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3화 (3/195)

3화

2040년, 대(大)판타지 시대.

인간들의 삶은 25년 전과 크게 달라져있지 않았다. 다른 것이라면 몬스터들이 있다는 것이었고, 이에 새로운 직업인 예거가 생겼다.

또 다른 점은 화폐의 단위가 통합됐다. 전 세계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무역의 활성화를 극대화시키고자, 편리성을 더 늘리고자 한 것이었다. 화폐의 단위는 ‘겔드(geld)’였다. 사실 화폐의 통합으로 인해 무역에 도움이 됐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중 하나의 빛을 뿜어내는 것은 20세가 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20세가 되는 순간 예거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간혹 예거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채 예거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계에서 운영하는 예거 파티에 속하든, 클랜을 만들든, 혼자서 프리랜서로 뛰든 예거란 직업은 메리트가 컸다. 경제적으로도 일반 사람들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도, 돈으로는 손에 넣지 못할 물건들을 가지게 될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다. 자신도 특별한 사람, 예거가 될 수 있기를.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거의 자질을 갖춘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경우 일반 범죄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예거의 자질을 갖춘 이들을 포함한 인간과 몬스터들은 25년 동안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대한민국을 포함한 몇몇 징병제 나라들은 모병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2040년 현재까지 징병제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는 동남아권 국가 일부, 이슬람 국가 대다수, 유럽 국가 소수, 남미권 소수, 아프리카 국가 일부 그리고 북한과 중국이었다. 이들 국가 중 대다수는 이름뿐인 징병제로, 복무기간이 아주 짧거나 면제 조건이 매우 쉬웠다. 전 세계에서 징병제가 가장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는 나라는 복무기간만 최소 5년에서 최대 13년인 북한이었다.

4년 전에 예거가 될 자질을 갖추게 된 한 남자가 있었다. 국적은 한국, 현재 나이 24살, 키 177.7cm, 체중 73kg의 평범한 겉모습을 가진 지강우였다.

강우는 여느 한국인처럼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옆머리와 뒷머리는 바짝 밀고, 앞머리와 윗머리는 남겨 이십여 년 전에도 유행했던 투 블록 컷을 하고 있었다. 왼쪽 눈은 겉쌍꺼풀, 오른쪽 눈은 보일 듯 말 듯 속쌍꺼풀이 있는 짝눈이었다. 코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입술은 적당히 도톰했다.

4년 전 강우가 예거의 자질을 갖게 됐을 때였다. 강우의 경우 예거의 자질을 갖춘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우의 스무 번째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강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명확한 꿈도 없는 강우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곧 다가올 생일은 혼자 맞이해야 했다.

부모님은 강우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이혼을 했다. 부모님 둘 모두 강우의 양육을 원치 않았다. 덕분에 강우는 16살 때부터 부모님에게 각각 50만 겔드씩 생활비를 받으며 혼자 서울에서 생활했다. 부모님과는 연락조차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강우의 삶은 단순했다. 오후 2시쯤 일어나 대충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뒤,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컴퓨터로 하는 것이라곤 웹서핑과 게임뿐이었다. 오후 6시까지 웹서핑이나 게임을 한 다음 그제야 샤워를 했다.

강우는 씻은 다음 오후 6시 30분쯤 집을 나서 아르바이트를 향했다. 아르바이트는 동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식당에서 주는 밥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먹을 것들을 사왔다. 집에 도착하면 씻은 뒤 다시 웹서핑이나 게임을 즐겼다.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가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여자를 만나는 게 전부였다.

강우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지금 하는 일도 그만두고, 매일 빈둥거리며 게임이나 하면서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월세가 20만 겔드밖에 하지 않는 단칸방에 살며, 지원 받는 생활비와 아르바이트비의 대부분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강우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강우는 여느 날처럼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편의점에서 김밥과 햄버거, 음료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 강우는 심통이 나있었다.

“아, 좆같네….”

멀리서 덩치가 큰 사람 하나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매우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좆나 크네… 어?”

강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주황색 안광은 강우를 향하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시였다. 강우와 불과 약 10m거리에 위치한 바시는 머리를 위로 올려 묶고, 오른손에는 모닝스타를 들고 있었다. 모닝스타는 긴 쇠막대 끝에 농구공보다 크고 가시가 솟은 철퇴머리가 달려있었다. 바시는 강우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인간… 죽인다.”

강우는 바시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몬스터를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거 현실인가? 어릴 때 *몬스터 파크에서 본 적은 있지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저건 분명 바시인가? 무기까지 들고 있는 걸로 봐선 아마도 일성(一星) 중급… 저런 게 왜 내 앞에….’

바시는 천천히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강우를 맞닥뜨리기 전에 이미 사람을 죽인 듯 몸의 군데군데 마르지 않은 피가 묻어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모닝스타에도 핏자국이 있었다.

몬스터들은 강함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제일 약한 것들은 일성급이었고, 그 안에서도 상중하로 나뉘었다. 대(大)판타지시대가 열린 뒤, 현재까지 발견된 몬스터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오성급이었다.

예거 역시 일성부터 오성까지 급수가 붙었다. 몬스터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각 국가마다 각 등급별로 상위 열 명에게는 랭크가 매겨지는 것이었다. 단, 예거 파티에 소속된 예거들에게만 한해서였다.

강우의 앞에 서있는 바시는 일성 중급이었다. 일성 하급 몬스터는 예거의 자질을 갖추지 않은 일반인 중에서도 무기를 지닌 상태고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면, 이길 가능성은 없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말 그대로 평범한 청년이었다. 게다가 앞에 서있는 바시는 일성 중급이었다. 하급과 중급은 한 단계 차이였지만, 고양이와 호랑이 정도의 차이로 비교가 불가했다. 강우가 눈앞에 있는 바시에게서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바시와 강우의 거리는 불과 2m남짓. 바시는 강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우는 멍하니 바시를 올려다봤다.

‘몸이 안 움직이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서운지도 모르겠어. 아니, 너무 무서워서 몸도 굳고, 생각도 굳은 건가? 이렇게 죽나? 어디선가 예거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진 않을까? 아, 진짜 좆같다….’

바시와 강우는 서로 두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죽는 건 좀… 이제 겨우 20살이란 말이야. 난 그저 웹서핑이랑 게임이나 하면서 가끔 여자랑 떡도 좀 치고… 그렇게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강우를 내려다보던 바시가 모닝스타를 치켜들었다. 강우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시가 모닝스타로 자신을 내려치려 팔에 힘을 주는 것까지,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뱀 같은 핏줄이 올라오는 순간까지 눈에 들어왔다.

‘아…… 정말 죽는 건가?’

바시가 모닝스타를 휘두르려는 순간, 강우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죽고 싶지 않아!’

강우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놓으며 온 힘을 다해 몸을 뒤로 날렸다.

쾅!

바시가 휘두른 모닝스타는 허공을 가른 뒤, 땅을 내리찍었다. 강우는 상체를 일으켜 앞을 쳐다봤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과 샌드위치, 음료수가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그 앞에는 바시가 휘두른 모닝스타가 절반 이상 땅을 파고 들어가 있었다. 바시가 다시 모닝스타를 들자 바닥이 갈라지며 쩌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콘크리트 파편이 후드득 바닥에 떨어졌다.

바시는 약이 오른 듯 두 눈을 번뜩이며 강우에게 달려들며 모닝스타를 치켜들었다.

“죽인다! 인간!”

강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강우의 위로 모닝스타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강우는 모닝스타에 얻어맞기 직전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퍼억!

모닝스타는 강우의 얼굴에 걸쳐 쇄골까지 강타했다.

강우는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얼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은 것은 느껴졌지만, 고통은 없었다. 얼굴에 닿아있던 것이 잠시 떨어졌다 붙었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뭐지?’

강우는 슬며시 눈을 떴다. 바시가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로 모닝스타를 치켜들고 있었다. 바시는 그대로 강우의 얼굴을 향해 모닝스타를 내리쳤다.

“으아아아!”

강우는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턱.

모닝스타가 강우의 양손에 가볍게 막혔다.

“어?”

손에 집힌 모닝스타는 가볍게 느껴졌다. 해변에서 가지고 노는 비치볼 정도의 느낌이었다. 움켜쥐자 모닝스타는 빈 깡통처럼 우그러졌다.

“이거 뭐야? 비닐이야?”

강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또 뭐야? 내 손이….”

강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바시는 모닝스타를 손에서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바시는 강우와 거리를 벌린 채 이를 갈았다.

강우는 모닝스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바시를 한 번 슬쩍 쳐다보곤 자신의 양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손은 검은 잉크에 담갔다가 뺀 듯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강우는 옷소매를 걷었다. 팔뚝 역시 몸 전체가 그림자가 된 것처럼 까맸다.

“이게 뭐야? 내 몸이 대체 어떻게 된…….”

강우가 자신의 몸을 보며 놀라고 있는 사이 바시가

“쿠오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바시는 오른쪽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퍽.

강우는 안면으로 바시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냈다. 강우는 조금도 뒤로 밀려나지 않은 채 멀쩡히 서있었다. 솜방망이로 맞은 듯 푹신한 느낌마저 들었다.

‘뭐지?’

바시는 주먹을 거두며 당황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하나도 안 아프지? 꿈인가?’

바시는 오른발로 강우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여전히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바시는 “크으윽.”거리며 양 주먹과 다리로 강우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강우는 제자리에서 1mm도 움직이지 않은 채 바시의 공격을 다 받아내고도 멀쩡했다.

‘나도 반격을 해볼까?’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바시는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퍼어어어어어엉!

강우가 날린 주먹이 바시의 가슴에 맞으며 울린 소리였다. 바시의 몸은 풍선처럼 펑 터져버렸다. 바시의 상체는 통째로 사라져버렸고, 얼굴의 일부분과 하반신만이 남았다. 뿜어져 나온 피조차 풍압에 밀려 강우에게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건….”

강우는 자신의 주먹을 들여다봤다. 검은색으로 뒤덮여있던 손과 팔은 원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강우는 자신의 뺨을 꼬집어도 보고, 때려도 봤다. 분명 꿈은 아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바시의 시체와 사방에 튄 피를 보아도 분명히 현실이었다.

강우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김밥과 샌드위치, 음료수를 주워들면서도 바시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강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몰래카메라? 저건 풍선이었던 거고….’

강우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뭐라고 몰래카메라 같은 걸 하겠어.’

현실감이 확 밀려오자 소름이 끼쳤고, 바시의 시체가 역겹게 느껴졌다. 강우는 집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몬스터 파크 : 동물원처럼 몬스터들을 우리에 가둬놓은 유원지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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