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35화 (135/237)

135화

그 이후.

유진은 이순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이 연기해야 하는 게 바로 이순철의 어린 시절이니까.

하지만 이순철의 어린 시절은 공식적인 자료가 없다.

워낙 오래 전 일이 되었으니.

이젠 그 시절의 이순철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나도 기억이 흐릿하구나.”

이순철 본인도 이제 제법 고령의 나이.

옛 기억이 흐릿한 모양이다.

“이번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분량이 제일 적은 것도, 내 기억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지.”

“그럼 할아버지는 어릴 때 어떤 성격이었어요?”

“성격이라. 어렸을 땐 꽤 말이 없고 얌전한 녀석이었지. 어른들은 나를 볼 때마다 애가 맥아리가 없다며 혼을 내곤 하셨고.”

“기억나는 일 있으세요?”

대배우라 불리는 이순철.

그의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캐릭터 구축이 어려울 정도.

‘어느 정도는 상상을 개입시켜야겠네.’

이순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가 확실히 남아있었다면.

유진은 그를 완벽히 모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게 전기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겠지.’

이순철의 인생을 모티브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모티브.

어느 정도는 재해석이 허용될 터였다.

‘과연 주승아 감독이 어떻게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이 캐릭터 구상에 골몰하고 있을 무렵.

“다만. 가장 강렬하게 기억나는 건, 그 순간이구나.”

“그 순간이요?”

“그래. 이 할애비가 어렸을 땐 유랑극단들이 곳곳을 돌며 악극이라는 걸 했었거든. 우연히 그걸 보고 난 뒤로는 며칠이나 멍해졌었지.”

그리 말하며 허허허 웃는 이순철.

“시골집의 마루에 앉아 넋이 나가 있었어.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으니, 부모님이 무슨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나. 그때부터였을 거다.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한 게.”

그 일화를 듣는 순간.

유진의 머릿속은 고요해지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야.’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꿈꾸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

“고마워요, 할아버지.”

덥석 이순철의 손을 잡으며 말하는 유진.

그러자 이순철이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다.

“응? 뭐가 말이냐?”

“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을 잡은 유진.

그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

몇 달 뒤.

“방청객들 입장 모두 완료됐습니다!”

“네. 가서 배우분들 모두 데려와. 위치에서 스탠바이 시키고. 등장은 순서는 큐카드에 적힌대로. MC가 말할 거니까 그때 등장하면 돼. 알지?”

“아직 대기 중이니까, 준비될 때까지 메이킹 영상 무대에 틀고!”

MBS가 행사를 할 때마다 쓰는 공개홀.

그곳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현장을 통제하는 스태프의 숫자만 해도 수십 명에.

곳곳에 배치된 수많은 경호인력.

이들의 눈에선 긴박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심장 터질 거 같아.”

“근데 벌써 끝이라니. 난 눈물 날 거 같은데 어떡하지.”

“진짜 시간 너무 빠르다. 누가 나 라앺 첫방 때로 좀 다시 보내주면 안 되냐?”

자리에 착석한 수백의 방청객들.

오늘 열린 행사.

바로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의 종방연 겸 토크 콘서트이다.

드라마 중에서도 대박 흥행작에게만 주어진다는 종방연.

라앺은 그를 넘어, 아예 공개홀을 대관해 토크 콘서트를 열어버렸다.

해당 방청권 신청의 경쟁률은 4000:1 수준.

명문대 가기보다 어렵다며 팬들의 아우성이 끊이질 않았을 정도다.

즉.

오늘로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는 모두 끝난다.

그 사실 때문인지, 유유연은 오늘 하루종일 넋이 나가있었다.

“누나!”

무대 뒤편.

유진이 유유연의 손을 붙잡고 붕붕 흔들어대는 중이었다.

그러자 유유연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지니야.”

“누나. 어디 아파요?”

유진이 걱정스레 유유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유유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믿기질 않아서. 이제 정말 다 끝나는구나. 오늘이면.”

연장 방송까지 했고.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 외전까지 촬영했다.

예정보다 훨씬 길어진 일정.

그럼에도, 유유연은 라앺이 끝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적잖은 허무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그러나.

유유연이 보내기 싫든 말든.

라앺의 종방연은 착실히 진행되어갔다.

“그럼 이번엔 단 역의 정성진 배우!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짝짝짝-

꺄아아악!

박수와 함성소리가 뒤섞인 순간.

곧 정성진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매번 저승사자로서 분장을 하고 찾아뵈었는데, 맨얼굴을 드러내려니 어색하네요. 부디 이 시간 행복하게 즐겨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성진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시고요. 여러분! 단이 나왔으면 그 다음 차례. 다들 누군지 아시죠?”

진행자의 말에 객석에서 ‘네!’하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유진은 곧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럼 저 먼저 나가요, 누나. 이따 무대에서 만나요.”

“응.”

후다닥 스탠바이로 들어가는 유진.

곧 진행자가 유진을 소개했다.

“말이 필요 없죠. 염라가 그인지, 그가 염라인지 모르겠다!”

“꺄아아아악-!”

“와우.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함성인데요. 하마터면 이 공개홀이 무너질 뻔했어요. 그럼 바로 만나볼까요? 염라 역의 박유진 배우입니다!”

곧 공개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느꼈다.

환호와 함성으로 땅이 울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유진은 그를 한껏 만끽하며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염라 역을 맡은 박유진입니다. 몇 달간 염라로 살아서 행복했어요. 여러분이 주신 사랑 잊지 않을게요.”

“유진아! 사랑해!”

“염라 최고다!”

“귀엽다! 박유진 귀엽다!”

“멋있어!”

곧 쏟아지는 익룡팬들의 주접.

유진은 그에 일일이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더 예쁘고 귀엽고 멋있어요!”

그렇게 시끌벅적, 유진의 인사말이 끝난 이후.

“네. 그럼 그리고 우리 주인공! 원작 찢고 나왔다. 디테일 장인. 수진장인이라고까지 불리신 분이죠. 수진 역의 유유연 배우님 모시겠습니다!”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유유연 역시 무대에 올랐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터뜨리는 플래시, 강렬한 조명.

그 속에서 보이는 수백의 관객들.

유유연은 마치 꿈결이라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수진 역의 유유연입니다.”

그래서일까.

준비했던 멘트는 하나도 못하고, 짧게 인사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되었다.

“어? 근데 박유진 배우. 머리카락이 엄청 길었네요?”

진행자의 말대로.

유진은 머리카락을 꽤 많이 기른 상태였다.

메이크업을 비롯한 세팅을 받고 와 윤기가 좔좔 흐르는 머리카락이긴 하지만.

제대로 정돈하지 않는다면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

그러나 유진의 뛰어난 외모 때문일까.

지저분해보이기 보단, 개성 있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네. 새로 들어갈 작품을 위해 기르고 있어요.”

“오오. 무슨 작품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아직 비밀입니다. 곧 여러분께 소식 전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객석은 유진의 신작 소식으로 술령거렸다.

그러나 이곳은 엄연히 라앺 종방연 겸 토크 콘서트.

곧 단숨에 화제가 바뀌었다.

“얼마 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의 외전까지 방영이 끝났죠? 라앺의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작품답게 여러모로 배우님들에게도 의미가 깊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가장 먼저, 수진 역의 유유연 배우님.”

“네? 아, 네.”

“주인공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아요. 지금 소감이 궁금한데요.”

“네. 솔직히 걱정이에요. 캐스팅 되기 전부터 원작을 워낙에 좋아했거든요.”

후우, 유유연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 드라마 끝난 이후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종방연을 하고 있는 것도 믿기지가 않고요. 그게, 그러니까. 음. 아하하. 왜 눈물이 나지.”

붉어지는 눈시울.

그를 가리기 위해 유유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그러나.

관객들이 외쳐주는 소리가 오히려 감성을 자극했다.

결국 유유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창 악플로 힘들던 시절부터.

라앺의 드라마화 소식을 들었을 때.

유진과 함께 컨텐츠를 찍고, 결국 캐스팅되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휴지 좀 가져다주세요!”

정성진이 스태프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한테 있어요.”

그러나 마치 이를 예상했다는 듯.

유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티슈를 뽑았다.

그리곤 손수 유유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모습에 앓는 소리를 내는 팬이 다수.

“네. 그럼 유유연 배우가 잠시 진정하는 사이. 박유진 배우가 먼저 얘기해볼까요?”

“넵. 음, 사실요. 전 작품에 끝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진은 유유연을 다정히 다독여준 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작품이 그렇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또 있는 거니까요. 매번 보내기 싫은 마음은 똑같은 거 같아요. 반대로 말하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거겠죠?”

유진은 그리 말한 뒤 출연진들을 쭉 둘러보았다.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마주치기도 해요. 절대 다시 못 만날 거 같던 사람과 다시 만나기도 하고요.”

유유연은 이때 몰랐지만.

유진은 그 말을 하며 유유연과의 인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을 친절히 챙겨주던 누나이자 선배님.

그런 그녀와 함께 주연으로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뻤다.

“그래서 헤어진다는 슬픔보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란 그리움과 설렘을 안고! 이번 작품을 보내주려고 합니다. 고마워, 염라야! 나 저승가면 그때 만나자!”

정말 저승에 있을 염라에게 말을 거는 듯.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유진.

그러자 현장에선 눈물과 웃음이 뒤섞였다.

“하, 하하.”

그건 유유연도 마찬가지.

분명 유유연에게 라앺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었고.

꿈꿀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었다.

라앺이 끝나도 유유연은 계속 배우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만약 계속 이 꿈에 머물러 있다면.

‘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하는 거겠지.’

그 기분 좋은 여운을 가지고, 남은 연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유유연 배우, 이제 좀 괜찮으세요?”

“네. 우리 지니 말을 들으니까, 제대로 이별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라앺이 끝나면 텅 비어버릴 자신을 걱정했던 유유연.

그러나 이제 그게 두렵지 않았다.

비어버리면 다시 채우면 되니까.

“제가 연기한 수진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해나가며 갚아나가겠습니다.”

관객석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는 유유연.

그러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아아. 유유연 배우님. 이거 완전 엔딩 멘트 같은데요. 저희 토크콘서트 이제 시작인데······.”

그러자 객석은 물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작부터 너무 분위기가 다운 되니.

진행자로선 이를 환기시키려 하는 것.

“무엄하다! 어디 우리 수진 누나에게!”

그를 캐치한 유진이 염라 캐릭터에 빙의.

범상치 않은 울림으로 장난스레 호통을 쳤다.

“꺄아아아악!”

“와. 진짜 성량 대박이다!”

“저게 어딜 봐서 초딩 발성이야?”

이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

“자, 얼른 자연스럽게 다음 코너로 넘어가죠.”

“네. 염라대왕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센스 좋게 받아치는 진행자.

유유연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그럼 다음 코너는 다같이 라앺의 명장면을 보는 시간입니다. 팬들이 선정해주신 명장면 3위부터······.”

계속 진행되는 종방연.

유유연은 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쉬워할 시간도 없다.

저 아이처럼,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니까.

*

얼마 뒤.

전라북도 전주.

낡고도 정겨운 집.

거기엔 어울리지 않게 각종 카메라와 조명, 오디오 장비 등.

각종 촬영 장비등이 즐비했다.

“다들 조심해주세요. 조금이라도 훼손하면 안 됩니다.”

주승아가 스탭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녀가 이토록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

바로 이곳이 이순철의 고향집이기 때문이다.

오늘 스탭들이 모두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

유진이 출연하는 회상 장면을 찍기 위해서다.

이 장면은 시나리오상 <찬란>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그러나 <찬란> 크랭크인 이후, 첫 촬영 장면으로 스케줄이 잡혔다.

“엔딩이긴 하지만, 역시 이 장면을 첫 촬영으로 하는 게 정답이었던 거 같아서 말이야.”

이는 이순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네가 연기하는 내 어린 시절을 보고나면, 색다른 각오로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우와. 뭔가 되게 감동이네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유진도 이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렇기에 오늘 함께 내려온 것.

스태프들이 한창 촬영 준비에 몰두해 있을 무렵.

이순철과 유진은 함께 집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유진이 너, 머리카락을 많이 길렀구나.”

“넵. 그게 연기하기에 좋을 거 같아서요.”

단정히 세팅했던 라앺 종방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일부러 부스스하게 연출한 상태.

이게 유진의 화려한 비주얼을 제법 가려주었으니까.

“하긴, 어린 시절 사진만 봐도 할애비랑 너랑 닮지는 않았지.”

허허 웃으며 말하는 이순철.

사실 이순철은 배우 생활 내내 미남 소리를 별로 듣지 못했다.

대신 도화지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어떤 역할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

그에 반해 유진은 매우 화려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처음 주승아가 유진을 보고 우려한 것엔, 이런 이미지의 차이도 있을 터.

“제가 좀 잘 생기긴 했죠.”

“허허! 당돌한 녀석. 사실이라 뭐라 하지도 못하겠네.”

“농담이에요. 그냥 좀 순진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요.”

“고맙구나. 분량도 적은데 이 할애비가 괜히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그런 말씀 마세요.”

이순철은 다 알고 유진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세대교체, 부담감, 유진이 표현해낼 자신의 어린시절.

그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유진은 그 기대에 확실히 부응해줄 생각이다.

“근데 여기가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에요?”

“그래. 여기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었지. 허. 그립구만.”

이순철은 촉촉한 눈가로 집을 둘러보았다.

젊은 시절엔 바쁘다는 이유로.

다소 적적해진 이후로는 손녀가 생겼다는 이유로.

고향집에 내려오지 못했던 이순철이니까.

이젠 사는 사람이 없어 거의 방치되어 있으나.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리움을 자극하는 모양.

“녀석.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나 싶지?”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으니 괜히 얘기를 돌리는 이순철.

그러자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되게 정겨워서 좋아요. 저도 나중엔 아버지랑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너 서울 토박이 아니냐? 특이하구만.”

“전에 살던 단칸방보단 여기가 훨씬 나은 걸요?”

“······너도 너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구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

천천히 걷다보니 곧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저곳이었지. 저기 앉아 하염없이 넋을 놓고 있었다.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론, 저기서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라디오 드라마를 듣기도 했지.”

이순철이 마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하. 그럼 저도 저기서 찍겠네요.”

“그래.”

이순철의 어린 시절 자료라곤 낡은 사진 몇 장이 전부.

캐릭터 구축에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하지만.

‘이순철 할아버지가 내게 해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해.’

유진이 저 마루에서 표현해야할 것.

그건 바로 이순철의 어린 시절, 그가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던 순간이다.

그 순간에 대해선 자료가 필요없다.

유진은 이미 몇 명이나 비슷한 사람들을 봐왔으니.

남들 몰래 소설을 쓰다가, 처음으로 소설을 출판해보려던 유신애.

더빙에 처음으로 재미를 느꼈던 순간의 정기열의 얼굴.

라앺 종방연에서 유유연이 보여준 모습들까지.

‘결국 목표를 가지고, 꿈을 꾸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박유진 배우. 카메라 테스트 한 번 해보겠습니다.”

멀리서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넵! 지금 갈게요!”

유진은 프레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서, 이순철을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 저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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