 뭐냐고
1화 때만해도 말랑콩떡이었는데 갈수록 성장하는 느낌 미쳤다 ㅠㅠㅠㅠ
와 저 얼굴이면 그냥 목도로 머리 맞아도 좋아
올바른 얼굴에 올바른 정신이 깃든다는 격언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그야말로 입덕을 부르는 비주얼과 분위기.
[어느 쪽이 취향임?
유친 때 비주얼.GIF VS 호구 때 비주얼.GIF]
덩달아 <유별난 친구들> 때 유행했던 유진의 움짤이 재발굴 되기도 했다.
[난죽택
유친 땐 귀엽고 호구땐 잘생겼음...
아니 둘다 귀엽고 잘생겼는데 ㅋㅋ
와 1년 사이에 볼살 빠진거봐 진짜 검도 열심히 한 듯
아 진짜 이걸 어떻게 고르냐 ㅠㅠㅠㅠㅠ 미쳤다
근데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느낌이 완전 다르네;; 다른 캐릭터라는 게 딱 보임]
아무튼.
<호구> 1화 방영 이후에도 난리가 났던 유진의 팬카페.
3화까지 방영되고 전설의 움짤을 생성해내자 더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야 지금 박유진 팬카페에서 화보집 예약 받는 거 알고 있음? 회원 전용
??? 아니 홍익인간 정신으로 널리 이롭게 해도 모자랄 판에 팬카페 회원 전용이라고?
아 ㅋㅋ 가입해서 혼내줘야겠네
근데 지금 예약 사이트 터지고 30초만에 매진돼서 사고 싶어도 못삼ㅋㅋ
그래도 판매수량 늘릴 지도 모르니까 일단 가입은 해둬야겠다]
커뮤니티에 유진의 화보집 소식이 널리 알려졌고.
[아역배우 박유진 팬카페 – 대박유진
회원수 : 20,333명]
그 덕분에 팬카페 가입 인원은 2만명을 돌파했다.
[제발 화보집 판매량 좀 늘려주세요 이게 뭡니까
무슨 화보집을 사이트 터져서 못 사다니...회사 일처리 좀 제대로 해주세요
아니 돈이 있는데 물건을 못 산다는게 말이 되냐고 ㅋㅋㅋ 이 자본주의 사회에
ㄴ ㅋㅋ 이 카페는 유진주의 사회다 이 말이야
ㄴ 유진주의 사회 ㅋㅋㅋㅋ 하 덕분에 웃는다...
ㅋㅋㅋㅋㅋ 난 예약 성공했지롱 부럽지? ㅋㅋㅋㅋㅋㅋ
ㄴ 매니저님 이 사람 기만질로 강퇴좀
ㄴ 하 제발 나한테 양도 좀...미치겠네...]
그리고 늘어난 팬카페 회원 숫자만큼.
화보집을 구매하지 못한 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박유진 화보집 예약판매 양도합니다. 수고비 +5만원]
심지어는 플미충까지 등장하는 지경.
결국 주역 매니지먼트 측에선 판매 수량을 대폭 늘려야했고.
그 사실을 공지사항에 올리고서야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나 이제 무서워.”
차동석이 벌벌 떨며 말했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엄살 떨지 마. 어차피 다 외주 돌리면 어떻게든 커버 가능하니까.”
장미소도 말은 그렇게하고 있지만.
예상 밖의 폭발적 반응에 놀라고 있었다.
“설마 구매력 있는 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유진의 화제성은 분명 뛰어나다.
하지만 그게 꼭 구매력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과, 그 연예인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것
그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까.
“추억을 나누자고 시작한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추억이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죠!”
차동석의 속도 모르고 유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네 추억을 위해 우리 함께 택배 싸는 연습 좀 같이 해볼까?”
“앗! 저는 권성택 감독님 작품 오디션 준비해야 해서요.”
휘리릭 도망가 버리는 유진.
그 모습을 보며 차동석이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지겠네.”
팬카페 회원 전용 화보집도 이 난리가 났다.
앞으로 유진 관련 상품이나 행사를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질 터.
“진짜 얼른 사람을 더 뽑아야겠네. 아, 그 전에 우리 회사 체계 확실히 잡아놓자. 자기도 직급 제대로 세팅하고, 그 다음 사무직 확충하는 식으로 가자. 게다가 지혜 휴식기 끝나면 붙여줄 매니저도 필요하고.”
“그래, 오빠.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긴 해.”
인력 확충에 보수적이었던 장미소도 적극 동의했다.
그만큼 유진의 성장세가 매서웠으니까.
여기서 뒤쳐졌다간 유진에게 민폐를 끼치는 셈이다.
“진짜. 내 살다살다 너무 잘돼서 무섭기는 처음이다.”
*
고급 일식집.
권성택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감독님.”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젊은 남자.
짙은 눈썹이 특징인 배우, 진승우였다.
“얼굴 보기가 참 힘들구나.”
“인터넷 뉴스만 봐도 제 얼굴 많이 보실 텐데요.”
“말대꾸는, 이 녀석아. 뭐하러 이런 비싼 곳으로 불러낸 거냐? 그냥 너희 소속사 사무실에서 보면 될 것을.”
“지금 대표님이 저 보면 죽이려고 달려드실지도 몰라서. 그래서 숨어다니는 중이예요.”
“자랑이다, 이 녀석아.”
쯧, 혀를 차며 자리하는 권성택.
그러자 진승우가 피식 웃었다.
“배우라는 놈이 행실이 이래서야.”
“낯짝을 들고 다니기엔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이라서요.”
“쯧! 말뽄새 하고는. 예전에는 안 저랬는데.”
“전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감독님. 식사 안 하셨죠? 미리 시켜놨으니 좀 드세요. 특별히 감독님 입맛대로 주문했거든요.”
“내 입맛대로 갈 거였으면 한정식 집을 갔어야지. 하여튼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녀석이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권성택의 어조엔 측은지심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엇나가는 조카를 걱정하는 삼촌과 같은 목소리랄까.
“그래서. 요즘은 별 일 없냐?”
“뉴스에 오르내리기 싫어서 쥐죽은 듯 살고 있습니다.”
“너도 이제 모범이 되어야할 나이다. 정신 좀 차려.”
“그런 건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냥 전 제멋대로 사는 게 편해요.”
킬킬 웃으며 회를 한 점 먹는 진승우.
진승우는 매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덕분에 여러 스캔들과 논란에 휩싸이지만, 본인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그런 면이 그를 톱 연기자로 만들어준 것 또한 확실하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할 줄 아는 배우였으니.
그 때문에 권성택의 영화에도 몇 번 출연했고.
매번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진승우는 ‘포스트 이순철’이라고 불렸다.
이순철을 이을 권성택의 페르소나가 될 것 같다며 붙인 별명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잔소리 하려고 불러내신 건 아닐 텐데.”
“너 찾을 이유가 뭐 있겠냐. 오디션 볼 생각 없나 해서 불렀다.”
“오! 어떤 작품인데요? 잘됐다. 요즘 스케줄 없어서 심심하던 차였거든요.”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건네는 권성택.
“여전히 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시네요.”
시놉시스를 다 읽은 후.
진승우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좋아요. 오디션 참여하고 싶어요. 아, 딱 하나. 이 영서 역할만 빼고요.”
“아쉽네. 네가 오디션 볼 수 있는 역할은 영서 하나뿐이거든.”
“참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진짜 취향 괴팍하시네요. 죽음의 의인화라니.”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흥미롭다는 듯 시놉시스와 오디션 대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진승우였다.
“그래서 이 영서 역할, 오디션 보는 배우들 누구 있어요?”
“알아서 뭐하려고?”
“도움이 되니까요. 감독님이 오디션에 부르는 애들 보면 대충 감이 오거든요. 아, 이런 분위기랑 캐릭터를 원하시는구나.”
몇 작품을 같이 해봐서 그런지.
권성택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있는 진승우.
그게 마뜩잖은 듯 진승우를 노려보던 권성택이었지만.
“너까지 하면 총 다섯 명이다. 이선림, 신기열, 조범기.”
의외로 순순하게 오디션 참여 명단을 알려주었다.
명단을 들은 진승우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야, 이렇게 공통점이 없는 경우는 처음 보는데. 심지어 남녀배우 다 섞여있기도 하고. 조범기 형은 너무 늙지 않았어요? 나머지 한 명은 누구예요?”
“박유진이다.”
그러나.
마지막 이름을 듣고선 살짝 얼굴이 굳었다.
“박유진, 박유진이라. 감독님. 설마 내가 아는 그 박유진 맞아요?”
“네가 아는 박유진이 누군데?”
“누구긴요. 한양독립영화제에서 아역 최초로 새로운 발견 수상한 아역배우.”
진승우가 굳이 한양독립영화제를 언급한 이유.
사실 그도 한참 전에 그곳에서 새로운 발견 부문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그래, 맞다.”
“그런데 감독님. 질문이 있어요. 그 아역이 저랑 같이 오디션을 볼 정도로 연기력이 쩌는 거예요, 아니면 제가 아역이랑 같이 오디션을 봐야할 정도로 연기력이 후진 거예요?”
대놓고 빈정대기 시작하는 진승우.
아역과 같은 배역을 보고 오디션을 봐야한다.
그 사실이 배우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다.
“말조심해라. 순철이가 나한테 추천한 거니까.”
“네?”
하지만 권성택이 이순철을 언급하자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이었다.
“서, 선생님께서 그 애를 감독님께 추천했다고요? 아니, 대체 왜요?”
“박유진 그 애. 순철이랑 같이 드라마 한 편 찍었잖냐. 그 애 연기에 대해서 아주 극찬을 하던데.”
표정이 굳는 진승우.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망나니처럼 살고 있지만.
그가 유일하게 따르는 배우가 바로 이순철이었으니까.
뭣도 모르던 젊은 시절, 이순철은 진승우를 배우의 길로 이끌어주었다.
진승우에겐 은사나 다름없는 존재.
“내가 봤을 때, 그 애를 너보다 더 아끼는 것 같던데?”
그런 진승우를 자극하는 권성택.
진승우는 애써 하하 웃었다.
“손녀랑 비슷한 나이니까, 예뻐보여서 그러셨겠죠.”
“이순철이가 그럴 사람, 아니. 그럴 배우로 보이냐? 아직도 순철이를 몰라? 연기를 평가할 땐 그 누구보다 냉정한 양반인데.”
진승우조차 이순철에게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적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티나지 않게 노력했던 진승우다.
‘그런데, 그 어린애가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벌써 열이 뻗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애한테 질투하느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한평생 유치하게 살아온 진승우였다.
그 유진이라는 아이에게 경쟁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감독님. 그렇게 저를 자극해서 오디션에 전력투구하게 만들 생각이신가본데. 그 작전 제대로 통했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 말에 권성택이 처음으로 껄껄 웃었다.
“아주 열심히 해야할 거야. 아역한테 오디션에서 밀리면 쪽팔려서 배우 노릇하겠냐.”
“그럴 일 없습니다.”
진승우는 그리 말하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의 눈에 호승심이 깃들었다.
*
흔들거리는 차 안.
유진은 재오와 통화 중이었다.
뮤직비디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달받기 위함.
“그래서 일단 완성은 다 됐고······에엣취!”
그런데.
전화 도중 재오가 재채기를 하는 횟수가 잦았다.
“형, 감기 걸렸어요?”
유진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기는 아니고, 조금 감기 기운이 있긴 해.”
“감기는 아닌데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아무튼, 그럭저럭 괜찮다고.”
“곧 컴백 아니에요? 어쩌다가 감기에 걸린 거예요?”
“크흠! 그, 그게 실은.”
재오는 멋쩍은 목소리로 뮤직비디오 촬영 때 다소 무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형.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이제 곧 컴백한다면서요.”
“아니, 나야 네 연기 최대한 따라가보겠다고 노력한 거라고.”
유진의 타박에 재오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몸 아프면 연기도 못하잖아요. 컨디션 관리 좀 신경 써요. 형. 아이돌이 컴백 앞두고 몸 아프면 되겠어요?”
“······옙,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고.
유진의 폭풍 잔소리에 금세 기가 죽은 재오였다.
“크흠. 아무튼 조만간 컴백 티저 뜨고, 그 이후에 곧장 뮤직비디오도 공개될 것 같아.”
“네. 알겠어요, 형.”
“근데 너 어디 가고 있어? 계속 차 소리가 들리는데.”
“네. 광고 계약 관련해서 미팅 있거든요.”
“오, 진짜? 어떤 광고인지 이 형한테만 살짝 귀띔해주면 안 돼?”
“안 돼요. 얼른 약 먹고 자요.”
그렇게 전화가 끊어진 뒤.
유진은 창밖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성아오츠카>
‘내 예상대로 월척이 낚였어.’
유진은 씨익 미소지었다.
넙튜브에 올렸던 아침바람을 마시는 장면.
유진이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