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98화 (98/237)

98화

유진의 팬카페 ‘대박유진’.

오늘도 범상치 않은 화력을 내뿜는 중이었다.

[대박 오늘 데드맨 900만 찍었어요 ㅠㅠㅠㅠ]

개봉한지 제법 시간이 지났고.

볼 사람도 웬만큼 봤던 터라 슬슬 스포일러 주의도 해제되었다.

<데드맨> 공식 행사에서도 유진이 가감 없이 영서에 대해 얘기할 정도.

그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유진의 연기에 대한 극찬 및 고찰.

그리고 세심한 분석까지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박민영의 문화칼럼 : <데드맨> 속 윤빈과 영서를 완성시킨 박유진의 연기론]

[아역배우라 가능했던 1인 2역. 나이라는 한계를 깬 박유진!]

[박유진, 최연소 천만영화 주조연 아역배우 될까?]

[배우 박유진은 한국 배우계의 미래가 아니다. 현재다.]

게다가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부어준 것은 바로 권성택 감독이었다.

"애초에 영서를 아역배우로 캐스팅한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제 친구 이순철의 추천, 그리고 오디션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은 박유진 배우 덕분입니다."

유진이 오디션으로 선발됐고.

그것도 자신만의 해석으로 영서를 재탄생시켰다는 권성택의 말.

이는 유진에 대한 극찬 여론을 더욱 부추겼다.

이렇게 화제가 끊이질 않다보니 <데드맨>은 곧 1000만 달성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박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유진의 공약으로 향할 수밖에.

[대체 누가 당첨되려나...

완전 로또죠 뭐

유진이랑 데이트라니 ㅁㅊㄷㅁㅊㅇ...

당첨되면 소원이 없을 듯 ㅠㅠ]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사실 뭐 바라지도 않고 ㅎㅎ 요즘 그냥 넘 행복합니다

유진이 완전 핫해졌어요 ㅠㅠ]

극악의 확률에 초연한 사람들도 많았다.

안그래도 요즘 ‘대박유진’은 넘쳐나는 떡밥들로 행복해 죽을 지경이었으니.

최근 업로드 주기가 늘긴 했으나, 꾸준히 새 컨텐츠를 보여주는 넙튜브.

사복패션을 뽐내고, 종종 셀카를 찍어서 올려주는 스윗터.

머지않아 촬영에 들어갈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방영을 시작한 엠더넷 음악 예능 <별의 노래>.

최근 초대박 흥행 중인 <데드맨>까지.

[우리 유진이 넘 열일하는 거 아닌지 ㅠㅠ

그러게요 놀지도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 중...

소속사에서 험하게 굴리는 건 아니겠죠??

ㄴ 아역 혹사 논란 때 적극적으로 나선 게 유진인데 설마용

ㄴ 유진이 인터뷰 때마다 회사 너무 좋다고 하는 거 봐선 아닌듯요 울 유진이가 일욕심이 많아서 그런 듯 ㅎ

고기 많이 먹어 유지나 ㅠㅠㅠㅠ]

성인인 배우와도 비교해도 워낙 열일을 하고 있는 탓에.

혹여 유진에게 문제라도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는 대박이들.

그런 와중 올라온 유진의 스윗.

[박유진의 스윗 : 드디어 친구들과 실버 달성!

5킬 11뎃 3어시로 대활약했습니당 ㅎㅎ

내가 바로 미래의 훼이커

#즐겜 #인생은서포터와탑사이의미드다 #모두땡큐]

그 스윗에 대한 대박이들 반응은.

[뭐죠 저게??

게임인가

ㄴ 애들 사이에서 요즘 완전 유행인 겜이요 ㅋㅋ 유진이도 저거 하나보네요

ㄴ 제 아들램도 요즘 저거에 푹 빠짐ㅋ 하루 30분만 하래도 영혼의 한타? 그거 해야한다면서 매번 버티네요

아! 레전드 오브 리그 아시는구나! 완. 전. 재밌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겜도 하고 그러나바여 완전 다행!!]

아무래도 유진은 잘 놀고 있는 모양.

[박유진 탑신병자임요 님들 다 속고있는거임]

느닷없이 누군가 글을 올렸다.

확인해보니 가입일이 얼마 되지 않은 회원의 것.

[???

탑신병자가 뭔가요]

[모르겠음 걍 강퇴시키죠

분탕 어그로인 거 같은데]

[아니 저

유진이 친구인데

님들 다 속고 있다구여]

그렇게 그날 밤.

한 명이 '대박유진'에서 강퇴 당했다.

아무튼.

[아 그리고

오늘 별의 노래 2화 시작임 ㄷㄱㄷㄱ

모두 불판으로 ㄱㄱ

??? 머하는 거임여

뭐 영화 단체관람하는 건가

아 무비스타넷 유입분들 ㅡㅡ 공지 좀 제대로 읽어주세요

죄송요...

이분들 아재들이라...대신 사과드리겠읍니다...]

곧 <별의 노래> 2화 시작과 동시에 관련 불판이 열렸다.

다만 유진이 등장하지 않을 땐 놀라울 정도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여과 경과했을 무렵.

[유진이 언제 나오죠?

그러게요 아이돌 분들도 벌써 나왔는데...]

[그만큼 유진이가 인기가 많다는 거겠죠

엠더넷 이런 편집 장난 잘 치잖아요 인기 많은 사람 분량은 최대한 뒤로 빼고]

물론 평소라면 인기 아이돌 에이에이를 가장 뒤로 뺐을 테지만.

현재 라앺과 <데드맨>으로 인해 유진의 주가는 한창 높은 상황.

별다른 떡밥이 없는 에이에이보다 더 큰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다리는 팬들 입장에서는 고역.

이번 주에 나오기는 하는 걸까.

분량이 얼마 없는 건 아닐까.

별의별 걱정이 다 드니까.

[오 나왔다!!]

다행히.

끝나기 20분 전, 유진의 분량이 시작되었다.

[이날 코디 왤케 귀여움여 ㅠㅠㅠ

요정이다...요정이 아닐리가 없다...]

그렇게 대박이들의 주접이 쌓여가고 있을 때.

화면 속 유진이 말했다.

“오늘이 바로 결전의 날이네요!”

유진의 의견으로 구은성과 채지연이 각자 음악을 만들어오기로 했고.

오늘은 그를 들어보며 평가해볼 시간이었다.

"어? 누나. 엄청 피곤해보여요. 괜찮아요? 은성이 형도요."

둘 다 음악을 만드느라 밤을 꼴딱 샜는지.

모두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럼. 밤을 새긴 누가. 나 완전 숙면취하고 왔다고.”

둘은 아닌 척하지만 말이다.

“으음. 어쨌거나 한 번 들어볼까요?”

*

<별의 노래> 2화 방영 이후.

“시, 실례합니다.”

조심스레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로 들어오는 채지연.

“어서오세요, 누나.”

유진은 그런 채지연을 웃으며 반겼다.

“나 배우 기획사 처음 와봐.”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이 신기한지.

채지연은 주위를 몇 번이나 둘러보았다.

“하하. 이거 민망하네요. 저희는 영세한 곳이라. 여기 커피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영세라뇨. 이렇게나 좋은데요?”

물론 유진과 계약하기 전에 비하면 환골탈태 수준이지만.

다른 번듯한 기획사와 비교하면 아직 많이 부족했다.

따로 미팅룸도 없어서, 미팅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 안 소파에서 해야만 하고.

“곧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입니다.”

불과 2년 전 사무실 월세도 내지 못했던 차동석이지만.

이젠 더 넓은 사무실로 옮길 계획이었다.

유진의 활약은 물론이요.

유진의 팬미팅 및 <연년생>으로 복귀한 이지혜도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그때도 꼭 오고 싶네요.”

“하하. 네. 남자친구 분이랑 꼭 오세요.”

그 말을 뱉자마자 말실수를 했다는 걸 직감하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차동석.

채지연 역시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유, 유진아. 2화 반응 봤지?”

“네. 봤어요. 이야. 우리 팀이 제일 인기가 많나 봐요!”

“그것도 그렇고, 어때? 누나 음악이 형 음악보다 더 인기 있지?”

예상대로.

채지연의 음악이 대중들에겐 좀 더 좋게 들렸다.

채지연으로선 작정하고 대중성을 공략했으니 당연한 일.

따로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산정하긴 어렵지만.

인터넷 뉴스 기사, 커뮤니티 여론 등을 종합해 고려했을 때.

확실히 채지연의 노래가 더 많은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으음 좋긴 한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머지...

소울유의 ‘토닥토닥’이랑 비슷하지 않아요?

ㄴ 그거 받고 송범기의 ‘하루를 끝낸 너에게’랑도 비슷한 거 같아요]

채지연의 음악엔 그런 평가가 공존하기도.

아무튼.

최신 유행인 포크팝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채지연.

그에 반해 마이너한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 구은성.

결과는 뻔했다.

“넵. 저도 봤어요.”

“그럼 내 노래로 가는 거야?”

“음, 하지만 분명 은성이 형의 음악도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유진에겐 새삼스러운 사실.

애초에 채지연의 편만 들 생각이었다면.

유진으로서도 사전미팅 때 둘 다 별로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일 뿐.

두 음악엔 기술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그리고 은성이 형이 이대로 고집을 꺾을 거 같진 않아요. 누나의 음악을 대중분들이 더 좋아할 거라는 거. 그거야 은성이 형이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애초에 유진이 노린 건 둘 사이에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알려주려는 것뿐이다.

굳이 가로수 밴드의 색을 버릴 이유가 없고.

그렇다고 가로수 밴드의 색만 고집할 이유도 없다는 걸.

“그, 그럼 어떻게 하려고?”

“누나. 가로수 밴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밴드 레옹이라는 인터뷰를 봤는데, 진짜예요?”

“어. 응? 그랬지. 특히 은성이가 좋아하고, 영향도 많이 받았거든. 그런데 그건 왜?”

“음, 그냥요!”

잠시 후.

우웅!

유진의 휴대폰으로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

[발신자 : 빅터 재오

레옹 선배님들한테 오케이 받았어

이번 건 진짜 쉽지 않았다 ㅠㅠ

너 나한테 빚진 거야 알았지?]

유진은 씨익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요 재오 형 ㅎㅎ

주변인 오디션 연습 빡세게 봐드릴게요]

*

얼마 후.

구은성은 흔들리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 저 사람 엠더넷에 나오는 그 사람 아니야?”

“맞잖아. 옆에 카메라맨도 붙어있고!”

“저 사람 완전 음침한 노래만 만든다며?”

사람들이 쑥덕대는 소리.

그를 들으며 구은성은 표정관리에 힘썼다.

‘역시 유명해지는 건 귀찮아.’

최근 몇 달.

차트인과 <별의 노래> 방영으로 인해 구은성의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은 구은성은 자신이 만끽한 자유로움을 사랑했다.

홍대에 옥탑방을 구한 것도, 홍대 특유의 자유로움과 독특함 때문이었다.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비록 돈은 얼마 못 벌더라도, 버는 한도 내에선 충분히 자유로운 삶.

가끔 카페 머스탱에서 케이크를 사먹는 것으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일상.

‘광대도 아니고. 뭐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야? 노래만 만들면 되지.’

느닷없이 유진의 제안으로 시작된 미션.

바로 서로의 마니또가 되어, 힐링푸드를 선물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구은성의 옆에 카메라맨이 붙어 있었다.

'이 나이를 먹고 무슨 마니또야, 마니또는.‘

구은성이 뽑은 것은 바로 채지연이었다.

여태 채지연을 위한 음식을 사러 노량진에 다녀온 상황.

‘사실 마니또고 뭐고 , 앞으로 음악을 대체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가 걱정인데.’

2화 방영 이후.

구은성은 제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사전미팅 당시 보인 모습으로 어그로가 끌려서인지.

<별의 노래>는 생각보다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

‘예상했던 결과야.’

곧 동눈치를 보던 구은성.

동행하고 있는 <별의 노래> 작가에게 물었다.

“저 이어폰 꽂고 음악 좀 들어도 되나요?”

“네, 그러세요. 은성 씨가 이동하는 그림만 나오면 되니까요.”

어차피 구은성 혼자서 분량을 뽑아낼 수는 없으니까.

구은성은 가볍게 감사를 표하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의 휴대폰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밴드 레옹의 1집.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져.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야.’

4인조 밴드 레옹.

데뷔 당시 독특하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에 미스테리하고 어두운 가사들로 화제를 모았다.

구은성의 음악 세계에 근간이 된 아티스트다.

어린 시절엔 정말 레옹 밴드의 음악에 심취해 살았으니.

더불어 한국 인디음악계, 특히 밴드계에선 전설이라 불리는 밴드다.

‘하지만 동시에 변절자라는 멸칭도 갖고 있지.’

5집부터 방송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점으로 음악세계가 점점 변화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인디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전기 레옹.

메이저로 전향한 시기를 후기 레옹으로 부른다.

구은성 역시 전기 레옹 음악만을 고집했다.

‘어째서 레옹도 변해야만 했을까. 변하지 않았다면.’

구은성이 그렇게 대중성을 따르지 않으려는 이유.

그건 제 우상들이 변절했다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다.

잠시 후.

스튜디오에 집결한 세 사람.

“다들 맛있는 거 사오셨어요?”

“어, 음. 뭐.”

“그렇지.”

2회 방영 이후 채지연과 구은성은 더 어색해졌다.

서로를 이겨보겠다고 음악을 만들어왔는데, 둘 다 좀 애매하단 평가를 받았으니.

여러모로 굉장히 찝찝한 상황.

“그럼 저부터 할게요. 저 너무 배고파요. 얼른 먹고싶어.”

덕분에 방송진행 등, 이 팀의 분량은 유진이 주도해가고 있었다.

유진의 마니또가 유진을 위해 준비한 것.

그건 바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추어탕이었다.

“와. 대박!”

탄성을 내지르는 유진.

이미 인터넷에서도 유진의 아재입맛은 유명했다.

덕분에 소속사인 주역 매니지먼트로는 옛날 과자들이 심심찮게 선물 온다고.

“와. 엄청 맛있어요! 어디서 사왔어요?”

밥까지 말아먹으며 행복해하는 유진.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명색이 마니또인데, 들키면 재미없지 않은가?

“자, 그럼 다음은 지연 누나 차례!”

거하게 식사를 끝낸 유진.

곧장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곧 스탭이 뚜껑으로 덮은 접시를 가져왔고.

“자, 하나 둘 셋 하면 여세요. 하나, 둘, 셋!”

유진의 신호에 맞춰 채지연이 뚜껑을 열었다.

안에 나타난 것은.

“어? 회네.”

바로 광어회.

양도 넉넉한 대大자였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채지연의 표정이 다소 복잡해 보였다.

“누나 표정이 이상한데요? 회 안 좋아하세요?”

유진의 물음에 채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으응. 별로 안 좋아했어.”

“어?”

그 말에 구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원래 회 좋아하지 않았나? 잘 먹었잖아.”

“역시. 이거 네가 사온 거구나?”

그 말에 구은성이 흠칫 놀랐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마니또의 정체가 들통 났으니.

“아, 아니거든.”

“뭐가 아니야. 아무튼 그땐 회 좋아한 척 한 거지. 그때 은성이가 워낙 회를 좋아해서. 대형마트에서 셔터 내리기 전에 타임세일로 회 자주 사왔거든.”

“그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먹은 거야?”

“먹다보니 좋아하게 된 거지. 여전히 홍어회 같은 건 잘 못 먹지만.”

그리 말하며 광어회를 한 점 집어먹는 채지연.

“으음. 오랜만에 먹으니까 좀 기분이 이상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채지연은 남기지 않고 회를 잘만 먹었다.

“와. 되게 낭만적이다. 못 먹던 것도 상대방을 위해 참고 먹었더니 좋아하게 된 거잖아요.”

“좋아하는 건 아니고. 어찌 저찌 먹는 정도? 그 정도야 연인끼리 맞춰가야지.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게.”

유진의 말에 채지연이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이 구은성에게 주는 여운은 제법 컸다.

구은성은 지난 5년의 세월.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배려했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지난 5년간은 그랬는데.’

어쩌면 제 연인 채지연은.

이런 식으로 제게 맞춰온 것이 아닐까.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게.’

어쩌면 음악도 말이다.

“이번엔 은성이 형을 위한 힐링푸드!”

그러는 사이 어느덧 구은성의 차례가 다가왔다.

채지연 역시 구은성의 식성을 잘 알고 있을 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해물찜이라는 걸 쟤가 모를 리 없어.’

구은성은 내심 메뉴를 확신하고 있었다.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까.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야, 채지연!”

다른 뚜껑이 열려버린 구은성은 곧장 채지연에게 달려들었다.

힐링푸드랍시고 준비한 게 구은성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 오이였으니.

심지어 그냥 오이도 아니고, 오이만 가득 집어넣은 오이김밥이었다.

“아하하하하! 왜, 건강해질 거 같은데. 완전 힐링푸드잖아!”

“아, 누나! 형! 뛰면 안 돼요! 그러다 다쳐요!”

어린애처럼 뛰어다니는 20대 중반의 남녀와.

그걸 어른스레 말리고 있는 10살의 아이.

마치 시트콤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그렇게 한바탕 추격전(?)을 벌인 두 사람.

하지만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단 몇 분 만에 두 사람 모두 땀으로 흠뻑 젖었으니까.

“너 완전 저질체력 됐다.”

“지는. 맨날 앉아서 음악만 만드니까 그렇게 되지.”

서로를 장난스레 힐난하다 웃음을 터뜨리는 두 사람.

그때.

누군가 스튜디오를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스탭분들인가?”

하지만 스탭들이라기엔 노크소리가 조금 우악스러웠다.

“아, 도착하셨나보다! 제가 부른 특별손님들이 계시거든요.”

“특별손님들?”

유진이 문을 열자.

그들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자, 잠깐만.”

그러자 유진을 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구은성의 표정이 걸작이었다.

오늘 구은성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들었던 음악의 주인공.

밴드 레옹의 멤버들이었으니.

“오, 너냐? 그 독특한 음악을 만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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