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89화 (89/237)

89화

유진의 넙튜브에 출연한 이후.

며칠간 유유연은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한 수진이랑은 달랐는데도 설득당하네

진짜로...수진학 강의 개설하셔도 될 듯 ㅋㅋ

유유연 교수님 ㅠㅠㅠㅠ]

많은 사람이 자신의 해석에 귀 기울여주고.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는데 우연히 이 영상을 보게 되었네요 큰 힘을 얻습니다

저도 유유연 배우님과 라앺 속 수진이처럼 다시 한 번 살아보려고요!!

저도 힘든 시기를 겪고 동기부여 하고 갑니다...]

자신은 그저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아 깊게 좋아했을 뿐인데.

그 모습을 통해 또 위로와 용기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니.

유진의 넙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

‘그래.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자신이 표현한 캐릭터와 감정이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면.

누군가 내 연기를 보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바람으로 시작한 연기다.

물론 언제나 연기로 감동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악플도 달린 거고.

[완전 주책이네 개나댐 ㅉㅉ

개오타쿠 같음ㅋㅋ 쪽팔린 줄 알아야지]

지금도 마찬가지.

유유연의 태도와 캐릭터 해석이 호평을 받는 와중에도.

모두가 좋은 말만 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악플에 힘들어하던 그 시절만큼 힘들지 않았다.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었다.

이렇듯.

인생에는 기적 같은 순간이 몇 번 찾아오곤 한다.

유유연에겐 첫 번째가 바로 소설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를 만난 순간이었고.

두 번째는.

“네, 여보세요. 네. 네. 네? 스튜디오 포르테요?”

바로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에 캐스팅 전화를 받았을 때.

“유, 유연아! 라앺 드라마 만드는 곳에서 연락왔다!”

줄곧 라앺을 기다리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고은하 팀장도 놀랐을 정도.

드라마 미팅을 위해 포르테 쪽을 방문했을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유연은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미팅 자리에서 곧장 도장을 찍은 직후.

유유연의 머릿속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 바로 박유진이었다.

유유연은 곧장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연 누나?”

“지니야. 너 램프에서 나왔니? 어? 그래서 지니야?”

“엥?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유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 됐어.”

“응? 뭐가요?”

“나 라앺에 캐스팅 됐어.”

“우와. 진짜요, 누나? 축하해요! 덕업일치 성공했네요?”

“다 네 덕분이야. 네가 내 소원을 이뤄준 거라고!”

“아아. 그래서 램프의 지니라고 한 거예요? 난 또 뭐라고.”

잔뜩 흥분한 유유연에 비해.

유진은 시종일관 태연한 목소리였다.

마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고마워. 정말, 진심이야.”

“암요. 제 덕분이죠!”

유유연이 재차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서인지, 유진은 괜히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은 건 누나잖아요. 누나가 준비되어있었으니까요.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는 거래요. 그 기회를 잡는 건 준비가 된 사람뿐이고요. 제가 아는 어떤 누나가 그랬어요.”

“와, 그 누나 누구야? 되게 마인드가 멋지다.”

“그쵸? 제가 힘들 때도 많이 격려해준 누나예요.”

“좋은 사람이구나.”

유유연은 그 누나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 맞다. 누나. 저도 할 말 있는데.”

“응? 뭔데, 지니야?”

“고마워요.”

뜬금없는 유진의 감사인사.

이번엔 유유연이 당황할 차례였다.

“뭐, 뭐야. 뭔데? 뭐가 고마운 건데? 난 너한테 해준 게 없는데?”

“그냥. 꼭 이 말 하고 싶었는데, 늦게 했네요. 여러모로 참 고마웠어요.”

유진이 장난을 치는 것 같진 않았다.

보기 드문,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요, 누나. 알았죠?”

*

“이야. 난리가 났네, 아주.”

차동석이 활활 불타는 인터넷 여론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왜 저딴 짓을 한대?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고 사는 놈들이.”

바로 서새아의 뒷계가 밝혀진 것 때문.

비단 서새아만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서새아의 뒷계를 팔로우하며, 함께 조롱과 험담을 나누던 다른 연예인들이 있었으니까.

그들 역시 불려나와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다.

[멀리 안 나간다... 잘 가라

서새아 진짜 논란 없이 좋은 연기 보여줘서 응원했는데...이렇게 보내게 되네

그냥 내가 응원하고 그랬던 시간들이 다 의미없어졌다는 거. 그게 제일 슬프다

받았던 사인 다 찢어버렸다 그 사인 해주면서도 팬들 조롱했을 거 생각하니 개빡치더라]

범법행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들을 사랑하던 팬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니.

[‘서새아 뒷계 팔로우 논란’ 배우 고훈, 자숙 선언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 갖겠다. 정말 죄송함 뿐”]

[“팔로우만 했을 뿐, 본적도 없다” 가수 리즈, 뒷계 논란 이후 첫 입장발표]

[서새아의 심경고백 “악플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탈······죽을 죄를 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변명 뿐” 네티즌 반응 싸늘]

[<문화칼럼> 인기는 특권이 아니다······팬 없이는 스타도 존재할 수 없다]

논란을 대하는 방식은 가지각색이었으나.

어느 누구 하나 복귀가 쉬워보이진 않았다.

다른 문제면 몰라도.

팬들을 직접 조롱하고 기만했으니까.

그러는 와중.

라앺 팬카페 ‘라라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진에 서새아 민 애들은 대가리 박아라 ㅋㅋ 생각들이 있나

어쩐지 관상부터가 싸하더라니 그럴 줄 알았음ㅋㅋ

와 라앺에 서새아 묻을 뻔 ㄷㄷ

유유연이랑 비교되네 진짜

응~ 우리 수진이 역할 유유연이야~ 서새아 아니야~]

덕분에 유유연의 가치만 더욱 떡상했다.

관계자며 팬을 조롱하다 나락으로 간 서새아와.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떡상한 유유연.

두 사람의 대비가 너무 명확했으니까.

“유진아. 근데 이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냥, 스윗터에서 얘기하는 걸 본 거 같아서요.”

차동석의 질문에 유진은 그리 얼버무렸다.

비밀계정, 일명 뒷계라는 게 마음만 먹으면 들통나기 쉽지 않으니까.

‘회귀 전에는 뒷계를 쓰던 연예인 중 한 명이 멍청하게 굴어서 들통났지.’

서새아와 소통하던 뒷계정 SH14의 주인공, 이수호.

그가 술에 취해서 뒷계에 써야 할 내용을 공식계정에 써버린 것.

[이수호의 스윗 : 아 ㅈㄴ 개짜증나네

팬이란 새끼들은 ㅈㄴ 이기적ㅋㅋ 사랑은 개뿔

이런 날은 뒷계에서 놀아야지 ㅋㅋ

ㅅㅅㅇ 진짜 천재라니칸 ㅋ

연예인도 사람인데 욕 좀 갈길 수 있지

안 그럼?ㅋ

@SSA]

당시 이 초성 ‘ㅅㅅㅇ’가 누구냐를 가지고 말이 많았으나.

곧 서새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친절하게도 해당 스윗에 서새아의 뒷계를 태그했기 때문.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히 멍청한 놈이야.’

이번에 꼬리가 밟힌 것도 저 남자의 공이 컸다.

유진이 스튜디오 포르테 측에 서새아의 뒷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이후.

포르테 측에서 줄이 있는 연예계 기자에게 검증을 부탁했다.

‘인기배우 서새아의 이중생활. 이런 대형 떡밥을 놓칠 기자는 없지.’

그러나 기자가 집중한 것은 서새아 쪽이 아니라, 이수호 쪽이었다.

이수호가 스윗터에 영문을 알 수 없는 글을 올렸다 삭제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해당 기자는 이수호에게 뒷계가 있다고 줄곧 의심해왔던 것.

그래서 이수호 쪽을 집중적으로 털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뒷계에 서새아가 얽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바꿔도, 결국 망할 놈들은 어떻게 해도 망하게 되어 있구나.’

소속사 앞 팬들의 시위에 광고 계약해지로 인한 막대한 위약금.

출연 예정인 작품에서 하차당하고, 출연한 예능에서 통편집 당하는 등.

서새아와 이수호를 비롯한 뒷계 연예인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뒷계의 특성답게 인원이 소수이긴 했으나.

그들 모두 큰 인기를 누린 스타들이었기에 대중들의 실망이 더욱 컸다.

덕분에 애꿎은 연예인들에게도 뒷계가 있을 거란 루머가 퍼지는 등.

여러모로 사태가 심상치 않은 상황.

‘덕분에 요즘 소속사에선 SNS 금지령이 내려졌다지.’

스윗터 사용 모범 사례인 유진에겐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서새아를 쳐낸 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는지.

[배우 정성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에서 저승사자로 변신······뮤지컬 무대와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매력!]

[‘남신’ 민수혁,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하이드 역 출연 확정! “훌륭한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각오 밝혀]

라앺 출연진들이 속속이 확정되었다.

여주인공 수진 역엔 유유연.

저승사자 단 역엔 뮤지컬 배우 출신 코어 팬층이 탄탄한 정성진.

뱀파이어 하이드 역엔 화려한 비주얼로 인기몰이 중인 민수혁.

염라 역엔 대체불가란 평가를 받은 유진까지.

이름값만 보면 동시간대 1위가 유력해 보이는 배우진이다.

‘나를 빼면, 모두 회귀 전이랑 똑같은 배우들이야.’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라앺에 서새아가 끼어들 뻔했다.

‘아역배우 박유진’이라는 존재로 인해 바뀌는 미래 때문.

유진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가 알고 있던 미래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아.’

"아. 맞다. 여러분 주목! 중대발표가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차동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중대발표요?”

대체 무슨 얘기인가 싶어, 유진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크흠. 사실 말이죠.”

곧장 대답하는 대신 뜸을 들이는 차동석.

"저희 애 생겼어요.“

그때 장미소가 드라이하게 툭, 던졌다.

"아, 자기야!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방방 뛰며 아쉬워하는 차동석.

아닌 척 하지만.

장미소의 입술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

”······“

그러나.

사무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차동석은 크게 당황했다.

“저, 여러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와!!”

“대박!”

“정말요? 축하합니다!”

"진짜 축하해요!”

곧장 축하가 터져나왔다.

다들 너무 놀라서 순간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가장 크게 놀란 게 바로 유진 쪽이다.

'두 사람 사이에선 아이가 없었는데?‘

회귀 하기 전.

유진이 중년이 다 되어갈 때조차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그 사실을 차동석은 두고두고 아쉬워했으나.

아내의 결정을 따른다며,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오순도순 잘 살았다.

’그래서 동석이 형이 나를 더더욱 아꼈던 것인지도 몰라.‘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아들뻘이었으니.

“우리 애는 유진이급 천재배우가 될 거야.”

“애가 하고 싶어 해야지.”

“우리 둘을 쏙 빼닮은 예쁜 아이겠지!”

“오빠를 닮으면 안 되는데.”

“이제부터 자기는 집에서 쉬어. 회사 일도, 집안 일도 내가 다 할게!”

“시끄러. 아무튼 여러분. 저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던 일 계속할 거니까, 다들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다행히 인력도 확충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무일에 큰 지장은 없을 터였다.

“고맙다, 유진아! 너 덕분에 아저씨가 드디어 꿈을 이뤘다!”

“음? 제가 뭘 했는데요?”

“뭘 하긴. 네 존재 자체가 도움이었거든!”

유진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웃는 차동석.

'설마, 이것도 나로 인해 바뀐 미래인가?‘

영문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존재로 인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했다니.

‘진짜 멋진 일이네.’

유진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차동석이 또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우리 아가도 저렇게 웃는 게 예쁠 거야! 그치, 자기야?”

*

신국초등학교 3학년 1반의 교실.

“모두 차렷.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반장의 신호에 따라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이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오늘 하루의 수업도 마무리 되었다.

“가는 길에 떡볶이 먹자.”

“아. 학원 가기 싫어어.”

“축구 반코트할 사람?”

아이들이 책가방을 챙겨 우르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진 역시 마찬가지.

“유진아! 피방 고?”

네 명의 남자아이가 유진에게 다가왔다.

모두 유진이 3학년에 올라오며 새로 사귄 친구들이다.

“쏘리. 나 오늘 못 가.”

“에엥. 뭐하는데? 또 일하러 가냐?”

“아니, 과외 시간 때문에. 곧장 집 가야댐.”

사실.

요즘 유진은 스케줄이 따로 없다.

‘유진아. 라앺 촬영 들어가기 전까진 따로 스케줄 없이 푹 쉬어. 요즘 뒷계 사건 때문에 다들 예민해서 분위기가 흉흉해.’

최근 분위기라면 주목을 받는 것조차 어그로가 끌릴 수 있다.

차동석의 판단이었다.

유진도 그 판단에 동의했다.

‘어차피 라앺 촬영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곧 <데드맨> 개봉도 있으니까. 머지 않아 영화 <주변인>도 있고.’

굵직한 일들이야 계속 있으니까.

이쯤에서 잠시 숨을 골라도 좋을 터였다.

그동안은 라앺 대본 정독과, 일본어 공부에 집중할 생각.

“아, 너만 오면 자랭 각인데.”

“쏘리. 다음에 갈게.”

“오히려 좋아. 유진이 게임 개못해.”

“야. 나 게임 잘하거든?”

한국인의 피가 들끓기 시작하는 유진.

공부 못 한다, 운동 못 한다는 소리는 참아도.

게임 못 한다는 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너 게임 잘 안 하잖아!”

“한다니까?”

“뭐하는데?”

“장기. 오목. 바둑. 아, 알까기 게임도 잘한다.”

“야, 그게 무슨 게임이냐? 완전 아저씨 같아.”

“게임이지! 그럼 공부겠냐?”

RPG니 AOS니 하는 게임들은 영 손에 맞질 않았다.

진득하게 게임을 할 시간에 대본 보는 걸 더 좋아하기도 했고.

애초에 기계와는 친하지 않은 유진이라.

“아님 게임 말고 다른 걸로 붙어. 배드민턴? 축구? 다 덤벼.”

체육 수업은 물론.

모든 스포츠에서 압도적 실력을 내는 유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응, 안 함.”

“응 게임 허접.”

남자애들 사이에선 게임 잘하는 애가 왕으로 취급받는 시대.

“아, 근데 유진이 못 가면 자랭 인원수가 안 맞는데.”

“걍 일겜 돌려.”

“일겜 시시하잖아. 노잼.”

“브론즈 3이 할 말이야? 너 오늘 싸면 내 손에 죽는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 덕분에 유진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TV와 영화관에 나오는, 대단한 아역스타 박유진이 아니라.

그냥 게임 못하는 10살의 박유진으로 말이다.

“그럼 내일 보자, 허접아! 엉아들은 게임하러 간다.”

“아이, 안 되겠네. 내가 친구들을 위해 에이에이한테서 사인을 받아주려고 했는데.”

“형님!”

“아니, 제가 형님을 몰라뵈었네요. 저는 미나 걸로 좀 부탁드립니다.”

“어허! 무례한 것들. 박유진 선생님께 형님이라니! 전 소연 걸로요!”

에이에이는 요즘 가장 핫한 여자 아이돌 그룹.

이런 식으로.

가끔은 핫한 아역배우로서의 위엄을 좀 보여주어 기강을 잡는 유진이었다.

“박유진 교장 선생님만 믿슴다!”

“충성충성!”

어느덧 형님, 선생님에 이어 교장 선생님으로 격상(?)된 유진.

아이들은 유진의 어깨까지 주물러주다 곧 PC방으로 떠났다.

그 뒷모습들을 보며 유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에이는 무슨. 본 적도 없는데.’

저도 모르게 유치해져 버렸다.

하지만 이게 또 나쁘지 않았다.

과거엔 흐릿했던 어릴 적 기억을 새로 채워나가는 기분이랄까.

“저, 유진아.”

교실을 나간 순간 맞닥뜨린 건.

영화 <리플레이>의 감독, 최희숙의 딸.

유신애였다.

“신애야, 하이! 오랜만이다. 집 가는 거야?”

1학년 땐 같은 반이었으나.

2, 3학년 땐 다른 반으로 갈린 두 사람.

그래도 계속 문자를 주고받은 덕에 사이가 어색해지진 않았다.

“으응.”

“오, 그럼 오랜만에 같이 갈까?”

같이 하교하는 길.

유신애는 자꾸 유진 쪽을 흘끔거렸다.

유진도 그걸 강하게 느낄 정도.

‘뭐지? 1학년 때로 돌아간 것처럼. 요즘엔 말도 되게 잘했는데.’

유진과 친해지며 말도 잘 안 더듬고.

비교적 또박또박 말하던 유신애였는데.

오늘은 마치 긴장이라도 한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신애야. 내가 넙튜브에 올린 영상 봤어? 너도 라앺 좋아해?”

긴장을 풀어주려 유진이 먼저 대화를 주도했다.

로맨스 소설을 쓰는 유신애가 라앺을 안 봤을 리가 없다.

“으응. 재밌지, 그 소설.”

그러자.

갑자기 유신애가 고개를 돌려 유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유진아. 너, 넌 내가 소설 쓰는 거······알고 있지?”

“응. 잘 알지. 나 네 1호 팬이잖아.”

“지, 진짜?”

“그럼. 네 소설 엄청 재밌다니까?”

미래의 스타작가 샤샤토끼 아니신가.

그녀의 소설이 재미없을 리가.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유신애가 꿀꺽 침을 삼켰다.

“그게. 너한테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상담?”

“으응. 넌 이런 거 잘 알고 있을 거 같아서.”

그리 말하며 유신애는 제 휴대폰을 슬쩍 유진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것은, 유신애에게 온 한 통의 메일이었다.

“응? 출판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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