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6화 (16/195)

16화

강우는 안내책자를 훑어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내책자에 적힌 내용들은 일반인들도 알 수 있는 내용, 시험을 치르면서 들은 내용 등 대부분 강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눈에 띄는 것이라면 첫 페이지에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 주소가 적혀있었고, 안내책자의 내용을 유포할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외 예거 등록증과 안내책자를 분실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별거 없네. 나중에 찬찬히 읽어봐야지.’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힘 조절에 대해 고민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건 조절이 가능한데… 몬스터를 잡을 때 한 방에 안 죽여본 적이 없네. 적당히 때려서 잡는 거랑 생포하는 걸 연습해야 되는데.’

강우는 다시 안내책자를 펼쳤다.

‘그나저나 일거리는 어떻게 받는 거지? 따로 지원해야 되나?’

강우는 왼손에 안내책자를 든 채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강우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로 접속했다.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자 가장 먼저 뜨는 문구는 ‘예거 등록증의 바코드를 스캔해주세요.’였다. 강우가 예거 등록증을 휴대폰 화면에 가져다 대자 자동으로 로그인이 됐다.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예거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상세하게 담겨있었고, 전 세계의 예거들, 예거 파티, 예거 클랜, 몬스터 거래 업체들의 교류 또한 활발했다.

‘여기서 일을 구하면 되는구만….’

강우는 휴대폰과 예거 등록증을 주머니에 넣고, 안내책자를 손에 쥔 채 몸을 벤치에 기댔다. 강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은 당일치기 혹은 계약직으로 구하면 되겠고… 몬스터 거래 업체도 사이트에서 알아보면 되는데, 힘 조절이 문제네… 일단 일하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타우로스 같은 건 뿔만 건져도 개당 100만 겔드 정도 챙길 수 있으니….’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꺄아아악!”

“모두 도망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탕, 탕탕탕탕.

총성이 울렸다. 강우는 뛰어오고 있는 한 여자에게 물었다.

“뭐죠? 무슨 일이죠?”

여자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화장이 다 번져있었다. 여자는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몬스터, 몬스터가 엄청나게 많이….”

“으아아아! 도망쳐!”

뒤에서 다른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여자는 말을 하다 말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강우는 곧바로 뛰려는 찰나에 생각했다.

‘잠깐… 지금은 좀 곤란한데? 아직 주변에 사람들도 많은 거 같고, 총성으로 봐선 경찰… 혹은 군인까지 있을 수도… 그리고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로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는데… 어차피 다른 예거가 금방 오지 않을까? 예거 등록소도 여기서 충분히 가깝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신고도 했을 거야.’

강우는 사람들이 도망쳐오는 방향의 반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반드시 몬스터를 해치우고, 사람들을 도와야 되는 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창녀촌에 처녀가 있을 확률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것, 그 행위 또한 자신의 보람과 만족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 자신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강우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도와주세요!”

한 여자의 커다란 비명소리였다. 강우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품에 네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여자의 뒤로는 시커먼 무언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컹컹!”

뒤에서 쫓아오는 시커먼 것은 입에서는 침을 흘리며 두 눈을 번뜩였다.

커다란 개, 아니, 개와 비슷한 몬스터 ‘하운드’였다. 하운드는 일성 하급의 몬스터로 평균 어깨높이 1m 20cm, 몸무게 160kg, 치악력은 600kg이었다. 하운드는 풍성한 갈색 털에 시커먼 주둥이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빨 하나하나의 크기는 성인남자의 검지 두 마디 크기로 일반 사람은 한 번만 물려도 생명이 위태로웠고, 팔과 다리는 헝겊인형의 것처럼 쉽게 뜯겨나갔다. 하운드는 어디서 발견돼도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둘 이상 짝을 지어 다녔고, 후각 또한 일반 개보다 두 배 이상 예민해 한 번 노린 사냥감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하운드는 입을 쩍 벌린 채 여자의 뒤로 튀어 올랐다. 하운드의 커다란 입이 여자의 머리통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텅!

강우가 무언가 생각을 하기도, 고민을 하기도 전이었다. 강우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손바닥으로 하운드의 오른쪽 목을 밀쳤다. 하운드는 “케헥!”거리는 소리를 내며 10m 이상 뒤로 날아갔다. 하운드는 강우의 손바닥에 밀쳐지는 순간 목뼈가 으스러져 즉사했다. 쓰러져 있는 하운드의 오른쪽 목에는 강우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강우는 눈을 크게 뜨고 하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됐다. 한 방에 죽기는 했지만, 터지지 않았어. 손바닥으로 밀치기만 해서 그런가? 아니야. 끝에 뭔가 힘이 살짝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크으, 감각이 잘 생각나지 않아. 몇 번 더 해보면 알 것 같은데….’

“저기….”

강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봤겠지? 그래도 괜찮아. 저런 개 한 마리쯤이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예거들은 많을 테니까. 이 정도야….’

여자는 강우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뒤쪽 건물을 돌아가면 아직 몬스터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위험해요. 경찰들이 있긴 하지만… 부탁합니다!”

여자는 말을 마치곤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여자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뺐다. 아이는 여자의 어깨에 턱을 걸친 채 활짝 웃으며 강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경험, 그것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본인의 만족감, 보람을 느끼기 위해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그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특히 지금 이 시대에서는 예거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강우는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것이 솟구쳤다. 가슴속 한 가운데가 뜨겁게 끓는 것만 같았다. 강우는 여자가 알려준 건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인류의 평화를 지키겠다… 모든 사람을 구해내겠다… 그런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내 계획을, 원했던 인생을 망쳐버리고 싶지도…….’

강우의 시야에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거야.’

강우는 약국을 향해 뛰었다. 약국 입구는 잠겨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에서 일하고 있던 약사는 몬스터 출현에 가게 문을 잠근 뒤, 뒷문으로 달아나있었다. 강우는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그대로 밀었다. 문 위로 튀어나와 입구에 걸려 고정하고 있는 자물쇠가 끊어졌다. 강우는 빠르게 눈알을 굴렸고, 무언가를 발견하자마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것을 집어 들었다.

강우가 집어 든 것은 마스크였다. 강우는 급하게 지갑을 꺼내 100,000겔드를 약국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마스크 값이랑 문 수리비입니다. 조금 부족하겠지만 좋은 일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이해해줘요.”

강우는 얼굴에 마스크를 쓴 채 사람들이 도망쳐오고 있는 곳으로 뛰었다.

건물 뒤편은 양옆으로 차들이 주차돼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그곳에는 하운드 여섯 마리와 경찰관 여섯 명, 일반 시민 열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경찰관 네 명, 일반 시민 다섯 명이었다. 생존자들은 하운드들에게 둘러싸인 채 벽을 등지고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남자는 하운드 한 마리에게 왼쪽 어깨부터 가슴까지 물려있었다. 남자는 힘이 다 빠진 양손으로 하운드의 주둥이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살려줘! 살려줘….”

으득!

남자의 가슴뼈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남자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쌔액쌔액 바람 새는 소리를 내쉬었다. 하운드가 앞발로 남자의 배를 찍어 누르며 고개를 들었고, 남자의 상반신이 하반신에서 떨어져나갔다.

경찰관 세 명은 손에 권총을, 한 명은 곤봉을 쥔 채 하운드 다섯 마리와 대치 중이었다. 하운드들은 몸의 군데군데 총상을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강우는 하운드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했다.

‘여섯 마리… 저런 똥개들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저 중에 한 마리라도 사람들에게 달려들면… 내 속도로 사람들에게 아무 피해도 없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더 이상은….’

강우가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하운드들 사이로 강우를 본 경찰관 하나가 소리쳤다.

“이쪽으로 오면 안 돼요! 어서 도망쳐요!”

강우는 천천히 한 발짝 내딛었고, 하운드들이 일제히 강우를 향해 돌아봤다. 생존자 중 하나를 물어뜯어 죽인 하운드가 입에 물고 있던 시신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남자의 시신 일부분은 이미 넝마가 된 옷과 뼛조각이 엉킨 채 아직 따뜻한 피와 하운드의 끈적한 침을 잔뜩 머금은 고깃덩어리였다.

하운드는 강우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운드가 강우를 향해 뛰어왔다. 강우는 자세를 낮추며 양팔을 벌렸다.

‘잘됐어. 그래, 나한테 덤벼라.’

하운드가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강우는 오른손을 뻗어 하운드의 두 앞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강우는 손으로 하운드의 가슴팍을 받친 채 왼손으로는 목덜미를 꽉 쥐었다. 강우가 그대로 하운드를 바닥에 매쳐버렸고, 하운드는 “캥!”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른 하운드들 다섯 마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강우에게로 뛰어들었다.

강우는 양손을 쫙 펼쳤다. 강우는 가장 먼저 달려든 하운드의 주둥이를 위에서 아래로 후려쳤다.

뻑!

하운드는 그대로 아래턱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하운드는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즉사했다. 뒤에서 달려오던 하운드 세 마리가 동시에 튀어 올랐다. 강우는 왼쪽 주먹과 오른쪽 주먹으로 하운드 두 마리의 미간을 가격했다.

빠박!

강우의 주먹에 맞은 하운드 두 마리는 두개골이 부서지며 즉사해 바닥에 고꾸라졌다. 즉사한 하운드 두 마리는 혀를 길게 뺀 채 눈이 뒤집혀있었다.

가운데에서 달려든 하운드가 입을 쩍 벌렸다. 커다란 이빨이 강우의 얼굴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강우는 오른손을 핀 뒤에 손목뼈중간관절 부분으로 하운드의 턱을 올려쳤다. 하운드의 턱이 들렸다. 강우는 그대로 왼손으로 하운드의 옆구리를 강하게 밀쳤다. 하운드의 몸이 강우가 가격한 방향으로 휘며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때 경찰관이 소리쳤다.

“위험해!”

강우의 머리 위로 마지막 하운드가 달려들었다. 하운드는 강우의 왼쪽 어깨부터 가슴팍까지 물었다. 하운드는 두 앞발로 강우의 몸을 밀어 넘어트리려했다. 하지만 강우의 두 발은 땅에 깊이 박혀있는 듯 꿈적도 하지 않았다. 강우는 양손으로 하운드의 두 귀를 꽉 움켜쥐었다. 강우가 귀를 잡아당겼지만, 하운드는 강우를 문 채 놓지 않았다.

탕! 탕탕!

총성이 울렸다. 경찰관들이 강우를 물어뜯고 있는 하운드에게 남은 총알을 모두 쏟아 부었다. 강우를 물고 있는 하운드의 턱에 힘이 미세하게 빠졌다. 강우는 하운드의 귀를 잡은 채 휘둘렀다.

쾅!

하운드는 내팽개쳐져 주차된 차의 옆면에 처박혔다. 강우의 양손에는 하운드의 뜯겨진 귀가 쥐어져있었다. 강우는 차의 옆면에 처박힌 하운드에게 달려갔다. 강우는 주먹으로 끊어 치듯 하운드의 옆구리를 때렸다. 하운드의 갈비뼈가 부서지며 내장까지 꿰뚫었다. 하운드는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케헥거리다 죽었다.

하운드들이 모두 죽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찰관들은 강우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죽었을 겁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예거 파티에 지원 요청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셨네요. 주변에 예거 파티 소속 예거가 없다고 했었는데… 혼자서 하운드 여섯 마리를 전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젊은 경찰관 하나가 말했다.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다 잡아버렸어요. 일성 중급… 아니, 상급 맞죠?”

안정을 찾은 다른 사람들도 강우에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한 여자는 긴장감이 풀렸는지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끊이지 않았다.

강우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몸을 돌렸다. 뒤에서 젊은 경찰관이 강우를 불러 세웠다.

“이거 처리 안 하고 가시나요?”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예거 파티 협력 몬스터 거래 업체와 연락해서 확인증 스캔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예전에 봤던 예거 파티에서 나온 사람은 그렇게 하던데.”

“아, 다른 사람이 와서 대신 처리하고 갈 겁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바로 가야 돼서요.”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강우의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강우의 얼굴에는 마스크 위로도 드러날 만큼 크게 미소가 드리워있었다.

============================ 작품 후기 ============================

업로드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집에 중환자가 있어 여러 가지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기 일쑤네요.

가능한 매일 1화 이상 연재는 반드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업로드 시간은 자정~오전 2시 사이가 될 것입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는 매일입니다.

그리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것까지 잃게 만듭니다.

심신 모두 피폐해지네요.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선작과 댓글, 추천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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