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티켓팅 이후.
대박유진은 패닉에 빠졌다.
[아 심장 차가워짐;;; 돌은 거 아님?
아니 티켓이 6만개인데 내꺼 하나가 없음?? 이게 말이야 방구야
ㄴ 방구도 아니다 똥이다 똥
나 티켓팅하려고 연차냈음...진짜 나 이 뮤지컬에 진심임... 그런데 개같이 광탈함...현타옴...
ㄴ 박유진한테 진심이겠지 님 프사만 봐도 ㅋㅋㅋ
ㄴㄴ 솔직히 금발유지니를 어케 참음요...? 그런 갓기천사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노래한다는데 ㅠㅠ]
예상은 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핫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진이다.
그런 유진이 뮤지컬을 한다니, 누가 안 보고 싶어할까!
하지만 3분 만에 티켓이 전부 나갔다.
심지어 이 3분마저도 각종 사이트 오류와 렉 때문에 생긴 것.
[양도 구합니다 유진이 찐팬 인증 가능해요 팬미팅 때 화보집 100개 샀음 제발요...
개쩌리석이라도 좋아요...3층 맨뒤라도 좋음 그러니까 제발 티켓 좀...]
게다가 취소표며 양도표까지 씨가 말랐다.
이러니 절망하는 대박이들이 많을 수밖에.
그리고 유진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줄곧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사이트, 뮤지엄마저.
[박유진 공연 자리구함@@@@
클라우 솔라스 박유진 첫공양도 구합니다...원가양도 제발요...
아 쩌리석 하나 없는게 말이 됨?? 이거 실화야??
티켓값 올라서 뮤지컬 안본다며 ㅅㅂ 다 구라쟁이였던 거야?
ㄴ 머글들은 그딴 거 신경도 안 써 ㅋㅋㅋ 박유진만 볼 수 있으면
아니 솔직히 뮤비만 안 떴어도 ㅋㅋ]
유진 회차 티켓을 구하는 글로 넘쳐날 정도.
심지어는.
[클라우 솔라스 박유진 회차 양도합니다
C구역 1열 자리 중 하나
기본 50부터 시작
높은 가격 부르신 분에게 양도하겠습니다
제시 주세요]
이런 어마어마한 플미충까지 등장할 정도.
[아 플미충 좀 껒여...가뜩이나 짜증나 죽겠는데
이런 ㅁㅊ놈이 티켓값이 15인데 플미를 50을 부르네 ㅋㅋㅋ
아 나 저거라도 사고 싶다 ㅠㅠㅠㅠ 제발 유지니 보고싶으뮤ㅠㅠㅠ
ㄴ 눈치 챙겨 업자놈들한테 헛돈 쓸거임?
5천원에 샀어요~ 만원에 팔아요~ 나는야 사기꾼~
두잇 뭐하냐 제발 플미충들 좀 잡아!!!
* 공지 대박이들이라면 플미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맙시다!!]
플미충과 그를 사려는 사람들.
그를 막으려는 팬들로 지금 커뮤니티는 아비규환.
[박유진, 3분만에 세종문화회관을 정복하다!]
[첫 뮤지컬 출연임에도 엄청난 티켓파워를 뽐낸 박유진. 서버마저 다운됐다!]
[박유진이 부른 <클라우 솔라스> 넘버 ‘출정식’, 200만 조회수 돌파! “실제로 보고싶다” 표 못구한 팬들의 아우성!]
쏟아지는 기사들까지.
이런 난리통에 웃음꽃이 피는 건.
“자네의 기획안, 아주 훌륭했어.”
구구액터스를 비롯한 엔터 쪽 투자자들.
티켓오픈부터 기대를 뛰어넘은 성과에 흐뭇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데이터와 시장 흐름에 따라 분석해봤습니다. 이거 대박 난다고 말입니다!”
특히 장미소와 차동석의 얘기를 듣고.
이를 주간회의에 보고한 구구액터스 직원은 그야말로 웃음꽃이 피었다.
그가 제출한 건의안이 통과되어 실제 투자에 나섰고.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대성공이 확실한 셈이니까.
벌써 회사 내에서 그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나 뭐라나.
“이야. 대박이네, 대박이야! 우리 유진이는 대박이야.”
“이상한 노래 부르지 마, 오빠.”
그리고 아예 제작에 참여한 주역 매니지먼트까지.
“이 정도면 홍보 안 해도 되겠다. 그치 자기야?”
“아니.”
차동석의 말에 장미소가 단호히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넙튜브 컨텐츠는 다양하게 찍어야지.”
“왜?”
“가뜩이나 두잇컴퍼니는 넙튜브 컨텐츠가 적은 걸로 비판 받던 회사야. 우리가 제작에까지 참여해놓고 그런 욕을 들어먹어서야 쓰겠어?”
제작에까지 이름을 올린 이상.
주역 매니지먼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뮤지컬 내적인 부분은 유진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있으니.
그 바깥에서 지원사격은 회사의 몫 아닌가.
“게다가 <클라우 솔라스>는 한국에는 처음 선보이는 초연작이야. 관객들에게 최대한 흥미를 이끌어야해. 그래, 그래야지. 취소표 하나 나오지 않게 말이야.”
그리고.
“다들 아직 축포를 터뜨리긴 일러.”
두잇컴퍼니 대표인 엄기현은 들뜬 스탭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공연이 올라간 이후가 중요해. 관객들을 얕보지 마. 첫공연 후기가 안 좋으면 바로 취소해버릴 수도 있어. 공연 당일이 되기 전까진 매진이란 없는 법이야. 그러니까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그 말대로.
공연이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마무리될 때까지 어떤 사건,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래도, 3분만에 매진은 대단하긴 해.’
물론.
사실 엄기현도 유진의 티켓 파워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클라우 솔라스>는 아직 한국에 소개된 적 없는 작품.
그걸 세종에서 올리는데, 티켓 오픈 3분만에 매진이라니!
‘박유진 출연 회차뿐이 아니야. 다른 회차도 매진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흥행하고 있어.’
게다가 유진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도 제법 그 효과를 누렸다.
유진의 회차를 예매하지 못한 관객들 중 일부가, 다른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로 눈을 돌린 것.
이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티켓 판매량이 배로 뛰었다.
“자, 다들 더 긴장해. 동선, 조명, 무대 모두. 특히 무대장치 제대로 움직이는지 빡세게 체크하고!”
스탭들 앞에서는 카리스마를 내뿜은 엄기현이지만.
그날 밤.
엄기현은 자택에서 큰절을 올렸다.
주역 매니지먼트 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감사합니다, 귀인이시여.”
*
유진과 두잇컴퍼니가 맺은 출연 계약.
거기엔 출연회차 매진시 특별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로 인해 유진이 <클라우 솔라스>를 통해 벌어들일 수익만 해도 억 단위.
유진은 결코 들뜨지 않았다.
“그러면 티켓값을 해야겠죠. 돈이 아깝지 않게요.”
아무튼, 그와 별개로.
유진은 회귀 전부터 꿈꿔오던 것을 이루는 중이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성수동에 위치한, 전망 좋은 최고급 아파트.
톱클래스의 연예인들이 거주한다는 곳이었다.
“여기가 정말······우리 집인 거니?”
“그럼요. 부동산에서 알아보고, 몇 번이나 둘러보고, 결국 도장 찍고 이 집 샀잖아요.”
두 부자가 예전에 살던 단칸방.
그곳에선 창문 밖을 바라보면 다른 건물로 가로막혀 있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던 곳이니까.
그러나 이곳은 통유리에다가 바깥을 바라보면 경치가 끝내줬다.
아마 밤이 되면 야경이 볼만할 것이다.
“이게 정말 우리 집이란 말이지.”
“그 질문 벌써 32번째에요.”
박태종이 달라진 환경에 새삼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
“우냐앙!”
이동장 안에 있던 백룡이가 뛰쳐나왔다.
그리곤 집안을 돌아다니며 우다다를 시전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적응력이 좋은 건 백룡이 같아요.”
백룡이가 가장 먼저 새집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분명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들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태종.
유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룡이 쟤는 고양이면서 고양이가 아니잖아요. 개랑 고양이의 장점만 이기적으로 합쳐놓은 거 같다니까요.”
곧 박태종인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솔미 실장이 공언한대로, 많이 탈색했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머릿결은 유지되는 중이다.
“이게 다 우리 유진이 덕분이네. 아빠가 집도 가져보고.”
“저랑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산 거죠.”
“아빠가 뭘 했다고. 다 네 돈으로 산 거지.”
“에이. 아빠가 놀고 먹었어요? 열심히 일해서 보탰잖아요.”
유진이 그간 벌어들인 돈은 정말 어마어마했지만.
그렇다고 박태종도 놀고 있지 않았다.
유진의 전담 넙튜브 영상팀으로서 쉬지 않고 일했으니.
그가 벌어들인 수입도 적지는 않다.
물론, 유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박태종도 열심히 살아왔다는 이야기.
“그리 말해줘서 고맙구나.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박태종은 벅찬 눈으로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치킨 배달을 하며, 단칸방에서 고물 TV를 보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최고급 아파트에서.
80인치가 넘어가는 벽걸이 TV가 거실이며 방마다 설치되어 있고.
수백에서 수천을 호가하는 각종 전자기기까지.
“이게 정말 우리 집이라니.”
집이란 게 그렇다.
‘내 집’이라는 그 이름, 느낌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니까.
박태종은 짐을 뺀 것처럼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네. 우리 집이죠.”
사실 유진의 수입이라면 얼마든지 일찍 집을 살 수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이었던 4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
그러나 이왕 사는 것, 최고로 좋은 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타이밍을 잰 것.
전에 살던 전셋집도 그리 나쁜 건 아니었으니까.
“이사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이제 좀 쉴까?”
“네. 그래요.”
유진은 박태종이 무얼 할지 눈치챘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사진을 붙잡고 이리저리 대화를 나누겠지.
엉엉 울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시간을 방해하는 건 자식된 도리가 아니니까.’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백룡이가 추가된 가족사진을 걸어둔 뒤.
유진은 제 방으로 찜해놓은 곳 침대에 풀썩 누워보았다.
자연스레 손이 리모컨으로 향했다.
“하하. 내 집이 생겨도 달라지는 건 없네.”
결국 똑같이 대본을 보고, TV를 보고, 잠을 자고.
하지만 마음만큼은 풍족했다.
내 집에서 하는 거니까!
살짝 눈물이 나올 정도로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회귀하기 전에 나는 노잼 연기자 소리나 들었고, 찾아주는 곳도 없었지.’
당시의 박유진은 단칸방을 벗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젠 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통해 행복을 얻어가고.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통해 미래를 꿈꾼다.
그 토대들이 쌓여 지금의 유진을 만들었다.
인생의 기적같은 순간.
유진은 회귀라는 그 한 순간을 통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셈.
‘나처럼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물론 유진은 마법사가 아니니, 회귀를 시켜줄 순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만큼의 영향력은 충분히 생겼다.
‘그게 바로 배우, 더 나아가 연예인의 본분이니까.’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준다.
유진은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 그 진리를 다시금 곱씹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중.
“어? 지혜 누나다.”
TV 속 이지혜의 모습이 보였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예능.
그러나 유진은 이지혜가 최근 어디 출연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요즘은 뮤지컬 연습에 올인하고 있어서, 예능은 잘 체크하지 못했거든.
“제목이, <힐러들의 수다>?”
김오태PD와 함께 한다고 들었는데.
“오, 재밌네. 지혜 누나가 분위기를 잘 살려.”
무엇보다 꾸준히 예능에 출연한 이지혜의 활약이 눈부셨다.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싶으면 적절히 띄워주고.
감동을 전해야할 포인트에선 표정으로 몰입감을 주고.
역시 예능 짬바가 있었다.
그렇게 유진은 저도 모르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힐러들의 수다>를 시청했다.
그런데 프로그램 말미에.
[국민 힐링 예능이 돌아온다! <힐러들의 수다>X<사랑의 집> 콜라보레이션!]
[우리 집을 고쳐주세요! 새로운 집이 필요한 분들의 사연을 모집합니다.]
“흐음?”
새로운 집.
그 단어가 유진의 눈에 들어왔다.
*
얼마 뒤.
<힐러들의 수다> 팀이 쓰는 회의실에선.
“면접 보러 왔어요!”
한 꼬마 아가씨의 당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걸 면접이라고 해야할까.’
김오태PD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면접이라니, 아가씨. 그게 무슨 소리일까?”
“전 아가씨가 아니라 지혜원이에요. 은혜 혜 자에 으뜸 원 자를 써요. 그리고 한글만 놓고 보면 항상 지혜를 원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래요.”
“그래, 혜원아. 정말 똑똑하네. 그런 걸 다 알고 있고.”
“엄마가 그랬어요. 사람이 근본을 알아야 한다고요. 이름이야 말로 근본이래요.”
그가 마주하고 있는 건 매우 똘똘한 여자아이였다.
올해로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지.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엄마는 지금 아파요. 그래서 제가 대신 왔어요.”
“너 혼자 왔다고? 어떻게?”
“택시 타고요.”
“어머니가 다 나으신 다음에 와도 괜찮은데.”
“안 된대요. 엄마가 그랬어요. 꼭 만나라고. 또 뭐랬더라,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막 그랬어요.”
“전화로 말하지 그랬어. 그럼 우리가 너희 집에 찾아갔을 텐데.”
“엄마가 그랬어요. 바쁜 분들을 찾아가도 모자란데, 집에 오게 할 수는 없다고요.”
지혜원은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아이였다.
예능국과의 담판을 통해 ‘사랑의 집’ 아이템이 채택되었고.
그 이후로 집 리모델링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혜원의 가족.
하여 미팅을 가지는 중이다.
그런데 설마 어머니가 아닌 딸이 올 줄이야.
“그래, 혜원아. 그럼 이 아저씨가 묻는 말에 대답해줄래?”
“네.”
“너희 집은 어떤 곳이니?”
“여기요. 이 종이에 다 있어요.”
지혜원이 내민 것은 몇 장의 종이.
지혜원이 지내고 있는 집의 상태를 보여주는 사진과 글이 실려있었다.
‘10평 남짓한 반지하 집.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어있고, 싱크대며 냉장고 상태도 심각해. 심지어 화장실은 외부에 있고, 근처 주민들과 공용이라.’
가족 구성원은 지혜원과 지혜원의 어머니뿐.
자라나는 초등학생이 지내기엔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흐음. 확실히 리모델링이 시급한 편이고. 그렇다면 여기서 좀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릴 법한 소재가 있다면 좋겠는데.’
턱을 쓰다듬던 김오태가 지혜원을 향해 다정히 물었다.
“그래, 혜원아. 혹시 넌 장래희망이 뭐니?”
“저는 나쁜 사람을 때려잡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때려잡는다니······그래. 언제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어?”
“드라마 보고서요!”
실로 어린애다운 이유였다.
김오태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런데.
“하하. 무슨 드라마?”
“일본어로 막 솰라솰라 하는 드라마였어요. <메모라이즈>.”
“<메모라이즈>? 잠깐. <메모라이즈>라면.”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유진이 후루야와 출연했던 투톱 일본 드라마 아닌가.
“너, 후루야 아저씨의 팬이니?”
“후루야 아저씨가 누구예요?”
“그 드라마에 나오는 경찰 아저씨 있잖니.”
“아뇨? 전 그 천재 오빠가 좋아요. 그 잘생긴 오빠요.”
천재 오빠라면, 분명 유진이 맡은 천재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리라.
근데 좀 이상했다.
후루야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그런데 왜 경찰이 되고 싶어?”
“원래 거기 나오는 오빠처럼 천재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전 천재는 아니래요.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래요. 그래서 천재는 포기했어요. 경찰은 노력하면 될 수 있대서요.”
귀엽다면 귀엽고.
쓸쓸하다면 쓸쓸한 이야기였다.
‘하긴. 천재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지.’
김오태가 보기에 지혜원은 어린나이치고 매우 조숙했다.
아마 환경이 그리 만든 것이리라.
“그래. 아저씨 질문에 대답해줘서 고마워. 잠깐 코코아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어줄래?”
“네.”
근처 작가에게 지혜원의 케어를 맡긴 뒤.
김오태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아아, 씁. 이거.”
스토리텔링이 좋다.
열악한 환경에서 TV를 통해 경찰이라는 멋진 꿈을 꾸게 된 소녀.
소녀가 동경하는 스타는 그 핫한 박유진이다.
그리고 사실 유진도 예전엔 낡고 좁은 집에서 살지 않았던가.
“이거 빌드업까지 제대로 뽑힐 거 같긴 한데.”
지금이야 최전선에서 물러났다곤 하지만.
아직 김오태PD의 감이 죽은 건 아니다.
예능PD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유진이만 출연해주면 완벽하겠어.”
김오태는 입맛을 다시며 휴대폰을 들었다.
아직 그의 주소록엔 유진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쉽사리 통화를 누를 수가 없었다.
“하. 김오태 이름 다 죽었구만.”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차동석을 통해서 부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지혜가 했던 말이 걸렸다.
‘안 그래도 바쁜데, 제 일로 도와달라고 하기 좀 미안해서요.’
이지혜가 그리 말했는데 김오태가 나서기 뭣한 상황.
“뮤지컬도 매진이니 뭐니 난리가 났으니, 더 바쁘겠지. 쓰읍, 역시 포기해야하나.”
아쉬움이 혀끝에서 감돌고 있던 그때.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지혜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응, 지혜야. 무슨 일이야? 아아. 지금 사연 신청자들 상대로 면접 진행 중인데. 무슨 일이야?”
잠시 후.
“뭐, 뭐뭐뭐? 그게 진짜야?!”
김오태는 오래된 속담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 진짜 유진이가 출연해주겠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