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73화 (73/237)

73화

평일, 영화 <데드맨> 촬영장.

한권주와 고석태는 정장 차림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한창 액션신을 소화한 뒤라 헥헥 숨을 고르는 중.

휴식시간,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 고석태에게 한권주가 다가왔다.

아무 말 없이 생수를 내밀자 씨익 웃으며 받아드는 고석태.

“이야. 무슨 일이래? 천하의 한권주가 이런 배려를 해주시고.”

잠시 목을 축이는 두 사람.

곧 고석태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역시 가화만사성이라고,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네. 가정이 화목해야 뭐든 잘 되는 법이지.”

“시끄러.”

“그래서. 혜성이는 요즘 어때? 이야. 저번에 촬영장 왔을 때 보니까 엄청 컸던데.”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신났어. 옷이랑 가방 사고 싶다고 난리야.”

“한참 그럴 때긴 하지. 근데 설마 너, 애가 갖고 싶다는 거 다 사준 거 아니지? 그러다 버릇 나빠진다.”

뜨끔한 건지, 아니면 그냥 할 말이 없는 건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한권주.

“아무튼 다행이다, 야. 거봐. 애들은 쑥쑥 커서 하루라도 어릴 때 많이 봐둬야 한다니까? 뭐, 초등학교 들어갈 정도면 다 큰 거지만.”

곧 고석태는 매니저에게 맡겨뒀던 스마트폰을 받았다.

잠금을 해제하자마자 올라가는 고석태의 눈썹.

“어? 유진이한테 문자 왔다.”

한권주는 유진의 이름이 나오자 고석태 쪽을 흘끗거리기 시작했다.

“아. 얘도 이제 SNS 시작하나 보네. 야, 권주야. 넌 스윗터 안 하냐?”

그 말에 한권주는 멀뚱히 고석태를 바라보았다.

스윗터가 뭐냐는 얼굴.

“야야. 세상 돌아가는 것 좀 봐라. 이게 얼마나 재밌는데. 팬들이랑 다이렉트로 소통하니까 진짜 체감이 다르다니까?”

“안 해.”

한권주는 단칼에 거절했다.

냉미남 컨셉인 한권주와는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본래 소통하는 걸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그러다 너 시대에 뒤처진다? 이 10살짜리 꼬맹이도 하는걸.”

“······유진이가?”

“어. 이제 시작한다고 문자 보냈는데. 넌 안 왔냐?”

한권주도 제 휴대폰을 꺼냈다.

얼마 전에 아들의 스마트폰을 사주며, 그 역시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상태.

그러나 그에겐 그냥 비싸고 무거운 휴대폰일 뿐이었다.

아무튼.

그에게도 유진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저 이번에 스윗터 시작했어요!

혹시 스윗터 하시는 분 있으면 친추나 RT 부탁드려요 ㅎㅎㅎ

같이 놀아요!]

그 문자를 빤히 바라보는 한권주.

유진 덕분에 아들과의 관계가 순탄히 풀려서 그런 것일까.

유진을 보면 괜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아끼는 조카를 보는 기분.

“스윗터가 뭐하는 건데?”

“사진이나 짧은 글 올리고, 그걸 실시간으로 사람들이랑 공유하는 거야. 이게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엄청 중독성 있다니깐? 나 요즘 이거 하는 재미에 산다.”

스윗터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고석태.

그를 잠자코 듣고 있던 한권주는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석태야.”

“왜?”

“아무것도 아니다.”

곧 싱겁게 대화를 끝낸 한권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 그는 서툰 타자로 검색어를 입력했다.

[스윗터 하는 방법]

*

최근 핫한 SNS로 떠오른 스윗터.

거기에 또 새로운 연예인이 등장했다.

[박유진의 스윗 : 안녕하세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

제가 이번에 스윗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٩(๑>∀<๑)۶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 직후.

[와 유진이 스윗터 가입!!!]

[오늘은 기념일이다 달력에 새겨놔야지]

[울 아기천사 요즘 엄청 바쁠텐데 ㅠㅠㅠㅠ 대박이들 생각해서 스윗터까지 해주는 거야? ㅠㅠㅠ]

[응원해요 유진군~~~^^]

팬카페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가입 사실을 안 팬들.

그들이 몰려와 유진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박유진의 스윗터

팔로우 : 0 팔로워 : 11.1K]

단숨에 1만을 넘긴 팔로워.

하지만 그 이후론 다소 속도가 정체되었다.

그에 불을 붙인 건.

[키즈모델 김선미의 답글 : 휴 겨우 찾았네

이제야 계정 만들었으면서 왜 아까 맞팔해달래 ㅡㅡ]

빅터 ‘첫사랑’과 웹드라마 <연년생>을 통해 1만 5천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김선미의 트윗.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이선화 감독의 답글: 우리 아기천사!! 영원한 솔!!

박유진 배우의 스윗터 입성을 축하합니다!]

영화 <날개>의 감독이자.

스윗터에서 <날개> 비하인드 떡밥을 푸는 덕분에 5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이선화.

[고석태의 답글 : 오~~유진이~~

스윗터 시작하는거임? ㅋㅋ 삼촌이랑 또 당구 치러 가야지~~]

거기에 <데드맨>을 통해 맺은 인연이자.

팔로워 15만을 거느린 감초배우 고석태.

[이순철의 답글 : 어서와라. ^^]

유진과 <호구>에서 호흡을 맞췄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스윗터를 가입한, 팔로워 30만의 원로배우 이순철까지.

유진과 인연을 맺은 유명인들이 유진의 스윗에 RT와 함께 답글을 달았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한방.

[빅터 재오의 답글 : 오! 우리 스승님 스윗터 강림!

제자가 찾아왔나이다]

현직 인기 아이돌 빅터의 멤버.

전세계 팔로워 300만의 재오가 추가타를 날려주었다.

그들의 답글은 스윗터 내에서 유진에게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박유진의 스윗터

팔로우 : 5 팔로워 : 156.4K]

단 몇 시간 만에 유진의 팔로워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멜랑꼴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제이미 리.

그는 스튜디오 밖에선 거의 촬영을 하지 않는다.

그 도도한 성미로 스튜디오에서만 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가뜩이나 스케줄이 많기 때문에 그는 더더욱 이 문제에 집착했다.

그래서 야외촬영 관련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하는 편.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은.

“하다하다 내가 남의 집앞에서 사진을 찍게 되다니.”

유진의 집 앞에 와있다.

자신이 쓰는 카메라 하나 덜렁 들고.

“제이미 삼촌, 보리차 한 잔 하실래요?”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의 꼬맹이는 해맑게 대답할 뿐이다.

제이미가 인상을 팍 쓰고선 답했다.

“보리차고 뭐고. SNS에 사진 하나 올리자고 나를 불러? 지금 장난해?”

“사진은 제이미 삼촌이 짱이잖아요.”

“그거야 당연하지······잠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미 잡자고 미사일을 준비하는 거야 뭐야.”

오랜만에 맞이한 휴일.

유진 쪽에서 부탁이 있다기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달려왔더니.

SNS에 협찬 제품 노출용 사진을 찍는댄다.

도도한 제이미로서는 그게 영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

“흠, 흠.”

그때.

느닷없이 목을 가다듬기 시작하는 유진.

“너 사진 찍을 일 있으면 삼촌한테 연락해. 민증 사진이든 뭐든 좋으니까. 알겠어?”

그러더니 곧 누군가의 성대모사를 했다.

모르는 사람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

바로 제이미의 성대모사였다.

“지금 뭐해?”

“제이미 삼촌이 했던 말이에요. 2년 전에요.”

그 말에 뜨끔하며 놀라는 제이미.

2년 전, 유진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제이미가 자발적으로 요구했던 사항이다.

제이미로선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

“음, 삼촌이 정 그러면 할 수 없죠. 다른 사진작가님한테 부탁할까.”

“그건 안돼! 알았어. 찍으면 될 거 아니야.”

유진의 사진을 독점하고 싶다는 사진작가로서의 욕망.

그게 제이미의 자존심을 이겼다.

“아싸. 역시 삼촌밖에 없다니까요? 하긴. 대한민국에서 삼촌만큼 사진 잘 찍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마음에 없는 말 그만 해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제이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유진이가 제이미 다루는 법을 완벽히 알고 있네요. 그렇게 까칠하다고 소문난 양반을.”

“그러네요.”

그 모습을 보며 차동석과 박태종은 소곤거리며 감탄할 뿐이었다.

“그냥 가볍게 찍어주세요, 삼촌. 연극 연습 가기 전에 출근샷이거든요.”

“네가 말 안해도 그럴 거야.”

아무리 그래도.

쉬는 날, 선호하지도 않은 야외촬영이라 텐션이 내려간 제이미.

SNS에 올라간다니 후딱 찍고 돌아가 쉴 예정이었다.

“흠.”

그러나 새삼 유진의 현재 코디를 보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유진은 협찬 제품인 샤흐멍 패딩에 맞춰 코디한 상태.

거기에 손에 들고 있는 연극 <주변인>의 대본까지.

과하지도 않고, 꾸민 듯 안 꾸민 일상적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태 제이미는 유진의 사진을 모두 스튜디오에서만 찍었다.

유진의 첫 프로필 사진도, 작년에 찍은 화보집도.

원하는 조명, 원하는 각도, 원하는 소품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건 또 나쁘지 않은데.”

그와 달리 지금은 바람이며 햇빛, 장소까지.

모두 제이미의 의도와 통제 밖에 있다.

이 신선함이 제이미의 영감에 불을 질렀다.

제이미의 눈빛이 금세 바뀌었다.

“오케이. 일단 러프하게 한 장 찍어보자고. 자. 거기서 턱 살짝만 틀고.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그렇지, 좋아!”

대충 찍고 집에 가려 했으나.

어느 새 또 몰입해버린 제이미였다.

*

다음날.

아동복 2위 업체인 벨레의 건물.

그곳 2층에 위치한 홍보팀 사무실.

“하. 우리 콩라인 탈출 좀 해야하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리는 홍보팀 팀장 박수완.

벨레 쪽은 근소한 차이지만 계속 유키즈 쪽에 밀리고 있고.

그 차이가 누적되어 벨레는 ‘유키즈보단 아래급’이라는 이미지가 박혔다.

그를 타개하기 위해 샤흐멍이라는 고급 라인업을 낸 것인데.

“왜 하필 고급 라인업 출시 시기까지 겹쳐서는.”

이를 노린 것인지, 유키즈 쪽에선 정확히 벨레 쪽과 같은 전략을 썼다.

비슷하게 고급 라인업을 출시한 것.

심지어 벨레 쪽과 시기까지 겹친 걸 보면, 벨레의 존재감을 지우려는 목적이 다분했다.

“박유진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상품 업로드 하겠다는데요.”

부하 직원이 말했다.

“계정 개설한 게 어제 아니었나? 장담한대로 20만 팔로워 모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텐데. 오늘 하겠다고?”

박수완이 침음을 흘리며 턱을 긁었다.

역시 아직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

“유키즈 쪽에서도 박유진한테 협찬 제의는 넣었다고 했지?”

“들리는 소문으론 그렇습니다.”

“박유진 측이 미쳤다고 둘 다 받진 않았을 거고, 결국 우리 제품을 받은 셈인데. 유키즈 쪽에선 각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고 뺀 거겠지.”

아직 이들에겐 SNS란 연예인들이 잡담을 하거나.

셀카를 올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홍보를 해봤자 과연 효과가 있을까. 그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일단 상황이나 봐야겠다. 모니터링 하고 보고해.”

하지만 협찬을 박유진한테만 하는 것도 아니고.

협찬 역시 수많은 홍보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박수완은 기대감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유진의 스윗터를 살펴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든 부하직원.

잠시 후.

“티, 팀장님!”

“왜. 무슨 일인데?”

“박유진 팔로워 숫자가 미쳤는데요?”

그리 말하며 직원은 제 스마트폰을 팀장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박수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하, 하루만에 팔로워가 25만명?”

유진이 장담했던 20만명보다 5만명이나 더 많다.

즉.

벨레의 협찬 상품이 적어도 25만명에게 노출된다는 뜻.

“심지어 실시간으로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어제 개설한 계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팔로워 숫자는 늘어만 갈 터였다.

그리고 곧장 올라온 유진의 협찬 홍보.

[유진의 스윗 : 오늘 날씨 너무 춥죠?

저도 외투 따뜻하게 걸치고 연극 연습 가는 중이에요 ㅎㅎ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꼭꼭 따뜻하게 입고 나가기! *´꒳`*

#벨레 #샤흐멍패딩 #신상 #완전따뜻 #협찬감사합니다!]

야외에서 한 손에 대본을 들고 환히 웃고 있는 유진의 사진.

거기에 벨레가 유진에게 협찬한 샤흐멍 라인업의 고급 패딩을 입고 있었다.

확실히 유진이 입으니 훨씬 고급스럽고 예쁘게 보이는 모습.

“업로드하자마자 RT, 하트 수가 엄청 치솟는데요?”

실시간으로 오르는 RT와 하트숫자.

벨레 직원들의 눈엔 마치 주식이 치솟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홍보는 확실히 될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유진의 스윗 밑으로 한 답글이 달렸으니.

[빅터 재오의 답글 : 오 패딩 완전 예쁘네ㅋ

우리 스승님 연극 보러가고 싶다.

연습 잘하고 와!]

“뭐, 뭐야. 재오가 왜?”

심지어 재오가 제품을 예쁘다며 칭찬해주기까지.

“박유진이랑 재오, 엄청 친하잖습니까.”

“아니, 그건 아는데. 왜 재오가 우리 제품을 칭찬하냐고!”

팔로워 300만을 자랑하는 빅터의 재오.

그가 굳이 벨레의 샤흐멍 패딩을 가리켜 예쁘다고 칭찬해준 것이다.

벨레 측으로선 뜻하지도 않던 어마어마한 홍보효과를 누리는 셈.

심지어 몇 시간 뒤엔.

[스윗터 실시간 화제 검색어

1. 박유진 연극

2. 박유진 패딩

3. 벨레

4. 연극 주변인]

벨레의 신상 패딩은 물론이요.

유진이 참여하는 연극 <주변인>까지.

모두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이거······대박인데?”

홍보팀 팀장 박수완이 혀를 내둘렀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SNS 마케팅.

그게 대박을 치는 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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