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82화 (82/237)

82화

“으아앗.”

오늘도 라이브로 연기할 <연년생> 연습을 끝마친 유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오전부터 꽤 오랜 시간 연습을 했으니까.

‘내용은 가벼워 보이지만, 연기가 가벼워선 안 돼.’

아무래도 시트콤 형식이다보니 더더욱 배우들 간의 합이 중요했다.

그래야 그 재미가 맛깔나게 살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그 세 사람이 많이 친해져서 다행이야.’

예상했던 것처럼 나은주와 이지혜의 케미가 꽤 좋았다.

나은주가 이지혜를 알게 모르게 놀려먹고.

이지혜가 그에 대해 어쩔 줄 몰라하는 리액션이 좋다.

그런 언니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김선미도 꽤 그림이 재밌고.

‘메이킹 영상도 꽤 인기가 많을 것 같네.’

이지혜와 김선미는 그렇다쳐도.

나은주가 그들과 나름 잘 어울리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아역배우 혹사 건도 있었고. 아무래도 까마득한 후배들이라 귀여워보이는 거겠지?’

물론 유진을 특별대우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은 귀여워하는 모양이다.

차동석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유진.

“어? 아빠?”

현관에 신발은 있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거실에도, 안방에도, 화장실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

불쑥 불길한 생각이 유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려던 그때.

“어? 유진이 왔구나.”

창고 쪽에서 나오고 있는 박태종을 발견했다.

“음? 왜 그래, 우리 아들.”

곧장 달려가 아빠에게 안기는 유진.

마치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냥요. 아빠가 좋아서요.”

단칸방을 벗어나고.

아버지가 더 이상 배달일을 하지 않음에도.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이야 말로 배우로서의 자산이겠지.’

유진이 회귀 전 했던 모든 고생.

그 과정에서의 희노애락은 현재 유진의 확실한 무기였다.

평범한 어린아이로선 결코 낼 수 없는 경험과 경륜을 갖춘 셈이니.

“근데 창고에서 뭐한 거예요?”

유진이 감정을 깔끔을 정리한 뒤, 멀끔한 얼굴로 물었다.

“뭣 좀 찾느라고. 아, 유진아. 이것 좀 볼래?”

그리 말하며 유진의 앞에 무언가를 내미는 박태종.

“어? 앨범이네요?”

“응. 우리 가족들 사진이 들어간 앨범이지.”

바로 유진의 어릴적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팬미팅에서 네 어릴적 사진을 선물로 주기로 했잖아? 그걸 살펴보는 중이었지."

"아하. 그럼 저도 보고 싶어요."

두 사람은 거실에 자리잡고 찬찬히 앨범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중에서 몇 개를 엄선해, 복사하여 팬들에게 나눠줄 예정.

"이것 좀 봐.“

유진이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시간이 앨범에 담겨있었다.

비록 싸구려 필름 카메라로 담은 거라 화질이 좋진 않지만.

“어쩜 우는 사진 하나가 없을까. 다 천사같이 웃고 있고.”

그 말대로.

아주 어릴 적 사진임에도 유진이 우는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아빠가 우는 사진은 많네요."

"크, 크흠!“

그 말대로다.

유진이 처음으로 걸었을 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박태종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튼.

팬들에게 줄 사진을 대강 고른 후, 앨범을 덮으려던 찰나.

“아. 엄마다.”

앨범의 맨 마지막.

어머니의 독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네. 정말, 우리 유진이는 다시 봐도 엄마를 쏙 빼닮았네.”

박태종이 사진과 유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유진의 빼어난 미모는 어머니 덕분이라는 걸 증명하듯.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지금도.

어머니의 얼굴은 흐릿하기만 했다.

이렇게 사진으로 본 게 전부였다.

유진을 낳자마자 하늘나라로 떠났으니까.

"셋이서 가족사진이라도 하나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씁쓸하게 웃으며 사진을 더듬는 박태종.

그 모습을 보다가 유진이 불쑥 말을 꺼냈다.

“아빠. 우리 가족사진 찍을까요?”

“응? 갑자기?”

“넵! 당장 찍으러 가요! 엄마랑 같이!”

그리 말하며 유진은 곧장 어디론가 전화했다.

“삼촌? 저 사진 찍을 일이 있는데요. 괜찮죠?”

잠시 후.

멜랑꼴리 스튜디오엔 액자를 든 유진과 박태종이 나타났다.

“가족사진 찍으러 왔어요, 제이미 삼촌!”

바로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

그 모습을 본 제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쁘게 찍어줄게.”

평소라면 툴툴대며 유진과 투닥댔을 제이미지만.

유진의 가족사진이라는 말에 매우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자. 유진이 너는 여기 의자에 앉고. 아버님은 그 옆에 서주세요. 자연스럽게 이쪽 보고 웃으시면 됩니다.”

제이미의 안내대로.

유진은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미소 지었다.

“흡, 흐읍. 크흡······!”

하지만 박태종은 좀처럼 웃질 못했다.

자꾸 울컥 감정이 올라오는 모양.

“아빠. 웃어요, 웃어! 저도 엄마도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

유진이 어깨를 토닥여주자 박태종은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크흡. 그래. 웃어야지. 이렇게 좋은 일만 가득한데.”

찰칵!

플래시가 몇 번이고 터졌다.

“다시 찍을까?”

촬영 결과물을 모니터링하며 제이미가 물었다.

박태종이 눈가가 퉁퉁 부은 채로 힘겹게 웃고 있었으니.

그러나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우리 가족다워서 좋네요!”

아름다운 엄마와 그를 쏙 빼닮아 웃고 있는 아들.

그리고 울보 아빠까지.

재미있는 가족사진이었다.

“나중에 봐도 슬프지 않고 웃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제이미 삼촌!”

제이미는 차후 유진의 가족사진을 고급 액자에 넣어 선물해주기로 했다.

“끄흡, 끕. 이, 이거 어디다 걸어놓을까. 거실? 아니면 안방?”

“아직 걸어놓지 말아요. 우리 조만간 또 이사가야할지도 몰라요.”

그 말에 박태종의 눈물이 뚝 그쳤다.

단칸방에서 지금 집으로 이사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또 이사라니?

“이제 집 사야죠, 우리!”

<데드맨>이 개봉한다면.

전액 러닝개런티를 내건 유진은 돈을 쓸어 담을 예정이니까.

*

[500석이 뭐야 ㅠㅠㅠㅠ

아니 돈벌기 싫어요?? 화끈하게 1000석은 돼야지

하 피켓팅...벌써 스트레스...]

“역시 반발이 심하긴 하네.”

팬미팅 공지를 올린 이후.

차동석이 댓글창을 보며 혀를 찼다.

“역시 좀 규모를 늘렸어야 했나?”

이번에 확정한 유진의 팬미팅 장소.

대학교에 있는 500석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그러나 500석은 너무 적다는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무리해서 진행했다가 오히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장미소가 단호히 말했다.

주역 매니지먼트의 인력으론 500석 규모도 꽤 무리한 것이니까.

“우리가 짠 프로그램 고려했을 때 너무 큰 공연장은 안 맞기도 하고, 통제하기도 어려워. 숫자에 집착하다가 공연 퀄리티를 낮출 순 없어. 중요한 건 팬들한테 행복한 기억을 주는 거잖아.”

장미소의 말에 동의하며 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현실적 여건이라는 게 있으니.

“그래도 전문업체랑 계약해서 팬미팅 녹화할 예정이니까. 팬들이 팬미팅 자체는 모두 즐길 수 있게 해야지.”

그래도 주어진 환경 내에서, 주역 매니지먼트는 최선을 다했다.

“하긴, 자기 말이 맞아. 그리고 팬미팅 기회가 이번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인터넷 창을 닫으며 차동석이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튼.

장소 대관도 완료했고, 게스트 섭외며 진행 프로그램도 모두 짜놓은 상태.

이제 팬미팅까지 남은 건 연습과 준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차기작을 정하면 어떨까 싶은데.”

장미소가 얘기를 꺼냈다.

물론 아이자와 감독이 영화할 <주변인>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 막 판권계약을 마친 셈이라 실제 제작까진 시간이 제법 걸릴 터였다.

다른 작품을 할 여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

“아니면 <주변인> 들어가기 전에 휴식기 가져도 괜찮고. 요즘 연극이다, 영화다, 웹드라마다. 여러모로 유진이가 바빴잖아.”

“아뇨! 쉬고 싶진 않아요. 놀면 뭐해요. 열심히 일해야죠, 일! 아니다. 저는 연기하는 게 노는 것처럼 즐거우니까, 지금 펑펑 놀고 있는 거예요.”

“참내. 저게 어린애가 할 소린가 싶다.”

주먹을 불끈 쥐는 유진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차동석.

장미소가 그런 차동석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유진이 쪽으로 대본 들어온 게 몇 개 있지?”

“응. 그런데 <주변인> 생각하면 영화 들어가기엔 좀 촉박할 거 같아. 드라마가 딱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를 바탕으로.

차동석은 몇 개 드라마 대본을 추려 유진에게 건넸다.

그중에서 유진은 익숙한 제목을 발견했다.

‘어? <빛나는 아침>? 이게 나한테 들어왔네.’

드라마 <빛나는 아침>은 미혼모의 고충, 그리고 현실적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대본이나 연출에서 모두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

유진에게 들어온 건 바로 이 미혼모의 아들 역할.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음에도, 의젓하고 똘똘한 아이라는 설정이다.

극중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

‘하지만 의젓한 아들이라는 캐릭터가 <유별난 친구들> 쪽 이미지랑 많이 겹쳐. 아들 캐릭터의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물론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지금의 유진에겐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대본 중에 가장 눈길을 끌만한 건 <패왕사신기>야. 거기 원톱 주인공이 주인경이거든.”

유진이 대본들을 들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자.

차동석이 추천하듯 말했다.

<패왕사신기>는 SBW에서 제작하는 퓨전 사극.

주인공으로 낙점된 주인경은 요즘 여러모로 주가가 높은 남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유진에게 주인경의 아역으로 대본이 들어온 것.

“그런데 이거 50부작 완결 예정이라서, <주변인>이랑 겹칠 수도 있어. 게다가 제작일정이 주인경 스케줄에 맞추느라 되게 타이트하게 찍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영화 <주변인>과 병행하기엔 여러모로 유진에게 무리가 갈 수 있는 상황.

“으음.”

유진은 턱을 괴고서 <빛나는 아침>과 <패왕사신기>의 대본을 대강 훑었다.

사실 촬영 일정이 빡센 건 유진으로서 별 상관이 없었다.

‘물론 이것도 좋긴 하지만.’

사실 유진은 다른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팬미팅 때문에 열심히 인터넷을 서치 중이었는데.

그러다 어떤 한 여론을 발견한 것.

‘아직 그 작품 대본은 안 들어온 모양이네.’

유진은 결국 대본을 덮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요.”

그리고 그 여론대로라면.

분명 그쪽에서 자신에게 연락을 넣을 터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좀 더 좋은 작품이 올 것 같아요.”

*

한편.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드라마 제작 전문 스튜디오 포르테.

그곳에선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판타지 로맨스 소설인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일명 '라앺'의 드라마화 제작을 위한 회의였다.

소설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죽음을 결심한 여주인공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바로 뱀파이어와 저승사자다.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뱀파이어와.

편안한 죽음, 걱정 없는 사후세계로 인도하려는 저승사자.

그 셋이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다.

“다들 아시겠지만, 라앺은 원작부터 인기가 매우 많습니다. 국내에서만 50만부, 일본에서도 어마존 소설부문 5주 연속 1위를 기록, 그 외에도 현재 10개국에 수출을 논의 중이죠.”

그만큼 인기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하니.

드라마의 흥행도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선 그게 마냥 기쁘지 않았다.

그만큼 기대감이 높아 부담감이 막중하니까.

퀄리티가 낮을 경우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을 터였다.

"우선 원작팬들에게 주요배역 희망 캐스팅을 조사해보았습니다.“

곧 캐스팅 디렉터가 PPT를 띄웠다.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의 주요 인물은 총 네 명.

여자 주인공인 수진.

냉정한 저승사자인 단.

쾌활한 뱀파이어 하이드.

그리고 염라.

“여자주인공 수진 역할에는 강사랑 배우의 추천률이 30%로 1위지만, 2위 서새아와의 차이가 불과 2%밖에 나지 않습니다. 3위 유유연도 19%로 비교적 높은 추천을 받았습니다.”

즉, 원작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크게 갈린다는 것.

그건 단 역할로 넘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했다.

“단의 경우 1위가 정성진 배우로 21%, 2위 박이경이 20%, 3위가 한권주 배우. 19%입니다.”

1%대의 초접전.

그걸 보며 스태프 모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면 대체 누굴 캐스팅해야하냐.”

원작팬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심지어 여러모로 극성이라, 드라마화한다고 했을 때 여론도 장난 아니었다.

원작이 웹툰도 아닌 소설이라, 저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캐릭터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

즉.

누굴 캐스팅해도 반발이 있을 거란 거다.

그것도 꽤 격렬하게.

“그 다음은 염라입니다만.”

직원들이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올 게 왔다는 표정.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바로 로맨스 관계와는 무관한 염라였다.

지옥의 왕이 어린아이의 모습이라는 의외성이 먼저 이목을 끌고.

인간 세계를 처음 경험해봐서 이런저런 허당의 모습도 보여준다.

동시에 지옥의 왕으로서 근엄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도 갖추고 있다.

다만 드라마화하는 입장에선.

하필 겉모습이 어린아이라 아역배우를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매우 우려가 되는 지점.

삑!

그렇게.

염라 역 추천 배우가 뜨는 순간.

직원들이 모두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게 맞아요?“

왜냐면.

다른 세 주인공들의 캐스팅이 첨예하게 갈렸던 것과 달리.

[염라 역 : 박유진 배우(추천률 93%)

거의 모든 원작팬들이 십중팔구 유진을 염라 역으로 밀고 있었으니까.

“참고 자료로 네티즌들의 반응을 가져왔습니다.”

삑!

다시 넘어가는 화면.

[박유진 아니면 염라 역 맡을 아역 아무도 없음]

[유진이 캐스팅 안 하면 제작사 찾아가서 다 엎어버릴거임 진심임]

[나도 동참함ㅋㅋ 빠루 들고 찾아간다]

[그냥 박유진이 염라 역하려고 태어난 수준인데 ㅋㅋ]

[설마 박유진도 못 잡았으면서 이 작품 드라마화 한다고 나댔겠어]

이건 주요 3인방 배역들 캐스팅과는 다른 의미로 골칫거리였다.

"즉. 저희는 박유진 못 잡으면······큰일 난다는 소리입니다.”

캐스팅 디렉터의 말.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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