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01화 (101/237)

101화

한권주는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사랑했다.

한 달에 한 번뿐인 아주 귀중한 시간이니까.

이날만큼은 아들이 하고 싶은 걸 모두 해주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말이야. 내 여친이 계속 내 얘기는 안 들어. 진짜 너무하지?”

지금만큼은 그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친에 대한 불만을 1시간 내내 듣고 있으려니 말이다.

“아빠.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지.”

“아빠.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랬지?”

“아빠가 나온 영화를 1000만명이 봐서. 그걸 축하해주는 행사.”

“맞다, 파티랬지. 거기에 유진이 형도 오고.”

마침 아들과 만나기로 한 날에 <데드맨> 1000만 기념행사가 잡혔다.

둘 중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지금은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길.

한권주가 무대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은 매니저가 아들을 돌봐줄 예정이다.

“혜성이 여자친구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한권주의 말에 한혜성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안돼.”

“왜?”

“그럼 내 여친이 또 유진이 형만 좋아할 거 아니야.”

한혜성이 여태 여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이유.

그건 여친이 유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우리 혜성이와 만난 이유가, 유진이의 사인 때문이었지.’

한권주가 유진의 팬미팅에 게스트로 참여한 대신 받아낸 사인.

그를 통해 아들 한혜성은 무사히 첫 여친을 사귈 수 있었다.

유진의 사인을 받아다주면 사귀어주겠다는 게 조건이었으니.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사귄 이후에, 여친의 유진 사랑이 더 심해진 모양이다.

“히잉. 우리 집에 놀러와도 맨날 스윗터만 봐. 유진이 형 얘기만 한다고.”

울먹이는 한혜성.

그를 보며 한권주도 조금 마음이 뒤숭숭했다.

‘유진이가 좀 잘나긴 했지만. 우리 아들이 뭐가 부족해?’

제 얼굴을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도 뚜렷한 이목구비에.

성격도 모난 곳이 없이 착하다.

“아빠. 아빠가 보기에도 내가 유진이 형보다 훨씬 잘생기고 잘났지? 그치?”

제 아빠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 한혜성.

물론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한권주였으나.

“아빠는 혜성이를 더 사랑해.”

저도 모르게 그렇게 답했다.

사실 한권주도 남말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데드맨>을 통해 유진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

아직도 잘 하지도 않는 스윗터로 유진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기도 하고.

“헤헤. 근데 진짜 대단하다 아빠. 1000만명이래, 1000만명!”

그래도 그 대답이 한혜성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모양이다.

한혜성이 발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말했다.

<데드맨>의 1000만 돌파 기념행사.

배급사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관객수가 줄어들긴커녕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지.’

즉.

여타 다른 천만영화가 초반의 무서운 기세를 보여줬다면.

<데드맨>의 경우 오히려 날이 갈수록 관객수가 점점 불어나는 모양새였다.

즉, 관객 이탈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여러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아.’

보통 개봉 초중반에 피크를 찍고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보통.

그런데 <데드맨>은 철저한 스포일러 금지와 입소문 덕분인지.

갈수록 기세를 더해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충무로 톱배우들의 출연.

액션 느와르라는 흥미로운 장르.

거기에 사실은 한 남자의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까지.

여러모로 다양한 관객층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이대로라면 얼마까지 갈지 모르겠네.’

“그런데 행사장 가면 유진이 형 볼텐데. 어떻게 하려고? 안 만날 거야?”

한권주의 물음에 한혜성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아니. 만날 거야. 만나서 제압해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한혜성.

“제압?”

그 제압이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한권주였다.

잠시 후.

한권주 부자가 행사장 대기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와있던 유진이 그들을 반겼다.

“안녕하세요, 삼촌. 어? 네가 혜성이구나! 안녕. 난 박유진이야. 삼촌한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바, 바, 반가워. 형아.”

유진을 보면 제압(?)해주겠다던 패기는 어디 가고 순진한 양이 된 한혜성.

그 모습에 한권주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잘생겼다.”

“응? 뭐라고?”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저도 모르게 유진을 보고 중얼거린 모양.

곧 한혜성이 입이 삐죽 내밀며 한권주 뒤로 숨었다.

“엥. 제가 뭐 잘못했어요?”

그 모습에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아무것도.”

역시.

어린애가 보기에도 유진의 포스가 범상치 않은 모양이다.

“유진아.”

“넹?”

“너 연애상담 잘 한다며.”

“헐. 삼촌 연애해요?”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한권주가 한혜성 쪽을 흘끗거리더니.

곧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아들이 말이야.”

*

개봉 전.

제작발표회를 비롯한 행사에선 주목받지 못했던 유진이다.

당시엔 영서의 존재가 비밀에 부쳐졌으니.

그러나.

개봉 이후, 1000만 관객을 달성했고.

유진은 이번 행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잠시 후.

본 무대에서 시작된 행사.

“<데드맨>의 1000만 달성을 축하합니다!”

감독 권성택을 비롯해 주연 배우들이 칼을 잡고.

함께 커다란 기념 케이크를 잘랐다.

그중 유진은 가장 앞에 위치해있었다.

“맛있겠다. 이거 먹어도 되나? 야, 유진아. 네가 좀 물어봐라.”

케이크를 보며 고석태가 군침을 흘렸다.

그러자 유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으. 전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해서요.”

“와. 너 진짜 별종이야.”

곧 자리에 앉는 출연진들.

진행자의 첫 질문은 바로 유진을 향했다.

“극중 영서라는 존재가 윤빈의 모습을 하는 건 박유진 배우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던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음, 오디션 대본을 받았을 때 캐릭터 설명에 그렇게 쓰여있더라고요. 죽음의 의인화. 전 아직 죽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봤어요!”

“그리고 혹시 저번에 홍보 라이브에서 1000만 관객 공약. 기억하시나요?”

“넵! 기억합니다. 1000만번째 관객분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죠. 당연히 지킬 생각입니다! 팬분들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죠.”

“제가 첩보를 하나 들었는데요. 듣기로는 영화 촬영 시작 때 이미 천만영화를 찍을 거라 확신하셨다고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 <데드맨> 흥행돌풍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바로 영서의 존재감.

때문에 질문이 유진에게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탑배우들이 모인 상황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아역배우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되레 모두 흐뭇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렇게 훌륭한 감독님,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죽음조 누나, 삼촌들. 그 외 배우분들과 스탭분들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라서요. 당연히 잘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저렇게 말하는 아이를 누가 미워할 수 있으랴.

“그럼 이번엔 공통질문입니다. 이번 1000만 관객 달성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 한 분 한 분 여쭤볼게요. 먼저 권성택 감독님?”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참여해준 모든 배우, 스탭을 비롯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권성택의 답변 이후.

“이번 영화를 통해 자랑스런 아버지가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마이크를 잡은 한권주가 짧게 말했다.

공식석상에서 그가 사생활, 가족에 대해 언급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행사에 참석한 기자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천만도 좋고, 이천만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얻어간 것 같아서 기쁩니다.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제가 아역배우랑 친구가 될 수 있었겠어요? 이렇게 생겨가지곤.”

다음 차례인 고석태가 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현장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다들 웃으시면 어떻게 해요! 이럴 땐 잘생겼다고 해줘야지.”

사족같은 투정은 덤이었다.

“영화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매순간이 즐겁고 행복했던 건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흥행성적까지 좋으니 더 바랄 게 없네요.”

솔직하게 말하는 나은주.

“마지막으로 박유진 배우의 소감이 궁금하네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많은 것을 이룬 것 같네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모두의 시선이 유진에게 쏠렸다.

거장 권성택의 감독의 작품에서 핵심 캐릭터.

아역배우로서 1인 2역 소화.

천만영화 배우.

영화 <데드맨>으로 유진이 얻게 된 명성들이다.

“여태 해낸 것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것 같아서 두근거려요.”

그러나 이뤄낸 것에 도취하기보다.

앞으로 해나갈 것에 대한 기대를 간직할 뿐이었다.

여전히 유진의 눈빛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그럼 배우 박유진의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데요?”

“당연히 앞으로 열심히 연기하는 겁니다! 아, 그리고.”

유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역시 트로피를 많이 받고 싶습니다!”

“우와. 유진이형 멋있다.”

그 모습을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던 한혜성.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

종합 엔터 회사인 DV 엔터테인먼트.

한국 연예계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 나타난 신상 기획사.

그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배우 쪽 라인업.

팀이 아니라 부서 단위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 규모 때문에 아역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고.

주역 매니지먼트의 사장 차동석이 몸담았던, 바로 그곳이다.

“후우.”

그런데 무슨 일인지.

차동석의 후임으로 여태까지 아역팀을 이끌어온 팀장.

김병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병호 팀장.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그가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은 매니지먼트 사업부의 부장.

소인혁이었다.

“대답 안 해?”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 말에 소인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네.”

그 말에 김병호의 얼굴이 곧장 굳었다.

“차라리 이런 면은 동석이가 훨씬 나았지.”

차동석은 아역배우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상사에게도 들이받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줄 알고.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할 줄 아는 팀장.

물론 그 때문에 높으신 분들에게 밉보여, 결국 잘리긴 했지만.

“동석이 있을 땐 쭉쭉 잘만 나가던 팀이, 3년 내내 하향세라니. 이게 말이 돼? 지금 팀장 교체가 아니라, 아역팀 해체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전임 팀장인 차동석이 토사구팽당한 이후.

DV엔터 아역팀은 서서히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완만하게 말이다.

애써 끌어모은 아역배우들은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구축해놓았던 네트워크들은 점점 좁아져만 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소리 들을 거였으면 널 불렀겠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 아니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인혁.

그러자 김병호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럼 지원이라도 제대로 해주던가!’

사실 3년간 김병호도 놀고 먹었던 게 아니다.

신인 아역배우 발굴에도 힘썼고.

다양한 방송사 및 컨텐츠 제작사 측과 컨택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김병호는 몰랐다.

DV엔터 아역팀의 실체를.

‘설마 차동석이 독박으로 다 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DV엔터라는 대형기획사라는 이름에 가려졌을 뿐.

당시 아역팀은 거의 내놓은 자식이었고, 차동석의 개인기에 의지한 팀이었다.

실제로 차동석이 퇴사한 후엔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걸 윗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어.’

여태 아역팀의 일들은 차동석의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주선된 일이 대부분.

특히나 키즈모델, 아역배우 등은 성인에 비해 인맥, 네트워크에 의지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

어린애를 상대로 오디션을 보는 것보다.

믿을 만한 엔터, 인맥을 통해 소개받는 게 더 효율적이라 느끼는 곳이 더러 있으니까.

하지만 차동석이 나간 이후론 줄을 대기가 영 쉽지 않다.

DV엔터라는 이름값 덕에 여태 어찌 굴러가고는 있으나.

3년 내내 하향세라는 것이 윗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이봐, 김팀장. 우리 회사 아역팀에 속해있는 아역배우가 몇 명이야? 아직 데뷔 못한 애들까지 포함해서.”

“8명입니다.”

“동석이네 회사는 배우가 몇 명인지 알아?”

“2명입니다.”

주역 매니지먼트 정도야, DV 엔터 전체와 비교해서는 상대도 안 된다.

그러나 주역 매니지먼트 소속 배우는 단 두 명.

박유진과 이지혜.

그런데.

이 투톱이 대형 엔터의 아역팀을 씹어먹고도 남는 수준이다.

“심지어 그 이지혜를 동석이한테 데려간 것조차 박유진이었지. 대체 그 꼬마는 뭐하는 놈이야? 권성택 감독 영화에서 1000만을 찍었다고!”

소인혁은 그리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박유진 같은 애 어디서 못 구하냐?”

“······찾아보겠습니다.”

‘무슨 슈퍼마켓에서 당근 사는 것도 아니고.’

김병호로서는 억울할 노릇이었다.

박유진의 영향력은 아역 타이틀을 떼고 봐야 할 수준.

그런 녀석을 당장 어디서 구하나?

‘이대로라면 나도 차동석 꼴이 난다. 아니, 차동석보다 더하지.’

이대로 퇴사한다면 아역팀 해체를 앞당긴 팀장으로 남게 생겼다.

DV엔터의 방만을 모두 덤터기 쓰게 생긴 것.

이래서야 평판 때문에 재취업도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든 대책이라도 세워봐. 요즘 박유진 때문에 아역팀에 대한 기대가 워낙 높아져있으니까. 나가봐.”

“알겠습니다.‘

부장실을 나온 직후.

김병호는 제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내가 지시한 건 어떻게 됐어?”

“예. 박유진의 남은 계약 기간을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뭐? 계약기간에 대한 풍문이라도 떠도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정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형기획사라면 이해관계자가 많아 밖으로 샐 여지라도 있지만.

주역 매니지먼트 같은 영세한 곳은 캐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유명해진 지금이라면 모를까.

2년 전, 유진이 차동석과 계약을 맺을 때는 양쪽 다 가진 게 없었으니까.

“하긴. 박유진을 빼오는 건 애초에 실현가능성이 낮았어.”

괜히 여기서 치근덕댔다간 역풍이 불 것이다.

계약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으면 모를까.

느닷없이 접근하는 건 그야말로 양아치 짓으로 취급받으니까.

그것도 아역배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역시, 방법은 우리 소속 아역을 박유진 급으로 키우는 것뿐이야.”

박유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면.

김병호는 본인이 직접 천재를 한 번 키워볼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적당한 애가 한 명 있으니까.’

천재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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