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236화 (236/237)

[외전] 16화

“지니야!”

박유진을 애칭으로 부르는 사람.

유유연이 웃으며 유진의 맞은 편에 앉았다.

“설마 온플러스에서 누나를 만날 줄은 몰랐어.”

잠시 정국장이랑 미팅이 잡힌 유진.

온플러스를 찾았다가 우연찮게 유유연과 마주쳤다.

“응. 나도 여기서 작품하거든.”

유유연.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를 통해 유진과 인연을 맺었고.

유진이 회귀 전 많은 신세를 졌던 누나.

“누나, 아직도 라앺 덕질 중이야?”

유진이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도 그녀의 가방에는 라앺의 굿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당연하지! 내 인생을 바꾼 작품이니까.”

헤헤 웃는 유유연.

유진이 회귀하기 전이나 후나.

유유연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몇 년이 지나서도 라앺 얘기만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만 머물러 있진 않을 거야. 배우라는 건 자신의 캐릭터와 이별하는 것에 익숙해져야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야 더 나은 연기를 펼칠 수 있고 말이야.”

그리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였다.

“근데 너는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이젠 영화감독까지 한다며?”

이 사실을 유유연이 어떻게 알고 있는고 하니.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아, 맞다. 이 타이밍에 또 재미있는 뉴스를 하나 들고왔어.]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박유진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야.]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음? 아니, <판데모니움> 말고.]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그는 조만간 <보이후드>라는 영화에 새로 참여하게 될 거야. 왜 내가 ‘출연’이라는 말 대신 ‘참여’라는 말을 썼는지 궁금하지 않아?(웃음)]

[Michael Rondo 님의 스윗 : 궁금하다니 알려주지.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거든

#천재배우 #이제는천재감독? #재미있겠어]

마이클 론도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기 때문.

덕분에 개봉도 전에 벌써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판데모니움> 티저에서 네 이름 보고서 엄청 놀랐는데. 이젠 연출까지 한다니!”

“전역했으니까요. 열심히 달려야죠. 젊어서 일하지 언제 일해요?”

“아하하! 너도 참 여전하다. 그 얼굴로 어르신 같은 얘기를 하니까 진짜 웃겨.”

그러나 유유연은 웃는 것도 잠시.

조금 눈치를 보며, 유진에게 슬쩍 물었다.

“그런데 이순철 선생님, 그. <판데모니움>을 끝으로 은퇴하신다며?”

유진의 감독 데뷔작, <보이후드>가 손준영이라는 배우의 시작점이라면.

<판데모니움>은 이순철이라는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 중인 유진은.

“······.”

제법 복잡미묘한 심정이었다.

‘분명 이순철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은퇴를 미룬 건 맞아.’

하지만.

모든 일엔 끝이 있기 마련.

결국 이순철이 정말 은퇴를 할 시기가 다가오고 만 것이다.

이제 <판데모니움>도 마지막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촬영이 끝나면.

이제 ‘배우 이순철’은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유진이기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

유진의 표정을 본 유유연.

곧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있잖아, 유진아. 나, 라앺 종방연 때 네가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한다?”

“제가 했던 말이요?”

“응. 만남이 있기에 헤어진다는 말이 있듯,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다는 말. 헤어져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

그때 당시.

유유연은 라앺이란 작품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그 작품을 떠나보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유진이 해줬던 그 말로.

유유연은 보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작품이 존재하고, 그걸 봐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사실 이별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유유연은 다정한 누나처럼 말을 이어갔다.

“물론 은퇴하시면, 이순철 선생님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겠지. 하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작품 속 연기, 그리고 캐릭터는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서 계속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거야.”

결국 배우가 남기는 것은 작품 속 연기와 캐릭터라는 사실.

유유연은 그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 셈.

그렇다면.

이순철의 마지막을 대하며, 유진이 해야할 것은 명확했다.

“고마워요, 누나.”

유진이 유유연을 향해 말했다.

“여전히 누나한텐 참 배울 게 많네요.”

그리움이 가득 담긴 미소였다.

*

이순철은 이번 <판데모니움> 촬영이 매우 즐거웠다.

이런 긴장감을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참여하는 배우들이 모두 난다긴다 하는 배우들이었으니.

그 천하의 이순철마저도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하지만.

즐거운 순간이란 참 짧게 지나가는 법.

그게 바로 이순철이 인생을 살며 느낀 점 중 하나다.

“은퇴를 번복할까 싶어.”

촬영기간 동안.

이순철은 권성택에게 그리 말하곤 했다.

“추해지지 말고, 얼른 끝내고 오라고.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

거장이라 불렸던 영화감독 권성택은, 이순철보다 먼저 은퇴해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추해지다니? 말이 심하구만.”

“자네, 은퇴를 결심했다가 미룬지 제법 됐잖아? 모든 건 끝이 있기 마련이야. 미련에 질질 끌려다녀봐야 좋은 꼴을 못 보는 법이라고.”

권성택은 제법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할 만큼 했어. 이미 많은 족적을 남겼지. 이제 그만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내려오라고. 그게 바로 순리니까.”

순리.

그 말이 이순철의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그래. 모든 건 끝이 있기 마련이지.’

이순철도 알고 있었다.

더 해봤자 몸도, 머리도 잘 안 따라줄 것이라는 걸.

이미 대본을 보는 눈은 침침해지기 시작했고.

옛날과 같은 총기도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이라도, 제대로 불태우고 가야겠지.’

그리고.

이순철에게 가장 큰 긴장감을 줬던 배우.

그리고, 이순철의 은퇴를 여태까지 미루게 했던 원인.

“할아버지!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박유진이.

이순철의 은퇴 전 마지막 연기의 파트너였다.

“내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더 없이 훌륭한 파트너구만.”

이순철은 껄껄 웃었다.

“유진아! 네 말대로 우리 한바탕 놀아보자.”

“넵!”

유진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화답했다.

*

<판데모니움>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바로 김준과 설계자가 대면하는 장면이다.

“복수의 순간이 당신 앞에 와있군요. 어때. 좋은가요?”

“그래. 좋아서 아주 미치겠다, 이 새끼야.”

이 영화의 반전.

사실 김준은 설계자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진정일을 비롯한 마당발, 이기태가 벌인 일들 모두.

김준이 조직에서 토사구팽당한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던 것.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김준은 설계자에게 속아 진정일에게 복수심을 불태웠고.

결국 진정일을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알면서 그랬지?”

“물론입니다.”

“부정도 안 하네, 개새끼.”

드릉대고 있는 김준의 호흡.

박유진의 짧은 머리카락과 기세등등한 살기

“그래요, 날 죽여요. 내가 증오스럽겠죠?”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이 개새끼야. 내가 뭘 했다고! 뭐가 목적이었는데? 대한그룹을 무너뜨리고 싶었냐?”

“왜 그러냐고요?”

허허.

짧지만 중후한 웃음을 흘리는 설계자.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이 발밑의 개미가 죽을까, 신경 쓰면서 걷던가요?”

“뭐 이 새끼야?”

“당신이라고 다릅니까? 당신이 깡패짓을 하며 사람들을 패고 다닐 때, 이유가 있었나요?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따른 거 아닙니까? 당신은 조직의 충실한 개였으니까.”

뿌득.

김준이 살벌하게 이를 갈았다.

“버림받은 개새끼가, 주인을 잃고 헤매는 꼴이 참 재미있군요.”

푹!

설계자의 복부를 꿰뚫는 칼.

하지만 김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쑤욱-!

더욱 깊이 칼을 집어넣는다.

그 형형한 눈빛에 깃든 것은 명백한 살의.

“더 떠들거면 저승가서나 떠들어, 노인네야.”

“쿨럭······이유를 물었습니까? 누, 누군가는 이유 없이 사람을 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크흐윽! 이, 이유 따윈 없습니다. 아아······굳이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쿨럭.

설계자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피.

그리고 조소.

“지금 짓고 있는 네 표정이, 너무 우스워서 재밌군.”

마지막 단 한 순간.

설계자가 내뱉는 반말.

쿵-!

사실 원래 대본에서, 설계자는 김준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이순철이 역을 맡게 되면서, 작가가 대본을 수정했다.

마지막까지 포스 있는 악역으로서 그 위엄을 지켜준 것.

이순철에 대한 마지막 헌사라고 볼 수 있겠다.

“하, 하하.”

그리고.

그를 이어받는 유진의 연기.

제 손이며 몸에 흠뻑 묻은 피.

그리고 제 눈엪에 쓰러져 있는 설계자.

창고에 남은 것은 오로지 김준 한사람 뿐이다.

“흐으, 흐흐흐. 흐아하하하.”

웃는 것인지.

흐느끼는 것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를 내는 김준.

이내 곧.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끄윽, 크윽. 크하하하!”

미칠 듯이 터지는 광소.

그 웃음소리가 텅 빈 창고를 가득 울렸다.

곧장 이어지는 다음 장면.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씬이다.

“······.”

아까 광소를 터뜨리던 것과는 달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김준의 눈빛.

마치 어린아이 같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가 구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아아, 아. 아.”

신음을 흘리는 김준.

그는 정처없이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가는 곳마다 그의 피의 것인지.

설계자의 피인지 모를 붉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고.

가는 길마다 흘러내려 하나의 선을 만들었다.

*

해당 장면의 촬영이 끝난 직후.

짝짝짝-

스탭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배우가 박수를 보냈다.

“정말 멋진 연기였습니다, 두 분 모두!”

연출을 맡은 고PD 역시 마찬가지.

아니, 그 누구보다 흥분해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명연기였다.

“아아, 아쉽구만. 정말 아쉬워.”

그를 보며 이순철이 허허 웃었다.

“이제 와서 10년, 아니 3년만 더 젊었어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건, 분명 이번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겠지. 내가 경력은 길지만, 이런 역할은 많이 못 맡아보기도 했고.”

곧 이순철은 고PD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이런 역을 맡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PD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가 영광입니다!”

그러자 황송하다는 듯 더 깊이 허리를 숙이는 고PD.

그러는 사이.

눈치를 보던 재오가 이순철 옆으로 다가왔다.

“저, 정말 팬이었습니다. 꼬마였던 시절부터 선생님의 연기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 재오가,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치 스타를 만난 팬처럼 말이다.

“그리 말해줘서 고마워요. 꿈을 이뤘다니 멋지네요.”

이순철이 재오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부디 앞으로 배우로서 더 대성하길 바랍니다.”

잠시 후.

강사랑은 이순철을 와락 안았다.

“고마워요, 선생님. 덕분에 이번 촬영 너무 재미있었어요. 후회 없을 정도로.”

“어허허! 고마워. 너도 재능 썩이지 말고 작품 좀 많이 찍고.”

그렇게 스탭들, 배우들과 일일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순철.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

그건 바로 함께 해서 영광이었다는 것.

지금 미디어계를이끌어가는 세대는.

어릴 적, TV와 영화관에서 이순철의 전성기를 목도한 세대니까.

한 마디로 우상과 같은 존재인 것.

“내가 인생을 헛살진 않았구만.”

그리 중얼거리는 이순철.

그런데.

막상 제일 보고 싶은 녀석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이 녀석, 어딜 간 거지?”

그때.

“할아버지!”

유진이 이순철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아까 그 무시무시한 연기를 펼쳐 보이던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해사한 미소.

“깜짝이야! 이 할애비 숨 넘어가겠다.”

“하하. 죄송해요.”

“어딜 다녀온 거냐?”

“음, 그게요.”

짠.

유진의 손에 막걸리 두 병이 들려있었다.

“할아버지. 저랑 술 한 잔 안 하실래요?”

*

“으음, 이런 순간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너랑 이렇게 막걸리를 마실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허허! 그 꼬맹이가 이제 군대까지 다녀와서는, 나랑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니.”

이순철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유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떠세요?”

“뭐가 말이냐?”

“저랑 술 마시는 거요.”

“허허! 평소 마시는 것보다 더 달콤하고, 또 뒷맛은······이상하게 쓰구나.”

이순철이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이만큼 자랐다는 것은, 그만큼 또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이제 이순철은.

다시는 카메라 앞에서도.

관객들 앞에서도.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어쩌면, 오늘 했던 연기가 내 배우 생활 최고의 연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순철이 오늘 촬영에서 느낀 카타르시스는 짜릿했다.

이 늙은 육체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전율.

“그런데, 내 연기에 대한 충실감보다······네 연기를 보며 드는 감탄이 더 크더구나. 특히 마지막 장면의 그 미묘한 감정. 정말 감탄 밖에 나오지 않더구나.”

그리고 그 전율은.

박유진과의 호흡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빌드업을 잘 해주신 덕분이죠. 저도 오늘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 그렇지. 네 덕분에 나도 마지막 불꽃을, 있는 힘껏 터뜨릴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맙다. 과연 세계구급 배우다워. 정말이지.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땐 정말 요만했는데. 언제 이리 커서는.”

“하하. 그것보단 더 컸어요.”

“그랬나? 그래. 그리곤 쑥쑥 자라버렸지. 정말, 세월이라는 게 참 빨라.”

그 순간을 회상하는 이순철의 눈빛.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흠뻑 묻어있었다.

“그거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널 만나기 직전, 난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연기를 하는 것보다, 내 손녀가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는 게 훨씬 즐거웠거든.”

그리 말하며 비어버린 잔에 술을 따르는 이순철.

꿈이라는 게.

무한히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마법의 엔진 같지만.

무엇이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모되기 마련.

“그 시절의 나는 일종의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연기를 했던 셈이지. 그런데 그때, 난 새로운 원동력을 얻었다. 내 손녀딸과 비슷한 몸집의 자그마한 어린아이가, 그렇게 놀라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게. 어찌나 신기하고 자극이 되던지.”

고장 난 기계가.

다시 새로운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고맙다. 이 말밖에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하고.”

이순철이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정말, 이순철이라는 양초는 다 타버린 게야. 그 마지막 불꽃을 카메라에 담았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어.”

아마 <판데모니움>이 공개된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순철의 마지막을 매우 멋지게 기억할 것이다.

유유연이 유진에게 해줬던 말처럼.

작품이 이순철이라는 배우를 영원히 기억해줄 테니까.

“있잖아요, 할아버지. 저 요즘 새로운 걸 준비 중인데요.”

“아아. 들었다. 영화감독을 한다지? 허허! 넌 정말 다재다능한 아이야.”

“네. 그런데 거기 주인공이 준영이에요. 오디션을 봤는데, 연기를 꽤 잘 하더라고요.”

“준영이? 아아, 손씨네 손주 말이구만. 허허! 그 녀석이 설마 배우를 하고 있을 줄이야.”

손준영은 이순철의 고향 태생이다.

작은 시골마을이니만큼, 이순철이 손준영을 알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

“네. 그 녀석이 저를 보고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네요. <찬란> 촬영 때요.”

“그래? 허허! 그래, 그 때 네 연기가 참 멋있었지. 참으로 멋진 일이야.”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시절.

이순철의 연기는 분명 유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대단했다.

끝내 실패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회귀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그러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허했던 이순철의 가슴 속으로 무언가가 차올랐다.

“아아.”

이순철은 눈을 감았다.

‘아빠! 나 연기가 하고 싶어요!’

이젠 기억에도 흐릿할 만큼, 아주 오래 전.

시골에 살던 한 꼬마가 꾸었던 자그마한 꿈.

배우가 되어, 연기가 하고 싶다.

“이거. 내 배우 인생이 그리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구만.”

그 꿈이 이렇게 오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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