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185회
뮤지컬 제작사 두잇컴퍼니.
그곳의 사옥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각종 CD나 LP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룸.
그리고 고화질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씨어터룸이었다.
평소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공간이지만.
어느 순간엔 업무를 위한 공간으로 바뀐다.
예를 들면, 오디션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파일을 들어야할 때라거나.
혹은 공연 영상을 검토해야할 때라거나.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올라왔던, 오리지널 <클라우 솔라스> 공연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판타지적 요소로 토니상 받기 힘든데.”
엄기현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자리의 오필승이 대답했다.
“동감이야. 보통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간, 일종의 리얼리즘 계통이 받기 쉬운데.”
“그만큼 잘 만든 극이라는 거겠지. 음악 들어봐. 진짜 선율이 미쳤다니까? 이 타이밍에 전자기타가 들어가서 락적인 분위기 살린 거,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음악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조은아.
두잇컴퍼니의 대표인 엄기현.
무대 디자이너인 오필승.
음악감독인 조은아.
이 세 사람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다.
두잇컴퍼니를 있게 만든 삼각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니까, 이 대단한 작품을 한국에 올려보자고 우리가 모인 거 아니겠냐.”
엄기현이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판타지적 분위기가 살아있는 극이라, 잘만 홍보하면 뮤지컬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한테도 어필할 수 있을 거 같다.”
뮤지컬 <클라우 솔라스>.
클라우 솔라스는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무기로.
불의 검, 혹은 빛의 검이라 불린다.
이 검을 뽑으면 결코 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
이 뮤지컬은 중세의 암흑 시대를 바탕으로.
클라우 솔라스라는 검과, 그에 얽힌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
은둔자 생활 끝에 노인이 되어버린 남자가.
클라우 솔라스를 뽑아들어 다시 영웅으로 돌아가고.
갈등과 성장을 이룩하며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제 곁에 아무도 남지 않고, 검 한 자루만 남는다는 씁쓸한 엔딩이다.
“소재만 보면 유치해보이는데, 이게 또 텍스트에 담긴 의미는 깊단 말이지.”
“토니상 수상 이유를 보니까 대중성과 예술성을 둘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거든.”
주인공만 해도 고결한 영웅과 비참한 은둔자는 한끗 차이이며.
인간의 고귀함과 비천함, 선택과 실수, 용서와 연민 등.
다양한 메시지가 집약된 뮤지컬이다.
게다가 뮤지컬의 성지, 브로드웨이산 뮤지컬 아닌가.
자본을 쏟아부은 티가 나는 소품과 조명들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와, 무대 연출 진짜 멋있네.”
특히나 눈길이 가는 것은 바로 무대소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바위산.
클라우 솔라스가 꽂힌 곳으로.
무대 위 그 실제 크기가 10미터가 넘는다.
이 세 사람은 그를 영상으로 보는 것임에도 어마어마한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우리 식으로 구현할 수 있지?”
“돈이 엄청 들겠는데.”
그때.
조은아가 다른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쉿, 다들 조용히 해. ‘그 장면’ 나온다.”
영상 속에서는 주인공 ‘헨리’ 역의 배우가 힘겹게 바위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전혀 주인공 같지 않은, 늙은 할아버지의 얼굴.
그러나.
바위산에 올라가 후드를 쓰고 검을 뽑는 순간.
검에서 빛이 뿜어져나오는 듯한 환상적인 무대연출이 펼쳐졌다.
잠시 후.
헨리가 후드를 벗는 순간, 늙은 얼굴은 사라지고 젊은 영웅의 모습이 등장했다.
후드를 썼을 때 분장을 모두 벗겨낸 것.
더는 물러서지 않겠어
시대의 어둠을 가로질러
내게 쏟아지는 빛무리
이 검에 맹세해
다시 나 걸어가리라
저 빛을 향해
전자기타를 사용한 락 느낌의 사운드.
한순간에 젊어진 주인공.
여러모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장면이다.
“크으. 그래, 브로드웨이에서 이 장면을 보고 아주 뿅 갔지 아마?”
“그래. 라이센스 공연 싫어하는 네가 갑자기 공연 들인다고 했을 때 뭔 변덕인가 했다. 그런데 저 장면 보니까 바로 납득 가더라.”
그야말로 무대연출이 줄 수 있는 쾌감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장면.
바로 넘버 ‘빛의 길’에 나오는 연출이다.
“이 장면 때문에라도 탐내는 배우들 많을 거다. 오디션 공고 냈지? 배역별로 얼마나 몰렸어?”
“주인공인 헨리 역에만 100여명이 몰렸어.”
“워후.”
첫 토니상 수상.
매력적인 넘버와 캐릭터.
그로 인해 여러 실력 있는 배우들이 오디션에 몰렸다.
1차 오디션은 방식은 ‘빛의 길’을 부른 파일을 제출하는 것이었고.
파일명을 이름으로 저장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벌써 이름값 높은 배우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이름들 보니까 역시 네임드들 많더라. 정성진, 손향민, 진춘수. 강홍수까지.”
유진과 함께 라앺에서 호흡을 맞췄던 정성진.
그 역시 이번 오디션에 참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아이돌도 제법 되던데? 래오, 지아, 유민, 베이 등등.”
“전 배역 오디션 진행 아니었으면 아마 대형 기획사에서 꽂으려 난리 쳤을 거다.”
“그러니까 말이야. 원작자 양반들이 스타 캐스팅은 싫어한다고 해서 아이돌은 절대 불가능할 거 같은데.”
1차 때는 인적사항을 적지 않는다.
1차 때 제작자 측에서 알 수 있는 건 이름 뿐.
대신 1차 합격을 하면, 2차 때 직접 대면하는 구조.
3차가 바로 원작자 앞에서 보는 오디션이다.
하필 원작자 측에서 스타 캐스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터라.
1차에서부터 두잇컴퍼니는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상태.
“그런데 그 인간들 눈치 보느라, 이름값 좀 있다고 실력있는 사람들 떨어뜨릴 수는 없잖아?”
“일단 뽑아. 그럼 그네들이 알아서 3차에서 거르겠지.”
그렇게 영상 보는 것을 관두고.
각자 헤드폰을 끼고서 1차 오디션 파일을 듣는데 집중하는 세 사람.
잠시 후.
“이 사람 노래 뭐야?”
누군가의 파일을 듣던 엄기현이 흠칫 놀라 중얼거렸다.
“뭔데?”
“무슨 일 있어?”
그러자 다른 두 사람이 흥미를 보였다.
모두 다른 사람이 불렀다지만.
같은 노래를 주구장창 듣고 있으니 집중력이 떨어질 법도 하다.
“자, 들어 봐. 좀 놀랍네.”
엄기현이 헤드폰을 빼고, 스피커 모드로 전환.
해당 배우의 노래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성악 발성은 아니고, 그렇다고 팝적인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네.”
“실력이 부족한 건 전혀 아니야. 음정, 박자도 정확하고 호흡도 부족하지 않아.”
“후보정한 거 아니야?”
“기계로 만진 티는 별로 안 나는데.”
각자 평가를 내놓는 조은아와 오필승.
“그래서, 엄기현 대표님. 뭐가 그렇게 걸리는 건데?”
엄기현이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좀 어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느낌이 없진 않은데. 감정 표현이 진짜 끝내주네. 레코딩 버전이 이 정도면 현장에서 죽여주겠는데?”
“그래, 그건 나도 다 인정하는데. 이 파일 이름이 말이야.”
“왜 누군데?”
“박유진. 이라고 돼있더라고.”
잠시 정적.
“뭐?”
“박유진? 설마 그 아역배우 박유진은 아니겠지? 그 왜, 주인경이랑 같이 드라마 찍는다는.”
수군대는 두 사람이었으나.
그 술렁임은 얼마 가지 않아 멎었다.
“에이. 박유진 목소리는 이게 아닐걸?”
오필승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도 오필승에게 한 표. 그냥 신인 뮤배 아니야?”
방금 들은 노래와 그들이 알고 있는 박유진의 목소리와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박유진은 <열다섯, 서른다섯>으로 바쁘지 않은가.
그런 그가 느닷없이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리고 너, <날개>랑 무대로 올린답시고 엄청 봤잖아? 박유진 목소리도 기억 못하는 거야?”
조은아의 말에 엄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땐 박유진이 어렸을 때란 말이지. 지금은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좀 달라졌어.”
“아무리 그래도, 노래하는 사람한텐 쪼나 쿠세라는 게 있잖아. 전문가수나 뮤지컬 배우가 아닌 이상 그런 경향이 강한 건 너도 알고 있을 거고.”
“······그건 그렇지?”
“그 박유진이 아역배우든 아니든, 일단 뽑아놔. 2차에서 직접 보면 되잖아? 그게 누군지 말이야.”
조은아의 말에 엄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헤드폰 선을 꽂은 그였으나.
어쩐지 다음 파일로 넘어가지 못하고, ‘박유진’의 노래만 계속 반복재생으로 듣고 있었다.
*
한편.
서울의 한 장소에서도 <클라우 솔라스> 못지 않은 멋있는 변신이 이뤄지는 중이었다.
“변신 완료.”
유진이 모니터를 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모니터 속 그의 캐릭터는 특정 조건을 완료.
현재 변신하여 한층 더 강력해진 상태였다.
“이제부터 이 협곡은 ‘유진 더 그랜드 캐니언’ 님께서 캐리해준다.”
당장이라도 협곡을 뒤엎을 것 같은 포스를 내뿜었으나.
“뭐래, 8뎃 박은 놈이!”
“그 와중에 킬 없이 어시 하나 실화야? 0/8/1? 무슨 지역번호인줄!”
현실은 냉혹한 법이었다.
유진의 옆자리 친구들이
바로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PC방을 다녔던 5인팟.
그 인연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야, 박유진. 제발! 물리지 좀 말라고!”
“못 컸으면 탱이나 가지 왜 딜템 올리냐고!”
“뒤로 빠져있던가 왜 앞에서 나대는데!”
평소 유진이라면 들을 리 없는 온갖 비난.
곧 모니터에는 <패배>라는 글자가 선명히 떠올랐다.
“아, 재밌었다.”
정작 패배의 원흉인 유진은 뻔뻔하게 웃고 있었다.
“어휴, 박유진이랑 다시 겜 돌리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어어. 그래? 그럼 당장 컴퓨터 끄고 피방 밖으로 나갈 것. 아, 오늘 먹은 것도 다 토해내고.”
“죄송합니다, 형님.”
몇 년이 지나도 이들 사이의 상하관계는 여전했다.
유진은 여전히 절대군주나 다름 없는 물주였으니까.
“근데 너 요즘 촬영 중 아님? 이렇게 게임하고 다녀도 됨?”
“배우라고 맨날 촬영만 하는 거 아니야. 가끔은 머리도 식혀주고 그래야지.”
“머리 식힐 게 게임밖에 없는 거 아니잖아.”
“맞아! 축구도 있고 농구도 있는데 왜 맨날 피방이냐고.”
“왜긴? 재. 밌. 으. 니. 까.”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 유진.
컴맹에 기계치였던 유진이었으나 뒤늦게 게임의 재미에 빠져버렸다.
마치 게임이라곤 하나도 안 해보다가, 우연히 재미 들려 늦바람 난 아재처럼 말이다.
“피방 싫어하는 중딩들은 처음 봤다.”
“너랑 게임하는 게 고문이니까 그렇지.”
“진짜 박유진 얘 밸붕이라니까? 게임하면 드럽게 못해서 짐덩어리지, 축구나 농구 같은 거 하면 너무 잘해서 밸붕이지.”
“진짜. 같이 놀기 개빡셈.”
“리얼루다가.”
다들 그렇게 툴툴대지만.
막상 유진에게 놀자고 제의하는 건 이 네 명의 친구들이었다.
그만큼 유진을 ‘아역배우’가 아닌 동갑내기 친구로 봐주고 있다는 것.
“당분간은 내 촬영 분량이 좀 없어. 피방 자주 오자.”
유진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너 주인공 아님?”
“난 아역파트 주인공. 서른다섯 파트는 인경 형님이랑 사랑 이모가 주연이거든.”
“형님? 이모? 호칭은 또 왜 그래?”
“그게 그렇게 됐어. 자, 암튼 얼른 다음판 고고!”
곧장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유진은 휴대폰이 울리는 걸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나 잠깐 전화 좀.”
유진은 시끄러운 PC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넵,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저 지금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박태종.
“어어. 우리 아들 잘 놀고 있지?”
“아빠 목소리에서 습기 느껴지는데, 또 울고 있는 건 아니죠?”
“에이. 아빠를 뭘로 보고.”
“뭘로 보긴요. 수도꼭지죠.”
이토록 성공가도를 달려왔는데, 박태종은 아직도 유진이 뭔가를 해낼 때마다 새삼 기쁜 모양이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요?”
유진은 피식 웃으며 채근했다.
박태종은 습기 축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여, <열다섯, 서른다섯> 1화 공개일이 나왔다고!”
*
<열다섯, 서른다섯>의 공개를 앞두고.
인터넷은 기대 여론으로 들끓었다.
[샤샤토끼 자까님 작품이 드디어 드라마로 ㅠㅠㅠ
설마 넷플 한국 첫작, 거기에 주인경 강사랑 박유진이 나올 줄은 ㄷㄷ 진짜 상상도 못함
우리 토깽이 자까님 쭉쭉 흥하자!!!]
당연히도 샤샤토끼라는 작가의 팬.
그리고 <열다섯, 서른다섯>의 원작팬들은 벌써 흥분의 도가니였고.
[요즘 넷플 볼 거 없는데 잘 됐네. 재밌겠지?
그래도 첫 한국 오리지널이니 힘 빡 주고 만들었을 듯 ㅇㅇ
솔직히 배우 라인업만 보면 망할 수가 없는데 ㅋㅋ
김선미? 걔가 좀 불안하긴 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이름값이 좀 딸리잖아
하 왜 한국은 외국처럼 스릴러 서스펜스 이런 거 못만들고 허구언날 로맨스물만 만드냐 ㅡㅡ
ㄴ 꼬우면 보지마셈ㅋㅋ 그런건 미드에 많으니 미드나 쳐보시던가
ㄴ 넷플 한국 첫작인데 걔들도 안전빵으로 하고 싶었겠지
그래도 이번 작품은 열다섯이랑 서른다섯 파트가 나뉘어 있다며 그건 좀 신선한 듯?]
오래 전부터 넷플러스를 구독해온 고인물들.
그들 역시 한국 첫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다른 작품 팬카페에서도 <열다섯, 서른다섯>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우리 염라가 커가지고 멜로를 찍는다네
와 라앺 드라마 나온다고 덕질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전성기만큼의 화력은 아니지만.
길고 가늘게 오래 가고 있는 라앺 팬카페 ‘라라라’.
그들 역시 자신들의 염라가 오랜만에 한국 복귀작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고.
[후루야 씨의 친구가 넷플러스에서 작품을 찍었대!
ㄴ 맞아요 <열다섯, 서른다섯> 곧 1화 공개됩니다 많관부 ^ㅁ^
그 귀여운 천재소년이 이젠 멜로를 찍는다고? 스펙트럼이 넓네ww
일본에도 공개되는 거 맞지? 제발 그래야만 해
ㄴ 전세계 동시 공개니까 진정해 니뽄친구 ㅋㅋㅋ]
심지어 박유진과 후루야가 공동 주연이었던 <메모라이즈>.
그 한일 합동 카페에서도 <열다섯, 서른다섯>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만큼 ‘박유진’이라는 배우,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대박유진은.
[나 심장 터질 거 같아 진짜 ㅠㅠㅠㅠㅠㅠ
리딩 생중계 때문에 더 미칠 거 같음... 유진이 손가락 유죄...눈빛 유죄...목소리 유죄... 존재 자체가 무기징역...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거였음...? 유진이 휴식기보다 시간이 더 안 가는 듯 ㅠㅠㅠ
살아생전 유진이가 주연인 로맨스 드라마를 본다니...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넷플러스 구독 했지??? ‘작은 별’처럼 이번엔 열다섯 서른다섯 한국 1위 만들어보자고!!]
그야말로 최고의 화력을 뽐내는 중.
유진의 첫 국내 복귀작인데다 로맨스물이니.
대박이들로선 기대감이 하늘을 뚫을 수밖에.
그리고.
모두가 기다렸던 시간이 점차 다가와.
[드디어 오늘이다!!
쾅쾅쾅!! 문열어!!
우리는 멜로 강도단이다 멜로를 내놓지 않으면 구독을 취소하겠다
자 드가자~ 가보자고~]
마침내 1화 공개일이 다가왔다.
*
몇 주 후.
유진을 비롯한 넥스트 멤버들이 16살을 맞이한 어느 날.
정기열의 집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유진, 김선미, 유신애.
“와. 시간 참 빠르네. 벌써 우리가 중3이야.”
“그것도 그렇고, <열다섯, 서른다섯>이 벌써 공개된다니.”
“인생무상이다. 그치?”
“······또 무슨 아재 같은 소리를 하네, 박유진 쟤는.”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
이들이 어쩌다 정기열의 집앞에 모였는가?
그건 바로.
“근데 진짜 신기하다. 설마 <열다섯, 서른다섯> 1화를 우리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보게 될 줄이야.”
1화 단체 관람회를 위해 네 사람이 모이기로 했기 때문.
사실 누구 집이어도 상관 없었으나.
멀티 엔터테이너 김주현을 어머니로 둔 정기열답게.
집에 시어터룸이 있기에 정기열의 집에서 모이기로 결정했다.
“뭔가 부끄럽네. 다 같이 모여서 내가 연기한 걸 본다니.”
김선미가 발그레해진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유진아, 넌 괜찮아?”
“난 괜찮아. 어차피 남들한테 연기 보여주는 게 내 직업인 걸.”
“진짜 강철 멘탈인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훈훈해보이는 세 사람이지만.
막상 제각기 다른 불안감을 품고 있었는데.
‘혹시나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샤샤토끼라는 걸 들키면 어쩌지?’
제 정체를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유신애.
‘설마 애들이랑 같이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진이랑 연기가 너무 비교되면 어쩌지?’
자신의 연기력이 유진에 비해 형편없어 보이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김선미.
그리고.
‘제발 기열놈이 이상한 짓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유진은 정기열의 반응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서 와.”
정기열의 집 문이 열렸다.
그런데.
유진을 본 순간 정기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뭐야. 네가 왜 있어?”
“왜? 있으면 안 되냐?”
“너한텐 우리 집주소 다르게 알려줬는데.”
“그런 잡수가 나한테 통할 거 같아? 그리고 너 바보야? 어차피 우리 세 명은 다 같이 모여서 출발했는데. 나한테 다르게 알려주면 뭐하냐?”
어쩐지, 정기열이 찍어준 주소가 엉뚱한 곳이더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수법이었다.
회귀 전부터 정기열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유진이다.
그런데 설마 집주소를 잊어버렸을까.
“끄응.”
민망해하는 정기열.
그러나 여전히 유진을 향해 질투심인지 경계심인지 모를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미안하다. 아무튼 들어와.”
마뜩잖아 하며 문을 열어주는 정기열.
그 뒷모습을 보며 유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사랑에 관해선 좀생이었네, 이 녀석.’
회귀 전부터 봐온 친구의 색다른 모습이 그저 재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