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17화 (217/237)

217화

휘슬에서 진행하는, 사장 강연회.

그것도 어느새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럼 오늘의 마지막 단계. 종합적으로 판단해 우수한 참가자들에게 시상하는 시간이 있겠다.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스티븐이 강연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모두가 스티븐의 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더스틴 캠벨. 로즈 키안티. 딕 미첼.”

이름이 불린 청소년들은 쾌재를 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본래 벤이라면 모든 참가자들에게 상을 줬을 테지만.

스티븐은 생각이 달랐다.

‘원래 그렇지. 열심히 하고도 뒤처지는 것. 그게 현실이야.’

아니나 다를까.

상을 받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휘슬 사장 눈에 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그걸 놓친 것 아닌가.

‘그래. 저 분함을 바탕으로 앞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분한 마음이 들 터.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또 저 녀석만은 예외군.’

그 개털 머리의 아시안계.

그 녀석만이 아쉬운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짐을 챙기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강연을 잘 따라왔어. 내가 요구하는 것들을 성실히 수행했고, 강의를 듣는 태도도 나쁘지 않았지.’

하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

강연의 내용 자체가 딱히 어려웠던 것도 아니니까.

스티븐이 중점적으로 봤던 것은 열정과 창의성이라 공언했기 때문일까.

강연회에서 청소년들이 모인 모습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어떻게든 존재감을 내뿜으려 안달했다.

질문 시간엔 질문 공세를 퍼붓고.

시키는 게 있으면 고심해 최고의 결과물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저 개털머리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먼저 질문하지 않고, 시키는 게 있으면 적당히 해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녀석은 기묘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아.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군. 최근 볼프강 캐스팅 건 때문인가?’

시상 시간마저 끝난 이후.

“이봐.”

스티븐은 저도 모르게 그 모자 쓴 개털머리를 불러세웠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던 개털머리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스티븐 사장님? 음. 저 말씀이신가요?”

“그래.”

“무슨 일이세요?”

“혹시 누군가를 대신해 이 강연에 온 건가?”

“아뇨, 제 손으로 신청했는데요.”

“그럼 내 강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연 참여에 그다지 열정적인 것처럼 안 보이던데.”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단지 사장님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고. 그저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을 뿐인데.”

그 말에 스티븐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강연 내용을 잊은 건 아니겠지? 썸띵 스페셜. 특별해지려면. 그런 마음가짐으론 그저 스페어가 될 뿐이야. ”

스페어.

남의 뒤처리나 하고, 땜빵이나 할 수밖에 없는 존재.

“평범해서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거라고.”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스티븐이 취하고 있는 태도였다.

평범해서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라면 더더욱.

온갖 콘텐츠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하.”

뭐가 웃긴지.

그 개털머리는 오늘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스티븐이 강연 도중 무슨 농담을 해도 웃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그럼 이해하기 빠르겠군. 내 말 뜻 알아듣겠어?”

“조언 감사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개털소년.

그런데.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다수는 사장님이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 아닌가요?”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모자와 머리카락으로 가려졌던 눈빛이 순간 드러났다.

“뭐?”

“아마 그 평범한 사람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모두가 특별해질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여태 보여줬던 평범한 모습.

그와 상반되는, 위압감 넘치는 눈빛이었다.

‘잠깐만. 저 눈빛,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스티븐이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곧 소년은 고개를 숙이며 걸어갔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강연 잘 들었어요.”

그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스티븐.

곧 짧게 혀를 찼다.

“쯧,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린 거 같은데.”

스티븐은 이마를 짚으며 자책했다.

“하아. 좀 실언을 곁들인 거 같은데. 벤이 들었다면 노발대발했겠군.”

휘슬의 이념이 또 무엇이던가.

모든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게 나쁜 길만 아니라면 말이다.

굳이 저 소년에게 말까지 걸어가며, 스페어니 뭐니 떠들 필요가 있었던 걸까.

“우습네. 평범한 히어로를 만들려고 하는 내가, 평범한 녀석을 보고 뭐라 한마디 하려 하다니.”

아무래도 벤과 볼프강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떠든 것 같다.

평범이니 특별이니, 그런 것에 지나치게 얽매인 느낌.

그런데.

“그 눈빛은 대체 뭐였지?”

스티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희미한 인상 속.

유독 기억에 남는, 강렬한 눈빛이었다.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강연이 끝난 직후.

스티븐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니, 거기엔 웬일로 제 파트너가 앉아있었다.

“벤. 자네가 무슨 일로 내 사무실에 와있는 거지?”

그러자 벤은 기다렸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섰다.

“스티븐. 이제 강연이 끝난 건가?”

“그렇지 뭐. 그래서 사장님. 볼프강 캐스팅은 정하셨나?”

“음, 어느 정도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스티븐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볼프강> 프로젝트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그것보다 자네 이야기가 궁금하군. 강연회는 어땠어?”

“은근히 피곤하더군. 다들 열의가 넘쳐서 말이야. 마치 라이벌 구단끼리 맞붙는 축구 경기에 심판으로 나선 기분이었어.”

“하하! 열정이 넘친다는 건 좋은 거지. 게다가 휘슬을 좋아하는 친구들로 뽑았으니 말이야. 매번 파이팅 넘치는 친구들이 함께하지.”

“그런데.”

“그런데?”

“한 소년이 눈에 띄더군.”

그 말에 벤이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크흠. 왜, 왜에? 너무 잘난 사람이 한 명 있던가? 그 유진 팍처럼?”

“아니,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었어.”

“평범해서?”

“그래. 다른 녀석들은 다들 나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눈에 띄어보려고 아주 난리들이었지. 그런데 녀석은 모자와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고, 남들처럼 적극적으로 강연에 참여하지도 않았어.”

“소심한 성격인 모양이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묻는 말에는 또 똑바로 대답하고, 작문실력도 나름 괜찮아. 하지만 눈에 띄는 특징이나 존재감이 전혀 없었지. 아시안계라는 걸 빼면 말이야.”

아까 만났던 개털소년을 떠올리며.

스티븐은 자신이 느꼈던 감상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다른 참가자들은 장단이 뚜렷했어. 열심히 하는데 창의성이 없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창의성은 있는데 다소 독단적인 녀석도 있고. 그런데 그 아시안계 소년은 뭐든 중간쯤이었지. 참 이상한 일이야. 그 열정의 틈바구니 속, 오히려 평범한 모습을 보이니 더 눈에 띈다는 게 말이야.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어버린 거지.”

그리 말하며 스티븐은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아! 이게 다 자네가 볼프강 캐스팅을 확정하지 않아서 그래. 평범이라는 단어에 대해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그에 반해.

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푸, 흐, 흡. 그, 그럼. 그 아이를 볼프강으로 캐스팅할까?”

“허. 연기력만 갖춰진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스티븐은 농담삼아 대답했다.

그런데.

“그래서 자네. 방금 분명 그 아이를 두고 ‘평범하다’라고 말한 거지?”

벤이 꼬투리를 잡은 건 의외의 부분이었다.

“그래. 뭐 잘못됐나?”

“아니, 잘못될 건 없지. 없고 말고!”

잘못될 건 없다면서.

제자리에서 방방 뛸 정도로 기뻐하고 있는 벤.

그러더니 갑자기 제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스티븐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자. 스티븐. 다시 한번 말해봐. 그 소년이 어땠다고?”

“갑자기 그건 왜?”

“얼른!”

“그냥 평범했다고. 사실 그러면서도 오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언뜻 본 그 녀석의 눈빛이 말이야······.”

“오케이. 좋았어, 좋았어!”

스티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벤 케이지.

그의 휴대폰에서 작동 중인 것은 바로 녹음 어플이었다.

“자네 방금 뭐 한 거야?”

벤은 스티븐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잔뜩 흥분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좋아, 확인받았어. 내 사무실로 들여보내도록 해!”

뚝.

전화가 끊긴 직후.

“자네 지금 대체 뭘 하는 거야? 이번엔 또 누굴 들여보낸다고?”

“누구긴. 우리의 새로운 히어로지.”

느닷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진 스티븐.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로 들어온 것은, 스티븐에게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너는?”

“금방 다시 뵙네요, 사장님.”

바로 방금 전의 그 개털소년.

“네가 여길 왜 와?”

“벤 사장님께서 부르셔서 왔어요.”

“뭐?”

“제 얼굴을 잊으신 거 같아서 조금 섭섭하네요.”

개털소년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이제야 확연히 드러난 얼굴.

스티븐은 그 얼굴을 잠시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은.

“유, 유진 팍?”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스티븐이 경악에 찬 얼굴로 재차 물었다.

“당신. 정말 유진 팍 맞습니까?”

“네. 맞아요. 음, <클라우 솔라스> 속 넘버 하나라도 불러드릴까요?”

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 제안 잊지 않으셨죠? 그 말을 지키러 왔습니다.”

*

스티븐에게 자신의 평범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를 위해 유진이 선택한 것은, 바로 회귀 전 자신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꿈도 있고 열정도 있지만, 정작 목적이나 그에 따른 욕망은 희미한 상태였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을 모르고, 붙임성도 없던 배우.’

그토록 벗어나려 했고, 지우려 했던 과거였으나.

유진은 이제 그 시절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평범했기에 특별함을 꿈꾼 볼프강처럼.

그 시절의 자신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성공한 아역배우가 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때를 재현하기 위해 머리도 기르고, 일부러 머릿결도 개털 상태로 만들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식단을 조정해, 몸을 제법 두툼하게 키웠고.

그 외에도 모자를 쓰고, 품이 넓은 옷을 입는 등 제법 신경을 썼다.

물론 본판이 우월해서 매우 힘든 작업이긴 했지만.

미국까지 따라와 메이크업, 아니. 분장을 도와준 솔미 실장 덕분에 꽤 그럴듯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븐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건 단편적 인상이었지. 그 덕분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거야.’

스티븐에게 유진의 존재감은 확실히 각인되어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클라우 솔라스> 속, 금발과 분장으로 인해 꾸며진 유진의 화려한 모습이었으니까.

“만약 나였다면 절대 속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벤을 속여야 했다면, 유진은 애초에 이런 작전을 짜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진에게 관심이 워낙 많았어야지.

“그럼 오늘 종일 강연을 들었던 게.”

“네. 바로 저예요, 스티븐.”

곧 스티븐은 벤을 쏘아보았다.

“설마. 자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강연을 부탁했던 거야?”

“아니, 난 몰랐어. 진짜야.”

벤이 결백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내가 알게 된 건 자네의 강연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야. 유진 팍은 자신이 스티븐 자네를 설득시켜볼 테니 강연에 참석만 시켜달라고 내게 양해를 구했거든. 설마 아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타나, 연기력으로 자네를 감쪽같이 속일 줄은 몰랐던 거지.”

벤은 오히려 뻔뻔하게 인정했으면 인정했지.

이런 문제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오랜 파트너인 스티븐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벤의 말이 맞아요, 스티븐. 혹시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유진이 그를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당신이 말했죠?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 말을 지키면서, 동시에 제 평범함을 증명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팬시 역을 제안받았을 당시.

유진은 스티븐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자신의 평범함을 증명하면, 자신을 볼프강에 캐스팅해달라고 말이다.

스티븐은 당시 그를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고.

설마 그게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전혀 몰랐겠지만.

“스티븐도, 심지어 나조차도 당신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벤이 말했다.

“그래서 더 감동입니다. 당신은 정말 볼프강이라는 역할에 진심이군요!”

흥분한 벤을 뒤로하고.

스티븐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유진의 행색을 살폈다.

“당신이 오늘 보여준 그 모습들. 그게 정말 다 연기에 불과했던 건가요? 내가 이 비즈니스를 하며 온갖 사람을 만났지만, 오늘처럼 일상적 느낌조차 연기해내는 배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스티븐이 생각하기에.

유진은 날 때부터 슈퍼스타였을 인물이다.

비주얼, 연기력, 영어도 손쉽게 구사하는 비상한 두뇌 등.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

하지만.

“스티븐, 당신이 저를 특별하게 봐주시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저는 단칸방에서, 어머니 없이 혼자 꿈을 키우던 평범한 소년이에요. 누군가는 평범도 안 되고, 불행하다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특별하진 않았죠. 저도 어려서부터 몇 번이고 바랐습니다. 특별해지고 싶다고요. 마치 볼프강처럼 말이죠.”

유진은 순전히 재능으로 빚어진 배우가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진창을 겪고,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한 진주에 가까웠다.

“자, 스티븐.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야. 자네가 한 발언은 모두 녹음도 해뒀다고. 이제 유진 팍을 볼프강에 캐스팅하는데 반대하지 않겠지?”

유진을 볼프강에 캐스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에 벤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으음.”

사실, 오늘 스티븐이 그 개털소년을 통해 마냥 평범한 느낌만 받았다면 끝까지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 유진과 대화를 했을 때 느꼈던 그 오묘한 느낌.

그리고 눈빛이 마주친 순간 느꼈던 압도감.

평범하면서도, 일순 사람을 휘어잡는 그 카리스마.

그 모습이야 말로 볼프강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순간 스티븐의 머릿속에도 그런 생각이 스친 것.

‘이것조차 유진 팍은 계산했던 걸까? 눈에 띄는 평범함이라니. 이런 모순적 느낌마저 표현해낼 줄 아는 아역배우라니.’

덕분에.

강경반대론자였던 스티븐의 마음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다만, 현실적 문제가 남아있었다.

“설령, 정말 설령 그를 볼프강에 캐스팅한다고 해도. 그럼 팬시 역 배우를 다시 찾아야해. 볼프강 역이야 최종 캐스팅 후보라도 있지. 언제 또 팬시역 후보군을 추려낼 거야? 또 감독인 존 조그와도 회의해봐야 해.”

“걱정 마. 유진 팍이 볼프강을 맡게 된다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존이라면 오히려 이 소식을 환영할 걸? 그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알아.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거든.”

“그러니까, 당장 구멍이 난 팬시 역은 어쩔거냐고 묻고 있잖아.”

“뭘 그리 급하게 생각해? 걱정 마. 다 잘 될 거라고. 차근차근 하면 되지.”

“당장 그놈의 캐스팅 문제로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한 거 모르나? 안 그래도 이 프로젝트의 불확실성과 비효율성에 회사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마당이라고.”

감에 의존하는 벤과.

효율성을 따지는 스티븐.

두 사장의 의견이 충돌하는 와중.

“걱정 마세요. 비효율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

유진이 자신있게 말했다.

“두 배역 다, 저한테 맡겨주신다면 말이죠.”

“뭐라고요?”

“뭐라고요?”

벤과 스티븐이 동시에 유진을 돌아보았다.

“볼프강과 팬시, 둘 다 제가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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