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오디션 당일.
나가기 전, 박태종은 유진의 옷매무새를 점검해주었다.
“기, 기, 긴장하지 말고. 그, 그냥 편하게. 준비한 대로 해. 알았지?”
“어? 아빠가 긴장한 것 같은데요?”
말까지 더듬는 박태종을 보며 웃는 유진.
아마 저런 박태종 덕분에 유진이 긴장을 안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아빠가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아쉽게도 오늘 박태종은 유진과 함께하지 못했다.
수년간 해왔던 배달일을 정리하며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
“걱정마세요, 아빠. 잘하고 올게요. 아빠도 잘 마무리하고 와야해요.”
“그래, 그럴게.”
그리 말하며 박태종의 손을 꼭 잡는 유진.
유진의 눈동자가 뭉클해졌다.
오디션도 오디션이지만.
아버지가 마침내 배달일을 그만둔다는 사실이 새삼 너무 좋았으니까.
‘아직도 아버지를 잃은 날의 기억이 생생해.’
연기자로서도 아들로서도 미숙했던 시절.
허망하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기억은 유진이 오늘 오디션에서 보여줄 연기의 근간이었다.
‘죄책감’이라는 키워드를 구체화해줄 경험.
“아빠 덕분에 오늘 엄청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아버지의 볼에 뽀뽀하는 유진.
두 부자가 서로를 향해 웃었다.
“그런데 유진아. 그 곰인형은 어디에 쓰려고?”
유진은 품 안에 자그마한 곰인형을 들고 있었다.
평소 인형을 가지고 논 적이 없는 유진이었는데 말이다.
“이게 오늘 중요한 아이템이거든요!”
유진은 곰인형을 꽉 껴안고는 해맑게 말했다.
*
오디션을 위해 권성택이 대여한 조그마한 연습실.
“그 미친놈.”
오디션 심사를 준비 중이던 권성택.
어이없어하며 욕을 내뱉었다.
“오디션을 보기도 전에 아역배우 소속사를 찾아갔다고?”
“그렇다더군. 유진이가 직접 얘기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이순철의 말에 권성택은 이마를 짚었다.
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그래서, 가서 뭘 했대? 그 자식이 뭐 애한테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고?”
“듣기로는 그냥 얘기만 나누고 왔다더군. 오디션에 관한 얘기. 그리고 권성택 자네가 승우한테 알려줬다며? 유진이가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거.”
“그래, 그건 그렇지만.”
뒷말을 흐리는 권성택.
‘내가 녀석을 너무 자극한 건가?’
이순철이 그 박유진이란 아이를 유독 아끼는 게 보였고.
이번 기회에 진승우에게 좋은 자극이 될 거라 생각했다.
망나니처럼 사는 진승우라도, 이순철이라면 껌뻑 죽으니까.
그러나 진승우는 여전히 권성택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아무튼 미안한 일이야. 박유진한테는 나중에 따로 내가 사과해야겠군. 하여튼, 그 자식은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건지.”
쯧쯧 혀를 차는 권성택을 보며 껄껄 웃는 이순철.
그러자 권성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하네. 자네라면 분명 승우 녀석에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권성택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순철.
“아니, 오히려 신기하더군. 승우 그 녀석이 왜 유진이를 찾아갔을 거라 생각해?”
“그 망나니 녀석 속을 누가 알겠어.”
“유진이를 견제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 말에 권성택의 미간 주름이 꿈틀거렸다.
“그 녀석 성미라면 관심이 없으면 애초에 건들지도 않아. 그런데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는 건, 유진이의 출연작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허. 제 잘난 맛에 사는 진승우가 9살짜리를 견제한다라.”
“승우도 이번 기회에 느끼는 바가 있을 거야.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그 진승우가 과연 9살짜리에게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건 진승우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순철로서도 알 수 없었다.
“실은 어젯밤, 최희숙 감독과 통화를 했어.”
“최희숙? 그 <리플레이>를 만든 신인 감독?”
“그래. 영화 분위기며 시나리오를 아역에 맞춰 수정했다기에 궁금해졌어. 유진이가 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줬기에 그랬는지. 그 감독 말로는 캐릭터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 재창조하고 그걸 설득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더군.”
“그래서, 오늘 그 능력을 보러 행차한 건가?”
권성택의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으면서 오디션 현장에 온 이순철.
심사위원도 아니고, 그냥 구경하러 온 것이다.
“걱정 마. 난 그냥 보기만 할 거야. 오디션이 끝난 후에도 자네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고. 내가 출연하지도 않을 영화에 뭐라고 하겠어.”
사실 권성택은 이순철을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진과 진승우의 참여로 생각을 접었다.
물론 이순철이 편애나 특혜를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괜히 뒷말이 나오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자, 그럼 이제 오디션을 시작해야지. 먼저 윤빈 역할부터.”
곧 연습실 안으로 아이들이 들어왔다.
윤빈 오디션에 참여하는 아역배우들은 유진을 포함해 총 네 명.
모두 아역배우 중에선 제법 유명한 아이들이었으나.
유진이 가지고 있는 이름값에 비하면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름값으로 뽑을 생각은 없다. 연기면 돼. 윤빈 역할의 역할은 제한적이야. 대본을 보고 재창조, 재해석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그러면 캐릭터성을 망치게 되지.’
즉, 대본에 나오는 대로 정확하게 연기하면 된다.
그러니 다른 아역배우들이 그리 불리하다고 할 수 없다.
주어진 상황은 주인공의 조직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주인공의 명령으로 윤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부하들이 찾아온다.
윤빈은 아빠 곁에 있겠다며, 가기 싫다고 울부짖는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목격하는 윤빈의 마지막 모습. 윤빈 분량 중에선 가장 임팩트가 있어야 하지.’
오디션에 임하는 배우들로서는 스스로 긴박한 상황을 만들어 몰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아, 아, 아저씨들. 그, 누구, 아, 으!”
거장 권성택과 원로배우 이순철.
이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압박감으로 느껴지는 모양.
두 사람을 너무 의식했는지 아역 두 명은 대사를 절었다.
“배우 박유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박유진만큼은 그럴 일이 없었다.
해맑게 인사를 끝마친 뒤, 곧장 배역에 집중하는 모습.
“후아.”
유진이 눈을 감았다 뜨자, 박유진이란 아이는 없고.
소심하게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는 윤빈이 나타났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들은 누구예요?”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 겁을 먹은 아이의 얼굴.
유진은 스스로 준비해온 소품인 곰 인형을 꼭 껴안았다.
부하들이 다가오자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발걸음.
“어딜 가요? 싫어, 싫어요. 나 이제 혼자 있기 싫어. 나 안 갈래. 아빠, 싫어. 싫어요. 나 아빠랑 있을래. 아빠!”
점점 커지며 찢어지는 목소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할 만큼 애잔했다.
부하들에게 끌려가는 도중 손에 힘이 풀렸고.
그 때문에 껴안던 곰 인형을 툭, 떨어뜨리며 여운을 주는 디테일까지.
‘완벽하군.’
권성택은 유진의 이름 옆에 A라고 써놨다.
최우선 캐스팅 순위를 알파벳으로 매긴 것.
‘곧장 극단적 상황에 몰입하면서도 어색함이 전혀 없고, 준비해온 소품도 극적으로 잘 활용했어.’
확실히 아역중에선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권성택이 기대한 것보다 유진은 훨씬 잘 해냈다.
‘향후 비극성을 살리고, 주인공의 트라우마 트리거가 되는 윤빈 캐릭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 영서 역할에 집중하느라 윤빈 준비는 소홀했을 법도 한데, 대단하군.’
이미 권성택의 마음속에선 윤빈 역할은 유진으로 내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아역들이 아니라 이름값 높은 성인 배우들과 겨뤄야 한다. 윤빈 쪽이야 대체불가지만, 영서 쪽이야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아. 설사 박유진이 영서까지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준대도, 윤빈과 영서 역할을 동시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미 윤빈에 유진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박유진이 어떻게 영서를 해석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영서 역할을 맡길 확률은 확 낮아진 셈.
‘그렇다면 역시 제일 기대가 되는 건 진승우 쪽이겠지.’
사생활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연기는 기깔나게 하는 배우니까.
그래서 권성택이 자주 진승우를 기용하는 거고.
“자. 그럼 이제 영서 역할 오디션 보는 배우들 입장시켜.”
권성택이 스태프를 향해 말했다.
*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입장하는 배우들.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진승우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역시 이순철 선생님도 오셨어.’
권성택을 비롯한 심사위원들과 달리.
이순철은 의자도 없이 구석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진승우 입장에선 본전치기나 다름 없었다.
오디션에서 뽑힌다고 해도 아역을 상대로 이긴 것뿐이고.
만약 유진이 뽑힌다면 그야말로 개망신.
‘그렇다면 본전치기라도 해야······아니, 정신 차려. 박유진 말고도 경쟁하는 배우들은 많으니까. 굳이 박유진만 의식할 필요는 없어.’
앞의 세 명 모두 자신만의 영서를 보여주었다.
스모키 화장을 하고서 치명적인 죽음을 보여준 배우도 있었고.
발레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어필한 배우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어째서 영서란 존재가 그런 모습이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득력이 없다고 해야할까.
“진승우 배우. 앞으로 나오세요.”
그런 상황에서 네 번째로 호명된 진승우.
그는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네, 진승우입니다.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곧장 몰입해 연기하기 시작하는 진승우.
곧 눈앞에 주인공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걸음걸이부터 몸짓까지.
모두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의상도 최대한 나풀거리는 옷으로 준비했다.
발걸음에 무게감을 싣지 않아, 마치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길게 길러 5:5로 가른 머리는 신비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시종일관 싸늘한 표정은 마치 심판을 내리는 초월적 존재 같기도 했다.
‘아주 색다른 해석은 필요 없어. 결국 관객들은 익숙함을 찾으니까.’
결국 <데드맨>도 상업영화다.
때문에 진승우는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거기에 진승우가 ‘죽음’에 대해 느꼈던 비정함과 싸늘함을 디테일로 얹는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눈빛은 오만하게.
이따금 흘리는 숨결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그러한 연기 톤이 진승우의 비주얼와 결합되었고.
“왜 그리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어? 이리와. 내가 편안하게 해줄게. 걱정 마. 아프지 않을 거야.”
제법 허스키한 목소리로 뱉는 대사 처리.
그렇게 완성된 아주 비정하고 싸늘한 심판자, 피할 수 없는 죽음.
그게 진승우의 영서였다.
“여기까지입니다.”
진승우의 연기를 지켜본 권성택.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색다른 해석은 아니더라도, 그를 납득시키는 연기력과 디테일을 보여주었으니.
꽤 현대적 느낌의 저승사자가 탄생했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
“잘 봤습니다. 다음, 박유진 배우.”
“네!”
곧 진승우가 물러나고, 유진이 앞으로 나섰다.
“배우 박유진입니다.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유진이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유진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곧 진승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유진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의외였으니까.
‘뭐야. 긴장한 건가?’
연기가 시작된 이후, 유진의 발걸음엔 자신감이 없었다.
마치 무슨 일을 당한 것처럼 몸을 덜덜 떨기까지.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거기다가 껴안고 있는 저 곰인형은 대체 뭔데?’
품에 꼭 껴안고 있는 모습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곰인형을 들고 다니는 영서라니.
저게 어딜 봐서 죽음의 의인화인가?
‘엉망진창이군. 대체 해석을 어떻게 한 거야?’
곧 진승우의 가슴속을 채우는 건 실망감이었다.
유진의 소속사로 찾아갔을 때 느꼈던 고양감.
배우로서 오랜만에 받았던 커다란 자극.
그게 모두 거품처럼 의미 없게 느껴졌다.
‘잠시 내가 눈이 삐었던 거지. 이순철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니까, 나도 모르게 고평가를 한 거야.’
진승우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뽑힐 것을 확신했다.
‘그러게 권성택 감독님도 참. 왜 어린애한테 이렇게 어려운 배역을 맡기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진승우.
그런데.
유진의 연기를 보는 권성택과 이순철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예상치 못한 것을 보는 사람들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유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윤빈······.”
심사위원 중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순간 진승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그건 스치듯 봤던 윤빈의 캐릭터 설명이었다.
유진의 연기는 완벽히 그에 부합하고 있었다.
즉.
영서는 곧 윤빈이다.
유진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여태 오디션을 줄곧 지켜보던 이순철.
그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영서의 오디션에 임하면서, 아까 윤빈의 오디션 때 보여줬던 행동들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어.’
아까 윤빈으로서 보여주었던 행동들.
곰인형을 껴안고 있는 것부터, 주춤거리는 발걸음.
잔뜩 불안한 눈빛까지.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입술은 움직여도 대사는 내뱉지 않는다는 것.
어째서 유진은 이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가?
‘그래. 윤빈의 오디션 장면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목격하는 아들의 모습. 그것이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아, 주인공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윤빈을 구하려 대피시키는 주인공이지만.
결국 윤빈은 죽는다.
주인공으로서는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엄청날 것.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잃은 주인공 앞에 아들과 똑같은 모습과 행동을 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만큼 현실과 비현실을 관통하는 비극이 또 있을까?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저 해석은 관객들에게 영서라는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주인공이 환상을 보고 있다고.’
그 덕분에 죽음의 의인화, 영서라는 판타지적 존재가 현실적 설득력을 얻고.
동시에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보다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 곰인형. 아까는 윤빈이 부하들에게 맡겨지기 직전, 주인공 앞에 떨어뜨리고 가는 것처럼 표현했어.’
그런데 지금 유진은 다시 곰인형을 들고 있다.
이번엔 떨어뜨리지도 않고, 꼭 껴안은 채.
‘즉, 저 곰인형은 윤빈과 윤빈의 모습을 한 영서를 가르는 결정적 상징물이 된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윤빈, 아니 영서.
“왜 그리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어? 이리와. 내가 편안하게 해줄게. 걱정마. 아프지 않을 거야.”
마치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 같은 말투.
윤빈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영서의 메시지.
그건 주인공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고, 유혹일 것이다.
이게 바로 유진이 해석한 죽음.
‘죄책감’이다.
‘죽음이라는 추상적 존재를, 주인공의 심리 상태와 결부시켜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해냈다. 그것도 자신이 오디션을 봤던 아역 캐릭터를 토대로.’
이러한 해석과 연기는 박유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유진에게 9살이라는 어린 나이는 제약이 아닌.
오히려 자신만의 강점이 된 셈.
‘죽음이 의인화된 존재인 영서가 9살짜리여야 하는 이유. 그에 대한 해답을 완벽히 제시하면서, 작품 전체를 꿰뚫는 저 해석. 거기에 그 모든 걸 설득시키는 연기력과 소품 활용까지.’
이순철은 온몸에 짜릿한 무언가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호구> 때 느꼈던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원초적 무언가였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
‘저 아이에겐 아역배우라는 프레임조차 무기가 된다.’
전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