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03화 (203/237)

203화

요즘 아이들의 괴롭힘이란 제법 음습하다.

대놓고 괴롭히고 왕따를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본인만 느낄 수 있는 교묘한 방식.

예를 들어.

“어디서 냄새나지 않아?”

“그러게. 곰팡이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자기들끼리 수근대기.

“킥킥.”

“왜 자꾸 웃어, 크크.”

“너도 웃잖아? 킥킥.”

지나갈 때 이유 없이 킥킥 비웃기 등.

물질적 증거는 없는 괴롭힘들.

덕분에 피해 아이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만약 화를 내면.

“왜? 우리가 뭐 했다고?”

이런 식으로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원은 이런 괴롭힘에 초연했다.

처음부터 초연했던 건 아니다.

한때 짜증도 내고, 선생님께 이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마음가짐이 완전히 바뀌었다.

‘<메모라이즈>에서 나오는 그 소년이 그랬어. 특별하기에 질투받는 거라고.’

천재로 나오는 그 잘생긴 오빠.

그 역시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또래 친구들에게 소외당한다.

그러나 그는 그걸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는 개미에게 더 관심을 가질 정도.

‘그래. 내가 특별해서 그런 거야. 난 나중에 멋진 경찰이 될 몸이니까, 다들 질투하는 거지. 걔들이 나쁜 짓을 하면 내가 잡아갈 거야.’

그 후루야인지 뭐시긴지 하는 일본인 경찰 아저씨는 제법 사고뭉치로 나오지만.

그래도 멋진 제복에, 총도 차고, 나쁜 놈들을 잡아다 감옥에 집어넣는다.

가끔은 그 천재 오빠 못지 않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데.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감정이 격해지고, 매우 예민해지는 날.

지혜원도 아직 초1에 불과한 어린아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픈 날.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돼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킥킥.”

“크크.”

아이들의 비웃음소리가 칠판 긁는 소리처럼 거슬리고 소름끼친다.

동시에 혼자라는 기분이 지혜원을 엄습하곤 한다.

그럴 때면 도무지 참기 어려워서 엉엉 울고 싶어지고.

혹은 주먹이 부들거리며 한 대 날려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

“안녕?”

나부끼는 금발 머리.

그보다 더 찬란한 햇살 같은 미소가 지혜원을 지켜주었다.

“네가 그 혜원이구나?”

“어?”

지혜원이 위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 천재다!”

지혜원은 오늘 처음으로 방긋 웃었다.

“어? 박유진이다!”

“TV 나오는 그 오빠다!”

갑작스레 초등학교에 등장한 박유진.

요즘 초등학생 중에 유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

지혜원을 괴롭히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미안해. 오늘은 혜원이랑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박유진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서 지혜원의 어깨를 감쌌다.

“어어?”

언제 봤다고 약속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지혜원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자신을 비웃던 아이들이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가자, 혜원아.”

“응!”

지혜원이 힘차게 대답했다.

잠시 후.

유진이 지혜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며? 오빠랑 같이 집에 가자. 어머니 병원 데려다드릴게.”

TV에서나 보던 오빠가 자기 집 사정까지 알고 있다니.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지혜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메모라이즈> 봤지?”

“네.”

“거기서 오빠 역할이 뭐였지?”

“천재요.”

“그래. 오빠는 천재거든.”

그러자 지혜원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허어얼! 그게 진짜였어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기분이었다.

*

얼마 뒤.

주역 매니지먼트 미팅룸.

“제가 방송국으로 찾아가도 되는데.”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건 유진.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김오태PD와 이지혜였다.

“아니. 우리 갓유진님을 어떻게 오라가라 하겠어. 내가 와야지.”

<별을 보러 떠나요>이 파일럿 편성됐던 당시.

유진은 주목받는 아역배우였고.

김오태는 예능국에서 제일가는 PD였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위치는 정반대가 되었다.

“그런데 지혜 어머님은 좀 어떠셔?”

“다행히 큰 지장은 없으셨어요. 과로로 인한 감기몸살 증세라고 하더라고요.”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직후.

설마 그 지혜원부터 도와주러 가다니.

“미안해. 이런 건 우리 측에서 먼저 배려했어야 했는데. 설마 유진이 네가 그렇게까지 나설 줄은 몰랐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한 것뿐이니까요. 아이에게 하나뿐인 부모님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유진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유진이다.

지혜원네의 사정이 분명 남일같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리라.

“소중한 건 잃어버리면 안 되죠.”

그리 말할 때 유진의 표정이 제법 씁쓸해 보였다.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근데 유진이 너. 요즘 뮤지컬로 엄청 바쁠 텐데 괜찮아?”

이지혜가 걱정스레 묻자,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나만 공연하는 게 아니거든. 3명이 돌아가면서 하는 거라, 스케줄 소화할 여력은 충분해.”

사실 유진은 회차를 더 배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유진이 아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첫 뮤지컬 무대이다 보니, 컨디션 관리가 어려울 거란 이유로 더더욱.

유진의 티켓 파워가 가장 강하다는 걸 두잇컴퍼니 측도 알고 있으나.

미성년자인 유진을 최대한 배려하는 예의를 보여준 것.

물론 자기 관리에 자신이 있는 유진으로선 상관없었지만.

다른 아역배우들을 위해서라도 그 배려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혜 누나. 나 누나한테 서운해.”

“응?”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이젠 이지혜와도 말을 놓게 된 유진.

유진의 말에 이지혜가 당황해 대답했다.

“아니, 그게. 너 요즘 너무 바쁘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이런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줘. 난 일을 해야 힐링을 받는 스타일이거든.”

“그래도. 너무 일하면 안 좋아.”

물론 유진도 이지혜의 심정을 이해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소속사에 의해 혹사당했으니.

혹여 유진도 번아웃을 겪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리라.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첫만남으로 인연을 맺었을 때.

그때도 이지혜가 16살이었으니.

“걱정 마. 내 텐션은 내가 제일 잘 알거든. 그리고 휴식은 휴식기 때 많이 취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참 보기 좋네. 두 사람은 진짜 친남매 같아.”

김오태PD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피디님. 누나한테 듣기로 <사랑의 집> 아이템을 리메이크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 맞아.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거지.”

이 아이템이기에, 유진은 <힐러들의 수다>를 고른 것이다.

예전에 살던 단칸방은 유진에게 있어 회귀 전 인생의 상징과도 같았다.

좁고, 어둡고, 빛이라곤 안 보이던 어린 시절.

지난 생에선 벗어나는데 수십 년이 걸렸으나.

지금 유진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최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러니.

힘든 시기를 겪는 어린아이들을 구해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길게 가니까.

물론 그런 감성적인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제 내 존재감은 아역배우, 그 이상이 되었으니까.’

<열다섯, 서른다섯>의 인기로 유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을 때.

차기작을 선택하는 게 아닌, 이런 힐링 예능에 출연한다?

이제 유진은 단순히 아역배우, 톱배우를 넘어 제 영향력을 사회에 떨치는 진정한 의미의 ‘스타’가 될 것이다.

유진은 자신의 영향력을 자신보다 어린 꼬마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

작품 대신 선택한 힐링 예능.

이 사소한 변화구는 아마 예상치 못한 스노우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그래, 맞아. 여기서 좀 트렌드에 맞게 변주를 줘볼까 해.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건 이런 거야. 해당 집의 리모델링에 필요한 금액을, 스타들이 재능을 뽐내 기부금을 버는 거지.”

즉.

일종의 재능기부라고 할 수 있겠다.

“유진이 너는 노래, 연기, 성대모사 등등 할 수 있는 게 많잖아?”

“오, 좋네요. 여러 그림이 뽑힐 수 있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

“그게 뭔데요?”

“바로 박유진이라는 이름값. 네가 얼굴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한다면 사람들이 엄청 몰리겠지. 안 그래?”

수천만원에 달했던 인천공항 광고와 KTX 랩핑조차 9시간만에 채우고.

10만 원이 훌쩍 넘는 뮤지컬 티켓 6만 개도 3분 만에 팔아치우는 유진이다.

그런 유진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재능기부를 한다?

그게 얼마가 됐든 목표금액은 단숨에 채워버릴 것이다.

이래서야 방송분량이 뽑힐 리가 없지.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어.”

“그걸 위해 PD님께서 생각해놓으신 아이템이 있겠죠. 안 그런가요?”

유진을 강하게 원했던 김오태다.

대안도 없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진 않을 터.

“역시 눈치가 빨라. 그래, 맞아. 이번에 특별히 가면이라는 아이템을 추가해볼까 해.”

“가면이요?”

“그래. 반가면도 아니고, 얼굴은 물론 머리까지 완벽히 가려주는 가면. 물론 네가 답답하지 않게, 전문가에게 맡겨서 특수 제작할 예정이야. 사람이라는 게 얼굴만 가려도 정체를 잘 못 알아보거든. 아주 특색있는 음색을 가진 게 아니라면 말이지.”

김오태의 판단대로.

유진의 음색은 특색이 있다기보다, 어느 쪽으로도 변성이 가능한 천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유진이 활용하기에 따라 임팩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일반적 자선단체였다면 그냥 목표금액 채우고 땡, 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엄연히 미디어고, 방송이야. 우리는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줘야 하니까.”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것.

그게 바로 미디어가 줄 수 있는 힐링이고, 불우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다.

“생각해봐.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 힐러, 그게 바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박유진이었다! 사람들이 난리가 날 거 같지 않아? 바로 그런 화제성, 시청률을 혜원이를 비롯한 불우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바꾸는 것. 그게 바로 우리 <힐러들의 수다>가 해야 할 일이지.”

김오태는 한때 맹목적으로 시청률을 좇다가.

결국 번아웃으로 탈모까지 얻은 사람이다.

화제성과 시청률만 찾아댔다간 예전과 다를 바 없어진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스토리텔링도 완벽해. 혜원이는 유진이를 보고 경찰이란 꿈을 가졌다고 했으니 말이야. 단칸방 출신의 아역스타가, 자신의 팬에게 새로운 집을 선물한다! 이거지, 그래. 이게 스토리텔링이지! 유진이를 섭외해놓고 밋밋하게 가면 그건 유진이에 대한 모독이라고.”

오랜만에 그럴 듯한 그림이 뽑힐 거 같아서인지.

지금은 좀 필요 이상으로 신난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재밌겠네요. 좋은 아이템인 거 같아요.”

유진이 동의하자 이지혜가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유진아. 진심이야?”

“응? 뭐가?”

“집 리모델링 비용이 만만치 않아. 못해도 가전기기 수백, 수천만 원은 들겠지. 아무리 너라도 정체를 감추고 그 돈을 다 모은다는 게······.”

“누나. 자꾸 나 서운하게 하네?”

“뭐?”

“내가 얼굴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진이 연예계에서 더 고평가를 받는 이유.

바로 ‘빽’ 없이 올라왔다는 점이다.

유명인의 2세도 아니고.

대형기획사에서 시간을 들여 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기학원을 거친 것도 아니다.

데뷔작인 <유별난 친구들>에서부터 주목을 받은 건 그가 가지고 있는 비주얼과 연기력, 특유의 매력 때문.

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어린 혜성.

“뭐, 내가 좀 잘생기긴 했는데. 얼굴 없이도 충분한데.”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 이지혜가 코웃음을 쳤다.

“······너 원래 이런 자뻑 캐릭터였니? 예전엔 순수하고 귀여웠는데.”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이잖아?”

예전엔 순진한 척한 거였다면.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

얼마 뒤.

미국에선.

똑똑.

“벤. 자리에 있나?”

사장실 문을 노크하는 스티븐.

돌아오는 대답이 없음에도 스티븐은 가감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사장실 안에는 코믹스를 탐독 중인 벤의 모습이 보였다.

“이봐. 일해. 코믹스나 읽지 말고.”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스티븐.”

“60년대 옛날 코믹스를 읽는 게 일하는 거였어? 휘슬은 정말 꿈의 직장이로군. 이래서 다들 사장 자리를 노리나?”

“할 말 없으면 나가줘. 난 지금 바쁘니까. 아니면 용건말 말해.”

“진심이야? 그를 빌런으로 출연시킨다는 계획 말이야.”

“그? 누굴 지칭하는 거야?”

“유진 팍.”

스티븐의 입에서 유진의 이름이 나오자.

벤은 코믹스를 덮고 스티븐을 바라보았다.

“그저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일 뿐이야. 캐스팅하기 전에 의견을 모으는, 그래. 브레인스토밍 같은 걸 해서 나온 아이디어지.”

“대체 누구와 브레인스토밍을 한 거야? 벤 케이지2와 했다곤 말하지 말아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좋아. 하지만 그런 단순한 아이디어치곤 자네 비서들이 유진 팍에 대해 상세히 조사 중이던데.”

“정보도 없이 캐스팅할 수는 없잖아.”

“이미 자네 마음속에선 캐스팅이 완료된 것처럼 보여.”

“난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아.”

“그거 참 신빙성있는 말이군요, 벤 사장님. 남들이 죽어라 일할 때 코믹스나 보고 계시면서 말이죠.”

스티븐이 비꼬았지만 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두 사람의 대화에선 흔히 있는 패턴이기도 하고.

“이봐, 벤. 저번에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비즈니스적 얘기를 하고 온 거야?”

“아니. 그와 나는 정말 순수하게 히어로 코믹스 얘기만 나누다 왔어. 젠장, 그 시간은 정말 황홀하고 즐거웠다고.”

지금 벤이 60년대 히어로 코믹스를 다시 보고 있는 이유.

유진과의 대화가 분명 영향을 끼쳤으리라.

“우리가 새로 구상 중인 히어로, 볼프강의 아이덴티티는 평범함이지. 그리고 그 빌런인 ‘팬시’는 말 그대로 화려하고 특별한 존재로 하기로 했잖아.”

“유진 팍 정도면 특별한 존재지.”

“이미 할리우드에도 잘 나가는 아역배우들이 넘쳐 나. 굳이 그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젠장, 나는 그가 영어로 연기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고.”

“일본어로 연기한 건 있으니 보고 오도록 해. 자네가 왜 벌써부터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군, 스티븐. 아직 캐스팅이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그래, 자네의 우려대로 만약 내가 유진 팍에게 팬시 역을 제의한다고 해도. 그가 거절한다면?”

“이봐, 벤. 자네는 자네의 가치를 너무 낮게 생각해. 네가 누구야? 바로 휘슬의 사장이라고. 자네가 제안한다면 거절할 배우가 누가 있겠어?”

그러나 벤은 고개를 저었다.

“유진 팍, 그 소년은 한국에서 아이들의 히어로야. 메탈맨 같은 존재라고. 사실 나는 그가 빌런 역할을 맡고 싶을지 잘 모르겠어.”

“그렇다고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겠어? 자네, 히어로 코믹스 말고 영화를 좀 봐. ‘대부’의 그 유명한 명대사도 있잖아.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자네는 이 판에서 비토 콜레오네랑 다름없는 인물이라고, 벤. 배우들에겐 유명세가 제일이야. 꿈이 빵을 먹여주나? 아니잖아.”

그러자 벤이 살벌한 표정으로 스티븐을 노려보았다.

“입 조심해, 스티븐. 우린 아이들의 꿈으로 먹고 사는 중이란 사실을 잊지 마.”

“어이쿠, 이거 실례.”

양손을 들어 보이며 항복 자세를 취하는 스티븐.

“하지만 이건 분명히 말해두겠어. 허울 뿐인 공동사장이지만 말이야. 나는 유진 팍을 볼프강이든, 팬시든 어느 역에도 캐스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걸. 굳이 오디션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봐. 이번 기획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인공 볼프강 역을 맡기엔 너무 튀고.

그렇다고 팬시 역을 맡기엔 할리우드의 아역배우들에 비해 아직 존재감이 약하다.

스티븐은 그리 판단하고 있는 것.

“이 대화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난 내 의견을 전달하러 온 것 뿐이니까.”

그리 말하며 물러가는 스티븐.

“······흥.”

스티븐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벤이 유진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나노단위로 분석하며 감상했다는 것을.

마치 히어로 코믹스를 읽을 때처럼 말이다.

박유진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을 때마다.

벤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소년이 맞아? 마치 작품마다 다른 존재가 되는 거 같아. 마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슈트를 입는 히어로들처럼 말이지.’

그가 보여준 히어로 코믹스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애정.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정말 히어로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

거기에 변화무쌍한 연기력까지.

벤이 유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나.

띠링-!

그때.

벤은 컴퓨터 속 스윗터 알람을 눈치챘다.

그가 알림 설정을 해놓은 키워드는 ‘유진 팍’이었다.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오, 이런 세상에.]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유진 팍.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야. 진정한 셀럽이 되어가고 있다고]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이 16세의 한국 소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긍정적 에너지로 치환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젠장, 그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멋진 16살 소년일 거야!

#위대한재능 #할리우드로와 #제발]

흥분했다는 게 느껴지는 론도의 스윗.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벤은 스윗터에 유진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나온 키워드는.

“가면, 콘서트,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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