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커다란 룸 안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테이블, 벽을 따라 ‘ㄷ’자 모양으로 둘러진 소파, 거기에 마주보고 앉은 네 명의 사람들. 두 남자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야한 옷차림의 두 여자는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여느 단란주점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긴 생머리, 어두운 방 안의 미약한 노란 조명을 머금은 피부, 본래의 피부색이 어떤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화장, 옷이라기엔 가린 부분이 너무 적은 원피스, 입가에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자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 이 오빠 너무 웃긴다!”
긴 생머리 여자의 건너편에 앉은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대박! 나 웃다가 팬티에 지린 거 같아!”
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남자의 이름은 지강우.
강우는 긴 생머리의 여자를 보며 말했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예나. 벌써 까먹었어? 이 오빠 취한 거 아니야?”
“취하긴 누가 취했다고 그래?”
강우는 고갯짓으로 예나의 건너편에 앉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는 이름이 뭐였지?”
예나는 지강우의 온더락잔에 양주를 반쯤 따르며 말했다.
“쟤 이름은 하나.”
강우는 하나와 예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가명들도 참… ‘나’자 돌림이냐? 재미없게도 지었네. 뭐, 이름이야 아무 상관없지만….’
예나가 집게로 얼음을 집어 온더락잔에 옮기려 했지만, 강우는 그전에 잔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눈은 하나를 훑고 있었다. 하나는 펌을 한 갈색 단발머리에 입술은 새빨갛게 칠하고 있었다. 얼굴이 썩 예쁘지는 않았지만, 성형으로 D컵은 족히 되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원피스는 깊게 파여 가슴을 절반 이상 드러내놓고 있었다. 강우는 양주를 홀짝이며 하나의 가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가슴 하나는 죽이네. 수술한 티가 좀 나긴 하지만….’
예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오빠! 내가 옆에 있는데 하나만 쳐다보는 거야?”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무슨 쟤만 쳐다봤다고 그래?”
하나의 옆에 앉아있던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뚱뚱한 백인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백인 남자가 웃을 때마다 길게 기른 콧수염이 들썩거렸다.
“하하하하! 나도 봤다고!”
백인 남자는 양손으로 하나의 두 가슴을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두 눈이 이 가슴만 쳐다보고 있더라니까?”
하나는 부끄러운 듯 양팔을 들어 백인 남자의 양손 위를 덮었다. 강우는 홀짝이던 양주잔을 백인 남자를 향해 뻗었다.
“스콧, 네 파트너를 건들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스콧은 미소를 한껏 머금은 얼굴로 하나의 가슴에서 양손을 뗀 뒤, 강우가 내민 잔에 잔을 부딪쳐 건배했다.
“하하하하! 네가 한국인이라 일부러 한국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이곳으로 오길 잘한 것 같군!”
스콧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잘 좀 부탁해.”
“뭐를?”
스콧은 손가락 두 개 굵기의 시가를 입에 물었다. 하나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지포라이터로 불을 켰다. 스콧은 엄지와 검지로 집은 시가를 하나의 손에 들린 지포라이터로 가져가 이리저리 굴려 불을 붙였다. 스콧은 시가를 한 모금 깊게 빨아 내뱉은 뒤 말했다.
“알면서 뭘 그러나?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 클랜에 들어와서 같이 활동하자는 거지. 왜 자네 같은 사람이 아무 클랜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대우는 최고로 해주겠네! 우리 클랜에서 같이 활동하자고.”
강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그런 거 별로 관심 없는데….”
스콧은 왼손으로 하나의 몸을 감으며 가슴을 주물렀고, 오른손에는 시가를 든 채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매일 같이 이런 젖탱이를 주무르고, 가지고 싶은 건 뭐든지 가질 수 있다고. 난 지난번에 3:1로 번갈아가면서 쑤셔댔다니까? 나와 손을 잡으면 네가 생각하는 부자들이 가진 돈, 그 돈의 두 배를 벌게 해주지.”
강우는 예나가 먹여주는 사과 한 조각을 받아먹은 뒤 말했다.
“여자는 지금도 옆에 있고, 돈이야 많이 벌고 싶지만… 나는 혼자 일하는 게 편하거든.”
“자네는 지금이야 동료들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일을 계속 하다보면 그 동료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될 거야. 나도 사선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지만, 항상 내 곁에는 동료들이 있었지. 그리고 같은 일이라도 나와 함께 하면 보수도 더 높게 받을 수 있어. 이 근방에서 우리 클랜이 제법 유명하거든.”
“그래? 클랜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알드바크(Aardvark). 줄여서 A.V.라고 하지.”
강우는 예나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몸을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댔다.
‘처음 들어보는데… 다른 AV라면 많이 들어봤지만. 많이 보기도 했고.’
스콧은 손에 들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걸친 뒤, 양손을 하나에게로 옮겼다. 스콧은 하나의 원피스를 내려 커다란 두 가슴을 나오게 했다. 하얀 피부의 큰 가슴, 동전 크기의 갈색유륜, 그 가운데 콩알만 한 젖꼭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곤란하다는 듯 스콧의 양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손등과 손가락까지 털로 뒤덮인 우악스런 스콧의 양손은 하나의 두 가슴을 감쌌다. 스콧은 양손의 검지를 뻗어 하나의 젖꼭지를 튕기며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매일매일 이렇게 여자들을 끼고 놀 수…….”
콰앙!
스콧이 말을 끝마치기 전이었다. 굉음과 함께 스콧 등 뒤의 벽이 부서졌다. 스콧과 하나는 그대로 벽이 부서지며 생긴 파편들에 깔렸다. 강우는 손에 양주잔을 든 채 멀뚱멀뚱 앉아있었고, 놀란 예나는 강우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부서진 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건 몬스터였다.
몬스터는 멧돼지와 같은 얼굴에 입의 양옆으로 솟은 엄니는 시커멨다. 누르스름한 두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피부병에 걸린 듯 얼굴을 덮고 있는 검은 털이 뭉텅이로 빠져있었다. 털이 빠진 부분은 물에 불은 듯한 갈색 가죽이 드러나 있었다.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상체와 비슷한 굵은 몸통에는 검은 털이 드문드문 나있었고, 늘어진 갈색 가죽이 드러났다. 놈의 등은 꼽추처럼 굽었고, 털이 나지 않는 양팔은 큰 몸집에 비해서도 크고 굵었다. 키는 2m를 족히 넘었고, 팔 하나의 길이는 손끝까지 재면 170cm는 될 것 같았다. 고릴라의 것과 비슷한 거대한 양팔은 손목 쪽으로 갈수록 더 굵었다. 두꺼운 가죽으로 이뤄진 검은손은 웬만한 성인남자를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손가락은 네 개뿐이었다. 튼튼한 두 다리는 여느 멧돼지처럼 검은 구두를 신은 듯 발굽이 달려있었다. 이 몬스터의 이름은 ‘멧시가’로 불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멧시가를 본 예나는 비명을 지르며 룸을 뛰쳐나갔다. 강우의 시선은 술잔에 고정돼있었다. 술잔에는 벽이 부서지며 튄 파편과 먼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강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 이거 비싼 술인데….”
강우는 양주병을 집어 들어 한쪽 눈을 감고 병안을 유심이 들여다봤다.
“여기에도 들어간 건 아니겠지?”
멧시가는
“쿠훅. 쿠훅.”
기괴하고 큰 숨소리를 내며 강우를 노려봤다. 멧시가는 벽 너머에서 점프해 테이블 위로 착지했다. 멧시가의 무게에 테이블이 와지끈 무너졌다. 멧시가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당장이라도 강우를 잡아먹을 듯 침을 뚝뚝 흘렸다.
강우는 양주병을 옆에 내려놓은 뒤, 멧시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난 너 부른 적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치면 팁 같은 거 없다?”
멧시가는 강우를 향해 뛰어올라 오른손을 뻗었다. 굵고 커다란 검은손은 강우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쾅!
멧시가가 휘두른 손은 강우 머리 뒤의 벽을 꿰뚫었다. 강우는 앉은 채로 가볍게 고개를 살짝 까딱여 멧시가가 휘두른 손을 피해낸 것이다.
강우는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이런 고급 개그를 이해할 리가 없지.”
멧시가는 벽을 꿰뚫었던 오른손을 거뒀다. 멧시가는 양손을 좌우로 넓게 벌린 뒤,
“쿠워어어억!”
괴성을 질렀다. 멧시가는 양손으로 박수를 치듯 강우를 향해 휘둘렀다. 멧시가의 양손이 강우에게 닿기도 전이었다.
퍼엉!
강우가 소파에 기대앉은 채 직선으로 뻗은 주먹으로 인한 파열음이었다. 강우의 주먹은 멧시가에게 채 닿지도 않았다. 주먹으로 만든 풍압(風壓)이 멧시가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장기까지 통째로 사라진 멧시가는 그 자리에서 온몸의 뼈가 전부 부서진 듯 그대로 픽 쓰러졌다.
그것은 겨우 키 177.7cm에 체중 73kg인 20대 초반의 남자의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강력한 힘이었다.
강우는 옆에 내려놓았던 양주병을 집어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룸의 문으로 향했다.
“아, 맞다.”
룸의 문으로 향하던 강우는 발걸음을 돌렸다. 강우가 향한 곳은 벽이 무너져 스콧과 하나가 깔린 곳이었다. 강우는 자신의 몸집보다 커다란 파편들도 휴지조각을 집어내듯 가볍게 들어 치워냈다. 파편에 깔려있던 스콧과 하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둘 모두 가느다란 숨을 내뱉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둘 다 살아있네.”
강우는 쓰러져있는 스콧을 보며 말했다.
“역시 너랑 일하는 건 무리겠다. 설마 아무 반응도 못할 줄이야… 이 정도로 병신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 괜히 애꿎은 아가씨만 다쳤네.”
강우는 스콧과 하나의 생사만을 확인한 뒤, 그대로 내버려둔 채 몸을 돌려 룸을 빠져나갔다. 무거운 파편들을 치워줬으니 목숨을 구해줬다고 볼 수 있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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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