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예거 등록소장은 다른 합격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화색을 띠고 말했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외에 궁금한 점은 지금 질문을 주셔도 되고, 후에 예거들만 접속 가능한 사이트에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질문 있으신 분?”
질문을 던지는 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예거 등록소장은 합격자들을 바라보다가 이현호에게 손짓을 했다. 이현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예거 등록소장이 합격자들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이제 다른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예거 등록증을 발급해드릴 텐데요. 그전에 개인적으로 면담을 한 번씩 가질 겁니다. 면담은 저와 오늘 특별히 참관해주신 히로 님이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예거 등록소장이 먼저 앞장섰고, 히로가 그 뒤를 따랐다. 합격자들은 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예거 등록소장의 휠체어는 손으로 직접 바퀴를 굴려야 하는 구형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미는 사람도 없고, 예거 등록소장이 바퀴를 굴리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였다. 합격자들의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히로의 손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보라색 빛을 보곤 이해했다.
모두가 멈춰선 곳은 다른 사무실 앞이었다. 커다랬던 다른 사무실과는 다르게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예거 등록소장과 히로가 먼저 사무실로 들어섰고, 이현호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현호가 합격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일대일 면담이 있을 겁니다. 면담은 부담 없이 편하게 진행하시면 됩니다. 면담을 마친 뒤에는 바로 예거 등록증과 관련 안내책자를 받은 다음 돌아가시면 됩니다.”
오하나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러면 모든 과정이 끝인가요?”
이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예거로서 열심히 활동해주시면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오하나 씨 먼저 면담을 진행하도록 하죠.”
이현호는 사무실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오하나는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현호는 합격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분씩 면담이 끝날 때마다 제가 나와서 함께 들어갈 것이니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이현호는 사무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나머지 합격자들은 자리에 앉아 대기를 했다. 면담은 짧으면 5분, 길면 10분 이상이 소요되기도 했다.
오하나의 면담이 끝나고 이지연, 이현지, 김동준, 오만기, 이혜주, 김형태, 심석호 순으로 진행됐다. 면담이 끝난 합격자들은 예거 등록증과 안내책자를 가지고 돌아갔다. 이현지는 강우에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는 인사를 남겼다. 오만기 역시 강우에게 또 보자는 인사를 남겼다. 이현지와 오만기가 남긴 말은 내용 면에서 같았지만, 뜻은 완전히 달랐다.
이현호가 강우를 불렀다. 강우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히로와 예거 등록소장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측면에 이현호가 앉았다. 히로가 자신의 건너편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시죠.”
강우는 자리에 앉아 히로와 예거 등록소장을 마주봤다. 예거 등록소장이 잠시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먼저 간단하게 필기시험에 관해서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네.”
“예거의 자질을 갖춘 사람과 예거 등록을 한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비공인과 공인. 면허와 비면허. 이렇게 간단하게 작성해주셨는데요.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강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정보력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거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법의 적용도 다르고요.”
예거 등록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몬스터 보호협회, 몬스터 보호 운동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비교적 간단하게 작성하셨더군요. ‘보호해야 되는 동물들이 있듯이 몬스터들도 있을 것이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라고….”
“솔직히 저는 몬스터 보호협회나 몬스터 보호 운동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지나가는 뉴스로 시위가 벌어졌다느니… 어떤 몬스터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도 하는데 무차별로 희생당하고 있다느니… 겉핥기로 알고 있어서요.”
히로가 말했다.
“몬스터 보호협회, 몬스터 보호 운동가들 중에는 과격시위로 예거 파티 소속의 예거들과 마찰이 잦은 점, 모르고 계셨나요?”
“잘 몰랐습니다.”
“몬스터 보호협회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그런 부분은 숙지하고 있습니다.”
히로는 강우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 지금 몬스터 보호협회와 예거들과는 상당히 많은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예거로서 활동하는데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몬스터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죠. 몬스터들 중에 그리 흉포하지 않거나,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을 해치는 몬스터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렇군요.”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몬스터 보호협회에 예거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예거의 자질을 갖춘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거 파티에서 탈퇴하고, 몬스터 보호협회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는 예거 파티에서 활동을 하면서, 몬스터 보호협회에 들어가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일종의 스파이라고 볼 수 있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로의 말에 경청했다. 히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우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본인은 몬스터 보호협회에 들어갈 생각이 있으십니까? 거짓말을 하셔도 되고, 솔직하게 들어간다고 하셔도 됩니다. 아무런 불이익은 없습니다. 몬스터 보호협회에도 저희와 타협점을 맞춰 조율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고, 예거 파티에서도….”
“크흠, 흠.”
예거 등록소장이 헛기침을 했고, 히로는 잠시 말을 멈췄다. 히로는 강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쓸데없이 말이 좀 길었던 것 같군요. 후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점이니, 편하게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우는 히로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몬스터 보호협회가 예거 파티나 예거 클랜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요?”
“어떤 부분을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필기시험에서 지강우 씨가 다른 문항에 답안을 작성하신 걸로 봐서는… 아마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실 텐데, 맞나요?”
“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부분이 좀 궁금합니다.”
“ 몬스터 보호협회는 아직 성장 중인 곳이지만, 몇몇의 재력가들이 함께 하면서 소정의 급여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이따금씩 예거 파티에 소속된 예거들과의 마찰에서 프리랜서 예거들이나 범죄자들을 고용해 맞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프리랜서야 그렇다 쳐도, 범죄자들까지 고용하는 부분이 더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쪽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사람을 쓰는지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드리자면, 기본적으로 몬스터 보호협회는 자원봉사 개념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특정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볼 수 있겠죠. 예거 파티나 클랜보다 금전적인 수익이 큰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강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 더 솔직해지죠. 그럼 제가 그곳에서 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네요.”
히로는 잠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내비췄다. 예거 등록소장이 양손을 책상 위로 모으며 강우에게 말했다.
“근래 들어 몬스터 보호협회에서는 자체적으로 등록까지 시키고 있습니다. 예거 등록과 비슷한 개념으로 ‘몬스터 가드’라는 걸 만들어냈습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이 아닌 민간 자격증이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상태죠. 아직까지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몬스터 보호협회에서는 몬스터 가드 자격에 준하는 사람에겐 여러 가지로 특별한 대우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예거가 아닌, 몬스터 가드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날 추세로 보이고요. 아마 예거로 활동을 한다면, 분명히 이들과 부딪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예거 등록소장은 서류를 넘겨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몬스터 보호협회 관련 얘기가 길어졌는데요.”
예거 등록소장이 이현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현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몇 가지 서류를 자신의 앞에 펼쳤다.
이현호가 강우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빠르게 몇 가지 묻겠습니다. 예거의 자격 박탈에 관한 문제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박탈당한다고 하셨는데요. 예거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입니다. 본인이 직접 예거 등록 취소를 신청하거나, 몬스터 가드에 등록을 하면 더 이상 예거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몬스터 가드로 등록을 한다고 해도, 저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결국 본인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예거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강우는 조금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무슨 짓을 해도요?”
이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떠한 경우에도 예거의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습니다.”
이현호는 서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거로서 주된 활동으로 몬스터 사냥꾼, 몬스터 거래라고 적어주셨네요. 이유가?”
“돈이죠.”
이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습니다. 예거가 된 다음 가장 먼저 하려는 걸 휴식이라고 써주셨네요?”
“어제 과음을 해서 조금 피곤하거든요. 시험을 치른 뒤라 더욱 그렇고요. 정직하게 쓰라고 해서 정말 정직하게 썼습니다.”
이현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네, 정직함이 묻어나네요. 원래 각 문제당 득점을 얼마나 했는지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만, 지강우 씨의 경우 이 문제에서 15점 배점에 15점 만점 받으셨습니다.”
히로가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예거로서 프리랜서로 활동할 계획이고, 그 이유는 자유로운 게 좋다고 하셨네요. 그렇다면 예거 파티나 예거 클랜에서 의뢰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만 활동할 생각이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 여건과 일의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히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서류에 끼적였다.
예거 등록소장이 생수 500ml를 한 번에 마신 다음 말했다.
“예거로서 목표가 소박하군요?”
강우는 약간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런가요? 저는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서요.”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것 말입니까?”
“네, 그거면 예거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거니까요.”
예거 등록소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예거로 활동하고 2년도 안 돼서 평생 써도 못 쓸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예거로서 활동을 했고, 몸이 이렇게 돼서도 예거 파티에 소속돼 일을 하고 있죠.”
“어떤 것 때문에 계속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건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나도 한 때는 지강우 씨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저…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예거 등록소장이 말했다.
“얘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하고 싶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힘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길 바랍니다. 부디 좋은 곳에 힘을 써주시길 바랍니다.”
예거 등록소장이 무지갯빛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 안에는 예거 등록증과 안내책자가 들어있었다. 예거 등록소장은 강우의 예거 등록증과 안내책자를 건넸다.
이현호가 말했다.
“이로써 모든 예거 등록 절차가 끝났습니다. 예거로 활동하기 전에 반드시 안내책자를 한 번 읽어보시고, 예거 공식 커뮤니티 사이트에 꼭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우는 예거 등록증을 들여다봤다. 예거 등록증은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크기였다. 끄트머리에는 바코드도 찍혀있었고, 컴퓨터에 연결이 가능하도록 usb 단자를 뺄 수도 있었다. 등록증 자체에 칩도 들어있었다. 예거 등록증은 신분확인이 필요한 기능을 사용할 때는 간단하게 터치를 하거나 하이패스 형식의 인식 또한 가능했다.
강우의 예거 일련번호는 ‘444466613’이었다.
‘숫자가 좀… 재수 없는 건 다 모아놨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거 등록소장, 히로, 이현호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강우는 예거 등록소에서 빠져나와 걸음을 옮겼다.
‘뭐, 생각보다 쉬웠어. 이제 돈을 버는 일만 남은 건가? 모아놓은 돈도 5,000만 겔드는 되고… 지금 가지고 있는 돈도 50만 겔드가 넘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강우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발걸음에서 좋은 기분이 묻어났다. 강우는 발을 내딛을 때마다 솜사탕을 밟듯 가벼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강우는 자신이 무덤덤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은 한구석에는 참을 수 없는 즐거움과 짜릿함, 성취감, 기대감이 용암처럼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강우는 너무 쉽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너무나 쉽게 믿고 있었다. 방구석 폐인이었던 자신의 죽은 과거는 묻어버리지도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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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작과 댓글, 추천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제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처럼 성장하기도 혹은 퇴보하기도 합니다.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고 혹은 회피하기도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들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그 크기마저 다르게 성장하듯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