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미국, 휘슬.
“뭐? 청소년 대상 강연?”
스티븐이 되묻자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 강연은 스티븐, 자네가 좀 맡아줬으면 해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흥분과 상상력을 선사하는 것.
그를 모토로 삼고 히어로 캐릭터를 창조해 영화를 만드는 휘슬인만큼.
아이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자선사업을 한다.
전세계에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구호물품 지원.
성적이 좋지만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 등.
아이들이 어려운 현실 때문에 꿈을 잃지 않도록 다방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중에서 여러모로 인지도가 높고,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
바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다.
“그건 자네가 하기로 한 거였잖아. 청소년 멘토는 자네의 몫이니까.”
이 프로그램이 유명한 이유는, 무려 사장인 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벤 케이지는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지만, 모두 거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강연을 하는 대상은 오로지 하나.
휘슬을 통해 꿈을 키워온 청소년들뿐.
그리고 이건 휘슬 측에도 꽤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사장이 직접 나서서 수요층과 스킨십을 하니, 트렌드를 누구보다 빨리 캐치할 수 있는 것.
물론 벤이 그런 의도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벤이 퀭한 눈을 하며 대답했다.
“볼프강 배우들을 좀 더 검토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시간이 허락된다면 최종 후보군들을 다시 한 번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볼프강 배우 선별에 대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
차기 히어로의 배우를 정하는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다.
게다가 사장이라는 자리가 좀 바쁘겠는가.
다른 업무도 처리하며 그 문제에 골몰하고 있으니, 저리 피곤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
‘유진 팍을 염두해두었다가 갑자기 바꾸려니, 도통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군.’
그 속내를 눈치 챈 스티븐이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회사 내에서도 박유진이 볼프강과 어울린다는 의견은 별로 없었다.
팬시 역을 맡겼다는 것에 대해선 환영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제동을 걸어야 해. 벤의 직감을 믿는 편이지만, 나 역시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즉흥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지.’
새로운 히어로.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에, 스티븐으로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벤이 심사숙고해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이 배려하는 게 옳으리라.
“알았어. 그럼 이번 강연은 내가 맡도록 하지.”
“이봐, 스티븐.”
그때, 벤이 스티븐에게 물었다.
“평범함이라는 건 뭘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자네 생각이 궁금해서.”
“추상적인 개념이지. 하지만 그걸 구체화해서 캐릭터 특성으로 녹이는 게 우리의 할 일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난 평범함이 특별함의 반대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주겠어?”
“정확히 <클라우 솔라스>에서 유진 팍이 보여준 모습과 반대지. 그는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특별했을 거 같아. 마치 어느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지.”
그 말에 벤은 피식 웃었다.
“오히려 자네가 나보다 유진 팍을 과대평가하는 거 같은데? 어쩌면 그 역시 평범한 소년일지 모르는데 말이야.”
*
지난 삶은 유진에게 있어 실패한 역사였다.
‘관심받지 않아도 좋으니, 연기만 계속 하면 좋겠다’는 다소 허황된 꿈을 꾸었다.
그 결과.
본래 빼어났던 제 외모도 수더분하게 바꿔버리고.
연기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있도록 연구하고, 연습했다.
그 덕분에.
“그래, 그래. 나도 알지! 유진 씨 진짜 든든하지. 음, 스페어 타이어 같은 느낌?”
한 관계자로부터 스페어 타이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
‘하지만 주목받는 인생은 아니었지.’
스페어 타이어.
그건 참 묘한 별명이었다.
위급할 때 쓸 수 있고, 얼핏 만능이라는 소리 같긴 하지만.
위급하지 않으면 쓸 곳이 없는 존재.
[박유진? 걘 애초에 연기가 노잼 아님?
ㄴ아니 이런 좋은 뉴스에도 꼭 악플을 다네
ㄴㄴ 연기 노잼인 건 팩트자너 ㅋㅋ]
발연기는 아닌데 몬가...몬가 좀 그럼...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배경인줄;]
관계자들에겐 스페어 타이어.
대중들에겐 노잼 연기자.
그게 바로 회귀 전 배우 박유진이라는 사람의 위치였다.
‘내가 그렇게 애매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 고생만 하셨어.’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고.
제대로 호강 한 번 시켜드린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아버지는 배달일을 하시다 결국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런 과거를 다시는 반복해선 안돼.’
그러니 회귀 이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였다.
과거의 자신은 버려야만 했다.
미리 들이닥칠 일을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으니.
유진은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
“아빠. 어디 가는 거예요?”
“가보면 알아.”
유진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데려가는 박태종이었으나.
정작 어딜 가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유진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박태종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부자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엥?”
한 영화관이었다.
“들어가자.”
다만 국내외 독립영화를 다루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덕분에 유진도 대충 얼굴을 가린 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영화를 한 편 볼 거야.”
“영화요?”
“응. 자, 티켓.”
박태종이 쥐여준 티켓은 일반적 영화 티켓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손수 만든 것처럼 보인달까?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은.
[기록]
매우 심플했다.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진.
아무튼.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니, 좌석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스크린 앞에 익숙한 얼굴이 두 사람.
“송미연 작가님이랑, 주승아 감독님?”
유진의 데뷔작 <유별난 친구들>의 대본을 쓴 송미연 작가.
그리고 이순철의 인생을 토대로 한 영화, <찬란>을 연출했고.
이지혜 떡상 영화인 <클래식 기타>를 만든 주승아 감독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영화관에 와 있는 것인가?
“두 분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시사회가 열린다고 해서 참석한 거예요.”
“시사회요?”
“네. 저희 두 사람이 참여한 작품이었거든요.”
유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작품의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
송미연과 주승아가 참여한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시사회치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
비공개 시사회라도 된단 말인가?
“자, 여기 앉아.”
그러는 사이 박태종은 유진을 자리에 앉혔다.
소위 명당이라 불리는, 영화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이게 대체 뭐예요?”
웬만한 미래를 모두 알고 있어 잘 당황하지 않는 유진이지만.
지금 이 자리는 온통 물음표일 뿐이었다.
“보면 알아.”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 박태종.
일단 유진으로선 잠자코 하라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영관이 암전되고.
곧 스크린에 영사되기 시작하는 영상.
“어?”
그런데 영상이 나오자마자, 유진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으니까.
[크흠, 으음. 부르르, 부르르르.]
찍은지 얼마 되지 않은 영상이다.
<클라우 솔라스>를 준비하며 보컬레슨을 받는 유진의 모습.
넙튜브에 업로드하려다 제외된, 미공개 영상이다.
[아아, 음. 네, 방금 음이 틀렸던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가볼게요.]
지독할 정도로 연습을 반복하는 유진의 모습.
그리고.
[음, 여기서 이 부분은 너무 문어적이니까 구어적으로 바꿔보고.]
몇 년 전.
<입김>과 <메모라이즈>를 통해 일본에 진출하기 전.
일본어 고급 어휘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유진도 보이고.
[음. 이순철 선생님 연기는 변화무쌍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틀이 있네. 그걸 캐치해내면 표현하기 좀 더 쉬울 거 같은데.]
그보다 더 앞서.
영화 <찬란>의 특별출연을 위해 이순철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는 유진의 뒷모습도 찍혔다.
[에엥? 아빠, 이 정도도 무서워하면 어떡해요? 그러다 제가 출연하는 <데드맨> 못 봐요.]
또 그보다 더 어린 시절.
<데드맨> 속 죽음의 의인화, 영서를 표현하기 위해 오컬트물과 호러물 속 귀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체크하는 모습까지.
사람들이 천재라 말하는 박유진이라는 배우.
그가 특별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치 유진의 연기인생, 그를 위한 준비기간을 집약해놓은 느낌.
‘그런데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유진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쯤.
영상 속 시간은 점점 역순으로 흘러갔다.
유진은 현실과 다르게 점점 어려져갔고.
이윽고 넙튜브 개설 직후인 <호구> 때를 거쳐.
갑자기 화질이 매우 떨어지는 영상이 튀어나왔다.
“어.”
그 조악한 화질의 영상을 보자마자 유진은 흠칫 놀랐다.
아역배우로 데뷔하기 전.
혼자 연기 연습을 하던 시절의 모습.
‘맞다. 내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있게 된 이후부턴 아버지의 캠코더를 가지고 연기 연습을 했었지? 데뷔 이후로는 완전히 잊고 있었어.’
당연한 일이다.
데뷔 이후 유진을 찍어주는 건 방송국 카메라였으니까.
[안녕하세여! 배우 박유진임니다!]
“으으윽. 저게 뭐야.”
처음엔 부끄러웠다.
10년도 더 된 영상.
애써 또박또박 발음하려 하지만, 어린아이의 한계상 웅얼거리는 모습.
마치 어린시절의 흑역사를 보는 듯한 기분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지금부터 냉철한 스파이 연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보게 되었다.
왜냐면.
‘뭔가 행복해보이네.’
그 속에서 유진은 정말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는 사람 한 명 없이, 구식 캠코더 하나 놓고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스파이를 연기하겠답시고 좁은 단칸방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칠이 다 벗겨진 문턱에 몸을 숨기는 귀여운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만큼은 너무도 진지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몰입감을 주었다.
‘아직 주목받기 전의 내 모습이야.’
그 모습 속에서.
유진은 회귀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봐주셔서 감사함니다! 꼭 뽀바주세요!]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그저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시절.
‘나는 왜 연기가 하고 싶었을까?’
어린시절 품었던 그 두근거림.
거기에 거창한 대의명분은 없었다.
그저.
‘재미있으니까. 하고 싶으니까.’
그 역시 한 명의 평범한 소년이었을 뿐.
그리고.
그 평범한 소년의 꿈은 오랜 시간이 걸려 만개해 결실을 맺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진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야 알겠어. 어째서 내가 볼프강에 끌렸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했는지.’
그건 단순한 욕심이나, 뻔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바로 회귀 전 자신의 인생에 보내는 헌사와 같았다.
‘회귀 전, 나는 동석이 형한테 말하곤 했지. 그냥 나는 연기만 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주목받지 않아도 되니까, 평범해도 되니까.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자 지난 삶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회귀 이후, 유진이 뒤돌아보지 않았던 그 당시의 삶.
그게 정말 의미 없었는가?
[어흐, 으흐으윽······.]
그때.
새카맣고 노이즈가 낀 영상에서.
노이즈를 뚫고 한 남자의 익숙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고.
[당신. 왜 또 울어?]
이어서 한 여자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윽, 여보가 유진이 안고 있는 모습을 보니······눈물이 나. 으흐윽!]
[그러다 캠코더 떨어뜨리겠어. 얼른 꺼야겠다. 내 선물인데 깨먹을 건 아니지?]
[절대, 절대 안 그래. 흐윽.]
바로 박태종,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유진의 어머니.
그녀의 생전 육성이었다.
[이제 당신도 아빠다워져야지. 우리 유진이처럼 예쁜 아가도 생겼으니까, 셋이서 알콩달콩 평범하게 잘 살자. 알았지?]
[으응······.]
[응애애.]
[아이구, 우리 유진이 운다. 유진아, 엄마 아빠야.]
마지막 유진의 옹알이까지.
이것만큼은 유진의 기억에 없었다.
유진이 회귀를 한 시점은,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였으니까.
“이런 게 있었구나.”
어머니는 유진이 워낙 어렸을 때 목숨을 잃어서, 기록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 캠코더를 다루던 유진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음성이었다.
“······.”
짧은 몇 마디뿐이었으나.
어머니의 목소리를 거의 처음 들어본 유진.
그 자리에 굳어서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박유진 배우가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니까, 아버님께서 저에게 연락해 부탁하셨어요. 여태 박유진 배우를 찍은 영상들을 가지고, 뭔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요.”
스크린 앞에 선 송미연이 유진을 향해 말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찬란>을 만드신 주승아 감독님께서 잘 만들어주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순철 선생님께 연락해, 주승아 감독님과 접촉할 수 있었죠.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시더군요.”
“덕분에 박유진 배우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주승아가 영광이라는 듯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박유진 배우 주변 사람들 인터뷰도 따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미 <나는 아역배우입니다>라는 다큐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예 그냥 나레이션도, 자막도 없이 담백하게 가보자 했어요.”
“시간 순서를 반대로 하자는 것은 아버님의 아이디어였어요. 저희는 대찬성했고요. 박유진 배우에게 가장 울림을 줄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했거든요.”
“이 <기록>이란 작품은, 박유진 배우만을 위해서 준비한 거거든요.”
오늘 이 자리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한 컨텐츠.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한 시사회, 아니 상영회였던 셈.
이 영화의 이름이 <기록>인 이유.
말 그대로 유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일터.
“크흠.”
잠시 후.
박태종이 종이를 한 장 들고서 스크린 중앙에 섰다.
잔뜩 긴장한 얼굴.
“우리 아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고 해서, 응원차 준비해봤어. 부디 바쁜 네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니길 바랄게.”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종이에 손수 적은 편지를 읽어나갔다.
“유진아. 기억하니? 네가 아빠의 꿈을 물어봤었지. 아빠는 기록하는 게 꿈이라 답했고. 하지만 아빠는 이미 꿈을 이뤘어. 넌 건강히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나와 엄마가 이 세상에 남긴 최고의 기록이고, 기적이야.”
처음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말이 이어질수록 박태종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사랑받든 사랑받지 못하든. 부모에겐 그저 언제까지고 어린, 평범한 한 명의 아들일 뿐이야. 아마 하늘에 있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엄마의 꿈은 우리 셋이 평범하게, 알콩달콩 사는 거였으니까.
어디서든, 누구에게 사랑을 받든. 혹은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빠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항상 사랑한단다.”
유진의 귀엔 이렇게 들리는 듯 했다.
회귀 전, 노잼배우라 불리며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한 못난 아들 박유진도.
지금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역배우 박유진도.
박태종에겐 똑같이 사랑하는 아들일 뿐이라고.
“······.”
유진이 최근 찾고 있던 평범함의 답.
그게 여기 있었다.
“음, 크흠. 음, 하하. 뭔가 쑥스럽네.”
유진이 그저 가만히 있자, 멋쩍어진 박태종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러자,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짝, 짝, 짝짝짝.
그리곤 있는 힘껏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클라우 솔라스> 공연이 끝날 때면, 커튼콜에서 제게 기립박수를 보내주던 관객들처럼.
그 박수는 아버지 박태종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그를 도와준 송미연과 주승아 감독을 향한 것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제 과거에게 보내는 박수이기도 했다.
‘내 회귀 전 삶이 의미없던 게 아니었어.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거지.’
유진이 외면하고, 뛰어넘으려던 과거.
그 자체가 볼프강이라는 캐릭터와 닮아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