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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95화 (95/237)

95화

95화

홍대에 위치한 카페 머스탱.

프랜차이즈와 감성 카페들이 자리한 홍대에서.

비교적 싼 가격,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가성비 카페라 불리는 곳이었다.

인테리어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투박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라고나 할까.

특히 구석진 자리는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른 좌석과 동떨어져 있어서 사적인 얘기를 하기 좋았으니.

가로수 밴드의 최애자리이기도 했다.

“고마워.”

주문한 메뉴를 쟁반에 담아오는 구은성.

그를 보며 채지연이 말했다.

“케이크는 왜 시켰어. 다 먹지도 못하면서.”

“우리 이제 돈 좀 벌었으니까, 비싼 거 시켜봤지.”

카페 머스탱에서 가장 비싼 것이 바로 딸기 케이크였다.

“이야. 기억 나? 우리 첫 정산일 때 먹던건데. 그마저도 결제할 때 손 덜덜 떨면서 했지? 그때 너 얼굴 진짜 웃겼는데.”

추억에 젖었는지, 채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가로수 밴드로서 첫 정산일에 받은 돈.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소한 축하를 위해 이곳에서 딸기 케이크를 시켜먹은 것.

“그래놓고 결국 케이크 남겼잖아. 싸갔는데도 아무도 안 먹어서 결국 버렸고.”

“하하. 그랬지. 그 때에 비하면 우리 많이 성공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때만큼 행복하진 않은 것 같아.”

채지연이 한창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구은성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지연아.”

구은성은 입술을 오물거리다 이내 힘겹게 말했다.

“우리 시간을 좀 갖자.”

그 말에 채지연의 손이 멈췄다.

“무슨 말이야?”

“우리 밴드 생활.”

“그 말 뜻, 알고 말한 거지? 너, 지금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거야.”

가로수 밴드의 시작은 구은성과 채지연.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날짜와 같다.

즉.

가로수 밴드라는 팀과 두 사람의 연인관계는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그런 게 아니라, 서로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다르니까. 말 그대로 서로 조금 시간을 갖자는 거야.”

“시간을 가지면? 이게 해결될 거 같아? 너나 나나 똥고집 장난 아닌 거 다 아는데?”

그런 고집이 없었다면.

서로 몇 년 동안 옥탑방에서 투잡을 뛰어가며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난다고 어느 한 쪽이 변할 리가 없다.

그건 채지연은 물론, 구은성 역시 알고 있을 터.

“지연아. 최근 몇 달 동안은 내 영혼이 깎여나가는 기분이었어. 도무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기분이었지.”

그렇기에.

구은성도 지금 이 상황이 괴로웠다.

그냥 쿨하게 채지연의 의견을 따르면 좋으련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타협할 것이었다면 아마 진즉에 했을 것이다.

"알잖아. 우리 가로수 밴드의 음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의 이혼으로 음울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음악 뿐이었다.

그런 공통점이 있으니, 둘이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그래서 그토록 독특하고 음울한 음악이 나왔던 것.

"난 우리 가로수 밴드가 원래 추구했던 음악, 그걸로 성공하고 싶어.”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장난치듯 만들었던 노래가 크게 히트를 하고.

뼈를 깎듯 만들었던 앨범들은 주목조차 못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본래 가로수가 추구했던 음악에 집착하는 것.

"여기서 길을 틀면 우리가 해온 음악, 걸어온 길. 그게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구은성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채지연.

곧 마른세수를 하며 침음을 흘렸다.

“은성아. 그냥, 그냥 나랑 음악을 만든다는 거. 그 사실만으론 행복할 수 없는 거야?”

채지연은 구은성을 만나 함께 상처를 나누고.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 과정 자체에서 충분한 행복감을 느꼈다.

어두웠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난 그냥 너랑 음악한다는 게 좋아. 장난으로 만든 노래가 뜨면 뭐 어때. 그냥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르는데.”

채지연으로선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인생을 바꿀 찬스라고 여긴 것.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서 말이다.

가로수 밴드로서 다져온 음악성을 지켜야한다는 구은성.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자는 채지연.

분명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인데.

갑자기 나타난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후우.”

침묵만이 감돌던 자리.

채지연이 곧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알았어.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그리 말하며 채지연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엠더넷으로부터 온 메일이 보였다.

“이거, 같이 참여하자.”

“<별의 노래>?”

“엠더넷에서 런칭하는 새 프로그램이야. 돈 때문, 이런 거 아니고. 나는 그냥, 그냥 마지막으로 너랑······음악 만들고 싶어서 그래.”

눈물을 참으며 말하는 채지연.

구은성은 <별의 노래> 기획을 읽어보았다.

팬들이 추천한 스타와 인디 밴드의 콜라보레이션이란 말에 미간이 찌푸려진 구은성이었으나.

응원송 제작에 대한 기획을 보니.

채지연의 의도가 무엇인지 대강 눈치챘다.

“이런 기회 아니면, 이제 우리 음악 같이 못 만들 거 아니야.”

어쩌면, 가로수 밴드로서 마지막일 수 있는 음악작업.

그를 위한 구실을 만들자는 것.

마치 이별여행처럼 말이다.

“그래. 하자. 나 이거 하고 싶어.”

구은성이 대답했다.

누구도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씁쓸함만이 남을 뿐.

“아, 씨.”

눈물을 소매로 닦는 채지연.

곧 휴대폰을 꺼내들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 그거 취소해야겠네. 힘들게 예매한 건데.”

바로 구은성과 같이 보려고 예매해놓은 영화 티켓이었다.

“뭔데?”

“<데드맨>. 사실 너랑 같이 보려고 했는데.”

매진 행렬이라 구하기도 어려운 와중.

채지연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2매를 예매한 것이다.

마법처럼 모둔 갈등이 풀리고.

예전처럼 사이 좋은 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취소는 하지 말고. 나 그거 보고 싶었단 말이야.”

두 사람은 피식 웃고 말았다.

끝을 예감하면서도.

그들은 애써 슬프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

한편.

노래방 기계가 설치된 파티룸.

그곳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널브러진 탬버린과 아무렇게나 펼쳐진 노래방 책자.

“거봐요. 제가 잘 될 거라고 했죠?”

유진이 뿌듯한지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진짜 가면 갈수록 느끼는 건데, 참 너도 별종이다."

그런 유진을 보며 고석태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한권주는 이마를 짚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을 뿐.

"그냥 영상만 공개하면 되지, 뭘 또 라이브까지 해?"

영화 <데드맨>은 당연하게도 5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자연스레 500만 달성시 유진과 한권주의 진도 아리랑 듀엣 영상을 공개한다던 공약을 지켜야만 했다.

"그쪽이 더 재미있잖아요. 팬들도 좋아할 거고요!"

그런데 느닷없이 유진이 나섰다.

영상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라이브로 보여주자고 판을 키워버린 것.

그리고 방금까지 그 라이브가 진행되었다.

"근데 왜 애꿎은 나까지 와서 노래를 시키는 거야?"

"네가 건 공약이잖아, 네가."

살기를 내뿜으며 고석태를 노려보는 한권주.

그러자 고석태가 깨갱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본래 이 노래방 라이브 방송은 유진과 한권주의 듀엣으로 짧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때 한권주가‘네 공약인데 왜 나만 쪽팔려야하냐’며 고석태를 불렀고.

그 때문에 고석태는 다른 작품 촬영이 끝나자마자 합류해야만 했다.

덕분에 고석태의 솔로곡 타임도 있었는데.

[완전 고막테러 ㅋㅋㅋㅋㅋㅋ

혹시 퉁퉁이 아니신지 ㅋㅋㅋㅋ

ㅠㅠㅠㅠㅠ 제발 그만하세요 ㅠㅠㅠ]

여러 의미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아니 근데 우리가 노래 부르는 게 뭐라고 2만명이나 보냐?"

"일본이나 대만 쪽 팬들도 많이 접속했나 봐요. 권주 삼촌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 좋잖아요.“

“허허. 왜 내 얘기는 쏙 빼셨을까? 인기 없다고 무시해?”

“에이. 석태 삼촌은 국내 인기 1위잖아요!”

단순한 공약 이행 라이브 방송임에도 불구.

시청자가 2만을 넘었다.

그야말로 대흥행.

이는 <데드맨>의 엄청난 흥행열기.

50만이 넘는 유진의 넙튜브 구독자수와 해외팬 등등.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겠으나.

“후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권주가 노래하는 모습 때문.

"국제망신이야."

착잡하게 한숨을 내뱉는 한권주.

몇 십 년의 배우 인생.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터라 더욱 부끄러웠다.

“팬미팅 때도 노래했으면서 뭘 그래?”

“그거랑 이거랑 같아?”

“다를 건 뭐야.”

유진의 팬미팅에서의 듀엣 무대야 마음의 준비도 했고.

준비기간을 거쳐 무대에 오른 것이라 그나마 덜했다.

그런데 지금은 쌩라이브에, 노래 선곡도 하나 같이 아재틱하지 않았나.

"뭘 그렇게 쪽팔려하냐? 소속사에서도 말리던 걸 네가 강행한 거잖아."

당연히 이런 기획을 소속사에서 좋아할 리 없었다.

한권주의 냉미남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이 갈 테니까.

"유진이 부탁이니까."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자고 유진의 부탁을 거절한다니.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 감동이에요, 삼촌!”

유진이 쪼르르 다가와 활짝 웃는 것을 보니.

다소 창피했던 한권주의 마음도 다소 가시는 듯 했다.

“근데 걱정 마세요. 반응 완전 좋아요!”

그리 말하며 유진은 제 휴대폰을 한권주에게 내밀었다.

라이브 방송 직후,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들이었다.

[저런 조각 같은 얼굴로 진도 아리랑 부르는 갭이 ㅋㅋㅋ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한권주도 결국 아재구나 ㅋㅋㅋ

하... 나 아저씨 좋아했네...

아리랑 너무 각잡고 불러 ㅋㅋㅋ큐ㅠㅠ

우리 민족의 얼과 한이 느껴졌읍니다...]

여러 반응이 있으나.

특히 한권주의 반전매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권주 삼촌! 우리 둘 보고 사람들이 조또같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근데 대체 유진이는 80년대 곡을 어케 알고 있는 거임??

ㄴ ㄹㅇ ㅋㅋㅋ 트로트 진짜 맛깔나게 부르더라 ㅋㅋㅋㅋ

근데 박유진이고 한권주고 왜 이렇게 진지하게 부름ㅋㅋㅋ 채팅창은 난리났는데 ㅋㅋㅋ

둘 다 너무 진도 아리랑에 몰입한게 보였다고 ㅋㅋㅋ

이 둘 조합 너무 웃김 ㅠㅠㅠㅠ 조또 같음

ㄴ 조또가 뭐임? 욕?

ㄴ 조용한 또라이 ㅋㅋㅋㅋ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

저도 모르게 웃고만 한권주.

그렇게 쭉 반응을 살펴보는데.

[근데 언제부턴가 한권주 이미지 조금씩 변하긴 했음ㅋㅋ

ㅇㅇ 뭔가 말 많아지고 행복해보임 ㅋㅋ 요즘 좋은 일 있나?

옛날엔 진짜 연기로봇 같았는데... 이제 인간답고 행복해보인다

죽음조 사람들이랑 놀 때는 찐으로 즐거워보이긴 해 ㅋㅋㅋ 평생 친구하길]

행복해 보인다.

그 말은 한권주에게 꽤 큰 울림을 주었다.

아들과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연기력도 진일보했으며, 작품은 초대형 흥행 중이다.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주기적으로 만나 놀기도 하고.

말도, 웃음도 제법 많아졌다.

‘그래. 난······요즘 행복하네.’

새삼 깨닫고 나니.

그건 매우 소중한 감각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권주는 저도 모르게 유진을 끌어안았다.

놀랄 법도 한데, 유진은 별다른 저항없이 한권주에게 안겼고.

마치 부자지간 같은 훈훈한 분위기가 풍기는 와중.

“내 얘기는? 내 얘기는 없어?”

관심이 고픈지, 둘 사이로 끼어드는 고석태.

“퉁퉁이 같다는 얘기는 있네요.”

“아오. 난 라이브 방송에서도 조연이야!”

아무튼.

[완전 감동ㅋㅋㅋ

요즘 날먹 공약내거는 곳도 많았는데... 데드맨은 진짜 제대로 해주네

심지어 논스톱 1시간 라이브 ㅠㅠㅠ 목건강 다들 괜찮은가...

근데 유진이는 너무 즐기는 게 보여서 내가 다 기분 좋더라 ㅋㅋㅋ

안 되겠다 내일 데드맨 한 번 더 보러간다 ㅋㅋ]

적극적으로 공약을 이행하는 모습에.

대중들이 호감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

<데드맨>의 흥행가도에 분명 탄력을 더해줄 터였다.

“안 되겠네. 모인 김에 우리끼리 2차 달려?”

“목 안 상해요? 촬영도 하고 오셨으면서, 아까 락커에 빙의까지 하셨잖아요.”

“누구들과는 다르게 난 내일 스케줄이 없거든. 아, 은주까지 부를까? 걔 이제 스케줄 끝났을 텐데.”

그렇게 파티룸에서 죽음조의 2차 노래방 파티가 논의되고 있을 무렵.

“유진아.”

차동석이 나타났다.

“엠더넷에서 연락왔어. 가로수 밴드 도장 찍었댄다."

*

홍대 옥탑방.

방 안에 열악하게 구성된 작업실.

구은성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수 밴드의 파트너는 아역배우 박유진입니다. 요즘 아주 핫하죠. 분명 여러모로 재미있는 그림이 될 겁니다.’

며칠 전 엠더넷과 도장을 찍었을 때.

연출PD라는 사람이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들의 파트너.

그건 얼마 전 채지연과 보고 온 <데드맨>에 출연한, 바로 그 아역배우였다.

‘와. 스포일러가 이거였어?’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설마 박유진이 그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네.’

‘은주 언니 보러온 건데, 나도 모르게 박유진 언제 나오나만 기다리고 있더라.’

‘아니, 그 주인공 아들일 때랑 옷차림이랑 다 똑같은데 그 분위기가 완전 달라. 진짜 무슨 유령 보는 줄 알았다니까?’

‘후반부인가? 한권주가 미쳐가지고 발광하는데 박유진은 혼자 책상 위에 곰인형 가지고 놀고 있는 거······와. 진짜 내 멘탈이 다 갈리는 줄.’

‘난 너무 궁금해서 스포일러 미리 찾아보고 왔거든? 근데 알고 봐도 미쳤더라, 진짜.’

유진에 대한 기대감이 없거나 낮았던 사람들.

그 탓인지 더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만큼 영서라는 존재는 꽁꽁 숨겨져 있었으니.

‘진짜. 자칫 잘못하면 이해가 안 가고 생뚱맞게 보일 수 있는 캐릭터 아니야? 윤빈 역할과 차별점을 두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런데.

그 아역배우는 모든 걸 납득하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권주는 계속 오열하고 빌고 실성하면서 다양한 모습이었잖아. 반면 박유진은 정적인 캐릭터였고. 그런데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존재감이 장난 아니더라, 진짜.’

‘느와르 영화면서, 동시에 오컬트나 공포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 그러면서도 결국엔 한 남자의 인간성, 죄책감에 관한 영화였던 것도 재밌고.’

액션 느와르의 장르적 재미도 챙기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메시지.

거장 권성택과 훌륭한 배우들이 만들어낸 걸작이라는 것이 대중들의 반응.

구은성은 그에 동의했다.

특히 엔딩 장면에서, 박유진이 주인공 한권주를 안아주며 죽음으로 인도하는 장면.

그 장면은 구은성에게 커다란 영감을 전해주었다.

때문에 구은성은 <데드맨>을 보고 새로운 곡작업에 들어간 상태.

다만, 진전이 없어 꽉 막힌 상태였다.

“으음.”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는 구은성.

채지연이 주로 앉던 핑크 방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막힐 때면 채지연과 의논을 하며 돌파구를 찾곤 했는데.

지금 채지연은 옥탑방에 없었다.

<별의 노래> 출연계약 이후, 어머니의 집에 돌아갔으니까.

‘하긴, 이런 상황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니까.’

구은성이 옥탑방을 먼저 떠나고 싶었으나.

구은성의 경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달리 갈 곳이 없었다.

“하아.”

구은성은 곧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채지연이 담배를 싫어해 피우는 것이 눈치 보였는데.

이젠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러나 막상 담배를 피워도 기분이 좋거나,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결국 거의 태우지도 않고 종이컵에 비벼껐다.

“검색이나 해볼까.”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구은성.

머리를 비우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곤, 유진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유진이네 노래방 가오픈! <데드맨> 500만 달성 공약 이행 라이브 방송 편집본!

조회수 – 1,502,101]

바로 한 동영상이었다.

“노래방?”

구성지게 부르는 진도 아리랑.

성인가요 모음집에 있을 법한 트로트.

8090년대의 포크송들까지.

“······은근 잘하는데?”

깨끗한 목소리, 탄탄한 발성.

박유진은 정직하게 노래를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 때문인지 구은성은 저도 모르게 집중하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때.

구은성의 귀에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 이건 또 무슨 노래야?]

[제가 좋아하는 가수요! 가로수 밴드의 노래!]

[아니 근데 뭐 이리 노래가 어둡냐?]

[어? 석태 삼촌이 알려준 밴드잖아요.]

[난 그 차트에 있는 음악 밖에 몰라서.]

[명곡이 얼마나 많은데요! 자, 이번 기회에 한 번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도요!]

10살짜리 톱스타 아역배우가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차트인한 ‘너의 손을 잡고’가 아닌.

자신들의 정규앨범에 실린, 유명하지 않은 노래를 말이다.

"우리를 알고 있다고?"

<별의 노래>에 별다른 의욕이 없던 구은성.

자신들의 파트너인 박유진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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