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얼마 전.
“자네, 요즘 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던데.”
술집에서 맞은 편의 엄기현에게 그리 말하는 남자.
그건 바로 극단 ‘등불’의 연극연출가, 신대종이었다.
대머리는 여전하지만 특유의 수염은 더욱 길어진 모습.
“어. 무려 토니상 뮤지컬의 전세계 최초 라이센스 공연을 진행 중이지.”
엄기현이 맥주를 들이키며 쓰게 웃었다.
두 사람은 각자 연극과 뮤지컬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쳤고, 앞으로도 바칠 사람들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었는데, 무대예술을 한다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런 대형프로젝트를 하는 것치곤 행복해보이질 않네.”
“초연이라 그런지 챙겨야할 게 너무 많아. 거기다가 원작자 쪽의 횡포가 상상 이상이라.”
“횡포? 무슨 일인데 횡포라고까지 표현하는 거야?”
“원작자가 한국의 스타 캐스팅에 학을 뗀 모양이야. 그래서 아이돌이나 매체 쪽 톱배우들을 쓰는데 매우 부정적이지.”
“하하! 그런 사람들 간혹 있지. 그것 뿐이야? 싱거운데.”
“아니. 가장 큰 문제는, 원작자들이 세종 대극장에서 올리길 희망한다는 거야.”
잠시 정적.
곧 신대종의 얼굴에 경악이 담겼다.
“세종? 그 세종이 내가 아는 그 세종이야? 거기다 중극장도 아니고 대극장이라고?”
엄기현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에 위치한 복합 공연장이다.
그중에서도 대극장의 좌석은 3층에다, 총합산 무려 3천석.
일반적 뮤지컬 대극장 좌석이 1500석 내외인 것을 생각하면, 무려 두 배나 되는 것이다.
정말 엄청난 스타를 쓰지 않는 이상 매진은 꿈꿀 수 없는 규모인 것.
“스타 캐스팅은 쓰지 말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올리라니. 그야말로 미친 거네. 횡포 맞네, 맞아.”
신대종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소극장에서 극단을 이끄는 그에게 3천석의 세종문화회관은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벽이었으니.
“거기 대관료에다, 세종 대극장에서 맞춰 세트 제작하고, 앙상블 더 뽑아야하고······골치다, 정말. 인풋 대비 아웃풋이라도 제대로 뽑히면 모르겠는데.”
“어중간한 캐스팅으로는 쉽지 않겠지. 게다가 초연은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니까.”
“그나마 내게 희망을 걸고 있는 곳이 하나 있어.”
“뭔데?”
“이번 1차 오디션 파일 제출자 중에, 박유진이라는 이름이 있더군. 목소리가 제법 어리게 들리던데, 노래가 꽤 야무져. 그게 진짜 아역배우 박유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을 거야.”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신대종.
그러자 엄기현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어떻게 확신해? 자네가 노래를 들어본 것도 아닌데.”
“감이지. 예술가의 감.”
“장난 치지 마. 난 진지하다고.”
“나도 진지해. 박유진 그 친구랑 같이 작업해본 입장으로서, 어? 진짜 박유진인가? 하면 보통 맞을 거야.”
“그러고보니 신대종이, 자네 극단에서 만들었던 연극에도 박유진이 출연했지?”
“어. 초연 때.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 진무가 갑자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공연이 엎어질 위기였거든.”
유진이 초연에 무대에 섰던 연극 <주변인>.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공연이 올라왔고, 매 시즌 큰 호평을 받는 장수 공연이 되었다.
유진이 구축한 민주 캐릭터 때문에 줄곧 아역배우를 기용하고 있는 중.
“그런 우리 연극이 일본에 판권까지 팔고, 영화까지 성공을 거두다니. 참 신기한 일이지.”
게다가 일본에서 영화 <입김>으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설마 소극장 창작연극이 그렇게 흥할 줄 누가 알았겠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야? 나한테도 비법 좀 알려줘. 그래야 세종에 관객들 좀 채울 거 아니야.”
엄기현이 엄살을 부리자, 신대종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단 하나야. 그냥,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마.”
“무슨 기회?”
“그 순간 닥치면 알게 될 거야. 내가 말한 그 기회라는 게 뭔지 말이야.”
수수께끼 같은 답변에 엄기현은 맥주만 들이킬 따름이었다.
“이따금씩 인생에는 신이 보내준 게 아닌가, 싶은 존재가 있거든. 귀인이라고들 하지? 그런 귀인을 알아보는 것도 실력이야.”
*
다시, <클라우 솔라스>의 2차 오디션장.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유진에게 쏟아지는 의외라는 표정들.
그를 둘러본 유진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 혹시 제가 파일 제출할 때 제 이름을 안 썼나요?”
유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 아뇨. 분명 봤습니다.”
“그렇죠? 다행이다. 실수한 줄 알았네요.”
무해한 웃음을 짓는 유진.
그를 바라보던 엄기현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진, 네. 분명 그 이름을 봤습니다.”
당황하는 나머지 두 사람과 달리.
엄기현은 비교적 담담히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그 박유진 배우가 지원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아아, 정말요?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박유진, 하면 저라는 사람이 먼저 떠오를 수 있게요.”
유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 순진무구한 모습은,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진짜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놀랍네요. 1차 오디션 파일은 잘 들었습니다. 그거 진짜 박유진 배우가 직접 부른 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엄기현의 질문에 유진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사람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음질이 굉장히 깨끗하던데. 전문 녹음실에서 녹음한 거 맞겠죠?”
“넵. 오디션 파일인데 아무데서나 녹음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이후 파일도 전문가의 손을 탄 건가요?”
“후보정 일체 안 했습니다. 첫 테이크 그대로 제출한 거예요. 원하신다면 녹음 당일에 찍은 영상을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대답이었다.
설마 박유진 급이나 되는 스타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이제 곧 실전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괜한 거짓말로 기대감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박유진 배우는 주로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는 매체 배우로 알고 있는데요. 뮤지컬 경험은 애니메이션 더빙이 전부고요. 갑자기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전 좋은 작품이면 장르를 가리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 <주변인>이라는 연극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연극 <주변인>이 언급되자 엄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작품이라. 그 기준이 궁금하네요. <클라우 솔리스>를 선택한 건, 이번에 토니상 수상을 했기 때문인가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유진은 솔직히 인정했다.
“그럼 무슨 공연인지도 모르고 대뜸 지원한 건 아니겠죠? 설마 브로드웨이에서 보고 왔을 리는 없을 텐데요.”
그러자 엄기현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허나 유진은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DVD로 발매된 덕분에 <클라우 솔리스>의 공연 전체를 감상할 수 있었어요. 빛의 검과 모험, 영웅 등 판타지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고뇌와 나약함, 선택과 결과라는 심오한 주제를 가지고 있죠. 전 이런 작품을 좋아해요! 재미가 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요.”
유진의 말은 <클라우 솔라스>라는 작품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클라우 솔라스>가 토니상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재미와 메시지, 둘 다 잡았다는 평가 때문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기현이 작게 미소 지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박유진 배우가 지원한 건 주인공 헨리 역이던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주인공이죠. 한 때 빛나는 영웅이었으나, 늦은 나이까지 은둔자로 생활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인물이죠.”
“공연 전체를 보셨다니 아시겠지만, 이 역을 박유진 배우가 소화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유진의 나이는 이제 16살.
화려한 전쟁영웅도, 은둔한 노인을 소화하기에도 지나치게 어린 나이다.
그러나.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유진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 생각의 근거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저는 연기자라서 말은 조리있게 잘 못합니다. 대신 연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2차 오디션 지정곡은 두 개다.
첫 번째 넘버는 ‘영웅의 길’.
두 번째는 ‘은둔자’.
“그럼 ‘영웅의 길’ 먼저 불러보겠습니다!”
‘영웅의 길.’
클라우 솔라스를 뽑아 젊어진 헨리.
다시금 제게 주어진 영웅의 길을 다시 걸어가겠노라.
그리 다짐하는 노래다.
‘실제로 보니 헨리와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군. 노래는 꽤 신선했는데 말이야.’
유진이 노래를 준비하는 사이.
엄기현은 턱을 괴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고뇌하는 영웅을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말랑해. 너무 어린 티가 난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이 감정은 실망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감이었다.
‘신대종이. 자네가 말한 기회가 어쩌면······.’
MR이 흘러나오고.
곧 말랑말랑함 그 자체였던 유진의 얼굴이 확 돌변했다.
‘오?’
엄기현이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유진의 입에서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저 바위산이 나를 부르네
운명은 다시 나를 떠미네
나는 이미 한 번 도망쳤어
동료를 버리고
비명을 뚫고서
끝없는 어둠 속으로
누가 나를 영웅이라 부르나
어제까지의 난 더러운 방관자
시작부는 헨리라는 캐릭터의 내면적 고뇌를 보여주는 가사로 시작.
그러나 점차 그의 고뇌는 다짐으로 변해간다.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어둠 속에서 더는 피할 수 없다면
나 다시 한 번 가리라
그곳이 구원이든 파멸이든
내 두 발로 직접
이 검을 들고 걸어가리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빛을 향해
유진이 표현하는 헨리는 훨씬 감정적이었고 표정이 풍부했다.
자책하는 가사를 표현할 때는 고뇌하는
그를 이기고 나아가겠다는 가사에선 결의에 찬 눈빛이.
멀리서 봐도 티가 날 정도로 그 표정 변화가 다이내믹했다.
‘풍부한 표정. 확실한 액션. 확실히 대극장에 어울릴 법한 연기법이야. 거기다 발성과 울림도 좋아.’
점점 유진의 연기에 설득당하고 있는 엄기현.
‘게다가 그런 연기법에는 오히려 저 어린 마스크에서 더 매력이 느껴져. 관객들은 저 어린 영웅에게 감정이입을 쉽게 하겠지.’
어린만큼 더욱 패기 넘치고 힘있는 헨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하겠노라.
그 비장한 결의가 느껴지는 연기.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주인공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군.’
허나 아직 검증해야할 부분이 남았다
사실 여기가 제일 걸리는 부분.
‘하지만 16살짜리가 할아버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곧 MR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까 전엔 희망찬 분위기로 넘버가 끝났다면.
이번엔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현악기의 연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클라우 솔라스를 뽑기 전, 은둔하며 늙은 헨리가 부르는 노래.
‘은둔자’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순간.
우두둑-
뼈가
유진의 등이 굽었다.
그의 몸가짐은 단숨에 나이든 노인의 것으로 변모했다.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
되돌아갈 수 없는 그날
나는 과거에서 도망쳤지만
미래에 도착하진 못했어
나는 지금 어디에
그리고 그런 유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소절.
그걸 듣는 순간.
엄기현을 비롯한 나머지 두 사람 모두 충격을 받았다.
‘저게 16살이 낼 수 있는 목소리야?’
‘평소 목소리는 엄청 미성인데. 저렇게 깊은 저음을 낼 수 있다고?’
‘아예 성대를 갈아끼운 것 같은데?’
나이대를 뛰어넘는 폭넓은 변성.
유진이 성우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이 십분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그저 숨어만 있는 나는
비겁한 은둔자
얼굴은 분명 어리지만.
그가 풍기고 있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분장 하나 없이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유진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
유진은 중간중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후우.”
한숨을 내쉬거나.
“······아아.”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이내 곧 단념하며 고개를 젓는 액션을 취하곤 했는데.
‘비단 그냥 나이 든 노인을 표현하는 게 아니야. 과거의 잘못 때문에 은둔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어.’
디테일하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을 관객들을 고려해 선보이는 커다란 액션.
이미 이곳은 오디션장이 아니었다.
대극장의 무대 한 가운데였다.
‘이미 자신이 합격할 것을 전제로 하고······현장에서 해야할 연기를 정확하게 시연하고 있어. 이게 정말 뮤지컬 경험이 없는 16살짜리의 연기라고?’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그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를 무기로 활용할 줄 알면서도.
노인을 연기할 때는 나이를 뛰어넘은 연기를 선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거기다 이 무대장악력은 대체.’
물론 나이가 든 배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세월 속에 은둔한 영웅’을 표현하기엔 이만한 연기가 없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은둔자’ 넘버가 끝난 뒤.
굽은 등은 원상복귀되고, 주저하는 액션은 일체 사라졌다.
다시 말랑말랑한 박유진으로 돌아온 것.
이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침묵에 휩싸였다.
잠시 후.
“저, 박유진 배우. 혹시 노래는 누구한테서 배운 겁니까?”
조은아가 겨우 입을 떼고 물었다.
“가요 쪽에선 빅터의 유이치 형에게 많이 배웠고. 발성이나 뮤지컬 쪽은 정성진 삼촌한테서 많이 배웠습니다!”
“정성진? 성진이를 말하는 건가?”
“네. 저랑 같이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라는 작품에 참여했었거든요.”
듣고보니 발성법에서 정성진의 영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박유진은 정성진의 가르침을 훌륭히 체화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 셈.
“박유진 배우.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때.
엄기현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3차 오디션은 원작자인 프리우드 형제가 직접 참관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스타 캐스팅에 대해 염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공연에선 스타 캐스팅을 배제하려는 모양입니다.”
오필승과 조은아는 화들짝 놀라 엄기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엄기현의 말은 이미 유진에게 ‘당신은 2차 오디션에 합격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오디션과 관련된 컴퍼니 내부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발설한 것이다.
“하지만 박유진 배우는 스타입니다. 현재 배우들 중 다른 그 누구보다 잘 나가고 있죠.”
빅터 컴백콘에서 복귀를 천명.
발매한 댄스곡 싱글이 <케이팝 챔피언> 주간 1위.
현재 넷플러스 <열다섯, 서른다섯>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 중이다.
이런 유진이 스타가 아니라면 누가 스타란 말인가?
“전 박유진 배우의 연기와 노래가 매우 마음에 듭니다. 안타깝지만 3차에 가도, 원작자들에 의해 탈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뮤지컬 경력이 없는 매체 쪽 스타 배우라고 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스타 캐스팅 그 자체니까요.”
“아하. 그런가요?”
엄기현은 유진에게 미리 탈락을 스포일러한 셈.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유진은 불쾌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3차 오디션도 자신 있어요.”
그 자신만만한 대답에 엄기현은 흠칫 놀랐다.
‘어린애라서 내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어느 쪽이든.
원작자들의 대리인 조디가 보인 태도를 생각해봤을 때.
유진이 합격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프랭크의 아내가 스타 캐스팅의 피해자였으니까.’
“그 말은,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건가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가 왜 주인공을 맡아야하는지, 그에 대해 설득해보고 싶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 것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유진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다.
“원작자분이 스타캐스팅을 싫어하신다고 하셨죠? 별이라고 다 같은 별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엄기현은 확신했다.
신대종이 말한 귀인이, 바로 저 16살짜리 소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