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26화 (126/237)

126화

유진의 드라마 데뷔작, <유별난 친구들>의 작가이자 웹드라마 <연년생>의 대본을 쓴 송미연.

그 송미연 작가의 작업실엔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MBS 다큐멘터리 PD 장은영이라고 합니다.”

바로 다큐PD 장은영이었다.

장은영이 명함을 건네자, 송미연 역시 제 명함을 꺼내 장은영과 교환했다.

“안녕하세요. 드라마 작가 송미연이에요.”

그리고 그 옆자리에는.

“드, 드라마 작가 민용석입니다. 죄송해요. 전 아직 명함이 없어서.”

SBW 미니시리즈 공모전 당선작, <호구>를 집필한 남자.

민용석이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러니까 명함 좀 만들어놓으라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작가님이라고 하랬지? 몇 년째 말을 안 듣네.”

아직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민용석.

아직도 작가님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송미연.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두 분은 사제지간이신가 보네요.”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송미연이 민용석에게 말을 놓았다는 것.

그리고 송미연이 민용석을 제 제자로 인정했다는 것이리라.

요 몇 년 간.

민용석은 송미연 밑에서 다시 드라마 작법에 대해 공부했으니.

과거 대학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 사이가 아닌.

진짜 선생과 제자 사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다큐 찍는데 필요한 내용을 조사하고 계신다고요.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죠?”

잠시 후 민용석이 커피를 내왔고.

송미연은 그것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아역배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에 있습니다.”

“아, 그럼 박유진 배우에 대해 물어보러 오셨군요?”

송미연의 말에 정곡을 찔른 장은영.

흠칫 놀라 작게 웃으며 물었다.

“네. 어떻게 그리 단번에 알아채신 거죠?”

“모르는 게 이상하죠. 요즘 아역배우 계의 아이콘이잖아요. 박유진 배우.”

역시 송미연.

업계에서 먹은 짬밥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박유진 배우의 데뷔작 작가가 저니까요.”

그 콧대 높은 자존심 까지도.

유진의 데뷔작이 제 작품이라는 사실.

송미연은 그게 상당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네. 작가님 말씀이 맞습니다. 작가님과 박유진 배우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해서요.”

“오디션이었어요. 제가 당시 작품에서 정말 예쁜, 비주얼이 뛰어난 아역배우가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박유진 배우 쪽에서 뿌린 프로필을 발견했고, 곧장 오디션 제의를 하게 됐죠.”

장은영이 조사하기로도 박유진은 데뷔 때 ‘역대급 비주얼의 아역’이라 불렸다.

그 움짤로 인해 커뮤니티에서 먼저 유명해지기도 했고.

8살이었던 유진은, 지금 장은영이 보기에도 엄청 귀엽고 예뻤다.

“그땐 몰랐어요. 그 얼굴이 수많은 무기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걸.”

피식 웃으며 말하는 송미연.

“그럼 당시엔 박유진 배우가 이토록 성공할 거라고 예측하셨나요?”

“아뇨. 예상 못했어요.”

단호히 고개를 젓는 송미연.

그러나.

그건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성공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송미연은 유진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유진은 그 기대조차 뛰어넘어버렸다.

“작가님께선 박유진 배우를 매우 고평가하고 계시는군요.”

“모든 배우가 박유진 배우처럼만 했다면, 그럴 일도 없었겠죠.”

송미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태연히 대답했다.

“민용석 작가님께선?”

“그게, 박유진 배우의 경우 워낙 예측을 못하겠어서.”

민용석의 말에 장은영의 눈빛이 흥미로 가득찼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 제 작품이긴 해도······박유진 배우가 <호구>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당시 유진은 <날개>로 예상 밖의 흥행몰이를 하던 시기였으니.

굳이 공모전 당선작에 참여할 이유가 없던 상황.

“공모전에 당선되긴 했는데 진행이 안 돼서 표류 중이었고, 캐스팅도 모두 거절당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수님을 통해 박유진 배우에게 대본을 보냈는데, 흔쾌히 출연해줬어요.”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는지.

민용석의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다.

“박유진 배우가 참여하니까 이지혜 배우도 참여하고, 이순철 선생님까지······그 이후로 정말 술술 풀렸어요. 시청률도 대박나고. 아직도 저에겐 진짜, 은인 같은 배우죠.”

장은영은 수첩을 통해 정리해보았다.

‘케이블 드라마와 공모전 당선작. 흥행할 구석이라곤 없어보이는 작품들인데도, 박유진이 참여하니 모두 히트를 쳤어.’

작품을 보는 눈이 뛰어난 걸까.

아니면 어떤 작품이든 흥행시킬 수 있는, 박유진 자체의 힘일까.

참 신기한 일이었다.

“두 분은 드라마 작가시잖아요. 작가로서 봤을 때, 박유진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송미연이 곧장 대답했다.

“그 질문에는 노 코멘트하고 싶은데요.”

“네? 네, 괜찮습니다만.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노 코멘트하려는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딱히 대답이 떠오르질 않아서요.”

그때 민용석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저희 교수님 말씀은 뭐냐면. 박유진 배우의 장점이 워낙 많다보니, 풀어서 설명하기 어렵다. 뭐 그런 뜻으로······.”

“그럼 민용석 작가님께서는요?”

“네?”

“박유진 배우의 장점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자 민용석이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저도 대답을 못하겠어요. 박유진 배우는 그냥······박유진 배우거든요. 촬영장 안에서는 연기자로서 최고고, 촬영장 밖에서도 또 엄청 재밌고 성실하고.”

민용석은 고민하며 음, 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그 꼴이 보기 싫은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송미연.

“그냥, 박유진이요.”

곧 민용석을 대신해 말했다.

“그냥 박유진 배우, 그 자체가 장점이죠.”

그 대답에 장은영은 적잖이 놀랐다.

장은영이 송미연을 찾아온 이유.

송미연 말마따나 데뷔작의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유진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송미연은 립서비스가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그런 송미연이 저런 말을 하다니.’

방송업계 사람으로서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극찬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신기하네요.”

“네?”

“실은 두 분을 만나뵙기 전에, 이지혜 배우와 김선미 배우를 만나봤어요.”

그리 생각하는 게 송미연과 민용석 뿐이 아니라는 사실.

“아아. 박유진 배우랑 같은 소속사인 아역배우들?”

“네. 그 두 분한테 왜 주역 매니지먼트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냥, 이라고 하더군요. 그냥 박유진 배우를 보면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렇게 대답했어요.”

물론 주역 매니지먼트 사람들이 보여준 진정성, 사장의 차동석의 인맥 등.

두 사람의 선택에 도움을 준 요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박유진의 존재였던 것.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고 싶네요. 박유진 배우와 또 같이 작업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실은, 대본을 작업 중인 게 있어요. 박유진 배우를 생각하며 쓰고 있는 게 있거든요. 저와 민용석 작가가 공동집필 중입니다.”

심지어 두 드라마 작가가 의기투합해, 박유진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쓰고 있다니.

“놀랍네요. 그럼 언제 선보이실 예정인가요?”

“글쎄요.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죠. 그렇지?”

“네? 아, 네.”

그렇게 두 사람과의 이야기가 끝난 뒤, 돌아가는 길.

“내가 아역배우 다큐를 준비하는 건지, 무슨 전설 속 인물을 조사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장은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

주역 매니지먼트의 미팅룸.

평소 정적이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장소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는데.

펑-! 펑-!

빵집에서 파는 생일 축하용 폭죽이 터지고.

조촐하지만 풍선도 몇 개 달려있었다.

“선미의 합류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뒤늦게 선미 합류 기념 파티가 열린 것.

물론 파티라고 해봤자 참석자는 유진, 이지혜, 김선미로 조촐했지만.

“근데 유진이 너, 요즘 진짜 보기 힘들어.”

“천만배우 됐다 이거야?”

두 사람의 핀잔에 유진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저만 바빴던 거 아니었잖아요? 이거 억울하네. 원래 어제 만나기로 했던 거 두 사람 스케줄 때문에 오늘로 바꾼 거잖아요.”

이제 세 사람이 모일 타이밍을 잡기도 어려웠다.

세 사람 모두 작품 활동 중이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게다가 셋 모두 학생이다 보니, 방학시즌에 겨우 시간을 내서 모일 수 있었다.

“어제, 오늘 빼곤 너 시간 다 안 되잖아.”

“진짜. 제일 바쁜 애가 저런 말을 하네. 이번에 라면 CF도 찍는다면서?”

물론.

제일 바쁜 건 유진이긴 하다.

라앺 촬영에, 더빙 준비에, 넙튜브 업로드, 맵라면 광고 계약까지.

“그건 됐고. 요즘 다들 어떻게 지내요?”

“선미 얼마 전에 프로필 사진 찍었대.”

“진짜요? 그럼 제이미 삼촌이 찍어줬겠네.”

그 말에 김선미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넌 그 아저씨 삼촌이라고 불러? 참내! 어찌나 성질이 더럽던지! 프로필 사진 찍는데 나한테 자꾸 뭐라고 하는 거야.”

아무래도 자존심이 강한 김선미와 제이미.

이 둘의 케미가 마냥 좋진 않은 모양이다.

“결과물만 안 좋았어도 뭐라 해주는 건데!”

저 말을 들으니 또 케미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지혜 누나는 이제 고3이죠?”

“응. 하아. 벌써 막막해. 어떡하지.”

고3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감싸 쥐는 이지혜.

“우와. 부럽다. 언니도 이제 어른이 되는 거구나.”

김선미가 이지혜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창 어른이 되고 싶을 나이니까.

물론 어른의 단맛 쓴맛 다 겪어본 유진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봤자 뭐 있겠어. 편의점에서 술, 담배나 살 수 있겠지.”

“누가 그러던데요. 인생의 기쁨 2개가 생기는 거라고.”

“난 둘 다 안 할 거거든? 유진이 넌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거야?”

“TV에서요.”

“역시 TV가 제일 나빠.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누나도 미성년자거든요? 그리고 우리 TV 나오는 사람들이잖아요.”

“누나 말에 토 달 거야? 아무튼 유진아. 술은 몰라도 담배는 절대 하지 마. 너 그 잘난 얼굴 다 망가진다.”

이지혜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저 말은 좀 뜨끔하네.’

사실 회귀 전에 친근한 외모를 만들겠답시고 억지로 술, 담배를 한 적이 있었으니.

당연히 지금 삶에서 성인이 된다고 해서 술, 담배를 할 생각은 없다.

“근데 못 본 새에 너 얼굴 좀 달라진 거 같다. 안 그래, 선미야?”

이지혜가 유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런데 김선미는 유진 쪽을 도통 바라보지 못했다.

“선미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붉어진 얼굴의 김선미.

유진 쪽을 흘끗 곁눈질하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쟨 왜 더 잘생겨지는 건데!’

나이를 먹을수록 유진의 미모는 물이 오르고 있었다.

데뷔 당시인 8살엔 예쁘장하고 귀여웠다면.

지금은 점점 선이 굵어지며 잘생겨지고 있었다.

각도에 따라선 예쁘장하게도 보이고.

또 다르게 보면 잘생겨 보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비주얼.

‘얼굴이 진짜 사기야. 뭐 저렇게 생겼어?’

유진의 폭식 아닌 폭식 덕에 키도 쑥쑥 자라고 있는 중.

그런 유진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해서일까.

오랜만에 ‘첫사랑’ 뮤비 찍을 때의 설렘을 느껴보는 김선미였다.

“애들은 진짜 금방 자라는구나.”

두근거려하는 김선미와 달리.

이지혜는 유진의 성장을 흐뭇하게 보고 있을 뿐이지만.

“누나도 아직 미성년자라니까요. 와. 근데 신기하긴 하다. 누나 처음 봤을 때 누나 중3이었는데. 이제 내년이면 대학 가겠다.”

대학이라는 말을 듣자 이지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 생각하니 막막하네. 하아. 안 그래도 나 출결 완전 엉망인데.”

“그래도 실기시험 보면 붙지 않을까요? 누나 연기 잘 하니까.”

“그것도 내신이나 수능 점수가 받쳐줘야 가능하지.”

“아하. 누나 공부 못하는구나?”

“너 누나한테 혼난다. 그러는 유진이 넌? 공부 잘 해?”

“저요? 완전 잘하죠. 저 상 받았다니까요?”

유진은 그리 말하며 휴대폰 앨범 속 사진을 보여주었다.

각종 학력우수상으로 상장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거 같아.”

“괜찮아요, 언니. 쟤 춤 더럽게 못 추잖아요.”

“선미야. 그래도 더럽게 못 춘다는 게 뭐야. 예쁜 말 써야지.”

“그럼 뭐라고 해요?”

“음. 춤을 매우 많이 못 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다시 말할게요. 언니, 유진이 쟤는 춤을 매우 많이 못 추잖아요.”

“그래, 잘했어 우리 선미!”

“그렇게 풀어서 말하니까 더 기분이 나쁜 거 같네요.”

잠자코 듣고 있던 유진이 한 마디했다.

그러자 꺄르르 웃는 이지혜와 김선미.

‘근데 원래 지혜 누나 대학 가고 싶었구나. 나 회귀하기 전에는 고졸이었는데.’

아마 그 악덕사장 밑에서 혹사당하느라 대학은 꿈도 못 꿨던 것이겠지.

그 당시 이지혜와 지금 이지혜는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될 정도.

‘그러고 보니 내년이겠네. 지혜 누나의 1차 떡상 시기.’

이지혜는 스무 살에 <클래식 기타>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아역배우 이지혜가 아닌.

청춘스타 이지혜가 되는 분기점.

‘나도 그 덕을 좀 봐야지.’

본래 이지혜라면 승승장구하다 소속사와 분쟁에 휘말려 큰 이미지 손해를 보지만.

이젠 그런 장애도 없어졌으니까.

그때.

똑똑!

미팅룸에 들리는 노크 소리.

곧 차동석이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창 파티 중일 텐데 미안하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유진이 너한테 손님이 오셨어.”

“저요?”

그렇게 잠시 미팅룸을 나오니.

제법 익숙한 얼굴이 유진을 반겼다.

“오랜만이다. 유진아.”

원로배우 이순철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유진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붙잡았다.

“고맙다. 다 네 덕분이야.”

“네?”

유진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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