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67화 (167/237)

167화

빅터의 이번 콘서트의 제목은 ‘COME BACK HOME’이었다.

말 그대로 빅터의 완전체 컴백을 뜻하는 것.

사실 아이돌은 오래 활동할수록 개인 활동에 치중하기 쉽다.

그 과정에서 재계약 시즌이 오면 나가는 멤버도 생기기 마련이고.

완전체 활동은 과거의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빅터 역시 아이돌로서 데뷔한지 적지 않은 연차가 되었고.

각 멤버들이 개인활동에서 뚜렷한 강점을 보였다.

유이치는 발라드 계통의 솔로 음악.

은호와 민혁은 ‘V2’라는 유닛으로 힙합 음악을 했고.

재오는 예능과 연기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예언함 2년 내로 빅터 쪼개짐

ㄴ 어그로 ㄲㅈ 아주 염불을 외라

솔직히 쎄한 거 맞잖아... 지금 몇 년째 개인활동만 돌고 있는데 다들

재계약 시즌 곧 오잖아 솔찌 불안해 죽겠어

빅터는 하나야 쪼개 질 리가 없어... 안돼...

이렇게 논란 없는 아이돌 처음 파본다고 ㅠㅠㅠ 제발 행복덕질하게 해줘...]

그런 우려도 돌았으나.

빅터 멤버 전원은 보란듯 UB엔터와 재계약했고.

곧장 콘서트를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컴백’이라는 키워드는 빅터의 팬들에게 특별했고.

여러모로 적절한 네이밍이었다.

[돌아와줘서 고마워 ㅠㅠㅠ

빅터는 영원히 하나일 거란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ㅠㅠㅠ]

3회차 모두 서울돔 전석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운 빅터.

2일차까지 진행된 빅터의 콘서트는 연일 호평이었다.

[진짜 컴백콘 너무 좋다 ㅠㅠㅠ

벌써 2일차까지 한 거 실화??? 시간 왤케 빨리 가냐

셋리부터 무대 의상 헤메 다 미쳤음 ㅠㅠㅠ 진짜 극락체험

올콘 뛰는데도 벌써 마음이 헛헛... 하필 막콘은 쩌리석이라 ㅠ

ㄴ 와 금손... 어케 올콘 잡았냐 ㅠㅠㅠ 부럽

ㄴ 난 첫공도 겨우 개쩌리석 잡았는데...ㅎ 현타오네

아 빅터 완전체 보니까 왜 눈물이 나냐 ㅠㅠㅠ

이 멤버 리멤버... 기억해 오늘]

그런 흥분의 도가니 속.

유달리 조급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콘서트 보고 온 사람들 한테 질문 유진이 언급나옴???

재오나 유이치가 언급이라도 한 번 안함?? ㅠㅠㅠ 급해]

해당 질문글에 달린 답변은 이러했다.

[응 언급 전혀 없었음

솔직히 한 번은 그냥 언급할 줄 알았는데...재오랑 워낙 친하니까

그 카더라 때문에 일부러 더 조심하는 건가?? 싶더라]

일파만파로 커진 유진의 콘서트 참여 찌라시.

이 때문에 대박유진의 대박이들은 오매불망 관련 소식만 기다리는 중.

그러나.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언급이고 떡밥이고 아무것도 안 나옴...

유진이가 막콘 게스트일 확률 현실적으로 몇퍼라고 봄?

ㄴ 0.01퍼 정도?

솔직히 없다고 봐야지... 카더라가 좀 뜬금없긴 했어

ㄴㄴ 아... 혹시나 하고 표 잡았는데 양도해야하나...

ㄴㄴㄴ 제발 나한테 양도해 제발...

ㄴㄴㄴ 줄섭니다

ㄴㄴㄴ 줄222

1,2일차 토크 빼곤 셋리 다 똑같음

ㄹㅇ 내가 봤을 때도 게스트 아예 없는 거 같은데...

컴백콘이라 그냥 온전히 빅터에게 집중한 듯??

그럼 그 손짤은 뭐임??

ㄴ 댄서나 기획사 사람이랑 같이 찍은 거 아님?

ㄴ 아니면 심령사진 ㄷㄷ 사실 유령이었던거임

ㄴㄴ 야 무섭게 그런말 하지마로라 ㅠㅠㅠ]

보통 아이돌 팬덤에서 다른 사람 언급이 나오는 걸 반길 리가 없다.

이상하게 엮거나, 악질적으로 비교하는 등의 어그로가 끌리니까.

그래서 아예 언급을 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빅토리 내에서 유진만큼은 예외였다.

그만큼 유진이 빅터 멤버들과 인연이 깊기도 하고.

[재오, 배우 박유진을 향해 애정을 드러내다! “항상 도움을 주는 정말 고마운 친구. 우정 영원했으면 좋겠다”]

[빅터의 유이치, “유진은 재능이 많은 사람······부럽다. 내가 그의 제자가 되고파” 인터뷰 화제!]

특히 재오와 유이치가 유진을 워낙 좋아하니까.

인터뷰마다 언급되는 건 이제 익숙해진 일이었다.

[아 근데 빅터콘에 왜 자꾸 박유진 얘기야 ㅡㅡ 눈치 챙겨 좀

ㄴ 왜 그러냐; 찌라시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ㄹㅇ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진이 관련된 일인데 빅토리들은 이해함

우리 리더님 연기 뚫어준 게 유진인데...이 정도야 뭐

우리도 빅터 애들 소식 없으면 답답하고 그러자나...이 시기엔 이해해주자]

열일하다가 갑자기 떡밥이 없는 최애.

이는 연예인을 덕질하다 보면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빅토리들도 그에 대해 공감하는 것.

[그래 우린 유진이 컴백이나 기다리자...

유진아...할매다...너 기다리다 이렇게 늙어버렸다...책임져라...

하긴 유진이가 빅터 콘서트로 컴백할 리가 ㅠ]

그렇게 대박이들의 기대도 시들시들해져갈 무렵.

3일간 이어진 빅터의 콘서트는 마지막 날에 접어들었다.

*

3일차 콘서트, 즉 막콘날.

리허설을 하고 있는 멤버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 맞다. ‘썸머나잇’ 부를 때 조명 좀 더 밝게 해주세요. 어제 콘에서 조명이 조금 약했던 거 같던데.”

“마이크 소리 좀 더 키워주세요. 지금도 음향 좋은데, 목소리만 더 잘 들어가면 될 거 같아요.”

“여기 전환되는 타이밍 좀 더 빨랐으면 좋겠는데.”

이미 콘서트 경험만 해도 몇십 번.

이제 멤버들은 스스로 의견을 내며 현장 상황을 조율했다.

이틀을 불태우고 마지막 콘서트라 지칠 법도 한데.

그들의 얼굴은 프로페셔널함, 그리고 열의가 넘쳤다.

특히.

“유이치 너 뭐야? 연습실에선 좀비 같더니.”

“팬들 만나니까 기분이 좋아. 힘이 넘쳐.”

“하하. 유이치는 진짜 천상 연예인이라니까. 애가 무대 체질이야.”

연습 때마 좀비가 따로 없던 유이치.

그가 완벽히 부활했을 정도.

“근데 뭔지 알 거 같지? 2만 5천명이 한번에 함성 질러주고 호응해주니까. 진짜 무대뽕이라는 게 있다니까.”

“진짜. 나 첫콘 첫곡때 진짜 소름돋았잖아. 이야, 서울돔 꽉 채우면 이런 느낌이구나.”

민혁과 은호가 신나서 얘기를 주고 받았다.

막콘에만 참여하는 유진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어때, 유진아. 오늘 컨디션은?”

어느 새 유진의 곁으로 다가온 재오가 물었다.

“당연히 좋죠. 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그래? 다행이네. 어? 유진아.”

“응? 왜?”

“너 긴장했어?”

“내가? 갑자기 왜?”

“아니. 손을 떨고 있길래.”

재오의 말에 유진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

그 말에 유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 내가?’

긴장이란 감정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새삼 과거의 소심했던 성격이 올라올 것도 없고.

‘한창 일하다가 쉰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새삼 긴장할 이유는 없어.’

그렇다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지는 이 감각은 무어란 말인가?

“긴장 안 해.”

“그래, 그래. 우리 유진이 긴장 안 해요.”

유진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 생각하는지.

우쭈쭈 모드가 된 빅터 멤버들.

하지만 유진의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 유진이 느끼고 있는 감각은 긴장이 아니라.

‘알겠다. 기대감이구나.’

유진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서울돔을 가득 채운 관객들.

그 사이에서 등장한 유진.

갑작스러운 등장에 쏟아지는 환호성.

유진이 나오지 않아 실망했던 사람들의 환희.

그 모든 것이 쏟아지는 무대 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생각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그림이었다.

남의 무대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것조차 이런 느낌인데.

‘나도 언젠가 공연해서 서울돔을 꽉 채울 날이 오려나?’

아이돌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배우로서 2만 5천 좌석을 꽉 채운다는 것.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보이는 일이었으나.

‘재밌겠는데?’

유진은 먼 미래, 자신만을 위해 모인 수많은 팬을 상상했다.

유진의 상상은 항상 현실로 이루어졌으니까.

“자, 그럼 가자!”

그러려면.

우선 이 리허설을 잘 해내는 게 문제다.

“좋아. 춤신춤왕의 실력을 보여줘야지.”

“그래. 갓 태어난 기린 같은 네 춤 실력 좀 보여줘라!”

*

빅터의 컴백 콘서트.

그 마지막날.

서울돔에는 전날이나 전전날보다 사람이 매우 많았다.

“급한 일 생기신 분 안 계신가요?”

“원가양도 구합니다. 원가양도하실 분?”

어떻게든 티켓을 구해보려는 팬들.

“망원경 필요하신 분 없어요?”

“시원한 얼음물 팝니다! 3시간 동안”

“응원봉!”

망원경이나 얼음물 따위를 파는 잡상인들과 암표상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런 식의 장사는 불법입니다.”

얼마 가지 않아 곧 UB엔터 측의 경호원들이 그들을 몰아내고 있으니.

이런 분위기가 처음인 사람은 자연스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와. 분위기 살벌하네.”

바로 여기.

식품기업 미도의 이희승 본부장처럼 말이다.

“차라리 얼른 콘서트 시작하면 좋겠다.”

한숨을 푹 내쉬는 이희승 본부장.

그녀는 4년 전, 유진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어마어마한 효과를 누렸다.

아재라면이라고 불리며 젊은층의 맵라면.

그 이미지를 염라면 광고 하나로 뒤집지 않았던가.

물론 당시 매운 라면 열풍이 불던 터라, 매운 맛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 맵라면이 그 유행에 편승하기도 했지만.

‘박유진 배우의 염라. 그리고 직접 지어준 염라면이라는 네이밍. 그리고 광고 안에서 훌륭한 연기력까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유진의 염라면 광고는 ‘역대급’이라며 주기적으로 끌올 당하고 있었다.

그만큼 염라라는 캐릭터가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것.

콜라보 기간 종료 이후.

미도 측은 MBS와의 협상을 통해 맵라면을 아예 염라면으로 바꾸었다.

‘박유진 배우를 반드시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나야. 회사 내에서도 확실히 이번 건에 대해 칭찬과 포상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러나.

정작 이희승 본부장은 행복하질 못했는데.

유진이 불쑥 일본으로 넘어가버리질 않나.

심지어 최근은 아예 떡밥이 전무한 상태였으니까.

“설마 이렇게 떡밥이 없을 줄은.”

얼마나 떡밥이 없으면 인터넷 찌라시만 믿고 빅터 막콘을 예매했을까.

피말리는 예매 전쟁에서, 티켓팅 초보인 이희승 본부장이 막콘.

그것도 1층의 좋은 자리를 얻었다.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녀 정도의 인맥이라면 얼마든지 티켓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겠으나.

그녀는 빅터를 보러가려는 게 아니었다.

“정말 박유진 배우가 나오려나.”

유진이 참여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빅터 콘서트다.

최소한 돈을 내고 가는 것이 예의 아니겠는가.

‘덕질만이 내 삶의 원동력인데······.’

일이 아무리 잘 굴러간다 해도.

결국 일은 일이다.

그런 이희승을 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덕질이거늘!

지난 반년 넘게 이어져 온 공백은 갑작스러웠고, 또 고통스러웠다.

솔직히 다른 배우의 팬이 되어볼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실제로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희승에게 박유진만큼의 감동과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 표까지 예매한 거야. 내가 아는 박유진 배우라면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박유진은 쇼맨십이 있는 천상 연예인이었다.

분명 복귀도 요란하게 할 것.

‘그리고 루머가 정말 루머일 뿐이었다면, 주역 매니지먼트 측에서 부정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여러 근거를 종합해 내린 판단.

아니, 사실 그건 다 핑계일 뿐이고.

‘뭐라도 기대할 곳이 필요해.’

이런 기대감조차 없다면.

아무 기약 없이 유진의 복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니까.

“이제부터 빅터 컴백 콘서트 입장 시작하겠습니다!”

안내요원의 멘트.

잠시 후 이희승을 비롯한 관객들이 입장을 모두 완료했다.

[콘서트 시작 전 안내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지정된 좌석에서 관람해주시기 바라며, 안전요원의 통제에 적극동참해주실 것을······.]

안내 멘트가 종료된 이후.

그렇게 시작된 막콘.

시작부터 이희승의 혼을 쏙 빼놓았다.

무대에서 폭죽과 불꽃이 터지더니.

귀에 때려 박는 음향과 함께 빅터의 무대가 시작됐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유이치!!”

“재오 오빠!! 사랑해!!”

“은호야!!! 여기야!!”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팬들.

마지막 콘서트이니만큼, 마지막 체력과 덕심을 모두 쏟아내는 것이다.

2만 5천 명이 내지르는 함성.

그건 거의 땅이 울릴 지경이었다.

“와. 대단하다.”

이희승도 압도될 지경.

한국 최고의 남돌로 불리는 빅터.

서울돔의 규모에 걸맞는 화려한 무대 세팅.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셋리스트.

일반 TV 무대에선 볼 수 없는 각종 리믹스와 군무 등의 퍼포먼스까지.

모두가 콘서트를 즐기고 있었다.

반면.

그 사이에서 진정 섞이지 못하고 있는 이희승.

‘COMEBACK. 이번 콘서트 제목이랬지.’

서울돔 곳곳에 걸린 이번 콘서트의 제목.

‘그래, 즐겁겠지. 오랜만에 빅터 멤버들이 모여 완전체로 콘서트를 하는 거랬으니까.’

컴백의 순간은 스타에게든, 관객에게든 모두 짜릿한 순간일 것이다.

이희승만 해도 그 찌라시만 믿고, 그 바쁜 스케줄에 짬을 내 이렇게 빅터 콘서트에 온 것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최소한 이 순간을 즐겨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겠지.’

그렇게 이희승이 마음을 내려놓고 관람하려는 그때.

♪~♬~

빅터의 댄스곡, ‘파라다이스’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격렬한 안무와 군무 등.

댄스 퍼포먼스가 중요한 곡이다.

‘파라다이스. 분명 그 손 사진을 올렸을 때도 스윗터엔 파라다이스라는 한 단어만 올라왔지.’

하지만, 막콘까지 진행된 지금에서야. 의미 없는 떡밥일 뿐.

그런데.

“어?”

“평소랑 뭔가 달라? 뭐야? 뭐야?”

‘파라다이스’의 원래 대형과는 다르게 멤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빅터 팬들이 술렁거렸으나.

평소 빅터 팬이 아닌 이희승으로서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저거 누구야?”

“그러게?”

술렁거리는 팬들.

대형이 변하며 자연스레 빅터 멤버들 사이에 섞여든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까.

깊게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백댄서인가 싶었는데, 의상이 모두 통일된 다른 백댄서들과 달리.

그는 확실히 튀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다른 빅터 멤버들에 비해 작은 키에 얇은 체형.

아이돌이나 댄서라기엔 묘하게 뚝딱거리는 움직임.

게다가 춤실력은 다소 미묘했다.

마치 입력값을 그대로 출력해내는 것 같은 로봇 같은 춤.

“어?”

그리고.

춤 못 추는 사람이라고 하면 불현 듯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설마, 혹시?’

그 순간.

‘파라다이스’의 반주가 잦아들고.

대신 잔잔한 음악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빅터의 대표곡 중 하나인 발라드곡 ‘첫사랑’.

그 전주가 흘러나온 것이다.

멤버들도 순식간에 핸드마이크를 손에 쥐고 있었고.

그리고 그건.

모자를 쓴 정체불명의 남자도 마찬가지.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해본 기억만을 안고

나는 너없는 삶을 계속 살아가겠지

재오의 거칠고도 애절한 보컬 이후.

유이치의 고음이 터져나오는 부분.

그런데.

그 순간 마이크를 잡고 있는 건 유이치가 아닌.

바로 모자를 쓴 정체불명의 사람.

내가 그 시절에 두고 온 건

사랑일까 미련일까

답장 없는 편지를 쓰다 지쳐

이젠 너를 보낸다

모자를 쓴 사람은 유이치의 목소리를 완벽히 재현해냈다.

그리고.

유이치의 성대모사와 모창을 누구보다 잘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빅터의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

스윽-

모자가 벗겨지고.

안녕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란 그 말

그 가사와 함께 드러난 얼굴.

박유진이었다.

와아아아아악-!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특별 게스트의 등장.

거기다 그 게스트가 반년 간 소식이 없던 박유진이었다니!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려는 그때.

“쉬잇.”

제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대는 제스처.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팬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건 이희승도 마찬가지.

아니, 사실 그녀는 이미 목소리를 잃었다.

너무 놀라면 그 자리에서 사람이 굳어버리는 법이니까.

내가 그 시절에 두고 온 건

사랑일까 추억일까

받지 않는 전화를 걸다 끝내

이젠 너를 보낸다

짝짝짝-

무대 위로는 감성적인 꽃가루가 휘날렸다.

이윽고 쏟아지는 박수소리.

그렇게 첫사랑 무대가 끝나고.

재오가 유진의 등을 밀어주며 마이크를 잡았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저의 연기 스승님!”

“그리고 한때 저의 음악 제자였죠.”

“조용히 해, 유이치.”

평소라면 웃음이 터져나왔겠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해주시죠.”

터벅, 터벅.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한 소년.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를 관객석 위로 높이 던졌다.

“안녕하세요, 빅토리 여러분! 이렇게 빅터 형들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후, 하.

짧게 심호흡을 한 뒤.

유진은 있는 힘껏 외쳤다.

“배우 박유진입니다! 모두 오랜만이에요!”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

여태 모두가 참았던.

파도와도 같은 함성이 서울돔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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