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유진의 팬카페 ‘대박유진’.
처음에는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었으나.
곧 회원수가 만 명을 넘어가며 점차 체계화되었고.
팬카페 운영자 및 스탭들은 주역 매니지먼트와 직접 소통을 나눌 정도.
규모가 커짐에 따라 회사처럼 조직도가 갖춰졌고.
스탭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어그로는 칼같이 차단에.
괜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게 가이드라인도 확실히 잡아놓았다.
[유진이 절 대 지 켜
박유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지금부터 나와 박유진은 한몸이며 박유진에 대한 공격은 곧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어린애한테 꼬투리 잡는 열폭종자들 있으면 가서 조져버리겠음 ^^]
이들의 특징이 있다면, 유진에 대한 비난과 악플엔 매우 강경대응한다는 점이었다.
유진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점 때문일까.
무시무시할 정도의 추진력을 통해 악플러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만큼 유진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
아무튼.
대박유진의 성장세는 유진이 11살이던 작년이 아주 피크였다.
<데드맨>,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염라면 광고, 거기에 그 귀하다는 예능 출연까지.
온갖 떡밥이 넘쳐났고, 덕분에 팬카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진이 화보집 전권 구합니다...
하 나는 왜 올해 입덕해가지고 ㅠㅠㅠㅠㅠ
작년 화보집이 그렇게 대박이었다는데... 늦덕이 죄다...]
유진이 매년 발매하는 팬카페 한정 화보집.
11살의 유진을 담아낸 화보집은 한정판매였음에도 불구하고 10만부가 넘게 팔렸을 정도.
원래대로라면 유진의 열일 덕에 평소라면 활기가 넘쳤을 그곳이지만.
[아... 유보싶... 유진이 보고싶다는 뜻...ㅠ
유진이 넙튜브 영상 올라온지 일주일 하고도 12시간 34분 27초 지남...
요즘 유진이 바쁜가 ㅠㅠㅠ 떡밥이 없어
하긴 요즘 넘 열일해서 쉴 때가 되긴 했는데...폭식하다 굶으려니 너무 허해 ㅠㅠㅠㅠ]
갑작스레 찾아온 떡밥 흉년에 팬들은 애가 타는 중.
예능 활동이 거의 없는 유진이었고, 팬들로선 그 아쉬움을 넙튜브 영상으로 채웠는데.
최근엔 그마저도 업로드가 뜸했다.
[일본 매니지랑 계약했다더니 그거 준비 중인가??
일본 진출하면 어캄... 일본어 공부해야하나? ㅠㅠ
울 유지니 ㅠㅠㅠㅠㅠ 세계로 뻗어나가는 건 좋은데 ㅠㅠㅠ 뭔가 뺏기는 느낌 들구 ㅠㅠㅠ]
그렇게 여러모로 아쉬움이 넘쳐나고 있을 때.
[님들 지금 백룡이 채널 ㄱㄱ!!
거기에 유진이 나오는 것 같은데 달려가자!!]
갑작스레 백룡이의 채널에 올라온 하나의 동영상.
[백룡이는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검증해보았습니다!]
해당 영상은 급히 편집한 듯 다소 날것의 느낌이 풍겼다.
평소엔 넙튜브 유행을 선도할 정도로 세련된 편집 스타일을 가졌는데 말이다.
마치 급하게 영상을 만든 느낌이랄까?
하지만 팬들에겐 이마저도 좋을 뿐.
영상이 시작되자.
여느 때와 백룡이와 같이 유진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백룡이에 대한 영상 중에 그런 댓글이 많더라고요. 백룡이가 저만 엄청 잘 따른다고, 백룡이가 얼빠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검증해보았습니다! 저 말고 다른 미남이 등장해도 백룡이는 잘 따를까요?]
그러면서 등장한 남자는.
유진의 말대로 훤칠한 미남이었다.
[와 훤칠하네 ㄷㄷ
잘생겼네 ㅎ 유진이보다는 아니지만
뭔가 일본형 미남이네]
그렇게 드라이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저거 후루야 아님??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후루쨩이 왜 여기서 나와!!!
ㄴ 후루야가 누군데 씹덕아
ㄴㄴ 완전 유명한 일본배우임; 카드묵시록 도이지랑 사이코메트릭스에서 주연 맡았음
아니 여기서 후루쨩이 왜 나와????? 박유진이랑 뭐 있음??
ㄴ 박유진이 계약했다던 회사가 후루야랑 같은 회사 ㅇㅇ
ㄴㄴ 헐 ㄹㅇ루다가?
뭐야 둘이 벌써 친구 먹은거야??
같은 회사 된 기념으로 영상 찍는 건가?]
후루야의 애칭을 부르며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소식은 일본에서도 급속도로 퍼졌다.
[후루야가 박유진의 고양이 서브채널에 등장했다는데??
이 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 당황스러워
그런데 후루쨩 언제 한국에 간 거야?
귀여운 고양이. 박유진. 그리고 후루야. 오, 이 세명의 조합 매우 좋은ww]
덕분에 해당 영상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대혼돈의 장이 되었다.
한편, 영상 속 백룡이는 후루야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후루야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샤아아아악!]
백룡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백룡아. 저 형 얼굴 좀 자세히 봐봐. 잘 생기지 않았어?]
[먀아! 먀아!]
[음? 별로라고? 역시 형이 제일 잘 생겼다고?]
[······정말 그렇게 말하는 거 맞아?]
영상 속에서 여태 침묵을 지키던 후루야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진은 이를 가뿐히 무시.
[자, 고민 해결! 백룡이는 얼빠가 아니라 유진빠였습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나 했으나.
아직 재생시간은 한참 남아있었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죠. 갑자기 또 궁금해지네요. 우리 천재냥이 백룡이는 설마 우리말 말고 일본어도 알아들을까요? 어때요, 후루야 형? 2개국어를 알아듣는 고양이가 있을 거 같아요?]
[뭐? 어······없겠지. 그런 고양이.]
[내기할래요?]
그리 말하며 일본어로 앉으라고 말하는 유진.
그러자 백룡이는 그를 알아듣고 앉았다.
심지어 백룡이의 특기인 죽은 척하기도 모두 알아들었다.
[제가 이겼죠? 벌로 제 넙튜브에 1회 강제 출연해야해요.]
[······순 제멋대로네.]
그에 대한 댓글 반응은.
[백룡이 눈이 까다롭네 후루야조차 걸러버림ㅋㅋ
역시 유진이 비주얼은 원앤온리... 대체불가...
근데 와 백룡이 일본어도 알아들음 ㄷㄷ 진짜 천재 아님?
이 정도면 넙튜브가 아니라 <세상에 이런저런 일이>에 나와야 할 거 같은데 ㅋㅋㅋ
난 1개국언데...백룡인 2개 국어를 하네...
ㄴ 코이츠 인간녀석www 고양이에게 패배해버린ww
이 정도면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 탈을 쓴 사람 아님?
RC카처럼 누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거 아니냐고 ㅋㅋ]
여러모로 유쾌했다.
그렇게 영상은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튼 오늘의 결론! 백룡이는 저만 좋아한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백룡아, 너도 시청자분들한테 인사해!]
[먀아-]
[형도 인사해요!]
[어? 어어. 안녕히 계세요.]
오랜만에 등장한 넙튜브 떡밥.
거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게스트, 일본 톱배우 후루야.
[오늘 덕질은 이거다 ㅠㅠㅠㅠ
얼마만의 떡밥이냐... 후욱후욱...
ㅁㅊ 후루야랑 유지니 투샷이라니 진짜 최고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인데 은근히 맛있네 ㅋㅋ
아 이 영상만 1시간째 돌려보는 중...인강을 이리 봤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
이에 해당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는 사람도 생기는 게 당연.
[야 방금 나 소름 돋는 거 발견함...JPG]
그 과정에서.
누군가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3분 42초대 저기 화면 끝부분 캡쳐 화면임
저 종이 뭉치 보이지
저기에 뭐라 글씨 쓰여있음]
해당 장면에 나타난 한 종이뭉치.
그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뭐야 저거 대본 아님?
ㄴ 계약서가 아니고?
ㄴㄴ 저정도 두께의 계약서면 변호사도 기절할 듯 ㅋㅋ
글자 확대 좀 해봐
그림판으로 하려니 픽셀만 깨짐...
누구 능력자 없나?]
잠시 후.
[야 내가 제대로 감별해옴
저기에 드라마 <메모라이즈 – 모든 것을 기억하는 소년> 대본이라고 쓰여있는데??]
해당 글자를 요령껏 감별해낸 감별사가 등장했다.
[뭐야 저 일본드라마 같은 제목은?
ㄴ 일본꺼 맞음ㅋㅋ 일단 제목은 일본 소설임
헐! ㅁㅊ 메모라이즈 둘이 메모라이즈 출연하는 거야??
이미지도 딱 맞네 그 천재 소년이 유진이고 형사는 후루야가 할 듯
ㅁㅊ 그 소설 개존잼인데!! 거기에 유진이가 나온다고??
후루야랑 박유진 버디물?? 개맛도리 조합 ㄷㄷ
뭐야 이 한일 퓨전음식은ㅋㅋㅋ]
박유진과 후루야의 투톱 조합 일본 드라마가 나온다!
그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가기 시작했다.
*
얼마 뒤.
“활활 불타네요.”
휴대폰을 흘끔거리던 유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 불판이요. 형. 고기 다 타겠어요.”
제법 능숙한 솜씨로 휘적휘적 고기를 굽는 유진.
후루야는 그런 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식가인 후루야가 밥을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건 거의 처음 있는 일.
‘이 녀석, 대체 뭐야?’
주간문격에 사진이 찍힌 이후 박유진이 제안한 것.
그건 바로 박유진이 관리하는 넙튜브 채널 영상을 하나 찍는 것이었다.
그것도 서브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채널에 말이다.
‘처음엔 대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지.’
처음에는 고양이와 짧은 넙튜브 영상 하나 찍으려 다시 한국에 가는 게 심히 번거로웠으나.
유진의 계획을 들은 와타베, 그리고 수뇌부가 등을 떠밀었다.
“야.”
“전 박유진이에요.”
“그래, 박유진. 그 턱시도 고양이. 언제 데려온 거야?”
“얼마 안 됐어요. 완전 귀엽죠? 제 동생이라 한 미모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고양이가 아닌 거 같던데?”
“엥? 왜요?”
“······아니다. 됐어.”
오늘도 늘어가는 백룡이의 종족 의심설.
아무튼.
어차피 그 고양이는 눈속임이었을 뿐이다.
‘진짜 의도는 결국 <메모라이즈> 대본 표지를 유출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번에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 <메모라이즈> 대본 표지 유출.
그 때문일까.
[백룡이는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검증해보았습니다!
조회수 – 5,012,334]
조회수는 삽시간에 500만을 찍었다.
유진의 본채널도 아니고, 고양이 백룡이의 채널에 후루야가 등장했다는 사실.
한국, 일본 양국에서 핫한 배우들이 드라마를 찍는다는 화제성.
거기다 공식 발표가 아닌 ‘실수로 인한 유출’이라는 점.
그 자극적 키워드가 엄청난 어그로를 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실수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도적인 실수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뭐가요?”
“넙튜브 영상 하나만으로 전세를 완벽히 뒤집었잖아. 모두 네 아이디어였지.”
이 모든 판을 짠 것이 바로 저 12살짜리의 꼬마였고.
“음. 제가 봤을 때 사람들은 공식 발표보다 유출, 실수, 비밀. 이런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한 번 해본 거예요.”
유진은 담담히 말했다.
현재 세상은 넙튜브의 시대.
사람들은 때로 공식 발표보다도 넙튜브에서 떠도는 찌라시에 열광한다.
소위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부류들이 몇십,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말이다.
박유진은 그런 트렌드를 정확히 짚어냈고.
심지어 이용하기까지 했다.
‘얘 진짜 12살 맞아?’
그런 후루야의 속내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
“실은 제 학교 친구들을 보고 알게 됐어요. 쉬는 시간마다 그런 거 많이 보더라고요. 막 연예계 소식을 담은 채널 같은 거요.”
유진이 덧붙여 말했다.
상당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어린아이들이라면 더더욱 넙튜브에 의존적일 테니.
‘이렇게 보면 또 진짜 어린애 같고. 뭐지?’
어느 쪽이든.
박유진이 판을 제대로 달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 꼰대 같은 윗사람들이 모두 오케이를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귀찮게 수 싸움을 하며 주간문벽에 주도권을 주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배우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걸로 공식발표도 JG가 원하는 대로 일정을 조율할 수 있고 말이다.
오히려 지금 공식발표를 미루면 미룰수록.,
다양한 추측과 루머가 생성되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태니까.
“그 주간문벽이라는 곳에서도 기사 냈더라고요? 근데 별로 조회수는 안 나오나 봐요. 댓글도 별로 없다던데.”
유진의 말대로.
주간문벽은 황급히 기사를 냈으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수많은 사이버 렉카와 기자들이 활개친 이후였으니까.
그조차도 백룡이의 채널 동영상 조회수만 올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후루야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유진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이름은 박유진. 탐정이죠.”
나온 대답은 무척 실없는 것이었지만.
그러자 후루야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네가 무슨 코난 도일이야? 장난치지 말고.”
“에이, 누구긴요. 형이랑 같이 재미있게 작품을 찍을 아역배우죠! 아. 말 나온 김에 우리 자체적으로 리딩 한 번 해볼까요? 그때 합 주고 받기로 해놓고 못했잖아요.”
후루야는 이미 필모그래피를 통해 ‘배우 박유진’에 대해 알고 있었다.
뛰어난 연기력과 독특한 캐릭터 해석을 갖춘 배우.
이번 기회로 ‘연예인 박유진’에 대해서도 알게 된 기분이었다.
‘내가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순진한 듯 영악하고.
즉흥적인 듯 교묘하다.
흐름을 읽고 판을 세팅하는 능력.
그건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다.
고작 12살짜리가 말이다.
‘최근 내가 봐왔던 신예들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에 있어.’
신예들은 어떻게든 후루야와 가까워지기 위해 발버둥이었지만.
오히려 박유진은 후루야를 기꺼이 이용하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힐지도 몰라.’
후루야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은 자의 감이었다.
“후루야 형?”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적잖은 고양감이 의욕을 부추겼다.
‘그래. 이런 걸 원했어.’
최근 자사 신예 띄우기로 이용당해왔던 후루야.
“좋아. 어디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이번 작품.”
그의 눈빛이 신인처럼 불타올랐다.
“이거 다 먹어.”
갑자기 불판 위의 고기를 모두 집어 유진의 그릇에 놓아주는 후루야.
대식가인 그에게 이건 어마어마한 호의의 표현이었다.
“너무 많은데요?”
“약한 척은. 너 성장기잖아. 팍팍 먹어야 쑥쑥 크지. 좋아, 오늘 먹고 죽어보자고. 난 한국말 못하니까, 네가 종업원 좀 불러봐. 갈비 5인분 더 시켜. 내가 쏜다.”
갑자기 사람이 180도 달라진 후루야.
그에 유진도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
얼마 뒤.
한국에선 <찬란>의 개봉일이 훌쩍 다가왔다.
“너도 같이 홍보를 다니면 좋을 텐데.”
수화기 너머 이순철이 진한 아쉬움을 뿜어냈다.
현재 <입김> 촬영으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유진이다.
그렇기에 <찬란> 홍보에는 참석할 수 없는 상황.
“어차피 전 특별출연인걸요? 나오는 시간이 5분도 안 될 거 같은데.”
“하지만 알고 있지? 그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영화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담아낸 영화잖아요? 주인공은 할아버지예요. 그러니 할아버지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게 옳아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동시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특별출연이 관객들에게 큰 임팩트를 남기기 위해선, 유진이 많이 노출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신은 임팩트 있는 손님, 그 정도 포지션이면 족했다.
“근데 할아버지. 국제전화라 비싼데 괜찮으세요?”
“나이를 이 정도 먹으면 돈은 돈이 아니야. 더 중요한 건 시간이지. 너와의 통화시간을 사는데 이 정도면 값싼 거란다.”
“오, 감동이네요!”
“그래서. 일본 생활은 좀 어떠냐?”
“비슷한 듯 새로워서 재미있어요. 덕분에 적응도 더 빨리하는 거 같고요.”
<입김>에 출연하는 일본인 배우들과도 어느새 매우 친해졌고.
<메모라이즈>를 통해 호흡을 맞출 후루야 역시 유진을 자주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밥을 엄청 먹어서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일본의 무명배우와 톱스타.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것이 현재 유진의 친화력이었다.
“허허. 이 할애비는 아직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너는 이 할애비보다 몇십 년은 더 앞서가는구나.”
“할아버지가 원하시면 얼마든지 진출하실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아직도 <호구> 얘기하는 사람 많아요.”
검도를 소재로 한 미니시리즈, <호구>에서 유진의 검도 스승으로 출연했던 이순철이다.
무엇보다 ‘충무로의 왕’이라 불리는 이순철인만큼.
일본 진출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아니.”
그러나 이순철은 해외진출에 관한 욕심을 완전히 버린 상태였다.
“내게 남은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 영화판을 위해 더 힘쓰는 것이겠지.”
스스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후배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게 이순철이 앞으로 하려는 일이다.
“그런데 유진아. 정말 당분간 일본 활동에만 전념할 생각이야?”
“네. 그럼요.”
“잔인한 말이지만, 대중들은 따뜻한 동시에 냉정해. 조금만 흠을 보이면 비난하고, 조금만 안 보여도 잊어버리지.”
“잊어버리지 말라고 여러 가질 준비해놨거든요!”
조만간 개봉할 <찬란>.
급성장한 백룡이의 넙튜브 채널.
넥스트의 컨텐츠인 소나기.
넷플러스에 해외 서비스를 시작할 .
<스마트 좀비>는 칸 단편영화 경쟁부문에 출품한 상태다.
그리고 일본에선 재오와 함께 하는 영화 <입김>의 촬영에 들어갔고.
후루야와 콤비를 이루는 드라마 <메모라이즈>가 대기 중이다.
그야말로 착실하게 준비해놓은 셈.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금방 정복하고 돌아갈게요!”
어마어마한 자신감.
유진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그리 말했다.
*
어느 날 새벽.
유진의 팬카페 대박유진엔 글 하나가 올라왔다.
[대박이들에게
-유진이가]
바로 유진의 글.
대박유진에는 오랜만에 업로드되는 것이었다.
평소 팬들에게 글을 쓸 때는 각종 이모티콘으로 애교를 부리는 유진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일체 없는, 진지한 글이었다.
[안녕 대박이들!
유진입니다.
새벽이라 아마 대박이들은 대부분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부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일어났을 땐 그 꿈보다 행복한 하루가 펼쳐졌으면 좋겠고요.
매번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응원해줘서 감사드려요!
여러분에 대한 감사는 몇 번을 해도 부족한 거 같아요.
저한테 팬이라는 존재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여러분에게 느끼는 소중함은 평생 처음과 같을 거예요.
진심인 거 알죠?
여러 매체를 통해 전해졌겠지만.
저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준비 중이에요.
아마 당분간은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될 거 같아요.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배우로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요즘 시대가 참 좋죠?
해외 영화나 드라마도 곧바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전 계속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항상 대박이들 곁에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우리 식구들!
지혜 누나랑 선미에게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넥스트도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죽음조 누나 삼촌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럼 좀 더 성장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해요.
조만간 다시 만나요!]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