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2화 (12/195)

12화

강우는 걸음을 옮겨 근력테스트가 치러지는 곳을 쳐다봤다. 오만기가 데드리프트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오만기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강우는 바벨과 오만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강우가 옆에서 얼쩡거리자 심사관이 말했다.

“근력테스트를 치를 건가요?”

“아, 글쎄요. 아직 못 정해서….”

“다른 응시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물러나주세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심사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강우를 째려봤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오만기가 만세를 하듯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소리쳤다.

“으쌰!”

오만기는 양손으로 바벨을 꽉 쥐었다. 오만기가 시도하는 무게는 1톤이었다. 예거의 자질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 중 세계신기록은 2035년 스트롱맨 대회에서 기록된 536kg였다. 오만기는 그 두 배에 가까운 무게에 도전을 하고 있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원판을 끼우는 봉부터 굵기가 남달랐고, 양옆에 끼워진 원판들은 개당 60kg로 두껍고 컸다.

오만기는 “으아아아아압!”하고 괴성을 지르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만기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아지랑이를 피웠다. 오만기는 그대로 1톤짜리 바벨을 들고 우뚝 섰다.

“이야!”

사람들의 감탄사와 박수, 삐익거리는 휘파람소리가 울렸다. 오만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만기는 다시 한 번 “으아아아아아!”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대로 1톤짜리 바벨을 역도를 하듯 들어버렸다. 심사관들도 감탄한 듯 두 눈이 휘둥그레져있었다. 오만기는 바벨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거만하게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바로 다음 거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스쿼트로 하겠습니다.”

심사관이 고개를 저으며 무언가를 적은 뒤, 오만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참가번호 98번 오만기 씨는 체력검정 만점으로 통과입니다.”

이에 오만기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심사관이 다른 응시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지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체력검정에 있어서 압도적인 결과를 보이시면 굳이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바로 특기시험 때까지 다른 분들의 테스트를 보시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오만기는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오만기는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 조소를 띠며 말했다.

“보아하니 네놈은 예거 자격을 갖추지도 못하겠구만.”

강우는 오만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우는 오만기를 째려보며 근력테스트 심사관에게 동의서를 낸 뒤, 다른 응시자들의 뒤에 섰다.

또 다른 곳에서 “와아아아아!”하고 함성 소리가 들렸다. 민첩성 테스트를 하는 곳이었다. 19번 응시자 이혜주였다. 이혜주는 서전트 점프 측정에서 천장에 닿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10m였다.

이혜주는 빠른 속도로 바닥에서 튀어 올라 천장에 닿을 때 몸을 돌려 거꾸로 착지했다. 이혜주는 곧장 천장에서 다시 두 다리로 바닥을 향해 뛰었다. 이혜주는 바닥에 도달하기 직전 고양이처럼 몸을 돌려 사뿐히 착지했다.

이혜주 역시 체력검정 만점자로 더 이상 추가 테스트가 필요치 않았다.

강우는 민첩성 쪽을 바라봤다.

‘저쪽으로 가서 한 번에 만점을 받을까? 나도 저 정도는 뛸 수 있을 거 같은데… 1톤은 들기 힘들 거 같고. 하지만 만점이면 튈 거 같은데… 난 최대한 튀고 싶지 않단 말이지.’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오만기를 쳐다봤다.

‘아까 저 새끼 때문에 괜히 눈에 띄고….'

강우는 근력테스트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다른 응시자가 데드리프트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응시자는 700kg에 성공했다.

‘저 정도를 드는 사람들은 많구만… 그럼 나도 저 정도로 해야 되나? 근데 내가 700kg를 들 수 있나? 씨발, 저렇게 무거운 거 들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다고… 아, 이게 기준이 제대로 안 나와 있으니까 애매하네. 괜히 힘 아끼다가 떨어지면 재시험 봐야 되잖아. 특기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겠고….’

근력테스트 쪽은 대부분 덩치들이 큰 남자 응시자들만 서있었다. 단 두 명의 여자 응시자들이 있었는데, 그나마 한 명은 여자보디빌더 수준의 근육질이었다. 강우는 민첩성 테스트를 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라면 무조건 만점 받아서 안전빵이 가능한데….’

강우의 머릿속에 민첩성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은 이혜주가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환호와 만점자 특권으로 다른 테스트를 더 이상 치르지 않아도 되는 등 눈에 띄었다. 강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너무 튀어. 저 멍청한 것들은 튀는 게 좋나? 튀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저런 놈들은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그런 예거들이 되고 싶은 건가? 연예인처럼?’

강우가 추구하는 삶은 튀지 않는 것이었다. 돈은 많고, 인생을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서 튀지 않는 삶이었다. 강우가 그런 삶을 추구하는 이유들 중 가장 큰 하나는 여자 문제였다.

‘유명해지면 유흥업소도 마음대로 못 가볼 거 아니야. 거기서 일하는 여자가 알아보고, 그러다 소문나고…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 성매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건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까 난 룸빵이나 빡촌을 한 번도 안 가봤네. 언제 한 번 가보고는 싶은데… 뭐, 아직은 충분히 꼬셔서 만날 수 있으니까….’

강우는 팔짱을 끼며 자신의 생각에 혼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일반 여자들을 만나도 유명하면 불편할 거 아냐? 괜히 피곤해질 수도 있고.’

강우는 김민지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거로 유명해지는 게 그리 쉽지 않다고 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신준섭이라고 했었나? 그 새끼도 일성 중에 랭킹에 드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 같더만….’

강우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99번! 99번 지강우 씨!”

강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심사관이 지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강우 씨 차례입니다.”

근력테스트를 보려고 대기하던 응시자들 중 일부가 한 가지만 치르거나, 아예 다른 종목으로 넘어가 강우의 차례가 빠르게 온 것이었다. 심사관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어떤 종목 치르실 거죠?”

강우가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쩌엉!

커다란 파열음이 들려왔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미 만점을 받아 쉬고 있던 응시자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열음은 파괴력 테스트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난 소리였다. 17번 응시자 김형태가 지름 1m짜리 구(球)형태의 쇳덩어리를 주먹으로 완전히 부서트리며 낸 소리였다. 쇳덩어리가 깨져서 조각조각 바닥을 굴러다녔고, 김형태의 손아귀에서는 주황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강우는 김형태와 파괴된 쇳덩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강우 씨, 시험 안 치르십니까?”

“네? 네, 갑니다.”

강우는 걸음을 옮겨 자연스레 바벨 앞에 섰다. 심사관이 뭐라고 말을 했지만, 강우는 여전히 파괴력 테스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파괴력은 만점을 받을 거 같은데… 저거보다 조금 더 작은 걸 부수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지 않으려나?’

강우는 손에 쥔 바벨을 양손에 쥔 채로 몸을 일으키면서도 민첩성 테스트와 파괴력 테스트 쪽을 바라봤다.

환호성이 울렸다.

“와아아아!”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응시자들 몇몇이 강우 쪽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심사관이 말했다.

“바벨 내려놓으시고, 이쪽으로 나오세요.”

강우는 여전히 바벨을 든 채 심사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

“바벨 이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만점입니다.”

강우는 자신이 들고 있는 바벨의 양옆을 쳐다봤다. 엄청나게 많은 원판들이 끼워져 있었다. 강우가 들어 올린 바벨의 무게는 1.2톤이었다. 강우 전에 데드리프트를 시도했던 응시자가 무리한 무게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을 강우가 그대로 들어 올린 것이었다.

강우는 바벨을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아, 이런, 만점 받으면 안 되는데….”

심사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우는 만점자들과 이미 테스트를 모두 마친 응시자들이 모여서 쉬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씨발. 다른 곳에 정신 팔려가지고….’

자리에 앉아있던 오만기가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오만기를 쳐다봤다. 오만기가 말했다.

“비리비리해서 약골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제법인데?”

“그래서 뭐.”

“그래봤자 나보단 훨씬 약해. 난 1톤을 아예 머리 위로 들었지. 데드리프트만이라면 2톤도 들 수 있다.”

“누가 물어봤냐?”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만기를 지나치려 했다. 오만기는 여전히 강우에게 시선을 둔 채 말했다.

“그런데 네가 만점이라니… 내가 데드리프트를 2톤으로 들걸 그랬어. 그랬다면 네가 만점을 받는 일은 없었겠지. 어쨌든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아까도 이상하게 왠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냥 넘어갔었지만, 평소대로였다면 너는 지금 허리가 접힌 채로 병원에 실려갔을 거다. 원래대로라면 체력검정에 응시조차 못했을 거란 말이다.”

강우는 오만기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겨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만기는 여전히 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만기는 강우와 눈이 마주치자 입모양으로 “조심해라.”라고 말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저 새끼는 덩치에 안 맞게 좆나게 쪼잔해가지고 계속 지랄이네 진짜… 아… 그나저나 시험 결과를 무를 수도 없고. 뭐, 고작 체력테스트 하나 만점 받았다고 유명해지지는 않겠지…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어.’

누군가 강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불행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듯 강우의 예감도 그랬다.

“너 대단하더라? 비리비리해서 마법 쪽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체능력 쪽이네?”

한 여자 응시자가 강우의 바로 옆에서 떠들어댔다. 강우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이내 짜증이 섞인 말투가 강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야, 99번. 내 말 안 들려?”

강우는 고개를 들었다. 이현지가 심통 난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얘는 아까 자기 머리에다 총을 쐈었던….’

이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말 안 들리냐고.”

“어, 어. 잠깐 딴 생각 좀 하느라고.”

강우는 이현지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현지는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생머리에 앞머리는 일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다. 이현지는 마르고 작은 키에 작은 얼굴, 작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입은 숟가락은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작았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데 너 몇 살인데 반말이야?”

“나? 스무 살.”

“근데 왜 반말이야? 아니, 나이를 떠나서 초면부터….”

이현지가 강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난 너도 스무 살인 줄 알았지. 여기 대부분 스무 살인 줄 알았어. 보통 예거의 자질을 갖춘 순간부터 시험을 보러 오지 않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애초에 합격률이 낮아서 재시험 보는 사람도 많고….”

이현지가 또다시 강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너도 재시험 보는 거야? 아까 그 무거운 걸 번쩍 드는 걸로 봐서는 재시험 볼 거 같진 않은데.”

“이번이 처음이야.”

“나보다 나이 많다며? 왜 이제야 응시한 건데?”

“난 이래저래 고민되는 게 좀 있었거든. 아니, 그보다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니까? 여기 한국이야. 존댓말 할 줄 몰라?”

이현지는 씩 웃으며 말했다.

“반말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너도 말 놓고 금방 친해졌잖아.”

“아니, 그래도….”

이현지는 강우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 저기 특별테스트 받았던 사람들 나온다.”

체력검정을 받은 응시자들 역시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원래 am01:00~02:00에 업로드를 한 뒤, 다음편을 곧바로 올리려고 했는데, 응급실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지금에야 올립니다.

응급실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큰 상황정리와 회사일 때문에 돌아오게 돼서 출근 준비 전, 이렇게 업로드를 합니다.

마음 같아선 하루에 최소 2편씩은 올리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요.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을 써서 최대한 빠른 업로드로 더욱 즐겁게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댓글과 추천, 선작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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