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45화 (145/237)

145화

145화

제50회라는 기념비적 순간을 맞이했던 백룡영화제.

그 순간의 주인공은 바로 <데드맨>이었다.

[이변은 없었다! <데드맨>이 지배한 백룡영화제]

[<데드맨>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분전했던 몇몇 영화가 있었지만······결국 돌고돌아 ‘데드맨 영화제’였다.]

[스타 감독, 스타 배우에게만 의존하는 시스템 바뀌어야 한다!]

음악상 등 몇몇 부문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싹쓸이한 <데드맨>.

거기다 연기상마저 <데드맨> 배우들이 거의 독점했다.

[충무로 올스타라는 이름 그대로······<데드맨>, 연기상도 싹쓸었다!]

[제50회 백룡영화제 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데드맨>의 한권주와 나은주 수상!]

한권주는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나은주 역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것.

사실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수상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었다.

나은주는 제 명성만큼.

그리고 한권주는 제 명성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니.

그 때문일까.

화제가 된 것은 수상 사실 그 자체보다.

두 사람의 수상소감 쪽이었다.

[“함께 연기할 수 있어 기뻤고, 많이 배웠다” 한권주가 박유진에게 건넨 묵직한 찬사]

[“이 상을 아들에게 바친다” 한권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가족을 언급하다]

[“죽음조가 없었다면 외로운 삶이었을 것이다······박유진, 한권주, 고석태에 감사” 나은주, 눈물을 보이며 진솔한 수상소감!]

[구심점 없던 그들은 어떻게 절친이 되었나? ‘죽음조’의 이야기 연일 화제!]

그간 사적인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던 한권주.

그가 처음으로 수상소감에서 아들을 언급한 것이다.

게다가 냉미녀 계의 대표주자였던 나은주는 눈물까지 보이며 죽음조에 애정을 드러냈다.

<데드맨>을 찍기 전과 후로 두 사람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

그러나.

이 모든 걸 제치고, 역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50년 백룡의 권위, 11살 소년이 쟁취하다!]

역시나 유진의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소식.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 불과 11살의 소년이 백룡에 깃발을 꽂다]

[50주년을 맞이한 백룡영화제, 변화의 신호탄? 아역배우에게 트로피를 안기다]

[“그간 백룡영화제, 사실 좀 경직된 편이었는데······” 영화평론가들, 박유진 수상에 적잖이 놀랐다]

[“저는 아역배우입니다” 박유진의 울림 있는 수상소감 화제!]

[백룡영화제 ‘최고의 1분’, 박유진 수상······순간시청률 13% 돌파]

[박유진 수상소감 클립, 넙튜브에서 조회수 50만회 돌파! “축하합니다” 누리꾼들 댓글 향연]

이에 가장 기뻐한 것은 역시 유진의 가장 든든한 아군, 팬카페 대박유진이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거 실화냐 유진이가 남우조연상 ㅠㅠㅠㅠ

진짜 너무 장하다 어뜨케...

나 진짜 유진이 이름 듣자마자 소리지름 ㅠㅠㅠ

기레기들이 언플 ㅈㄴ 해대가지고 ㅡㅡ 원래 작년부터 유진이 수상 정해진 거나 다름 없었는데

ㄴ 222 내말이 진짜 이렇게 힘들게 받을 일?]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최근 언플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았던 곳이기에 이번 수상을 더더욱 기뻐했다.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팬카페 라라라는 박유진 배우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염라 박유진-]

라앺의 팬카페 라라라도 마찬가지.

팬서비스도 좋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유진은 라앺 팬덤 내에서 훌륭한 민심을 보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수상소감은 여러모로 파급력이 남달랐다.

이 뉴스는 여러 사람의 귀에 발 빠르게 전달되었으니.

“내가 저런 애랑 같은 반에다, 오디션까지 봤었어! 친했냐고? 당연하지! 우린 최고의 라이벌이었거든.”

과거 유진과 <리플레이> 오디션에서 경쟁했던 아역배우.

양진우까지 기뻐할 정도.

“거봐요, 감독님! 우리 유진이가 탈 거라고 했죠?”

“아, 같이 또 멋들어진 광고 하나 찍으면 좋겠는데. 또 보건복지부에서 뭐 안 만드나?”

서림미디어 소속, 오래된 유진의 팬이자 캐스팅디렉터인 김수림.

그리고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으로 광고를 찍었던 광고감독 구학준 역시 입맛을 다셨고.

“야, 용재야. 우리 유진이가 또 영화 개봉 전에 대박을 쳤는데?”

“예상은 했지만 진짜 놀랍네요. 흥행을 고려 안 해도, 박유진이 강제로 흥행시키게 도와주는 느낌까지 들 정도예요.”

“이제 유진이는 낯부끄러워하지만, 진짜 걔 아기천사 맞다니까?”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인 블루컬쳐 스튜디오.

유진의 수상소식을 들은 덕분에 집중력과 의욕이 더욱 솟아난 모양새.

“저희 박유진 스페셜 에디션 하나 만들죠. 트로피를 심볼로 해서, 그를 패턴화해서요.”

“좋아. 바로 주역 매니지먼트 쪽에 연락 넣어보자고.”

유진의 첫 협찬업체.

아동복 브랜드인 벨레 역시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위해 바빠졌고.

“엄마, 엄마! 유진이가 상을 탔어요!”

“그래. 이게 맞는 거지! 엄마도 얼른 유진이랑 다시 작업하고 싶어.”

최희숙과 유신애 모녀는 서로 끌어안으며 제 일처럼 기뻐했다.

“크흑! 역시 어떻게든 박유진을 데려왔어야 하는데.”

DV엔터 아역팀 팀장인 김병호.

그는 깡소주를 마시며 허한 속을 달래야만 했다.

“본부장님 얼굴 좀 부으신 것 같지 않아요?”

“몰랐어? 어제 백룡영화제 시상식이었잖아. 아마 박유진 배우 상 받는 거 보고 우셨을 걸?”

“헐. 저렇게 퉁퉁 부을 때까지요?”

“당연하지. 우리 본부장님이 박유진 배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젠 아예 염라면으로 이름을 바꾼 맵라면.

미도 측의 본부장 이희승 역시 감격의 시간을 보낸 모양.

자기는 애써 아닌 척하지만, 부하직원들은 이미 눈치챈 모양이다.

“얼른 케이블 채널 쪽 재방 돌려! 박유진 특집 편성해! 옛날에 별떠 파일럿 때부터, 라앺, 최근 나온 토크쇼. 다 돌리라고!”

MBS의 케이블 채널은 아예 유진 특집을 기획했다.

유진이 출연했던 <식스 타임>.

그리고 <토크쇼 골드킹>과 <오디오 스타>까지 재방을 돌리기 시작한 것.

그리고.

“우와. 역시 박유진 형은 진짜 대단하다!”

<찬란> 촬영 때 마주쳤던 꼬마, 손준영까지.

아역배우의 남우조연상 수상.

이게 연예계에 끼친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님이 기사를 공유하셨습니다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죽음조가 없었다면 외로운 삶이었을 것이다······박유진, 한권주, 고석태에 감사” 나은주, 눈물을 보이며 진솔한 수상소감!]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암암 외로웠겠지 힘들었겠지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오빠들한테 기대렴

-은주 누나 : 뭐래

-은주 누나 : 진짜 죽어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은주 누나 : 뭐래 우리 모임 이름부터가 죽음조인데

-권주 삼촌 : 영화 제목에도 데드가 들어가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뭐야 지금 나만 상 못 받았다고 까는 거야?? 그런 거야??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유진아 삼촌 도와줘

-박유진(나) : ^ㅁ^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도와달라니깐

이렇게 보여도.

죽음조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 상황.

유진은 피식 웃으며 톡을 보다가, 곧 스윗터에 접속했다.

[박유진의 스윗 : 내꺼♥ ٩(๑>∀<๑)۶

(백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껴안은 사진. JPG)]

해당 스윗의 업로드 이후.

[ㅠㅠㅠㅠㅠ 이 세상이 다 유진이꺼 ㅠㅠㅠ

우리는 당신의 가치를 압니다, 귀여운 아이. 정말 축하한다!

congratulation!!(우는 이모티콘)

おめでと! かわいい(축하해! 귀여워)]

“와우.”

유진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답글이 달리는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으니.

게다가 언어도 훨씬 글로벌해졌고 말이다.

[@박유진의 스윗터

팔로우 : 10 팔로워 : 1.2M]

수상 이후 팔로워수가 그야말로 폭등했다.

어느덧 스윗터 팔로워는 백만을 훌쩍 넘겼다.

[배우 박유진의 스프링 노트

동영상 – 66개, 구독자 – 951,312]

넙튜브 역시 구독자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곧 백만을 달성할 수 있을 터.

“이래서 사람은 상을 받아야한단 말이야.”

트로피야 말로 배우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 물건이다.

시상식 전엔 유진의 수상 여부를 두고 워낙 논쟁이 많았으니.

그러나 정작 유진이 트로피를 거머쥐자, 반대론자들은 졸렬하게 쏘옥 빠졌다.

그래서일까.

이번 수상을 통해 비로소 대우가 달라진 느낌.

“자, 이건 여기에 두고.”

유진은 백룡 트로피를 어머니의 사진 옆에 두었다.

그 후, 여느 때처럼 소속사 사무실로 향했는데.

“와. 이게 다 뭐예요?”

들어가자마자 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못 보던 소포가 엄청나게 쌓여있었으니까.

“오. 우리 남우조연상 수상자 대배우님! 오셨습니까?”

“에헴. 이리 오너라.”

“크크! 오셨습니까, 나으리.”

“근데 사장님. 우리 회사 또 이사 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다 네 앞으로 온 거야.”

“제 앞으로요? 헐. 저 설마 장난전화 테러라도 당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 다 네 앞으로 온 선물이라고.”

물론 팬들에게 종종 선물을 받는 일은 있었지만.

이 어마어마한 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진짜 이게 다 제 선물이라고요?”

“그래. 한 번 뜯어봐.”

유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찬찬히 소포들을 뜯어봤다.

양이 하도 많아서 차동석이 도와줘야 했을 정도.

“이야. 네 팬카페에서 보내준 모양이다.”

리본과 고급스런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

그 안에는 유진이 좋아하는 옛날 과자들부터 시작해.

유진의 모습이 음각된 텀블러, 가운, 만년필, 심지어 커스텀 마이크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선물이 도착한 것이다.

특히 유진의 눈길을 끈 것은.

“우와!”

바로 유진의 수상장면을 뜬 십자수 선물이었다.

만든 사람이 얼마나 정성스레 제작했을지 눈에 그려질 정도의 퀄리티.

“어? 근데 이건 일본어로 써있네요? 일본팬이 보내주신 건가?”

“맞아. 라앺이 일본에서 엄청 떴거든. 비교적 잠잠했던 한류가 라앺을 기점으로 제대로 터진 모양이야.”

차동석은 자신이 더 기뻐하며 말했다.

“원래 한류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구심점이었거든. 그런데 라앺이 젊은층을 제대로 사로잡은 거야. 저승사자나 염라처럼 동양 판타지적 요소도 있으면서, 청년 비관 같은 요소들이 젊은층의 공감을 산 거지.”

이는 유진에게도 호재다.

아이자와 감독이 준비 중인 <주변인>에 유진도 출연할 예정이 아닌가.

‘일본 팬덤이 급속도로 불어났다는 건 들었지만, 이렇게 체감하니 기분이 묘하네.’

아무튼.

살면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보긴 처음인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유진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모든 선물을 촬영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선물 더미에 파묻힌 자신의 사진까지.

[박유진의 스윗 : 소중한 정성들 고마워요♡

앞으로도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스윗터에 업로드 한 뒤.

“그럼 선물도 잘 확인했고. 다녀와서 감사인사 영상 찍어야겠어요.”

“음? 어디 가려고?”

“친구들 만나러요.”

“아아. 놀러가려고?

“아뇨. 일해야죠, 일!”

친구를 만나러 간다면서 일을 한다니.

차동석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유진은 다시 톡에 들어갔다.

-박유진(나) : 넥스트 소집!

유진은 쉴틈이 없다.

*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

“허허. 영광은 무슨. 반갑습니다, PD님.”

유진의 다큐를 찍고 있는 장은영.

그리고 원로배우 이순철은 MBS 교양국 회의실에서 마주쳤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죄송합니다. 제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직접 와주시고.”

“그게, 원래 같았으면 내 동네에서 그냥 봐도 되는데. 요즘 좀 달라져서 말입니다.”

이순철이 사는 동네 주민들에게, 이순철을 보는 건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매번 손녀와 놀러다니기도 하고, 마트도 스스럼 없이 들리니까.

그런데 최근 기류가 조금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유진이 얘기를 꺼내니 원, 부담스러워서.”

이순철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었다.

혹여 자신이 유진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가 말이 와전될까, 그를 우려하는 것.

“이런 늙은이한테서도 그 어린애 얘기가 듣고싶은 모양입니다.”

“하하. 요즘 워낙 난리였으니까요. 특히 <찬란>에 박유진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발표되기도 했고. 아. <찬란> 영화 촬영은 잘 되어가시죠?”

“물론입니다. 유진이가 스타트를 잘 끊어준 덕분이지요.”

첫 촬영 때를 회상하는지.

이순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이런 나이가 되면 초심이라는 걸 잊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유진이 그 아이가 잊고 있던 걸 되살려주었습니다. 유진이의 연기를 보는 순간, 마치 예전 그 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죠. 당시 맡았던 그 시골마을의 냄새며 조금 따뜻했던 공기, 온몸에 감돌던 희열. 그런것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 뿐만이 아니더군요. 같이 영화를 찍는 감독도, 영화 스탭들도,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모두 꿈을 꾸며 두근거렸던 그 순간을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순철의 말을 듣자.

장은영은 마을에서 봤던 그 작은 꼬마가 생각났다.

‘손준영이라고 했지.’

그 아이도 유진의 수상에 분명 기뻐했으리라.

“그 아이의 연기는, 특정 누군가에게 강하게 호소하는 게 아닙니다. 대중 전반의 감성을 건드리는, 보편적이면서도 근원적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느낌이죠. 정말 좋은 배우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장은영.

곧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순철 선생님께선 박유진 배우를 특별히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를 안 아끼는 사람도 있을까요? 재능 있는 아이 아닙니까.”

“그게 단순히 원로배우로서, 재능 있는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단해서 죄송합니다만, 좀 더 인간적인 호감을 품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손한 장은영의 말.

그러자 이순철이 손을 내저었다.

“죄송해할 것 없습니다. 그 말이 맞으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박유진 배우를 좋아하시는 이유.”

“허허. 이유라. PD님. 전 손녀를 참 좋아합니다. 이제 나이가 먹어서 할아버지랑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어쨌든. 그 아이를 보면 참 행복합니다. 손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박유진 배우를 손녀와 같이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뇨. 다릅니다.”

이순철은 단호하게 말했다.

“손녀에겐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면, 박유진 그 아이에겐······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대감. 잘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알아서서 잘 해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는 것뿐입니다. 먼저 앞서온 사람으로서.”

자전거를 가르칠 때, 손녀에겐 보조바퀴를 달아준다면.

유진에겐 그저 등만 밀어주고 싶다는 모양.

그만큼 유진에게 가진 기대감이 크다는 의미였다.

곧 이순철은 멋쩍게 웃었다.

“이런 늙은이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정해졌습니까?”

“네. 이 역시도 박유진 배우가 영감을 줬어요.”

장은영은 이순철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새하얀 워드 프로그램 속, 커다란 글씨가 보였다.

[나는 아역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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