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현호가 손뼉을 크게 쳤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현호는 손목시계를 한 번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네요. 바로 체력검정 기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현호는 각 분야의 기준에 대해 설명했다.
근력, 민첩성, 방어력, 파괴력 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분야들 속에서도 다양한 방법들로 심사가 치러졌다. 예를 들어 근력의 경우 바벨로 데드리프트의 최대 중량, 스쿼트의 최대 중량을 측정할 수도 있었고, 파괴력의 경우 똑같은 쇳덩어리를 놓고 주먹으로 쳐서 찌그러트리거나 손으로 찌그러트릴 수도 있었다. 민첩성은 서전트 점프, 제자리멀리뛰기, 단거리 멀리뛰기 등을 할 수도 있었고, 방어력의 경우 말 그대로 특정한 물리적 피해에 견뎌내는 것이었다.
근력, 민첩성, 방어력, 파괴력 총 네 개 분야의 시험은 모두 치르지 않아도 됐다. 네 분야의 시험을 모두 치러도 되고, 세 가지만 혹은 두 가지, 심지어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의 한 가지만 시험을 치러도 됐다.
단, 어떤 종목을 치르든 다섯 가지 이상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하나당 40점 배점으로 총 200점 만점이었다.
특별시험은 조금 달랐다. 특별시험만 응시하면 200점 만점, 다른 과목을 하나 본 뒤에 응시하면 160점, 두 가지를 본 뒤 응시하면 120점, 세 가지 뒤에는 80점, 네 가지 뒤에는 40점으로 배점이 달라졌다.
이현호가 응시자들을 향해 말했다.
“응시는 먼저 지원하시는 분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번호 순서대로 이뤄집니다만,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네요. 특별시험을 치르실 분들은 저를 따라와 주시고, 모두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이현호와 히로는 특별시험이 치러지는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는 몇몇 응시자들이 뒤를 따랐다. 개중에는 히로의 힘에 공중에 떴을 때 몸에 서리가 꼈던 응시자도 있었다.
다른 심사관들은 세 명씩 짝을 지어 근력, 민첩성, 방어력, 파괴력 분야로 흩어졌다. 열두 명의 심사관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응시자분들은 시험을 치르기 전에 먼저 시험동의서를 읽어보시고, 작성하시면 되겠습니다! 작성이 끝나신 분들은 동의서를 제출하신 뒤, 시험을 치르시면 되겠습니다!”
응시자들은 동의서를 받아들어 읽어보기 시작했다. 강우는 동의서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죽어도 원망 말라는 거네?”
동의서의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분명했다. 국가에서는 체력검정시험을 치르다가 일어나는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 관해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고지돼있었다. 이는 모두 응시자 본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였다.
강우를 포함한 응시자들 중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특별시험을 치르러 간 응시자는 42명, 일반적인 체력검정을 거치려고 남은 응시자는 강우를 포함한 58명이었다.
체력검정실에서 선뜻 움직이는 응시자가 없었다. 심사관들은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는 다른 응시자들보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흥, 겁쟁이 새끼들. 겨우 신체능력 테스트를 하는데도 눈치를 보고 있어?”
남자의 참가번호는 78번이었다. 78번 남자는 방어력 시험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심사관들은 동의서를 접수하고, 번호표를 확인한 뒤 심사를 진행했다.
78번 남자가 등록을 하자 응시자들은 하나둘씩 걸음을 옮겨 각 분야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응시자들은 여전히 걸음을 옮기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강우도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 중 하나였다.
‘어떤 걸 보는 게 제일 나으려나? 일단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번 볼까?’
78번 남자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78번 남자는 나이프에 관한 테스트를 택했다. 심사관 하나가 원통형으로 생긴 기계 하나를 옆으로 눕혀 받침대 위에 올려놨다. 다른 심사관은 바퀴가 달린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밀어 원통형 기계와 약 7m 떨어진 거리에 세웠다. 원통형 기계를 놓은 심사관이 날의 길이만 약 20cm의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심사관은 원통형 기계의 입구에 나이프를 손잡이부터 밀어 넣으며 말했다.
“방어력 시험은 특히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그 위력을 먼저 보여드리니, 잘 생각하고 응시해주시길 바랍니다. 지원을 하셨다고 해도 다시 철회할 수 있으며, 다른 분야의 시험을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78번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런 거 볼 필요 없어.”
심사관은 원통형 기계의 위에 달린 버튼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절차이기 때문에 보셔야 합니다.”
심사관이 버튼을 눌렀다.
퓽!
원통형 기계에서 나이프가 발사되는 소리였다.
쿵!
78번 남자뿐만 아니라, 주시하고 있던 응시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져있었다. 원통형 기계에서 발사된 나이프는 벽을 뚫고 들어가 날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손잡이만이 벽 밖으로 나와 있었다.
78번 남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들 미쳤어? 저런 걸 몸으로 받아내란 거야?”
나이프를 발사했던 심사관이 벽에 박힌 나이프를 빼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단순히 찌르는 정도가 아닌 걸 대체 어떻게….”
한 응시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못할 거 같으면 저리 비켜. 시끄럽게 계속 나불대지 말고.”
대화에 끼어든 응시자는 필기시험 때 강우의 오른쪽에 앉았던 참가번호 100번 여자 응시자였다. 100번 여자는 155cm 정도의 키에 체중은 40kg 내외 정도로 보였다. 굉장히 마르고 작은 체구에 얼굴도 앳돼 20대가 맞긴 한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용모였다.
강우는 100번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쟤는 아까… 어쩌려고 저러지?’
78번 남자는 100번 여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꼬맹이는 뭐야? 네가 어떻게 여기서 시험을 보고 있지?”
78번 남자는 심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이, 이거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심사관 하나가 서류철에 끼워진 서류들을 넘겨보며 중얼거렸다.
“참가번호 100번….”
심사관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참가번호 100번 이현지 씨는 참가 자격에 아무 문제없습니다.”
78번 남자는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쪼그만 계집이? 말도 안 돼.”
이현지는 78번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쪼그만 계집도 저런 거에 쫄아서 도망치진 않아.”
78번 남자는 이현지를 한 대 칠 듯이 손을 치켜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죽고 싶어?”
심사관 중 하나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소란을 피우시면 곧바로 퇴실 조치입니다.”
78번 남자는 이내 손을 내리고 심사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여튼 나는 이런 엉망인 시험은 안 보겠어. 내 동의서 내놔.”
“그 말은 시험을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
“근력 시험을 볼 거야.”
“그럼 동의서는 여기서 내셔도 됩니다. 그냥 근력테스트를 하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78번 남자는 이현지를 한 번 째려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현지는 78번 남자의 위협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현지는 원통형 기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서있으면 되는 건가요?”
나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심사관이 이현지에게 걱정스러운 듯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현지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까딱였다. 다른 심사관이 이현지에게 다가가 동의서를 받아들었다. 이현지 앞에 서있던 심사관은 나이프를 원통형 기계를 넣었다. 심사관은 받침대의 높낮이를 보며 말했다.
“높이를 좀 낮춰야겠군요. 이대로 날아가면 얼굴에….”
이현지가 말했다.
“상관없으니까 그냥 해요.”
“네?”
“그냥 하라고요.”
심사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현지의 얼굴을 보곤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카운트 셋을 센 뒤, 버튼을 누르겠습니다. 심사기준은 나이프를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피해를 최소화해 막아내느냐와 몸의 어떤 부위로 받아내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립니다.”
이현지의 방어력 테스트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근력, 민첩성, 파괴력 테스트에 임하는 응시자들은 물론, 심사관들까지도 하던 일을 멈췄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년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원통형 기계 옆에 선 심사관이 카운트를 셌다.
“셋, 둘, 하나.”
찰칵.
심사관이 버튼을 눌렀다.
퓽!
나이프는 이현지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깡!
마치 금속끼리 부딪친 듯한 소리가 울렸다. 나이프는 이현지의 이마에 부딪친 뒤, 공중에서 핑그르르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현지의 이마는 손가락을 튕겨 꿀밤을 때린 듯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이현지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오… 따끔하네.”
심사관들은 잠시 이현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박수를 쳤다. 심사관 하나가 나이프를 주워들며 미소를 지었다.
“뛰어난 기량이시군요.”
이현지는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
“몇 점이에요?”
“점수는 체력검정이 모두 끝난 뒤에 알 수 있습니다. 만점자를 제외하고 말이죠.”
이현지는 그대로 방어력에 관한 다른 테스트를 받았다. 그 다음은 권총이었다. 이현지는 권총을 가져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쏘는 것을 택했다. 이현지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이현지의 머리가 옆으로 튕길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틱, 티티틱.
찌그러진 총알이 바닥에 굴렀다. 이현지의 관자놀이에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4번 남자가 심사관에게 동의서를 내민 뒤, 권총을 집어 들었다. 4번 남자는 그대로 권총을 자신의 입에 쑤셔 박은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탕!
4번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권총을 입에서 빼낸 뒤, 총알을 바닥에 뱉어냈다. 4번 남자는 이현지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이현지는 짜증을 가득 품은 두 눈을 치켜떴다.
이현지와 4번 남자의 화끈한 테스트로 체력검정실 안은 열기를 띠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응시자들도 발걸음을 옮겨 각 분야로 향했다.
여전히 발걸음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강우였다.
‘어떤 게 제일 나을까? 파괴력 테스트가 제일 쉬울 거 같은데….’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아직 힘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데 잘못했다가는….’
강우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와아아아아!”
함성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근력테스트를 치르는 곳이었다. 강우는 근력테스트를 치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렬로 줄을 서있는 응시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빼들고 있었다. 모두의 이목이 현재 근력테스트를 치르고 있는 응시자에게 집중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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