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91화 (91/237)

91화

“저를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차 묻는 유진.

“혹시 싫어?”

그러자 오히려 한권주 쪽이 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당장 전화해서 취소할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무려 한권주에게 들어온 일을 준다는데 싫어할 리가.

유진이 노래 부르는 걸 꺼려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궁금해서요. 왜 저를 추천하셨나, 해서.”

“그래. 요즘 석태 오빠 일도 없다는데. 석태 오빠나 추천해주지.”

“어허. 아픈 곳 찌르지 마라, 은주야.”

나은주와 고석태가 아웅다웅하는 사이.

한권주는 창문을 바라보다 짧게 대답했다.

“그냥. 유진이 노래 잘하잖아.”

“에이. 권주 삼촌이 더 잘하면서. 그런데 오늘 미팅하면서 무슨 얘기 들으신 거예요?”

“프로그램 취지랑 포맷 같은 거.”

“오. 궁금하다. 어떤 프로그램인데요?”

“간단했어. 스타들이 인디뮤지션들이랑 협업해서 응원송 만드는 걸 찍겠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던 고석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하필 엠더넷이라 조금 불안한데. 거기 가끔 악편으로 말 나오는 곳 아니냐?”

고석태의 말대로.

엠더넷은 가끔씩 보여주는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세를 떨친 채널이다.

리액션 짜깁기, 예고편 어그로, 별 것 아닌 일 부풀리기 등등.

“요즘 뒷계 사건도 있고. 엠더넷 쪽에서도 이미지 쇄신한다고 기획했대.”

“미팅에서 그렇게 대놓고 말한 거야? 허. 지들 이미지가 어떤진 아나 보네.”

“그래서 유진이를 추천한 거야.”

“천하의 엠더넷도 유진이를 건들기는 어려울 테니까?”

한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해했다는 것처럼 고석태가 아, 하고 탄성을 냈다.

“하긴. 유진이 가지고 장난치면 바로 모가지겠네.”

한권주가 고석태나 나은주가 아닌 유진을 추천한 이유다.

고석태는 말이 많고, 그만큼 장난끼도 많다.

나은주는 최근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차가운 느낌.

얼마든지 편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순진해 보이는 10살짜리에게 악마의 편집을 시도한다면?

“진짜 잘못 건들면 제2의 아역배우 혹사사태 되는 거지 뭐. 바로 실검 장악에, 유진이 팬카페 회원들이 엠더넷 본사로 찾아갈걸?”

유진의 팬덤은 전 세대를 아우르지만.

역시 어린 자녀를 둔 부모세대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의 행동력은 어마어마한 수준.

유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장 들고 일어설 터였다.

“나부터 엠더넷 찾아갈 거야.”

나은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말 유진을 가지고 악마의 편집을 한다면 엠더넷으로 찾아갈 기세.

“그리고 걱정 마. 엠더넷 국장님이랑 우리 소속사 사장님이랑 고등학교 동창이야.”

한권주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유진을 추천했을 리 없다.

“이번에 제대로 이미지 바꾼다고 준비 중이니까. 악편 같은 문제는 없을 거야. 낌새 이상하면 바로 연락하고.”

“그래. 그냥 미팅 제의 오면, 누나랑 삼촌들한테 상담해. 알았지?”

“그래, 그래! 그게 낫겠네.”

유진을 보호하려는 삼촌들과 누나.

자신과 상관없는 일임에도 누구보다 신경 써주고 있었다.

그를 보며 유진이 기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넵. 근데 다들 걱정하지 말아요! 연락 오면 회사 사람들이랑 잘 얘기해볼게요.”

유진이 누구인가.

그 누구보다 눈치껏 행동하는, 순수하면서도 동시에 영악한 아이였다.

“권주 삼촌이 나쁜 일을 주셨을 것 같지도 않고. 프로그램 포맷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이미 ‘날아가’ 음원료로 쏠쏠한 재미를 본데다.

팬들이 제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음악 예능을 마다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응원송이라니, 나도 하고 싶네. 내가 또 배우계의 송시경 아니겠냐.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잘 자요 한 마디 따악, 해주면! 그냥 차트 1위 먹는 거지.”

고석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한권주가 질색하며 고석태를 노려보았다.

“노래방 점수도 68점 나온 놈이 무슨.”

“야야. 그건 노래방 기계가 문제였던 거지.”

“네가 그리 잘 불렀으면 유진이 팬미팅 때 너도 노래를 했겠지.”

팬미팅 얘기가 나오자 나은주가 반응했다.

“어? 그건 무슨 말이야?”

<연년생> 팀이었던 나은주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인 모양.

“그게.”

“얌마, 권주 너 조용히 해라.”

그러자 찔리는 게 있는지 고석태가 한권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 아무 말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시끄러. 넌 운전에나 집중해. 아무튼, 원래 석태도 노래하기로 했었어.”

“어허!”

고석태가 뭐라고 하든 말든.

한권주와 나은주는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석태 오빠만 빠진 거야?”

“그래. 왜겠어?”

팬미팅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사실 유진과 한권주의 듀엣 무대는 조금 급조된 것이었다.

최초엔 고석태까지 낀 트리플 무대였던 것.

고석태가 노래에 자신이 있다고 해서 기획한 무대였다.

그런데.

“뻔하지 뭐.”

“그런데 저놈이 노래를 더럽게 못 해서지.”

막상 연습 과정에서 불러 보니.

고석태와 다른 두 사람 간 노래 실력 차이가 좀 심해야지.

결국, 결정 하루 만에 듀엣 무대로 바뀌게 되었다.

“오빠. 애 앞에서 말 좀 가려서 해. 더럽게가 뭐야, 더럽게.”

“그래. 정말 많이 못해서.”

갑자기 핸들을 돌리기 시작하는 고석태.

“뭐야? 어디 가? 당구장 그쪽 길 아니잖아.”

“노래방.”

“뭐?”

“기강 한 번 잡아야겠어. 내 노래 실력 제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당구장 파티는 노래방 파티가 되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무슨 수로 이기겠나.

“전 노래방도 좋아요!”

거기다 유진이 고석태 편을 들어준 탓에.

한권주와 나은주는 군말 않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노래방 도착 직후.

고석태는 전광석화처럼 달려가 마이크를 차지했다.

“첫 타자는 나다! 분위기 살려서 간다!”

그렇게 말한 것치곤.

고석태가 곡을 선곡했을 때 다들 표정이 묘했다.

처음 보는 노래라는 얼굴.

“이 노래 몰라? 요즘 완전 핫한 인디밴드인데!”

“오빠. 완전 핫한이랑 인디밴드가 같이 쓰일 수 있는 말이야?”

“왜? 네 별명도 따아아 아니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무튼 요즘 차트인도 했다고!”

바로 가로수라는 밴드의 ‘네 손을 잡고서’.

반주가 시작되자 잔잔한 척 에어 통기타를 연주하는 고석태.

한권주와 나은주는 그런 고석태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푸하하하!”

그 모습을 보곤 웃음을 터뜨리는 유진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음. 근데 가로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회귀 전부터.

연기 쪽으론 장르 가리지 않고 옛날 자료까지 뒤져봤던 유진.

그렇기에 어린 시절 때 공개된 작품이라고 해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음악 쪽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노래는 좋네. 귀에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고석태가 내뿜는 괴성(?) 속.

노래 반주를 감상하며 유진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우웅!

그때. 휴대폰의 진동을 느낀 유진.

슬그머니 그 내용을 확인했다.

[발신자 : 권성택 감독님

시간 될 때 조만간 한번 보자]

“유진아, 뭐해! 얼른 탬버린 흔들어!”

고석태의 일갈에 유진은 방긋 웃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잘한다, 잘한다. 석태 삼촌!”

어린애가 어른과 놀아주는 광경이었다.

*

얼마 뒤.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엠더넷.

“자, 그럼 여태 나온 기획은 다 정리됐습니까?”

감자칩을 와작와작 씹어대며 묻는 남자.

바로 엠더넷의 신건호 국장이었다.

말투는 정중하지만, 감자칩을 먹고 있어서 어딘가 불량해보인다.

하지만 국장이라는 지위 때문에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었다.

“네, 국장님. 이번 <별의 노래> 기본 골자는 네티즌들한테 추천받은 스타, 그리고 아직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인디 뮤지션들을을 한 팀씩 묶어서 함께 응원송을 만들고, 그 과정을 찍을 예정입니다.”

그리 보고하는 것은 머리카락을 다소 촌스럽게 탈색한 30대 남자.

<별의 노래> 기획을 맡은 고동수였다.

“대중들이 추천한 스타가 나오니 화제성도 있을 거고, 다소 인지도가 낮은 인디 뮤지션들을 기용해 뉴페이스들을 발굴하기도 좋을 것 같고. 잘만 하면 음원료도 기대해 볼 법합니다.”

그리 말하며 고동수는 기획서를 신건호에게 내밀었다.

“흠. 여태 프로그램에 비하면 구성이 좀 심심하긴 하네요. 경쟁 요소를 빼서 그런가.”

“요즘 악마의 편집이다 뭐다로 워낙 말이 많아서. 뒷계 사건 여파가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이번에는 좀 소프트하게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해했어요. 결국 출연진 역량이 중요하겠군요.”

부하 직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것.

회의 때마다 감자칩을 달고 사는 것.

두 개 모두 신건호의 특징이었다.

“현재까지 픽스된 건 누굽니까?”

“지금까진 아이돌 그룹 에이에이, 개그맨 조동연입니다.”

“음? 한권주 배우는 어떻게 됐습니까.”

“미팅 이후로도 몇 번 더 연락해봤지만, 결국엔 고사했습니다.”

“허어. 그 친구한테 특별히 부탁까지 했는데.”

신건호 국장은 한권주가 속한 구구액터스의 사장과 고교 동창.

그 인맥을 이용해 한권주를 데려오려 했거늘.

“여태 공식적으로 노래한 적도 없고, <데드맨>도 개봉을 앞두고 있대서 최적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본인이 안 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확고했습니다. 대신 박유진을 추천하고 갔습니다만.”

박유진의 이름이 등장하자 신건호가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권주에서 박유진이라. 급이 갑자기 좀 낮아지는데요.”

“그래도 저희 이미지 쇄신 용으로는 딱일 것 같습니다. 워낙 이미지도 좋고, 화제성도 뛰어나서. 한권주와 같이 <데드맨>을 찍기도 했고요. 게다가 이번에 추천률도 배우들 중에선 3위로 꽤 높았습니다.”

“아역배우가 전체 배우 중 3위요? 허. 그건 또 신기하네요.”

바로 유진의 팬 카페 ‘대박유진’의 화력이었다.

그만큼 다른 배우들과 견주어도 유진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의미했다.

“하긴. ‘날아가’인지 뭐시긴지로 차트인도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어린애치곤 노래 만들면서 그리 답답한 그림은 안 나오겠네요. 일단 킵해두세요.”

그리 말하며 다시 감자칩을 한 웅큼 씹어 먹는 신건호.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동수가 제 수첩에다가 ‘박유진 킵’이라고 적어두었다.

“인디 뮤지션들 쪽 섭외 상황은 어떻죠?”

“이쪽은 아직 픽스 된 건 없고, 지금 가장 먼저 가로수 쪽에 연락 넣었습니다.”

“가로수? 아아. 요즘 차트인한 그 혼성 2인조 밴드 맞죠?”

“네. 조사해보니까 둘이 연인관계라 하더군요.”

“그건 또 재밌네요. 예능 출연 경험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야. 한 번 뜨면 여기저기 써먹을 곳이 많겠는데요?”

뉴페이스를 한 번 발굴하기만 하면 골수까지 빨아먹는 게 가능하다.

특히 음악 관련 TV 채널은 현재 엠더넷이 유일하기에 더더욱.

그래서 일부러 인디 뮤지션 쪽을 발굴하려 하는 것.

“잠깐, 이건 어때요?”

신건호가 물티슈를 꺼내 손의 기름기를 닦으며 말했다.

“가로수에다가 박유진을 붙이면, 가족 같은 그림 뽑기 참 좋을 거 같은데. 젊은 커플에다 어린아이가 껴서 같이 응원송을 만든다라. 벌써 생각만 해도 훈훈하지 않나요?”

그의 말에 고동수가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은 회의 중에 칠칠맞게 감자칩도 흘리고 먹는 모습이지만.

괜히 신건호가 국장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었다.

출연진 면면만 봐도 어떤 그림을 뽑으면 좋을지 바로 견적이 나오는 것.

“박유진한테도 연락 넣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동수는 수첩에 썼던 ‘박유진 킵’ 글자를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써내려갔다.

‘박유진 픽스할 것’

*

한편.

주역 매니지먼트의 사무실.

“흥, 흐음흠.”

유진은 이어폰을 꽂은 채, 흥얼거리며 라앺 대본을 읽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건 가로수 밴드의 노래들.

얼마 전, 노래방 파티에서 고석태의 괴성(?)에 괴롭긴 했지만.

덕분에 좋은 뮤지션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줄곧 가로수 밴드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그런데 신기하네. 원래 이런 노래를 만드는 밴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차트인을 한 밝고 경쾌한 음악, ‘네 손을 잡고서’가.

가로수 밴드의 음악 안에선 꽤 이질적이라는 것.

여태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음악이 음울했다.

그중에서도 혼란스러운 청춘의 자화상을 담은 노래가 많았고.

‘이제 대중 노선을 타려는 건가? 하긴, 차트인도 했으니까 그럴 법도 하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

“유진아. 감독님 오셨다.”

“아, 넵!”

차동석의 말에 유진이 이어폰을 빼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번 만나고 싶다던 권성택이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온 것.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래. 유진이 넌 잘 지내고 있어?”

“넵! 얼마 전엔 석태 삼촌, 권주 삼촌, 은주 누나랑 같이 노래방도 다녀왔어요.”

“클클! 끝나고 나서도 사이가 좋아보이네. 보기 좋아. 하긴, 현장에서도 다들 합이 좋았지.”

워낙 합이 잘 맞고 훈훈했던 <데드맨> 팀인지라.

현장에서부터 이번 영화가 상당히 잘 뽑힐 거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그냥. 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 영화 관련해서 전해줄 얘기도 있고.”

그리 말하며 소파에 자리한 권성택.

차동석이 내온 믹스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우리 영화 개봉일, 대강 윤곽이 드러났어. 빠르면 한 달, 늦으면 두 달 뒤쯤일 거다.”

권성택의 말에 유진은 달력을 흘끗거렸다.

아무래도 여름 휴가 시즌을 노린 개봉일인 모양.

“얼마 안 남았네요.”

“그래. 편집도 거의 끝나가거든.”

“우리 영화 기대 엄청 많이 받던데요? 일하러 갈 때마다 <데드맨>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올해 개봉한 기대작들이 모두 고꾸라졌다.

벌써 한국영화 침체기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그래서 <데드맨>이 구원투수가 될지.

아니면 같이 늪에 빠질지, 영화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는 상황.

“그럼 그 기대에 응해줘야지. 안 그러냐?”

“그럼요!”

거장 권성택의 확신이었다.

이번 작은 특히나.

촬영 때도 느꼈으나.

편집 과정에서 몇 번을 다시 봐도 장면들이 잘 뽑혔다.

“특히 너랑 한권주가 붙는 장면들은 전부 베스트야.”

스토리보드를 만들며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장면들.

그때 그렸던 것보다 결과물이 훨씬 훌륭했다.

좋은 호흡을 보여준 유진과 한권주 덕분.

“감사합니다!”

유진은 꾸벅 배꼽인사로 화답했다.

거장의 칭찬에 특별히 더 기뻐하거나 우쭐대는 것 없이.

그저 평소처럼 말이다.

‘이미 마음가짐이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경지로군.’

권성택이 흐뭇한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슬슬 시놉시스랑 캐릭터 정보랑 풀고 마케팅 들어갈 거다. 곧 제작발표회도 열거고.”

개봉일이 거의 확정인 만큼.

영화에 대한 정보를 슬슬 풀어, 기대감을 고조시킬 작정.

“홍보자료에 네가 맡은 윤빈은 물론, 영서에 대한 내용도 들어갈 거다.”

이미 유진이 1인 2역을 맡는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려졌으니까,

10살짜리가 연기한 1인 2역.

거기에 죽음의 의인화.

그 자체로 큰 홍보가 될 터.

“저, 감독님!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요.”

“아이디어? 말해봐.”

“영서라는 캐릭터는 숨기는 게 어떨까요?”

그 말에 권성택의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숨겨?”

“네. 마치 특별출연처럼요! 관객들은 영서라는 캐릭터 대해 전혀 모르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거죠.”

즉.

개봉 때까지 영서라는 캐릭터의 존재를 숨기자는 것.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이유는 뭐지?”

권성택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진이 스스로 주목받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입소문이 날 거 같아서요.”

“입소문?”

“넵. 관객들이 영서라는 캐릭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충격도 받고!”

그러나 포기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진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미 우리 <데드맨>이 엄청 주목을 받고 있잖아요? 기대감이 큰 만큼 관객분들한테 임팩트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비밀 하나를 만드는 거죠. 비밀은 누구나 궁금해하니까.”

유진의 말대로.

그 순간의 객석 분위기를 상상해본 권성택.

아까 전 죽었던 주인공의 아들이.

갑자기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귀신처럼 앞에 나타난다?

‘모르고 보면, 확실히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거다.’

이미 개봉 전에 이목은 충분히 끌고 있다.

<데드맨> 외에는 기대작이 없는 상황.

거장 권성택의 이름값, 한권주, 나은주, 고석태 등의 화려한 출연진.

결국 관객들은 <데드맨>을 보러올 것이다.

그 관객들에게 유진의 영서라는 충격을 남겨준다면.

‘입소문이 날 수밖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네.”

그리 말하며 유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권성택.

유진은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이며 순수함을 뽐내고 있었다.

‘순진해 보이지만, 정말 영악한 아이야.’

유진의 말대로 홍보를 진행할 경우.

영화 <데드맨>이 개봉하면 그 모든 이목과 화제성은 유진에게 집중될 테니까.

“클클. 좋아. 한 번 논의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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