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박유진에게 있어.
차윤미는 꽤 특별한 존재였다.
“사장님.”
“엉? 왜 그러냐.”
“원래 실장님은 아이를 갖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아아. 그랬지.”
“그런데 왜 마음이 바뀌신 거예요?”
언젠가.
유진은 차동석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차동석은 뭘 묻냐는 듯 피식 웃었다.
“뭘 물어? 네 덕분이지.”
“제 덕분이요?”
“그래. 이 사장님이야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당연히 우리 자기······아니, 실장님을 꼭 빼닮은 아이를 갖고 싶었어.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가 위태위태하지 않았냐. 오디션 보러 왔을 때, 너도 봤지? 그 휑뎅그렁한 사무실을 말이야.”
8살이던 유진이 찾아갔을 당시.
주역 매니지먼트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조를 때마다 수입이 안정화되고서야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유진이 회귀하기 전엔.
결국 두 사람은 안정을 찾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결국 주역 매니지먼트를 정리하고.
다시 토사구팽당한 DV엔터에 읍소해야만 했던 두 사람.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으며 다니진 못했다.
“뭐, 애를 낳는 게 나도 아니고. 당연히 그 사람의 결심이 서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나도 보챌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그리 말하던 차동석.
갑자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네가 온 거야. 이 복덩이 녀석.”
유진의 등장으로.
주역 매니지먼트는 말 그대로 ‘떡상’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제가 두 분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든 덕분이군요!”
“아니, 음. 어린애가 그렇게 말하니 되게 기묘하구만. 아무튼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야. 실장님이 저래 보여도 정이 많은 사람란 말이지.”
“하긴. 그래서 사장님이랑 천생연분인 거 같아요.”
“······칭찬 맞지? 아무튼, 네가 아버님이랑 같이 장난을 칠 때면 그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그 말에 유진은 조금 놀랐다.
회귀 전이나 후나.
유진의 눈에 장미소는 항상 냉철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으니.
그런 장미소가 자신과 아버지를 부러워했다니.
“너를 보고 결심이 섰을 거야. 우리의 아이가 갖고 싶다고. 다 네 덕분이다, 유진아. 고맙다.”
장난기를 지우고.
차동석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언젠가 너희 아버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지. 아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고. 네 덕분에 나도 그 기쁨을 누려볼 수 있게 되었어.”
물론 회귀 이후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은 유진이지만.
자신이 한 생명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새삼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유진의 전생에서 차윤미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 아닌가.
그래서일까.
차윤미가 갓난아기 시절부터, 유진은 차윤미에게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너도 윤미 좀 잘 챙겨줘라. 친오빠처럼 말이야. 알았지?”
차동석이 호쾌하게 말했다.
꼭 그 말 때문은 아니더라도.
차윤미를 보며 유진 역시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보고서 아이를 갖는 사람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박유진은 저출산 해결사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아역배우로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
아무튼.
“여동생이라.”
어머니가 일찍 떠난 유진이다.
새로운 형제가 생기는 건 불가능한 일.
박태종이 재혼을 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아마 유진이 생각하기에, 박태종은 평생 재혼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니까.
“저렇게 조그마한 애가 목청껏 운단 말이지.”
자신도 몇 년 전에는 저랬다는 사실을 잊은 듯.
차윤미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유진은 손을 뻗어보았다.
그러자.
“우뱌아!”
차윤미가 해맑게 웃더니.
유진의 검지를 척 잡는 게 아닌가.
“어?”
그 보드라운 감촉에 유진은 흠칫 놀랐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세상의 모든 형, 누나.
혹은 오빠.
혹은 언니들은 알 것이다.
동생이 생겼을 때의 기쁨을.
차윤미의 존재로 유진은 그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태어나줘서 고마워, 윤미야.”
그러나.
그게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알 것이다.
“아, 진짜. 박유진!”
음.
차윤미 놀려먹는 게 재밌는 걸 어떡해.
차동석도 놀려먹는 맛이 쏠쏠한데.
차윤미의 타격감은 그보다 더 했다.
무결점의 이미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리는 유진이다.
그러나 차윤미 앞에서는 한없이 편해질 수 있었다.
정말 친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형제자매가 있다는 건 좋은 거구나.”
유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중얼거렸다.
*
박유진이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는 차윤미는.
“언니! 여기야.”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카페에 왔다.
손을 흔들자 멀리서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걸어왔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어?”
“아냐, 혜원 언니. 나도 아까 왔는걸.”
그녀의 정체는 바로 지혜원.
바로 <힐러들의 수다>를 통해 유진과 연을 맺게 되었고.
경찰을 지망하는 소녀.
“근데 뭐하느라 늦은 거야?”
“오늘 달리기 2키로를 못 채웠거든. 그거 마저 채운다고 좀 달리느라. 진짜 미안.”
“와. 그거 아직도 하는 거야?”
“나 자신과의 약속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지혜원은 경찰을 지망하기 때문인지.
하루에 운동 할당량을 정해놓고, 이를 매일 지키고 있었다.
“안 힘들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나는 미래에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질 몸이니까.”
지혜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힐러들의 수다> 방송 이후.
집도 리모델링하고, 장학금도 매우 많이 받았다.
“난 받은 게 정말 많아. 이걸 사회에 다 갚아야지.”
덕분에 지혜원은 어느 정도 집안 걱정, 어머니 걱정을 덜 수 있었고.
제 꿈인 경찰을 향해 매일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유진 오빠랑 약속도 했고. 난 꼭 경찰이 되어야 해.”
“박유진, 박유진, 박유진! 정말 어딜 가도 그 인간 얘기뿐이네.”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젓는 차윤미.
“너도 운동해봐. 처음에만 힘들지, 익숙해지면 재밌어. 아니다, 언니랑 같이 할래? 땀을 빼면 얼마나 기분 좋은데.”
그러자 차윤미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 너무 열심히 운동하면 키 안 큰대.”
“나는 큰데?”
“아무튼! 나는 됐어. 나는 공부 잘하니까 괜찮아.”
자존심 때문인지.
운동이 싫다는 말은 죽어도 못하는 차윤미였다.
“그래서. 왜 보자고 한 거야?”
“아, 맞다. 까먹고 있었는데. 있지, 나랑 같이 봉사활동 안 갈래? 근처 노인복지회관에서 물리치료 봉사활동 2명을 구한대서. 너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거든.”
“봉사활동? 언니 친구들 놔두고 왜 나랑?”
“응. 거기가 알고보니 옛날에 빅터 멤버들이 봉사활동 했던 곳이라고 해서······.”
“오케이, 콜. 무조건 할게.”
이런 식으로.
요즘 연예계는 봉사와 기부가 트렌드처럼 번져 갔고.
청소년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 불고 있는 청소년층의 성숙한 봉사문화, 연예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선한 영향력은 무엇인가? 한국의 연예인들을 토대로 한 분석]
덕분에 외신에서는 이런 선한 영향력 열풍에 대해 조사하고 갔을 정도.
물론 모두가 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스윗터로는 봉사활동 인증샷이니 뭐니 떠들고는.
실은 그냥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선의를 이용해, 제 이득을 챙기려는 인간도 드글댔다.
하지만.
[아이돌 레드블루가 다녀간 아동복지회관, 기부금 폭증······리모델링 공사 비용 마련 “레드블루와 그 팬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감사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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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세상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다 유진 오빠 덕분이지. 어린 나이에 그런 대단한 일들을 한 거잖아.”
그 말만큼은 차윤미도 반박할 수 없었다.
지혜원이 이렇게 마음 놓고 꿈을 좇을 수 있게 된 것도.
스타들의 선한 영향력 릴레이도.
모두 성인이 되기 전, 박유진이 이룩한 성과들이었으니.
“그 오빠가 벌써 스무 살이 넘었다니. 신기해. 요즘 뭐하고 지내?”
“몰라. 대학 가고, <볼프강> 찍으러 해외 나갈걸. 울 아빠가 따라가거든. 그런데 할 짓이 없나 봐. 가끔 이상한 톡이나 보내고. 진짜 미워죽겠어.”
“왜? 사이 좋아 보이는데. 친남매 같아.”
“으, 더 싫어! 혜원 언니, 그런 말 하지 마.”
유진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유명 대학교에 입학.
원했던 대로 아동복지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대학 생활에 할리우드 촬영에.
분명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음. 나도 그 오빠 얼굴 본 지도 오래 됐네.”
차윤미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
-박유진 오?빠놈 : 윤미야 나 지금 한국인데
-박유진 오?빠놈 : 맛있는 거 사줄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본인에게서 톡이 왔다.
*
“맛있는 거 사준다며.”
“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야.”
“난 파스타 먹고 싶다니까.”
제 앞의 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만 괜히 놀려대는 차윤미.
그에 반해.
“그래, 그래. 다음엔 파스타 먹자.”
유진은 입맛을 다시며 국밥에 다데기를 푸는 중이었다.
새우젓갈 투하는 덤이었고 말이다.
“너 입맛이 진짜 동석이 형······아니, 사장님이랑 빼다 박았구나. 사장님이랑 밥 먹을 때도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지.”
“내가 아빠 딸이니까 당연한 거지.”
“그래도 사장님은 국밥 좋아하셨는데 말이야. 이 맛있는 걸 왜 싫어하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진.
그렇게 밥까지 말아 후루룩 국밥을 먹으려는 찰나.
“잠깐.”
차윤미가 제 휴대폰으로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키더니.
곧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뭐해?”
“찍으려고. 먹방. 이거 내 넙튜브에 올려도 돼?”
유진의 먹방은 찰지기로 유명하다.
가끔 유진의 채널에 올라오는데, 조회수가 수백 만회에 달할 정도.
그리고 그를 놓칠 차윤미가 아니었다.
자칭 넙튜브 컨설턴트로서.
차윤미는 박유진이 얼마나 치트키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마음대로. 근데 너희 아버지가 싫어하실걸?”
“아이. 오빠가 대신 좀 말해줘.”
“싫은데.”
“아, 왜애!”
“국밥 싹 비우면 생각해볼게.”
“진짜 나빴어. 치사빤쓰.”
“응, 반사.”
유치하게 티격대는 두 사람.
곧 차윤미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이, 괜히 왔어. 혜원 언니랑 파스타나 먹으러 갈 걸.”
“아. 맞다. 나 너한테 줄 거 있는데.”
“됐어, 안 받아.”
“내가 뭘 줄줄 알고?”
“뻔하지. 또 어디서 이상한 거 가져와서는 나 놀려먹으려고.”
그러자 유진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막상 보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그리 말하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하는 유진.
곧 테이블 위로 올라온 것들은.
“뭐야, 이거?”
“뭐긴. 네가 좋아하는 거지.”
바로 빅터 굿즈.
그것도 재오 것만을 모아놓은 굿즈들이었다.
차윤미가 그렇게 원하던 포토카드까지 있었다.
“이, 이걸 어디서 구했어?”
아까 전과는 달리.
목소리며 손까지 벌벌 떠는 차윤미.
그러자 유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재오 형이랑 얼마나 친한지 알면서.”
유진은 빅터 소속사인 UB엔터와 제법 인연이 깊다.
재오의 굿즈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차윤미는 알고 있다.
박유진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대학생활하랴, 할리우드로 촬영 나가랴.
이런 박유진을 서포트하고 있는 차윤미의 아버지, 차동석도 얼마나 바쁜데.
본인은 오죽 하겠는가.
“일본인가 미국인가 간다면서, 이런 건 언제 또 챙겼대?”
“안 그래도 얼마 뒤에 출국해야해. 뭐, 이번엔 금방 돌아오겠지만. 아무튼 고생하면서 얻어낸 거니까 잘 써. UB엔터에서도 그거 얼마 안 남아있었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차윤미를 이렇게 챙겨주는 건 박유진 뿐이었다.
이럴 때면 정말 든든한 오빠 같은 느낌.
“······고마워.”
그러자 유진이 귀를 들이밀며 말했다.
“으음? 잘 안 들리는데? 뭐라고?”
“에이, 씨. 고맙다고! 이 웬수야.”
퍽퍽 유진의 등짝을 때려대는 차윤미.
“아악! 아파. 얜 어린 애가 손이 왜 이리 매워.”
“오빠가 맞을 짓을 해서 그래. 맨날 나한테만 장난치고, 이상한 짓하고.”
“그만큼 널 아끼는 거란다, 동생아.”
“으웩! 징그러워.”
질색하던 차윤미지만.
곧 두 사람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정말 오랫동안 봐온 두 사람 아닌가.
차윤미도 내심 유진이 자신을 얼마나 챙겨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이상한 짓을 해서 문제지.
“아, 맞다. 나 할 말 있었는데.”
국바을 먹던 유진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왜, 또, 뭐.”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다 오빠 때문이야.”
“선물도 줬는데 너무하네.”
“그래서, 뭔데?”
또 평소처럼 이상한 소리나 하겠지.
그렇게 예단하며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차윤미다.
그런데.
“나 군대 간다.”
“그래, 군대······엥?”
박유진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 어딜 간다고?”
그러자 유진은 재차 대답했다.
“군대.”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박유진.
그가 느닷없이 입대를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