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강우는 문제들을 훑어본 뒤 생각했다.
‘백지로 낼 일은 없겠네.’
강우는 답을 써내려갔다. 강우는 1~3번은 정답을 작성했고, 4번부터는 자신의 생각대로 답을 작성했다.
답을 모두 쓰고 난 뒤 남은 시간 약 3분이었다. 강우는 시험지를 터치해 홀로그램 키보드를 접었다.
따르르르르르르릉.
알람 소리와 함께 시험지에 적혀있던 문제들과 작성한 답이 모두 사라졌다. 감독관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들 시험 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험지는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두시면 됩니다. 그리고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인 거 모두 알고 계시죠? 제가 다음 시험에 대해 간단히 설명 좀 해드리겠습니다.”
감독관은 체력검정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체력검정은 근력, 근지구력, 지구력, 순발력까지 총 네 가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각 분야가 50점 만점으로 총 200점 만점이었다. 신체의 능력이 아닌 마법을 이용해 시험을 볼 수도 있었고, 심사위원의 재량에 따라 심사기준 혹은 시험 과정까지도 바뀔 수 있었다.
감독관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체력검정이라고 해서 걱정하시는 분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바벨을 드는 시험에서 몸을 사용하지 않고, 염동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이니까요.”
응시자 중 하나가 질문했다.
“심사기준과 시험 과정이 바뀔 수 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심사기준과 과정이 변하는 경우를 예시로 들어드리죠. 예전에 있었던 경우인데요. 그때 300kg 바벨을 들어 올리는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그 응시자의 신체능력은 일반인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그 응시자는 체력검정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응시자가 불속성의 마법으로 바닥에 폭발을 일으켰었죠. 폭발과 함께 일어난 열풍으로 바벨을 띄우려 한 거였죠. 바벨은 멀리 튕겨나가긴 해도 공중에 뜨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위력을 인정받아 통과할 수 있던 거죠. 뭐, 지금은 이런 응시자들은 따로 시험을 봅니다만.”
질문을 했던 응시자는 수긍이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체력검정은 3시 30분부터입니다. 그 동안 휴식도 취하고, 몸도 풀어놓으시면 되겠습니다. 체력검정은 3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모두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독관이 자리를 뜨고, 응시자들도 필기시험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3시라… 30분 동안 뭐하지? 심심한데.’
필기시험장을 빠져나와 걷고 있던 강우의 오른쪽 어깨를 누군가 거칠게 잡아당겼다. 강우의 몸이 오른쪽으로 조금 틀어졌다.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서는 오만기가 여전히 강우의 어깨에 오른손을 얹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강우는 나지막이 말했다.
“좋게 말할 때 손 내리지?”
“안 내리면 어떻게 할 건데? 이 개새끼야.”
오만기는 손에 힘을 잔뜩 줘 강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보통 사람의 어깨라면 뼈가 부서질 수도 있는 악력이었지만, 강우는 눈 하나 깜짝 않았다. 오만기는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 손에 잔뜩 힘을 줘 강우의 어깨를 으스러트릴 기세였다. 강우는 무표정하게 왼손을 오만기의 손 위에 얹었다. 강우가 오만기의 손을 천천히 잡으려 할 때였다. 오만기는 사색이 되면서 강우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확 뺐다. 오만기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어루만지며 강우를 쳐다봤다.
강우는 나지막이 말했다.
“생각보다 제법이네… 눈치는 제법 있어.”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오만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강우는 3층 체력검정실로 향했다.
‘할 것도 없는데 가서 기다리지 뭐.’
강우는 3층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는 강우 외에 다른 응시자들도 함께 타거나 이미 타고 있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문이 열렸다.
3층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공간이 체력검정실로 이루어져있었다. 강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체력검정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층에 비해 세 배 이상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체력검정을 위한 도구들이 비치돼있었다.
체력검정은 다양한 방법과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근력을 측정하는 것들로는 쇳덩이로 만들어진 가방, 정사각형 모양의 쇳덩이, 쇠기둥, 손잡이가 달린 쇳덩이, 조그만 구멍이 나있는 쇳덩이, 바벨, 악력기 등이 있었다.
민첩성을 측정하는 것들로는 짧은 거리 왕복달리기,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무게추, 불규칙하게 다방면에서 뻗어오는 끝이 뭉툭한 봉들, 과녁에서 날아오는 끝이 뭉툭한 다트 피하기, 점프력 테스트 등이 있었다.
파괴력 테스트는 충격을 흡수해 무게로 계산하는 벽, 콘크리트 덩어리, 쇳덩어리, 쇠기둥 등이 있었다.
방어력 테스트로는 무게추, 나이프, 권총, 기관총, 대포, 화염방사기 등에 이어 수류탄, 다이나마이트, 크레모아 등의 폭탄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따로 칸막이가 쳐진 방이 있었다. 그 방의 벽은 40cm나 되는 티타늄(타이타늄)으로 이뤄져있었다. 그 방은 번외 심사를 치르는 곳으로 기존의 심사 외에 다른 방법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곳이었다. 주로 마법 능력을 베이스로 가진 응시자들이 이용했고, 간혹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지녔거나 파괴력이 강한 응시자들이 그 방에서 시험을 치렀다. 조타핸들(배의 키, 배의 핸들)처럼 생긴 방의 문손잡이는 양손으로 돌려야 될 만큼 커다랬다.
강우가 체력검정실을 둘러보는 동안 다른 응시자들도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세 시험 시작 5분 전이 됐고, 모든 응시자들이 도착해있었다. 검은색 정장차림에 무테안경을 쓴 남자가 들어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모두들 이쪽을 봐주세요!”
응시자들의 시선이 쏠리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여러분의 체력검정 심사를 맡을 이현호입니다! 참가번호 순서대로, 다섯 명씩 차례로 서주십시오!”
응시자들은 5명씩 차례로 늘어섰다. 강우는 99번이라 거의 끝자락에 서있었다. 옆에 선 98번 오만기는 강우를 계속 힐끗힐끗 쳐다봤다. 강우가 오만기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면 급하게 시선을 회피했다. 강우는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오만기를 보며 속으로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좆도 아닌 게….’
강우의 뒤쪽에서 이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여기를 봐주세요!”
강우를 포함한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몇몇은 이미 뒤돌아서있었다. 이현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수한 응시자가 많은 것 같군요. 자, 먼저 시험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전에 오늘 시험을 도울 심사관들과 특별 참관인 히로 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심사관들은 총 열두 명이었다. 심사관들은 세 명씩 짝을 지어 근력, 민첩성, 파괴력, 방어력 각 분야별로 배치돼 심사를 진행했다. 이현호와 히로는 번외 심사를 맡았다.
이현호는 체력검정에 관한 설명에 앞서 히로의 소개를 이어나갔다. 히로는 일본 출신이고, 삼성 하급의 예거였다. 히로는 한국에 관광차 들렀다가 예거 파티 측이 참관인으로 참여해줄 수 없냐는 부탁을 했고, 그에 흔쾌히 응했다.
히로는 흰색 바탕에 줄무늬가 그어진 반팔 카라티에 건빵주머니가 달린 잿빛 반바지 그리고 쪼리를 신고 있었다. 동네 이발소에서 자른 듯한 머리에 굵은 뿔테안경, 옷 위로도 드러나는 뱃살에 드러난 팔과 다리는 얇았다.
히로는 응시자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오늘 번외 심사만을 맡을 것입니다. 특별한 인재에게서 특별한 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응시자들 중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런 쪽바리 새끼가 삼성이라고?”
또 다른 응시자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놈이 삼성급이면, 오성도 식은 죽 먹기겠네.”
두 응시자의 말을 시작으로 시험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히로는 입에 조소를 띤 채 말했다.
“여러분들 중 오늘 말고, 이전에 예거를 실제로 본 분들은 손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응시자들 중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히로는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많네요. 그럼 이 중에서 이성급 이상의 예거를 본 분들만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손을 들고 있는 응시자들은 약 열 명만이 남았다. 히로는 한 번 더 질문했다.
“그럼 삼성급 이상의 예거를 보신 분은요?”
응시자들은 모두 손을 내렸다. 히로는 응시자들에게로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이현호가 말리려고 했지만, 히로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며 다가왔다.
히로가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자신이 힘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랑 아까 이성급 이상의 예거를 실제로 봤다는 분들 중 한 분만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성급 예거를 실제로 봤다는 응시자들 중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히로는 두리번거리다가 오만기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힘에 자신 있다고 하는 분은 안 나오시네요. 거기 98번, 힘 좋아 보이는데 잠깐 앞으로 나오시죠.”
오만기와 다른 응시자가 히로의 앞에 섰다. 히로는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다른 응시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제가 삼성급이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예거 등록을 할 때부터 이성 중급이었고, 현재는 삼성 하급입니다.”
히로는 양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저한테 의심을 품으셨던 분들에게도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히로의 양손에서 보라색 빛이 일어나며 아지랑이를 피웠다. 히로가 “하앗!”하며 기합을 외쳤고, 두 눈은 보랏빛으로 번쩍였다.
히로 앞에 서있던 오만기와 다른 응시자의 몸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응시자들 틈에서 히로에게 의심과 불만을 품었던 두 응시자도 공중에 떠올랐다. 공중에 떠있는 응시자들은 어찌할 바 몰랐고,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히로는 공중에 떠있는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한 번 그 상태에서 벗어나보세요.”
응시자들은 공중에서 몸을 허우적거렸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성급 이상의 예거를 봤었다던 응시자가 물었다.
“능력을 써도 됩니까?”
히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제 염동력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했던 응시자는 전신에서 파란색 빛을 뿜어냈다. 응시자의 전신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고, 몸의 반경 10cm로 곱게 갈은 듯한 얼음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응시자의 몸은 여전히 공중에 둥실둥실 떠있었다.
히로는 오만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파워 타입이실 거 같은데… 어떻게 한 번?”
히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만기는 몸에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오만기는 “으아아아아!”하고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허공에서 팔다리를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히로는 다른 두 응시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두 응시자는 시도해보는 것조차 포기한 듯 시선을 피했다.
히로는 공중에 떠있던 응시자 네 명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히로는 모든 응시자들을 향해 말했다.
“저의 경우 삼성 하급에 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이성 중급 정도만 돼도 순수 전투능력으로만 따지면 저와 비슷할 겁니다. 다만, 저는 능력의 희소성 덕분에 더 높은 등급에 올라와있는 거죠.”
히로는 자신이 공중에 띄웠던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아마 이성 중급 정도만 돼도 제 염동력에 어느 정도는 저항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따라서 방금 제 능력을 겪은 네 분은 오늘 시험에서 최대로 높은 등급을 받아도 이성 하급이 한계란 말이겠죠. 능력을 보여주시지 않은 두 분이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히로의 말에 반박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히로의 말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현호가 줄을 맞추라고 한 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났을 때 곧바로 몸을 돌려 눈으로 이현호를 쫓았던 응시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모두 ‘너보다는 내가 강할 거 같은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우는 ‘그래서 시험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슬슬 배고픈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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