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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52화 (152/237)

152화

일본의 GGV라 여겨지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소호시네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이 북적거리는 그곳에 못보던 자그마한 안내판이 붙었다.

[ VIP 시사회]

보통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면 아이를 동반한 아이들이 초대되어 오기 마련이지만.

이번 는 각종 영화계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것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쪽으로 말이다.

일본에서도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다소 미개척의 영역이었고.

<날개>에 이은 블루컬쳐 스튜디오의 2번째 작품.

심오한 스토리, 낯선 음악, 어두운 소재.

여러모로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중에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늦지 않게 도착했네.”

꽁지머리를 찰랑거리며 달려오는 남자.

연극 <주변인>의 영화화를 기획, 이를 영화 <입김>으로 제작 중인 감독 아이자와였다.

“아이자와. 네 길치 본능은 변하질 않네. 어떻게 영화관 하나를 못 찾아서 30분이 더 걸렸어.”

“여기 와본지는 오래됐단 말이지.”

“그러게 차에 네비 좀 달라고 했잖아.”

“난 기계를 신용하지 않아. 인간에겐 직감이라는 게 있지.”

“정말 영화감독 같은 소리를 하네.”

“영화감독 맞잖아? 그리고 안 늦었으면 된 거야.”

아이자와와 만담하듯 대화를 나누는 말라깽이 남자.

각본가인 혼고였다.

아이자와와는 막역한 사이로, 연극 <주변인>의 텍스트를 영화 <입김>으로 각색했다.

두 사람 모두 한창 <입김> 제작에 매진하고 있는 입장.

게다가 오디션까지 앞둔 마당에 이 둘이 왜 여기 있는가?

“아무튼 기다리던 영화를 드디어 보게된다니. 이거 보려고 한국에 당일치기 여행을 갈까 고민도 했었어.”

“하하, 이해는 하지만 미친 짓이야. 그래도 솔직히 나도 두근두근해.”

가 예고편부터 그들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

미스테리 특화 감독&각색과 답게.

그들은 독특하고 기괴함을 품은 작품을 좋아했다.

두 사람은 영화제작자이기 이전에.

영화를 진정 즐기고 사랑하는 영화광이었던 것.

안내를 받아 VIP 시사회 전용 티켓을 발권한 뒤.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이런 설렘 오랜만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그들의 두근거림은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곧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첫 시퀀스는 주인공 X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장면.

서툴지만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며 놀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것도 잠시.

툭-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화면이 암전된다.

[아빠. 보고싶어요.]

들려오는 주인공 X, 정기열의 목소리,

아버지의 부재는 X에게 커다란 상처.

이는 곧 X가 소심하고 나약한 아이로 크는 원인이 된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그를 표현하는 장면들은 장난감으로 대체되었다.

‘이 애니메이션, 제법 세련됐군. 아이들의 고통을 가학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 대신 섬세한 유리처럼, 메타포를 통해 아이들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어.’

그리고 그 아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내는 성우들.

아이자와가 듣기에도 매우 훌륭했다.

[나, 난 아무 것도 안 했어. 근데 왜 다들 나를 미워해?]

주인공 X는 물론이요.

[저리 가! 나 좀 제발 혼자 내버려두라고!]

S, Z 등 다른 조연 캐릭터들까지.

‘한국에 이리 훌륭한 청소년 성우들이 많다니.’

그러나 그는 약과였다.

곧이어 등장한 Y의 목소리 때문.

[걱정 마. 나만은 네 편이니까.]

박유진의 목소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성숙하고 힘있는 목소리.

‘이게 정말 박유진 배우의 목소리라고?’

사실 아이자와가 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유진이 성우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연극 <주변인>을 직접 관람하며, 유진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지 않았나.

‘파워야 있을지언정, 목소리의 결은 무척 여렸는데. 벌써 변성기가 온 건가?’

그렇게 아이자와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무렵.

[♪~♬~]

그때 흘러나오는 건.

일본 오리콘차트를 강타한 ‘내 이야기’의 전주.

유진과 유이치의 음역대가 다르기 때문에 키가 낮아졌으나.

극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게 어떤 곡인지 모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착하지 않은걸

착한 아이라는 거

숨이 차고 겁이 나

착한 아이라는 거

가슴 아파 목이 타]

자막을 통해 그 뜻과 의미를 전달받아야 하기에.

그 감동이 덜할 수 있다.

[이젠 말할래

내 이야기

이젠 너에게 닿을

내 이야기

나는 상처가 있어요

나는 아픔이 있어요

날 안아주세요

토닥여주세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자와는 자막에 눈을 두고 있지 않았다.

서툰 한국어로 대강의 의미를 알아듣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 이거야.’

그간의 서사가 층층이 쌓이고.

그걸 폭발시키는 연출.

그야말로 영감이 줄줄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아이자와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좋은 컨텐츠, 그리고 좋은 연기란 언어를 초월하고 인간의 가슴에 와닿지.’

유진이 보여주고 있는 노래와 목소리 연기가 딱 그런 경지였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현실.

X에겐 여전히 아버지가 없고.

Y의 부모님은 끝내 이혼하셨다.

그러나.

X는 소심한 성격을 버리고 조금씩 적극적이 되어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Y는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을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아이들.

그들이 한데 모여 노래를 시작한다.

[내일이면

방학이 올 거야

내일이면

키가 자랄 거야

내일이면

나이를 먹을 거야

내일이면

봄이 올 거야

내일이면

모든 아픔도 가시고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인사해

내일이면

내일이면]

내일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단체곡.

애니메이션답게 아이들을 빛으로 감싸는, 비현실적이면서 따뜻한 연출이 펼쳐지고.

그렇게.

영화 는 막을 내린다.

“······어메이징.”

짝, 짝.

아이자와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어메이징한 영화였어.”

그러자 옆에서 혼고도 따라쳤다.

다른 관객들이 두 사람을 이상하단 듯이 쳐다봤지만.

두 사람은 깊은 여운에 빠져, 타인의 시선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잠시 후.

“이봐, 아이자와.”

“왜.”

“Y라는 캐릭터를 맡은 성우, 그 아역배우가 이번 <입김>에 참여한다고?”

“그래. 맞아. 2년 전에 미리 선점해뒀지.”

그러자 혼고는 입이 찢어질 듯 미소지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이 친구야! 네가 월척을 낚은 거야!”

*

홀로 집 거실에 앉아있는 유진.

새삼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흐음. 이제 곧 이 집도 안녕이네.”

전세 기간이 끝나는 내년을 기점으로 이사가 결정되었다.

이젠 전세가 아니라, 집을 아예 사기로 결정했으니까.

매우 핫한 한해를 보낸 유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귀 전엔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지난 생에선 단칸방을 벗어나는 데에만 몇 십 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12살을 목전에 두고 집을 샀다.

지금 유진이 살고 있는 전셋집.

장은영의 다큐 방영 이후, 확 금액이 뛰었단다.

“그럼 다음은 펜트하우스로 가면 되려나?”

혼잣말을 뱉어놓고 민망한지 피식 웃는 유진.

사실, 이제 집은 유진에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그 원인이었던 배달 일을 그만두게 했고.

이사갈 일 없이,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뭐, 어디 있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똑같으니까.”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는지 아니겠나.

그리 생각하며 가족사진을 흘끗 본 유진.

곧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 가족사진에 없는 또 하나의 가족.

“흐아아암.”

백룡이가 제 곁에 있었다.

유진의 무릎 위에서 길게 하품을 내뿜는 백룡이.

“자, 백룡아. 이거 봐봐.”

유진은 태블릿PC로 포털 사이트에 를 검색했다.

[, 어느 새 100만 관객 돌파!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2번째 흥행! 1위는 블루컬쳐 스튜디오의 전작 <날개>]

“와우.”

헤드라인을 본 유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는 유진이 기대한 것보다 더한 성과였으니.

유진이 알던 미래에서도 는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하진 않았다.

“백룡아. 그거 알아? 원래 는 개봉 2주차만에 박스오피스 5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작품이었거든.”

“먀아.”

“그런데 어느새 100만을 넘겨버렸네. 애니메이션 영화가 100만 넘기는 거,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 <날개>야 OST였던 ‘날아가’가 메가히트를 쳤으니까 가능했던 일이고.”

“냐아?”

“모른다고? 아무튼 대박 짱이라는 뜻이야.”

그렇게 백룡이를 품에 안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유진은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오, 유이치 형!”

“안녕, 나의 옛 제자. 축하 인사해주려고.”

“100만 고마워요. 다 형 덕분이죠!”

유진은 진심이었다.

내심 유이치를 끌어들인 게 신의 한수라 평가했다.

역시 아이돌 마케팅이 최고라

“근데 유진. 나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 아닌데.”

“엥? 그럼 무슨 일인데요? 그냥 안부 전화?”

“어? 그 소식 아직 못 들은 거야?”

“무슨 소식이요?”

잠시 후.

유진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헐! 정말요?”

가 일본 개봉 직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

“정말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제작사 블루컬쳐 스튜디오.

그곳도 예상 밖 성적표를 받아들곤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수상 욕심만 내고 있고, 대중적으론 흥행참패를 예상했으니.

“이 정도면 우리가 천재인 거 아닐까?”

“자만하지 마세요, 감독님. 이거 다 유진이랑 유이치 덕분인 거 아시잖아요.”

“흥. 알아, 알아. 농담도 못 하나? 진짜 재미없는 놈이야.”

투덜거리며 홍삼스틱을 쭈욱 짜먹는 이선화.

그런데.

더 예상치 못한 일은 해외에서 일어났다.

[한국에서 날아온 뮤지컬 애니메이션, 일본 열도를 뒤흔들다!]

바로 일본에서의 흥행 돌풍.

한국보다 그 기세가 무섭다.

“벌써 일본 담당자들이 메일을 보내오고 있어요. 관련상품을 만들 계획 없냐고요.”

“아니, 진짜 이번 작품은 그런 거 만들 생각도 없었는데.”

<날개>야 어린아이들에게 잘 먹힐 이야기라 굿즈들을 양산해냈지만.

는 애당초 성인들을 노린 작품이다.

캐릭터들이 가진 결핍, 상처가 매력으로 보였고.

곧 이를 ‘덕질’하며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는 매니아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 아이들의 목소리 최고인ww

Y는 멋지고 상처가 많다! 나는 그를 보듬어주고 싶다

X는 귀엽고 Y는 멋져...보이스 액터들이 친구라는 사실에 놀란 oOo]

특히 성우로 참여한 아역배우들의 목소리가 매력을 배가 시켰다는 평.

“뭔가 신기하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져.”

이선화가 감탄하며 말했다.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네.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는 거.”

“특히 일본에 발빠르게 개봉했던 거. 이거 엄청 주요했던 거 같은데요.”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

그에 반해 한국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일본 극장가를 점령했다.

그 사실은 해외의 애니메이션 팬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특히 프랑스 등 유럽 쪽에서 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대체 그 한국의 작품이 뭐기에?

유이치라는 일본 아이돌이 OST를 불렀다는데. 그거 때문이겠지.

ㄴ OST 하나로 극장 1위를 한다고? 멍청한 소리.

ㄴ 하루는 할 수 있어도 지금 몇 주째 1위를 차지하는 중이야. 대단한 일이지.

그 작품, 박유진이 Voice Actor로 참여한다는데.

ㄴ 박유진? 그게 누군데?

ㄴ 요즘 한국에서 완전 잘 나가는 아역배우. 당신, Life After Life도 안 본 거야?

오, 그 귀여운 저승사자 친구? 난 그에게 호감이 많아 :)

아무튼 얼른 극장에서 보고 싶네!]

해외 애니메이션 팬사이트의 반응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 해외 영화제 수상도 꿈은 아니겠는데?”

그렇게 이선화 감독이 단꿈에 부풀어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저는 데니스 윤. 넷플러스 한국지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넷플러스요?”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무척이나 낯익었다.

넷플러스.

업계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으니.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사용자 중심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OTT(Over The Top) 플랫폼.

최근 미국 등 영어권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들었다.

넷플러스를 안 보면 대화가 안 통하는 수준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있다는 카더라는 들었는데, 설마 그게 진짜였어? 벌써 한국지사까지 세운 거야?’

한국지사가 있다는 건.

그들이 이미 한국 서비스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예. 이번 한국에서 서비스를 결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데니스 윤이라는 남자는 나서서 미리 설명했다.

“를 최근 관람했습니다. 매우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감탄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번 만나 뵙고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혹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비즈니스라니.”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데니스 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귀사의 영화인 <날개>, 그리고 최근 개봉한 신작 . 이 두 작품을 저희 넷플러스에서 서비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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