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영화 <데드맨>은 개봉 전부터 큰 화제였다.
거장 권성택의 영화.
한권주, 고석태, 나은주 등 올스타라 불리는 라인업.
거기에 아역배우인 유진이 1인 2역을 소화한다는 소식까지.
때문에 영화 커뮤니티는 벌써 <데드맨>으로 난리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가 다 형편없던 것도 한몫 했고.
[데드맨 스포...JPG
은 수달맨이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구!]
[기자가 찍은 촬영현장 떴다!
ㄴ 뭔 ㅅㅂ 하늘 사진 올려놓고 촬영현장이래 죽을래?]
[데드맨 스포) 나은주가 한권주 통수때리고 죽임
ㄴ 이거 진짜임?
ㄴㄴ 진짜겠냐 ㅋㅋ]
[그놈의 데드맨 데드맨...어휴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다]
벌써 <데드맨>에 관한 각종 루머와 어그로가 판을 쳤다.
이에 학을 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
그러던 중.
모두의 어그로를 끄는 게시글이 하나 등장했으니.
[나 데드맨 촬영 스탭이다 뭐든 물어봐라]
바로 촬영 스탭을 자처한 사람의 글이 올라온 것.
[인증 없으면 뭐다??
ㄴ 인증하면 내가 어느 팀인지 밝혀져서 안됨 감독님한테 바로 집합당함. 믿거나 말거나 자유
헐ㅋ 그럼 나은주 분량 어느 정도임?
ㄴ 엄청 많진 않음 딱 조연 정도
제목이 데드맨인데 누가 죽음?? 주인공이 죽나??
ㄴ 스포성 질문엔 대답 안함
배우들끼리 기싸움 없음? 이름값들 다 ㅈㄴ 높아서 눈치 오지게 보일 것 같은데 ㅋㅋ
ㄴ 놀랍게도 다들 친해짐. 이번에 단합대회도 했음. 눈치 싸움 전혀 없고 촬영장 분위기 되게 좋았음
한권주 이번에도 걍 차가운 남자 역할이 끝임? 언제나처럼?
ㄴ 이번엔 좀 다름. 개봉하면 아마 다들 놀랄 듯.]
댓글로 질문을 받는다는 자칭 스탭.
스포일러를 제외하곤 나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 중이었다.
[헐 ㄹㅇ 찐스탭인가?
찐이든 아니든 재밌긴 하네 ㅋㅋ]
그렇게 그 게시글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갈 무렵.
[스탭님 유진이 어때요? ㅠㅠㅠ 분량 많아요?
ㄴ 한권주 다음으로 분량 많음.
박유진 1인 2역이라는데 뭐랑 뭐 맡은 거임?
ㄴ 그건 스포임
ㄴㄴ ㅡㅡ 뭐만하면 스포래
그럼 박유진 연기력은 어떰?
ㄴ 개쩜. 박유진이 진짜 내년 백룡 먹을듯]
그 댓글 이후.
여론이 확 반전되었다.
[박유진이 ㅋㅋㅋㅋㅋ 백룡ㅋㅋㅋㅋ
아 ㅅㅂ 박유진빠 어그로였잖아
인증 없으면 뭐다?
박유진 올려치기하려고 이젠 하다하다 별ㅋㅋㅋ 스탭 사칭ㅋㅋㅋ
PDF 캡쳐했습니다 이거 권성택 스튜디오에 이멜로 쏠거임]
유진에 대한 칭찬 한 번으로 자칭 스탭은 어그로 취급을 당하는 중이었다.
[저게 어그로 취급당할 댓글임?? 박유진 연기력 미친건 사실인데
ㄴ 아무리 그래도 백룡은 좀ㅋㅋ
ㄴ 상식적으로 같이 데드맨 같이 하고 있는게 한권주 나은주 고석태 등등인데 박유진만 칭찬하는 게 의도 빤히 보이지 ㅋㅋ]
유진의 연기력이 좋다곤 해도.
이름값이 화려한 배우들이 널려 있는 <데드맨>에서 그가 눈에 띄겠느냐는 것.
[박유진이 못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너무 쎔
맞음 뭐 다른 영화제 신인상이라면 모를까 백룡? 선넘었지 ㅋㅋ
제발 박유진빠들 현실을 사세요 ㅠㅠ 걔 아직 10살이라고요 어린애한테 왜 과몰입함]
영화 매니아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이니 더더욱 그런 시각이 강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유진이 경력이 짧아, 보여준 게 적으니.
[말했지만 믿거나 말거나 자유임 ㅇㅇ
근데 나중에 후회들 하지 마라
혹시 모르니 이 글은 5분 뒤 폭파함
ㄴ 추하게 런하네 ㅋㅋㅋㅋㅋ
ㄴ 어그로 끌어볼려다 딱 걸렸쥬?]
그렇게 사라진 자칭 스탭.
[내가 저 ^스탭^ 때문에라도 데드맨 꼭 본다 ㅋㅋ
찐스탭이면 머리 좋네 ㅋㅋ 바이럴 마케팅의 신ㅋㅋ
ㄹㅇ 촬영팀이 아니라 홍보팀으로 가야할듯]
커뮤니티는 아직도 불타는 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데드맨>의 기대감은 나날이 높아져가는 중이었다.
*
이지혜가 연기 복귀작으로 웹드라마 <연년생>을 고른 이유.
그건 가장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귀찮고 복잡한 계약 절차가 있을 리 없으니까.
게다가 현재 <연년생>은 매우 잘 나가고 있었다.
1화 조회수만 벌써 70만을 넘겼을 정도.
‘시즌 2부터는 드라마 전문 스튜디오 쪽이랑 협업할 수도 있다고 하셨지.’
점점 스케일이 커져가는 중이다.
이미 다른 연예계 기획사들도 웹드라마에 도전하는 중이지만.
<연년생>은 그 선두주자로 위치가 확고하다.
<별을 보러 떠나요>에 출연하며 크게 인지도를 높인 이지혜다.
자신의 출연으로 인해 채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기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래?’
그것도 심지어 유진의 팬미팅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 연기를 해야한다니!
얼떨결에 수락하긴 했지만, 막상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니 발발 떨렸다.
‘거기에 함께 하는 사람이.’
연습실 안.
이지혜는 흘끗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도도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나은주가 있었다.
‘나은주 배우님과 연기하면 어떨거냐던 말, 그게 괜히 해본 소리가 아니었구나.'
유진의 팬미팅에 올라갈 <연년생> 라이브 연기.
그 연습을 위해 세 여자가 모인 상태였으니.
김선미와 이지혜, 그리고 나은주.
그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어색함이 흘렀다.
셋 모두 서로 초면인데다, 접점이라곤 없었으니.
“아, 안녕하세요. 배우 이지혜라고 합니다.”
본래 나서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나마 최근 예능으로 다져진 이지혜가 먼저 나섰다.
“네. 반가워요. 나은주예요.”
나은주는 누가 봐도 차가움이 철철 흘러넘쳤다.
말을 걸었다간 매섭게 째려볼 것만 같은 느낌.
"유진이한테 지혜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 얘기를요?”
유진이 제 얘기를 했다니 궁금해졌다.
“혹시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재밌는 누나라고 하던데.”
거기서 또 대화가 끊겼다.
살갑게 굴며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지만 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쎄한 기운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래. 우선 저 아이랑 친해져야겠다.’
이지혜는 타깃을 김선미로 바꿨다.
“안녕? 언니는 이지혜라고 해.”
“······김선미에요.”
살갑게 다가갔으나, 김선미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무래도 낯선 언니가 두 명이나 있어 다소 불편한 모양.
마치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 같기도 하고.
‘하아. 쉽지 않네.’
사실 이지혜와 나은주는 카메오다.
팬미팅에 올라갈 분량만 연습하면 그걸로 끝.
굳이 친해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건 코미디극이야. 배우들의 호흡이 좋아야 한다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자연스런 웃음을 만드니까.'
괜히 사람 웃기는 연기가 제일 어렵다고 하겠는가.
그만큼 삐끗 잘못하다간 분위기만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드라마나 영화처럼 촬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팬미팅 때,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는데 이런 분위기다?
‘그야말로 분위기가 초상집이 될 거야.’
상상만으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지혜로선 복귀무대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게 여러모로 이지혜가 애를 먹고 있을 때.
“늦어서 죄송해요!”
연습실 안으로 유진이 나타났다.
그러자 이지혜는 구원자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가 맞이했다.
“야. 왜 이리 늦게 와!”
“죄송해요. 잠깐 어딜 다녀오느라고.”
유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어딜 다녀온 건데?”
“그게, 시상식 다녀왔거든요.”
“시상식? 요즘 연기대상할 시즌도 아닌데?”
그 말에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는 유진.
곧 그 안에서 꺼내든 것은, 바로 학교 상장이었다.
“학력 우수상을 받았거든요. 그냥 반에서 선생님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상식까지 해서······죄송해요.”
아무래도 학교 측에선 유진을 홍보로 써먹고 싶었던 모양.
아무튼.
그 소식 하나로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어린애가 상을 받고 왔다는데 늦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으니까.
“그래, 뭐. 축하하고. 응. 다신 늦지 마.”
툴툴대려다 황급히 방향을 트는 김선미.
“축하해, 유진아.”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된 듯.
부드럽게 축하해주는 나은주였다.
“아무튼, 다들 갑작스런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나은주로선 넙튜브 채널이 유진이 혁혁한 공을 세웠고.
김선미도 <연년생>을 통해 키즈모델이 아닌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이지혜는 유진 덕분에 혹사에서 벗어났으니 말할 것도 없다.
모두 유진에게 빚이 있는 셈.
그러니 팬미팅에서 라이브 연기를 한다는 갑작스런 제안도 모두 수락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연습을 시작······.”
그렇게 이지혜가 연습을 주도하려던 그때.
“근데 은주 누나. 혹시 <호구> 봤어요?”
갑자기 유진이 사담을 시작했다.
“그럼. 봤지. 너 나오잖아.”
“그럼 지혜 누나 연기 어땠어요? 되게 잘했죠?”
“음.”
그러자 나은주의 눈빛이 이지혜에게로 향했다.
“잘 봤어요. 연기 잘하던데.”
예상치 못했던 나은주의 칭찬.
이지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저도 나은주 배우님 보고 많이 배웠어요!”
“저거 진짜에요. 지혜 누나가 은주 누나랑 같이 연기하면 영광일 거라고도 그랬고. 완전 팬이라던데요?”
“아니, 그게. 팬까지는 아니고.”
“아아. 팬은 아니구나.”
심드렁해진 나은주.
이지혜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 부끄러워서요. 제가 어려서부터 나은주 배우님 연기보고 많이 따라해서······.”
“은주 누나야 워낙 연기 잘하니까요. 아, 선미는 지혜 누나 팬이라던데.”
“어, 어?”
“헐. 진짜? 너 근데 되게 예쁘다. 키즈모델이라며? 대단하다.”
“네? 아, 그. 네. 가, 감사합니다. 저도 별떠 되게 재밌게 보고 있어요.”
유진이 대화를 주도하면서도 적절히 말을 섞게 도와주었고.
덕분에 어색하던 세 사람은 금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낯선 세 사람을 하나로 묶은 것.
그게 바로 유진이었으니까.
유진이 탁월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는 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유진이 쟤는 눈치가 빠른 건가. 아니면 원체 친화력이 좋은 건가.’
불쑥 위화감을 느낀 이지혜가 유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눈치껏 행동하면서도.
순진무구한 표정 때문인지, 전혀 의도하는 것처럼 보이질 않았으니.
‘아무튼 이대로라면 호흡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이지혜가 크게 걱정을 덜고 있던 그때.
“아, 맞다. 여러분! 자신있는 노래 하나씩만 말씀해주세요.”
“응? 노래는 왜?”
유진의 말에 세 게스트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래도 한 곡씩 해줘야죠! 설마 연기만 하고 갈 생각은 아니었죠?”
유진은 제 게스트들을 철저히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이지혜에겐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고 말이다.
*
한편.
배우 한권주는 지금 꽤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왜냐면 오랜만에 만난 아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으니.
“그러니까 혜성아. 다시 한 번 말해줄래?”
“응. 나 여자친구 생겼어!”
요즘 애들은 참 뭐가 빨라도 빠르나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그래. 축하해.”
“헤헤, 고마워. 아빠! 나중에 아빠한테도 소개시켜줄게!”
그래도 그게 나쁜 일도 아니고.
아들이 좋다면야 한권주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너한테 부탁을 했다고?”
“응. 유진이 형 사인을 받아와 달라고. 그럼 내 여자친구 해주겠대!”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아들 한혜성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박유진의 팬이고.
박유진의 사인을 받아다주면 사귀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한혜성은 반드시 박유진의 사인을 받아오겠다 호언장담한 것.
“그럼 아직 혜성이의 여자친구는 아닌 거네?”
“아니, 여자친구지! 아빠가 사인 받아다줄거잖아.”
확신하며 웃는 한혜성.
그럴 법도 하다.
촬영장에서 제 아버지가 유진과 호흡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아빠한테는 완전 껌이잖아! 그렇지?”
그런 아들과는 달리.
한권주는 이 말을 듣고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니, 대체 내 아들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여자친구가 되는 조건이 박유진의 사인이라니!
한권주가 보기에 제 아들 정도면 누구랑 만나도 꿇릴 게 없었다.
그런데 마치 그 여자애가 사인을 얻으려 제 아들을 이용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애랑 사귀어도 되는 거야? 혜성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지?’
더더욱 심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들은 자존심도 없이 그걸 덜컥 수락해버렸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가 반드시 사인을 받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유진이가 저 나이대 애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라더니. 진짜였군.’
새삼 유진의 인기를 실감하는 한권주였다.
‘차라리 이 얘기를 몇 주만 빨리 들었어도.’
<데드맨>촬영이 끝난 이후.
연락처를 줬지만 유진과 따로 연락한 적은 없다.
아니, 못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연락처를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았으니까.’
즉, 유진이 먼저 한권주에게 연락하지 않는 이상.
한권주는 유진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스윗터도 있긴 하지만, 맞팔 상태가 아니라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유진의 소속사에 연락해 ‘유진이 사인 하나만 해주십쇼’하고 요구하기에도 뭣하고.
‘게다가 듣자하니 최근 팬미팅을 준비한다고 하던데.’
유진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터다.
그렇다고 아들의 순정(?)을 방해할 수도 없고.
“다음주까지 갖다준다고 약속했어! 되게 넉넉하지? 그치, 아빠?”
그런 아빠의 속도 모르고 방방 뛰는 한혜성.
그때.
우웅-
한권주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으려 했으나.
‘설마.’
결심과는 달리, 한권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빠 잠깐 전화받고 올게.”
“응! 알았어.”
화장실로 향해 전화를 받은 한권주.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권주 삼촌!”
어쩜 이 아이는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주는지.
한권주는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그래. 어쩐 일이니?”
저도 모르게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대답하는 한권주.
“그냥요. 주말마다 봤는데, 안 보니까 되게 허전하더라고요. 잘 지내세요?”
“그래. 너도 잘 지내고?”
“넵! 그럼요. 얼마 전엔 상도 탔는 걸요?”
“그래. 축하한다.”
그게 무슨 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권주에겐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그냥 사인 하나만 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러나 ‘부탁’에는 영 소질이 없는 한권주.
그가 입술을 쉽사리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저, 삼촌.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유진이 먼저 얘길 꺼냈다.
“뭔데.”
“혹시 장기나 특기 같은 거 있으세요?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거요!”
“그런 건 딱히 없는데.”
“음. 그럼 혹시 노래 잘하세요? 목소리가 좋으셔서 잘 하실 것 같은데.”
“못하진 않는데. 그건 왜?”
연기도 아니고.
갑자기 특기니 노래니 하는 걸 물어보다니.
그 의중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으나.
“삼촌이 말했죠? 도움이 필요하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고.”
한권주는 곧 직감했다.
“삼촌이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유진의 부탁이 무엇일지.
“······잘 됐네. 나도 부탁할 게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