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32화 (232/237)

[외전] 12화

“으음.”

손준영은 침음을 흘리며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들린 것은 바로 <보이후드>의 캐릭터 설명과 시놉시스.

그리고 오디션 대본이다.

“연서준이라.”

<보이후드>의 소년 캐릭터.

이름은 연서준.

부모님의 이혼과, 같이 사는 어머니의 병마.

그리고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

그럼에도 덤덤히 참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그의 앞에 한 형이 나타난다.

[난 이름이 없어. 하지만 다들 나를 ‘형’이라고 부르더라.]

어릴 적보던 판타지 소설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

연서준은 저도 모르게 그 초대에 응하게 된다.

모두 자신을 용사님이라 칭하며 칭송하고.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연서준은 ‘형’과 함께 환상 속 세계의 위기들을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암울한 현실과는 달리.

이곳에선 용사로 추앙받으며 자존감을 찾아가는 연서준.

“하지만 그 환상 속 세계에서, 연서준은 오히려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상처들을 조우하게 되는구나.”

자신을 버리고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

함께 사는 어머니에 대한 복합적인 애증.

학교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 등.

곧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뒤섞이기 시작하고.

안식처와 같은 환상 속 세계를 잃을까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오디션을 보는 아역배우들에게 소개된 <보이후드>의 내용.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마음이 뭉클해지는 스토리야.”

아직 대본을 다 읽은 것도 아닌데.

대략적 내용과 캐릭터 설정을 보고나니 가슴이 아려올 정도다.

버거운 현실의 삶에, 판타지에 의존하는 연서준의 심리에 곧장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윽고 손준영에게 다가온 것은 막막함.

“그런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하지?”

오디션에서 보여줘야하는 파트는 두 가지.

환상 속 세계에 초대받았을 때의 연서준과.

트라우마를 마주했을 때의 괴로워하는 연서준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손준영에겐 너무도 어렵게 느껴졌다.

“유진이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 잘 해냈겠지.

그 누구보다 멋지게.

아마 또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 것이다.

이런 훌륭한 내용에, 온갖 희노애락이 담긴 캐릭터라니.

“나도 잘 표현하고 싶어.”

욕심은 나지만.

욕심만큼 실력이 받쳐줄 것인가?

그 괴리에 손준영은 영 머리가 어지러웠다.

“후우.”

그런데 그때 울리는 휴대폰.

손준영은 어머니의 전화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응? 유진이 형?!”

손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유진과 손준영.

두 사람은 손준영의 집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전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진 유진이다.

어디 카페 가서 얘기를 나눌 수는 없는 몸이니까.

“여, 여기 물. 근데 정말 이거면 돼? 주스 같은 것도 있는데.”

“응. 괜찮아. 난 달달한 거 잘 못 마시거든. 보리차 같은 게 있으면 딱인데.”

그러나.

어느 위치에 있든, 유진은 여전히 소탈한 사람이었다.

“근데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근처에 일이 있어서. 그러다 네 생각나서 연락해본 거야. 전역한 이후론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 말을 증명하듯.

유진은 메이크업과 옷이 모두 세팅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슈퍼스타 같은 분위기.

그렇기에 손준영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개 학생인 자신과.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박유진의 차이를.

“잘 지냈지? 아, 맞다. 고마워. 군대 있을 때 편지 보내줘서. 훈련소에 있을 때 큰 힘이 됐어.”

“어어.”

물론 군대에 있을 때도 팬들에게 엄청난 손편지를 받은 유진이지만.

역시 지인에게 받은 편지는 다른 의미로 큰 힘이 된다.

“근데 오늘따라 너 뭔가 이상한데?”

“응? 뭐가?”

“평소에는 조잘조잘 막 무슨 일이 있었다 떠드는데. 오늘따라 조용해서.”

과연 박유진.

관찰에 능한 사람답게, 곧장 손준영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말할까 말까 고민하듯.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손준영.

곧 손준영이 얼굴을 들며 말했다.

“형. 나한테 연기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음? 갑자기 왜?”

“이번에 오디션을 보거든. 하지만 난 여태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졌어. 그래서 데뷔도 못했지.”

그 말에 유진이 팔짱을 꼈다.

“너 연기 잘 할 텐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으음. 칭찬도 많이 들었거든? 근데 막상 오디션에선 계속 떨어져. 한 PD님이 말씀해주신 게 있는데, 한 조연을 맡기기엔 튀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주연을 맡기기엔 기본기와 경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이야.”

순간.

박유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래, 그래. 나도 알지! 유진 씨 진짜 든든하지. 음, 스페어 타이어 같은 느낌?’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지금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형이 나한테 연기를 좀 가르쳐줄 수 없을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하는 손준영.

그러나.

“미안해. 하지만 너에게 연기를 알려줄 수는 없어.”

유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손준영이 아는 유진은 제 부탁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왜? 왜? 어째서?”

“이미 넌 학원에서 연기를 배우고 있잖아. 그 시기엔 한 점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해. 기본기를 쌓을 때라는 거지. 내가 굳이 조언을 해줘봤자, 네가 더 혼란스러워질 거야. 학원 선생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봐. 어디 다닌다고 했지?”

“그게, ‘아이키움’에서.”

“그래, 거기 좋은 곳이야.”

현재 아역배우를 양성하는 학원들의 수준은 매우 높다.

유진의 흥행 이래로 제 자식을 아역배우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가 엄청 많아졌으니까.

“하지만, 난······계속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나는 형처럼 되고 싶은 걸.”

그 말에 유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형아처럼 되고 싶어!’

‘나처럼?’

‘응. 나도 그, 연기인지 뭔지 하고 싶어! 나도 연기자 할래!’

손준영과 첫 만남 때 나눴던 대화.

그때 손준영의 표정과 벅참이 다시금 떠올랐으니까.

수년이 지나고.

손준영에게서 듣는, 형처럼 되고 싶다는 말.

여전히 자신을 목표로 하는 동생이 그런 말을 한다.

그러니 유진에게 그 울림은 꽤나 특별했다.

“왜 나처럼 되고 싶은 건데?”

“그야, 형을 보고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까.”

당시 유진이 <찬란>에서 소화했던 건, 특별히 멋진 장면은 아니었다.

큰 액션도 없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변화 정도.

그저.

한 사람이 꿈을 꾸기 시작했던 장면일 뿐.

그러나.

그 순간 손준영에게 깃들었던 두근거림은 특별한 것이었다.

여태 손준영의 인생을 좌우하고 있을 만큼.

“그래. 나도 그랬지.”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도 나처럼 누굴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운 거야?”

“그래. 그런 영향을 준 사람은 많지. 권주 삼촌, 은주 누나, 석태 삼촌, 이순철 할아버지. 모두 나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를 줬던 분들이니까.”

유진 역시 단칸방에서 TV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당시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으니까.

“하지만 그분들에게 영향을 받았더라도, 그 꿈은 내 거야. 나를 보며 품게 된 꿈이라도, 그건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니야.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은 온전히 너의 가슴 속에 있는 거지.”

마치 나무에서 자라난 곁가지가 꺾이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싹을 틔우듯.

“이 업계에서 카피는 필요 없어. 특별해야 사람들이 주목하고, 알아봐주거든. 그러니까 넌 내가 될 필요가 없어. 손준영이라는, 그 이름만으로 값어치 있는 배우가 되면 되는 거야.”

그 꿈을 이뤄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손준영 본인의 몫.

“미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잘 생각해 봐. 지금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야. 간절함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뤄낼 수 없어. 간절함은 결국 원동력일 뿐이야.”

유진은 그리 말하며 손준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앞으로 발을 내딛는 건, 네가 할 몫이라는 거지. 너만의 방식을 찾아. 네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웅! 우웅!

곧 울리는 유진의 휴대폰.

“가봐야겠다.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힘내. 오디션 잘 보고.”

유진이 어깨를 두드리며 떠나가고.

홀로 남은 손준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방식대로 하라고?”

여태는 박유진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고.

거기서 경외감을 얻으며, 뭐라도 하나 배워보려던 손준영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하라니.

‘나한테서 유진 형을 빼면······.’

손준영은 자문해보았다.

그럼 자신에게 무엇이 남는지.

자신은 무엇을 자양분삼아 연기를 계속 하고 싶은지.

‘음, 내가 잘 하는 건······관찰?’

어릴 적부터 시골 마을에서 자라.

지리를 훤히 꿰뚫으며, 몰래 이웃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했던 손준영.

무엇보다 손준영의 시작이.

바로 촬영 현장에서 박유진을 몰래 관찰하며 시작되지 않았던가.

“······좋아!”

일단 손준영은 무작정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이게 맞는 길인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보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

얼마 뒤.

“설마 두 분이 이런 대본을 쓰실 줄은 몰랐어요.”

유진의 말에 민용석 작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초안은 훨씬 상업적인 스토리였죠. 제 스승님의 글맛이 한껏 들어간 이야기요. 그런데 박유진 배우의 행보를 보고 수정에 수정을 더하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됐네요.”

미니시리즈 <호구>에서 보여줬듯.

민용석은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에 능하고.

본디 스타 작가였던 송미연은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특기다.

두 사람의 협업으로 인해 적절히 융화가 되고.

그리하여 탄생한 시나리오가 바로 <보이후드>인 것.

“원래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는데, 이야기의 함축성을 생각해보니 영화가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하여.

송미연, 민용석 두 드라마 작가에게도 <보이후드>는 도전적인 영화가 되었고.

몇 년의 세월에 걸쳐 만든, 그야말로 열정의 집합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유진 배우님은 오디션을 진짜 좋아하는군요. 주인공 연서준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니.”

“어린아이가 인정받으려면, 남들에게 그 능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유명세를 얻었던 유진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의심의 눈길은 항상 따라다녔다.

결국 어린아이니까.

아직 어리니까 미숙할 것이다.

일찍이 주목받는 천재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등등.

어른들은 아이들의 한계를 정하고, 의심한다.

그런 의심을 떨치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오디션이다.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닌가.

그 장소에서만큼은.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 뿐이니까.

“하지만 오디션의 승자는 매번 한 명뿐이죠. 낭만 넘치면서도 비정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말엔 저도 동의해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만 해요. 언제나 성공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박유진 배우님은 항상 성공만 하셨잖아요? 실패하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그럼요. 있죠.”

“헉. 언제요?”

“음, 한 40년 전쯤부터?”

“······아, 네. 그러시군요.”

당연히 농담으로 치부하고.

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 민용석.

‘진짠데.’

유진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웃었다.

회귀 전.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던 유진이다.

그 실패를 쌓고 또 쌓아.

지금 성공이라는 이름의 정상에 오른 것 아닌가.

‘과연 준영이는 어떻게 될까?’

자신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 기회를 잡는 건.

이제 아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

오디션을 준비하며.

손준영은 박유진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체감했다.

‘먼저 살아온 삶부터가 달라.’

다양한 성공을 겪으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정상의 자리에 자른 유진과 달리.

손준영의 인생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직 배우로서 활동한 적도 없을 정도.

생긴 것도 반대.

유진이 화려한 비주얼을 가졌다면.

손준영은 평범하고 순박한 중학생의 얼굴이었다.

“그래, 맞아. 나는 유진이 형이 될 수 없어.”

손준영은 그것을 뒤늦게 인정했다.

여태 손준영의 연기는 기본기를 지키는 대신.

박유진의 것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다.

마치 기본기가 없는 목수가.

대뜸 명작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해. 난 유진 형이 되려는 게 아니라, 배우가 되어야 하니까.’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기초적 발성법과 연기법을 다시 배우고.

동시에 거리를 나다니며.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관찰하고.

봉사활동으로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라보며.

손준영의 머릿속엔 다양한 영감이 떠올랐다.

‘뭔가 충실해지는 기분이야.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라 이상해.’

여태까지는 박유진과 스스로를 비교하느라.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던 손준영이다.

그러나 지금 손준영이 느끼고 있는 건.

최선을 다했다는 감각.

‘떨어져도, 후회가 없을 거 같아.’

길을 찾았으니.

그 길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찾아온 오디션날.

평소 같았으면 긴장해서 심장이 쿵쾅거렸을 텐데.

이번에는 꽤 덤덤했다.

바라는 것은 그저, 여태 연습한 대로 정확히 하는 것뿐.

“다음 손준영 배우님.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그렇게 오디션이 펼쳐지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간 손준영.

그런데.

“어?”

순간, 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안에 들어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시나리오를 쓴 송미연, 민용석과 더불어 한 명 더.

예상치 못한 심사위원이 한 명 앉아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감독 박유진입니다.”

그는 미소로 손준영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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