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71화 (71/237)

71화

<데드맨> 촬영이 없는 날.

한권주는 아들인 혜성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 문제로 정신을 못차려 취소한 스케줄 덕에 시간이 비었으니까.

여러모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맛있어?”

한권주의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 한혜성.

“응. 맛있어!”

짜장면을 야무지게 먹는 아들을 보며 한권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곧 휴지를 들고 한혜성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래. 많이 먹어.”

이 부자가 오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곳.

바로 한권주가 유진, 고석태와 함께 왔던 당구장이었다.

초짜라면서 맛쎄이까지 보여주던 유진과 달리.

아들 한혜성은 큐대를 잡고 공을 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하지만 둘 다 당구를 해맑게 즐기는 모습은 똑같았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새삼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물론 아들과 같이 살게된 것도 아니고.

아내와의 협의 끝에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이러다 보면 차근차근 혜성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하지만 한권주는 그것만으로 족했다.

적어도 전화조차 걸지 못해 아파하던 시절보단 나으니까.

“아, 맞다. 아빠. 나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한다?”

“뭐를?”

“아빠가 배우라는 거 말했더니 다들 엄청 멋있대.”

“그랬어?”

새삼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촬영 때문에 아픈 아들 옆에도 있어주지 못했던 자신이.

연기 덕분에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한권주는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자랑스러워졌다.

“아빠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한권주는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그리고! 유진이 형 사인 받아줘.”

“유진이 형?”

“응. 친구들 사이에서 유진이 형 엄청 인기 많아. 특히 여자애들이 엄청 좋아해.”

한권주로선 유진에겐 여러모로 고마움 뿐이었다.

아들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유진이 제게 여러모로 힘을 실어준 덕분이었으니.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이에 대해선 꼭 보답을 하고 싶었다.

‘평소에는 그리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서, 연기할 때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아이였지.’

윤빈 역할을 할 때부터 놀랐다.

한권주의 감정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연기력을 보여줬으니까.

영서를 연기할 때는 또 달랐다.

윤빈으로서의 행동을 똑같이 재현하면서도, 이따금 드러나는 싸늘함.

그 존재감은 순간 한권주를 긴장시킬 정도였고.

그 팽팽함 덕분에 한권주 역시 더욱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

‘진승우를 밀어내고 역할을 따낸 게 이해가 가.’

만약 아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권주가 계속 헤맸더라면.

‘분명······그 애의 존재감에 잡아먹혔겠지.’

여러모로 유진에게 빚진 게 많은 한권주다.

“그래서 여자애들한테 자랑했거든. 우리 아빠 유진이 형이랑 연기한다! 그러니까 또 엄청 부러워했어. 아빠보다 유진이 형이 좋대.”

“그래?”

조잘조잘 떠드는 한혜성.

그렇구나, 하며 쿨하게 넘기려던 한권주였으나.

“혜성이. 너도 유진이 형이 아빠보다 더 좋아?”

냉미남 계의 대표주자 한권주이지만.

아들 앞에선 그도 한 명의 아빠일 뿐이었다.

아들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질투심을 느끼는.

“음? 난 당연히 아빠가 더 멋있지! 근데 여자애들은 유진이 형이 더 좋대.”

한혜성이 해맑게 대답했다.

한권주는 그 대답에 피식 웃을 뿐이었다.

*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

그곳에선 현재 웹드라마 <연년생>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가 만든 웹드라마 <연년생>.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은 상황입니다.”

차동석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조회수며 좋아요, 구독자까지. 모두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요. 댓글만 봐도 반응이 좋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언급도 많이 되는 편입니다.”

그의 말처럼.

[배우 박유진의 스프링 노트

동영상 – 35개, 구독자 – 151,999]

웹드라마 업로드 이후 구독자는 벌써 15만을 돌파했고.

[웹드라마 <연년생> EP 01. 남(매)]

조회수 – 301,654]

1화 조회수가 벌써 30만을 넘었다.

즉, 유진 채널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유입되었다는 것.

거기에 빅터의 ‘첫사랑’ 뮤비로 유입된 빅터 팬들.

송미연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고 한 번 궁금해서 눌러봤다가 팬이 된 사람들까지.

“조금 이를지 모르지만, 하나의 컨텐츠로서 점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차동석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근데 시윤 역 맡은 애기도 너무 잘한다 ㅋㅋㅋ

쪼금 어색하긴 한데 ㅋㅋ 그래도 이 정도면 쏘쏘

시윤아 언니 집으로 와 내가 케이크 백만개 사줄게 ㅠㅠㅠ

근데 이 대본을 송미연 작가가 썼다고? ㄷㄷ 진짜 놀람

ㄴ 막장극 제조기였는데 유친 이후로 이런 거도 잘쓰는듯ㅋㅋ

5분짜리래서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퀄이 좋네??]

함께 호흡을 맞춘 김선미.

그리고 송미연 작가의 대본 등.

<연년생>이 호평받는 요소는 여러 가지였다.

물론.

[시우가 저리 땡깡부려도 왜이리 귀엽냐 ㅠㅠㅠ 솔찌 내가 부모래도 시우는 완전 오냐오냐 키울 듯...

ㄴ ㅇㅈㅋㅋ 얼굴만 봐도 배부른데

난 윗댓에 동의 못함...우리 유진이 연기 엄청 잘하는구나 새삼 느낌...설마 내가 유진이를 보고 빡칠 줄은ㅋㅋㅋ

ㄴ 나도 연년생 오빠 있어서 그런가 ㅋㅋ 웃기면서도 짜증남...

ㄴ 역시 우리 대배우 유진이 ㅋㅋ 어쩜 저렇게 얄미울까 아주 볼을 꼬집어주고시퍼]

유진의 비주얼과 연기력에 대한 칭찬이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다소 비호감으로 비춰질 수 있는 시우 캐릭터가 큰 사랑을 받는 것만 해도.

유진의 연기가 팬들에게 제대로 먹혀든 셈이다.

“곧 우리 식구인 지혜, 그리고 특별 카메오로 나은주 배우님이 참여해주실 예정이고요.”

그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두 사람.

바로 신현중과 손호철이었다.

“얘기 들었을 땐 설마 했는데, 진짜 캐스팅 된 겁니까?”

“와. 나은주······진짜 이거 꿈 아니죠?”

서로의 볼을 꼬집어보는 신현중과 손호철.

그들에게 미완이었던 웹드라마 사업.

그게 유진의 넙튜브 채널에서 초대박으로 실현되는 중이었으니까.

게다가 주역 매니지먼트 식구인 이지혜야 그렇다쳐도.

‘얼음공주’라는 별명까지 붙은 나은주가 <연년생>에 출연한다니!

“나은주 배우님 만나면 꼭 사인 받아야지.”

“일하는 중이야, 임마! 정신 좀 차려.”

“넌 안 받을 거야?”

“후후. 난 이미 대배우 박유진님께 부탁했지. 나은주 배우님 사인 받아달라고. 그쵸, 대배우님?”

“야이! 얍삽한 녀석!”

아무래도 두 사람 다 나은주의 열렬한 팬인 모양.

그 덕분에 꽤 유치하게 투닥이는 중이었다.

“싸우지들 마세요. 두 분 다 받게 해드릴테니까요.”

오히려 10살인 유진이 어른스레 중재하는 모습.

그 모습에 회의 중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슬슬 다음 주제로 넘어갈까요?”

물론.

장미소만 빼고.

“크흠! 자, 그럼 다음 안건. 협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차동석이 헛기침을 하며 곧장 화제를 넘겼다.

“유진이 쪽으로 두 업체가 협찬을 제의해왔습니다. 업체명은 유키즈, 벨레입니다.”

유키즈.

그 이름이 나왔을 때 박태종이 흠칫 놀랐다.

“유키즈랑 벨레면, 그 아동복 브랜드 유키즈 맞나요?”

“맞습니다. 역시 아버님은 알고 계시는군요.”

박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의 옷을 사입히는 게 바로 박태종이었으니까.

“네. 애 키우는 사람 치고 그 두 곳 모르는 곳은 없을 겁니다.”

유키즈와 벨레, 두 회사는 업계 1위와 2위로 국내 아동복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인지도와 점유율 모두 유키즈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상태.

물론 근소하다곤 하지만,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게 4년은 됐다.

“그런데 거기서 유진이한테 옷을 협찬한다고요?”

“네. 이번에 두 쪽 모두 다소 가격대가 있는 고급 라인업을 런칭하는데, 그 신상을 유진이에게 협찬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즉, 유진을 통해 신제품을 홍보하고 싶다는 이야기.

아동복 브랜드에게 아역배우 박유진은 가장 탐이 나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협찬이라면 그냥 둘 다 받으면 안 되나요?”

박태종의 순진한 물음에 차동석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두 브랜드의 분야가 달랐다면 상관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업체 1, 2위 제품 협찬을 모두 받으면 여러모로 난감해지니까요. 거기다 둘 다 고급 브랜드에, 신상 출시 시기도 비슷하고······여러모로 유진이 이미지에 좋지 않을 겁니다.”

즉, 상도덕에 안 맞는 이야기.

이번 건에 대해선 한 업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그때 장미소가 끼어들었다.

“두 업체 모두 웹드라마나 넙튜브에서 협찬 제품을 노출하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원칙은 넙튜브는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고, 광고는 받지 않는 거죠. ”

이 점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바람과도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연년생>에서 유진이가 입기엔 캐릭터랑 협찬 제품이 맞지 않죠.”

<연년생>은 말 그대로 연년생 남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웹드라마다.

아무리 대본을 살펴봐도 고급 브랜드 아동복을 녹여낼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예능이나 토크쇼를 나가야하는데, 지금 유진이의 스케줄은 이미 <연년생>과 <데드맨> 촬영, 그리고 연극 <주변인> 연습으로 꽉 차있어요.”

즉, 협찬을 받아도 노출할 공간이 마땅히 없다는 얘기.

“역시 둘 다 거절하는 게 나으려나 싶긴 한데.”

“그래도 협찬비까지 준다는데 아까운 일이죠. 한 번 방법을 궁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업체와는 관계 설정을 잘 해두는 게 여러모로 좋으니까요. 나중에 전속모델로 써줄 수도 있고.”

장미소의 말에 따라 아이디어를 쥐어짜내기 시작한 직원들.

그러나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았다.

“그럼요. SNS를 활용하는 건 어때요?”

그때.

유진이 먼저 의견을 냈다.

“SNS?”

“넵. 저희 곧 SNS 개설하기로 했잖아요. 거기에 협찬받은 제품 노출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차동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음. 근데 거기서 받아주려나? 어디 잡지나 신문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SNS에 사진 좀 올리는 게 다인데.”

SNS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

SNS로 협찬 광고, 상업 마케팅을 한다는 건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연예인들도 팬들과의 소통창구나 일상공유 용도로 쓰는 중.

“게다가 아직 유진이 SNS를 개설하기도 전이라, 팔로워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여러모로 SNS를 통한 협찬 노출, 그 영향력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과연 이걸 업체 1, 2위인 유키즈와 벨레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수가 없어. 난 유진이 의견이 최선이라고 봐. 이것도 안 되면 그냥 협찬 까버리지 뭐.”

장미소가 유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

잠시 고민하던 차동석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두 업체에 제의해보겠습니다. 웹드라마가 아니라 새로 개설하는 SNS에 홍보해도 협찬해줄 건지.”

*

그렇게 유진 측의 역제안을 받은 1위 업체, 유키즈.

그들은 매우 난색을 표했다.

"현재 박유진 측 스케줄이 꽉 찬 상태라고 합니다. 토크쇼나 예능 출연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

"정말 그 정도로 바쁜 상황인 거야?"

"네. 연극 개막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고, 연극이 끝나도 곧장 <데드맨> 촬영이 연달아 있다고 합니다."

"쓰읍. 하긴, 요즘 아역배우 함부로 굴렸다간 바로 쇠고랑이니까. 거기서도 무리해서 토크쇼나 예능 돌릴 순 없겠지."

혹사 스캔들이 터진 이후 아역배우 보호에 대해선 모두가 예민한 상황이니까.

유키즈 쪽에서도 강권할 수는 없는 상황.

"그쪽 웹드라마나 넙튜브 일상 영상에 노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네."

"아무리 그래도 SNS는 너무 애매한데."

아직 그들의 머릿속에선 ‘홍보=미디어 매체’라는 인식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TV에는 나와서 제품을 노출시켜줘야 제대로 홍보가 된다는 것.

하다 못해 요즘 선풍적 인기인 넙튜브에서라도 노출이 되면 모를까.

유진 측은 그조차 거절하곤, 대안이랍시고 SNS를 내밀었다.

그것도 계정을 아직 개설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유키즈 측으로서는 홍보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유키즈 쪽은 넙튜브 관련 몇 번 더 협상을 시도했으나.

유진 측의 완강한 의사에 결국 철수하기로 했다.

“그냥 포기합시다. 협찬 넣을 곳이 박유진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맞습니다. 어차피 박유진 측의 스케줄이 꽉 찼다면, 다른 아동복 업체들도 협찬하기 어려울 겁니다."

즉, 이번 협찬이 어그러진다고 해도 현상유지다.

유키즈 쪽은 그리 판단하고 이번 건에서 손을 뗐다.

한편.

“흐음.”

벨레 쪽 역시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박유진의 영향력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SNS로 제품을 홍보하는 게 전례가 없던 일이라."

그들도 유키즈 쪽과 마찬가지로 SNS 홍보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는 중.

하지만.

"SNS도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홍보 효과는 분명 있을 겁니다."

“박유진의 넙튜브도 이렇게 뜰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침바람도 박유진 넙튜브에 한 번 나왔다고 언급량이 엄청 뛰고, 실제로 광고모델로 채용해서 쏠쏠히 재미를 봤습니다.”

“지금 아역들 중 협찬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건 역시 박유진 뿐입니다.”

그들은 유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 고급 브랜드 ‘샤흐멍’을 런칭한 이후.

벨레 쪽은 유진에게 협찬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해왔다.

그만큼 유진의 영향력을 높게 치고 있었다는 뜻.

무엇보다, 1위로서 현상 유지를 노리는 유키즈와는 달리.

2위인 벨레 측으로선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만 했다.

“이번에 런칭한 고급 라인업 ‘샤흐멍’만큼은 유키즈를 이겨야한다. 그런 사장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뭐든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추격자인 벨레 측은 이번 고급 제품 출시로 유키즈의 아성을 넘보는 중.

그러나 하필 유키즈 쪽과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초조하던 차다.

그렇기에 다양한 채널에서의 제품 홍보를 기획하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유진에게 협찬 지원을 하는 것.

“좋습니다. 그럼 박유진 배우 측에 협찬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업체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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