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29화 (229/237)

[외전] 9화

연극으로 유명한 대학로.

약 200여석의 소극장.

짝짝짝-

그곳에선 박수 세례가 터져나왔다.

바로 연극 <아침과 저녁>.

그 커튼콜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빈 좌석은 몇 개 보이지만.

그래도 거의 꽉 찬 객석.

“휘유!”

“와아아아아아!”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늘 연극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 창작 연극이 유명세를 탄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출연진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관객들을 허리를 숙이는 이순철.

국민배우, 충무로의 왕.

그리 불렸던 그가 소극장 연극무대에 선 것이다.

그렇게 커튼콜이 종료되고.

암전되었던 객석이 다시 밝아졌다.

“나 후반부부터는 눈물 줄줄 흘린 듯.”

“와. 순철옹 연기 개쩔더라.”

“진짜. 나 연극 처음인데 이런 맛에 연극 보는 건가?”

“그러니까. TV나 영화관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내 눈앞에서 연기하고 있으니까, 와. 이게 꿈꾸는 건가 싶고 그래.”

“나 벌써 또 보고 싶어!”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었어.”

“아, 진짜? 너무 아쉽네. 일찍 알았으면 몇 번 더 봤을 텐데.”

연극을 관람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감탄을 토해냈다.

<아침과 저녁>.

불치병에 걸린 청년과.

늙은 나이지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노인.

두 사람에 관한 내용의 연극이다.

신파 느낌이 가득 풍길 것 같지만.

의외로 담백한 연극이었다.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

그리고 그를 완벽히 표현해낸 이순철이 있기에 입소문을 탈 수 있었던 것.

“총 두 달, 연습 기간까지 하면 반년 좀 덜 됐겠군요.”

오늘로 마지막을 맞이한 연극.

백스테이지에선 출연 배우와 연출과 스탭을 비롯, 관계자들이 모였다.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허허! 영광은 무슨. 나도 새로운 자극을 받고 좋았어. 우리나라 연극계의 미래가 아주 밝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무슨 말씀이세요. 충무로의 왕께서 대학로에 와주셨는데요.”

“자네야말로 무슨 소리! 난 그런 자리에서 내려온지 꽤 됐어.”

과거라면 몰라도.

이순철은 이제 그를 부정했다.

‘이제 그 칭호는 그 아이가 받아야지. 아니, 오히려 그 칭호가 그 아이를 담기엔 너무도 부족해.’

자신은 몇 십 년 동안이나 고민하고, 끝내 무산됐던 해외진출.

그걸 매우 어린 나이에 해내고.

엄청난 성과를 들고 돌아온 녀석.

‘아아. 오랜만에 보고싶구만.’

곧 상념에서 빠져나온 이순철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 기뻤어. 다들 앞으로도 멋진 연기 하고, 멋진 연극 만들어주면 고맙겠구만.”

퍽 담백한 소감이었으나.

모든 사람이 이순철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엔 한참 어린 후배들 앞에서 소탈하지만.

그렇게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기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매번 무대마다 객석의 관객들은 물론이요.

함께 하는 배우들, 스탭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배우.

이순철은 존재만으로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힘을 주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연극의 막이 내려갔다는 시원섭섭함을 안고.

백스테이지에서 한바탕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선생님!”

잠시 후.

한 스탭이 이순철에게 다가왔다.

“선생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는데요?”

“나를? 누가?”

“객석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가족인가?

그런 생각과 함께 이순철이 객석 쪽으로 나온 순간.

“할아버지!”

활기찬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이 업계에서 이순철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

“오, 유진이 아니냐?”

바로 박유진뿐이다.

유진은 강아지처럼 달려와 이순철과 포옹을 나누었다.

“오늘 연극 정말 잘 봤어요!”

“뭐야, 연극 보러 온 거냐? 미리 말을 하지.”

“죄송해요. 대학로 쪽 지나가다가 선생님 얼굴이 걸린 홍보 현수막을 보고 들린 거라서요.”

“아아, 그러냐? 하긴, 그게 바로 연극 보는 맛이긴 하지.”

호탕하게 웃는 이순철.

그는 곧 유진의 짧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전역했다며? 축하한다. 고생 많았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도 잘 지내셨죠?”

“군대 가는 녀석에게 용돈이라도 쥐여줬어야 하는데, 나이 먹고 연극 하려니 대본 외우는 것도 힘들어서 말이야.”

“에이, 용돈은 무슨. 무사히 잘 다녀왔으니 된 거죠. 그런데 오늘 연극 정말 잘 봤어요. 할아버지의 연기는 여전히 멋지네요.”

이순철도 지긋한 나이가 되었다.

이젠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그러나 그는 배우로서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주로 활동하던 미디어 매체가 아닌.

대학로 연극판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국민배우 소리까지 들었던 이순철이다.

그가 대학로에 오니, 대학로 연극판 자체에 관심이 집중됨은 물론.

활기가 도는 것은 당연한 일.

“오랜만에 연극하신 거라고 들었어요. 어떠세요?”

“연극하던 배우들이 결국 대학로로 돌아오는 건 이유가 있어. 여기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거지. 객석이 숨을 죽이고 내 몸짓, 목소리에 집중하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 박수갈채까지. 매일이 꿈을 꾸는 기분이거든.”

즉.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이순철의 배우로서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은 것 같다.”

“에이, 이렇게 정정하신데요.”

“이 나이쯤 되면 예감이라는 게 생기지. 그리고 그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어.”

아까와는 달리.

이순철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다음 작품이 내 은퇴작이 될 것 같다. 내게 남은 마지막 시간인 셈이지.”

평소라면 웃으며 말했을 이순철이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예감이 든 만큼 아쉬움이 큰 것이리라.

그만큼 이순철은 연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본래 십 년도 더 전에 은퇴를 결심하던 이순철이다.

그런데 미니시리즈에서 한 꼬마와 연기를 하게 되었고.

그를 토대로 다시금 연기 열정이 불붙었다.

“그럼 그 마지막 작품은 정하셨어요?”

그리고 그 꼬마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어서, 이순철을 찾아온 것이고.

“아직. 하지만 그리 고심하진 않을 생각이야.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작품, 그게 있으면 뭐든 할 생각이다.

“그럼요, 할아버지. 그 마지막 시간, 저에게 한 번 맡겨보실래요?”

그때나 지금이나.

대담하게 이순철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저랑 함께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놀아보시는 거죠.”

유진이 이순철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놀아보자?”

“네. 할아버지도, 저도. 연기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마지막도 재미있게 해야죠.”

그 말에 이순철은 흠칫 놀랐다.

자신이 예감한 마지막 기회.

사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여실히 느꼈다.

예전과 같지 않은 몸.

침침한 눈과 퇴화한 암기력.

그에 따른 집중력 저하 등.

이를 커버한 것은 순전히 이순철의 노련함과 경험 덕분.

아직 연기가 더 하고 싶은 이순철이다.

그 때문에 표현은 안 해도 적잖이 슬퍼하던 상태.

‘그런데, 놀아보자, 라니.’

그 말 한마디를 들은 것뿐인데.

마치 예전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하루하루 재미있게 연기를 하던 그 시절이.

“허허허허!”

곧 이순철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웃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

“좋아. 그래. 그럼 그 놀이판이 어디인지, 한 번 봐볼까?”

이순철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

얼마 뒤.

온플러스.

“진짜 역대급 출연진이 완성되었습니다.”

고PD는 여느 때처럼 정국장에게 <판데모니움> 관련 보고를 올리러 왔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지금 매우 흥분한 상태라는 점이다.

“재오, 한권주는 물론이요. 새롭게 합류한 박유진, 거기에 몇 년간 두문불출했던 강사랑까지! 이거 정말 대박입니다.”

연차가 쌓이며 호들갑 떠는 일이 사라진 고PD지만.

이번만큼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딜 가서도 못 볼 조합이 탄생하지 않았나?

“강사랑을? <열다섯, 서른다섯> 이후로는 아예 작품 소식이 끊겼다고 들었는데?”

정국장 역시 강사랑의 합류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PD로서도 강사랑의 합류가 마냥 반가웠다.

그녀의 연기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마당발’이라는 캐릭터와도 찰떡이었으니.

강사랑이 잠적한 상태만 아니라면.

고PD 역시 강사랑을 섭외 1순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말씀드렸듯, 박유진의 추천 캐스팅이었습니다. 그 이후 강사랑 측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강사랑의 행방은 전 소속사도 찾지 못한다 들었는데.

그걸 박유진이 데려온 것이다.

“설마 박유진이 이렇게까지 해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야, <유별난 친구들> 때의 정으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요?”

출연료도 자진해서 낮추고.

그 강사랑까지 데려왔다.

온플러스 입장에선 박유진이 은인이나 다름 없는 것.

“석기야. 아직도 방송물 덜 들었냐? 박유진은 그저 우리를 수단으로 쓰고 있는 거야.”

그런데 곧 정국장이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유진은 호구가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그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퍽 똘똘했지.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 이익이 되는지 모두 알고 있었어. 불과 8살 때부터. 그런 녀석이 갑자기 우리에게 이유 없는 선의를 베풀 리가 없지.”

“그 말씀은?”

“그러니까, 박유진은 그저 세팅을 하고 있는 거에 불과해. 자신의 복귀무대를 가장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 마침 그게 우리 작품이었던 것뿐이고.”

히어로 볼프강 그 자체였던 박유진.

그의 전역 이후 복귀작은 청불 등급의 피카레스크이고.

맡은 역할은 전직 깡패 복수귀.

거기에 출연진이 재오, 한권주다.

여기에 박유진은 강사랑을 얹어 조미료를 더한 것.

왜냐?

어차피 공개되면, 모든 관심은 박유진한테 쏟아질 테니까.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꺼이 이용당해주면 됩니다. 저희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까요.”

박유진도 좋고.

온플러스도 좋다.

그야말로 최고의 윈윈 전략.

“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튼, 남은 주역은 한 명뿐이군요.”

빌런들을 엮어 일을 계획하는 ‘설계자’.

다른 네 명의 배우가 워낙 걸출하다보니.

이 설계자를 맡을 배우도 무게감이 있어야만 했다.

“캐디한테 말해서 다시 리스트 뽑아와. 강사랑에 박유진이 더해졌으니, 더 급을 높여야지.”

“잠시만요, 국장님. 아직 박유진이 추천하는 배우는 한 명 더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유진은 자연스레 설계자 역할의 배우까지 추천하겠다는 것.

두 사람은 잠시 그게 누구일지 추리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재오, 한권주, 강사랑. 모두 박유진과 작품을 같이 했던 배우들이네요.”

“그래. 그렇다면 설계자 역에도 자신과 친분이 있는, 급이 높은 배우를 추천할 가능성이 높겠지.”

“박유진과 친분이 있으면서도, 원로배우에, 이 라인업에 꿇리지 않을 정도의 급을 가진 배우라······.”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충무로의 왕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영화 대신 연극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 배우를.

“에이, 설마. 아무리 박유진이라도······.”

그런데 그때.

국장실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곧 정국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그래. 고PD는 지금 내 방에 있어. 잠깐만, 누구?”

곧.

정국장의 동공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무, 무슨 일입니까?”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정국장이 고PD에게 말했다.

“이순철 선생님.”

그의 목소리는 답지 않게 조금 떨리고 있었다.

“이순철 선생님이, 설계자 배역을 맡고 싶다고 하신다.”

*

김선미의 사촌 언니.

김현서는 지루하게 하품을 했다.

“하아.”

그녀는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중.

최근 김현서의 인생은 비교적 심심하다.

사촌 동생인 김선미가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처음엔 그 사실이 퍽 신기했는데.

그것도 몇 년 지나고 나니 익숙해졌다.

김현서는 박유진 찍덕으로 활동하던 중.

한 회사 눈에 들어 취업한 상태.

그야말로 덕질하다 돈을 벌게 된 케이스다.

하지만.

“유진이 컴백 대체 언제 하냐.”

그녀의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바로 자신의 원픽.

박유진이 군대를 가버렸거든.

물론 최근 전역하긴 했지만, 복귀작 소식이 아직 없다.

“대박유진에도 관련 썰은 하나도 안 올라오고. 진짜 좀 쉬려는 건가?”

가뜩이나 박유진이 한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탓에.

찍덕으로 활동하지 못한 게

기껏해야 출국, 입국할 때 찍은 공항사진 몇 장이 전부.

그마저도 경비가 삼엄해 제대로 못 찍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그렇게 습관처럼 접속한 넙튜브.

그런데 김현서의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으니.

[온플러스의 대형 신작 드라마 <판데모니움>, 티저 영상 공개]

“음.”

넙튜브 영상을 보는 심리가 으레 그렇듯.

그냥 흥미로워 보여 클릭해보는 김현서.

[······.]

그러자 곧 새까만 화면만이 나타났고.

긴박감이 흐르는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들리는 것은 피가 튀는 듯한 소리.

권총의 사격 소리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등.

마치 누아르 영화의 사운드 같은 분위기.

이윽고 검은 화면에 흰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CAST]

[재오]

[한권주]

“와.”

원 앤 온리, 박유진 덕질러 입장이지만.

유진과 관련된 배우들에게도 호감은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재오와 유진의 인연은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고.

한권주는 그 유명한 죽음조의 일원 아닌가?

그런 그들이 이런 흥미로운 분위기의 드라마에 출연한다니!

“이거나 봐야겠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

[강사랑]

[이순철]

이어진 출연진을 보고.

“에에에에엥?”

김현서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강사랑? 아니, 그 내가 아는 강사랑 맞아? 게다가 순철옹?”

눈이 뒤집힐 법한 라인업이었다.

<열다섯, 서른다섯> 이후 소식이 전혀 없던 강사랑.

거기다 최근 연극판에서만 활동하던 국민배우 이순철이 함께 출연한다.

그것도 재오, 한권주와 같이!

[그리고]

“뭐? 이게 끝이 아니야?”

재오에 한권주, 강사랑에 이순철이다.

대체 이보다 대단한 출연진이 어디 있다고!

잠시 후.

그 뒤에 등장한 마지막 출연진.

그걸 보는 순간.

[박유진]

“끼야아아아아아악!”

김현서는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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