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강우는 하운드를 잡은 곳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진 뒤,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강우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뿌듯하구만… 그나저나 한 마리도 터트리지 않았어. 적당한 선에서 죽였다고. 조금만 연습하면 적당한 힘으로 몬스터들을 잡는 것도 가능하겠어. 그리고….’
강우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이유는 어느 정도의 힘 조절이 가능했던 것과 사람들을 구해서 느낀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민이 해결돼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진작 생각 못했지? 얼굴을 가리면 되는 거였어. 마스크 같은 건 쉽게 벗겨질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좀 알아봐야겠어.’
강우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경찰관들은 자리에 남아있었다. 경찰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 예거 하운드한테 물리지 않았어?”
다른 경찰관이 말했다.
“응, 나는 그 남자가 물린 순간 끝났구나 싶었다니까.”
처음에 먼저 입을 열었던 남자가 말했다.
“그 예거 상처 하나 없지 않았어? 피 한 방울 안 났잖아.”
“그랬나? 잘 모르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가 하운드들을 처치한 곳엔 예거 파티 소속의 한 남자가 도착했다. 남자는 급하게 달려왔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뭐지? 예거 클랜에서 처리를 했나? 이런 건 처리해봐야 돈도 안 돼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젊은 경찰관이 남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셨군요. 먼저 오신 분이 몬스터 관련 거래 업체만 불러서 처리하면 된다고 했어요.”
“누가 왔다갔는지 알고 계시나요?”
“네? 예거 파티 소속이라고 하시던데… 모르는 분이예요?”
“아, 아닙니다.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여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젊은 경찰관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네, 고생하십쇼.”
경찰관들이 돌아갔고, 자리에 남은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든 채 죽은 하운드들을 둘러봤다.
‘대체 누구지? 예거 파티 소속이면 연결이 됐을 거고… 뭐, 사람들을 구하려는 예거였나? 내 입장에서야 잘 됐지. 공짜로 수당도 챙기고.“
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예거 파티의 협력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집에 도착한 강우는 컴퓨터부터 켰다. 강우가 검색한 것은 가면과 복면이었다. 복면 종류는 다양했다.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용도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다양한 기능을 갖추기도 했다. 개중에는 방탄이나 방검 기능을 갖춘 것도 있었다.
‘이런 기능은 필요 없고….’
수많은 가면과 복면들 중 강우의 시선이 멈춘 곳은 머리에 뒤집어쓰는 한 복면이었다. 복면은 어두운 파란색 바탕에 두 눈이 있는 부분은 노란색이었다. 제품의 설명에는 ‘이 제품은 눈 부위가 착용자의 눈에 맞춰 모양이 변합니다. 착용자의 감정과 표정에 따라서도 변합니다. 복면을 쓰고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보세요. 또한 목소리 톤도 낮게 변조돼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길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놀라게 해주세요. 완벽 방수제품!’이라고 적혀있었다.
강우는 복면이 마음에 들었다.
‘오, 이거 괜찮은데.’
복면은 긴팔 상의와 세트 제품이었다. 상의는 티셔츠였고, 복면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파란색과 노란색이 배색돼있었다. 티셔츠의 설명은 ‘자신의 몸에 맞춰 제작한 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돼있었다.
‘무조건 세트로 사야 되나? 세트밖에 없네. 뭐… 나쁘진 않으니까.’
복면과 티셔츠 세트는 35만 겔드였다.
‘뭐야, 씨발. 왜 이렇게 비싸?’
강우는 곧장 다른 복면들이나 가면을 찾아봤지만, 처음에 봤던 것만큼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강우는 이내 목소리 변조도 가능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엔 최고라고 합리화를 하며 결제를 했다. 제품의 배송기간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 소요됐다.
강우는 구입한 복면과 티셔츠 세트를 계속 들여다봤다.
‘마음에 드는데? 나도 은근히 오타쿠 기질이 있나? 아니, 오타쿠라고 볼 수 있지 뭐. 여태까지 한 거라곤 게임밖에 없으니… 그나저나 이틀 만에 타우로스 뿔 값으로 받은 돈의 대부분 써버렸네. 얼른 일을 구해봐야지.’
강우는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수많은 구인·구직 관련 게시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검색 또한 국가별, 액수별,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 기간별, 등급별 등 다양한 옵션을 넣어 알맞은 일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몬스터 관련 매물들도 온라인으로 가격 확인 및 거래도 가능했다. 강우는 아까 잡았던 하운드들이 떠올랐다. 강우는 하운드 관련 물품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들을 검색했다. 하운드는 거래되고 있는 부분은 이빨이 유일했다. 이빨도 따로 세공을 해 액세서리로 파는 것이 아니면 거의 가치가 없었다.
하운드 이빨 세공품이 판매되는 곳 아래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하운드는 두들겨 패서 잡은 다음 털을 불로 끄슬러서 푹 고아야 제맛이지.-강우는 실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 개 값이구만.’
강우는 다시 구인·구직 관련 게시물을 찾아봤다.
‘일을 구해야 되는데… 뭐가 좋으려나?’
일을 구하는 건 강우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구인 관련 게시물은 대부분 예거 클랜에서 함께 할 사람을 찾는 내용이거나 일성 중급 이상의 예거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일성 하급 예거를 구인하는 경우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독으로 일하는 경우는 없었고, 모두 다른 예거들과 협력하는 임무들이었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한데….’
예거 파티에서 올라온 구인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소속될 예거 혹은 다른 예거들과 함께 보조하는 일뿐이었다.
‘이거… 말린 거 같은데. 최소 일성 중급은 됐어야 했나… 그때 뭐라도 때려 부쉈으면 됐을 거 같은데….’
시간은 어느덧 저녁 9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강우가 냉장고를 열며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벨소리가 울렸다. 김민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의 시작은 평범했다. 서로 호감을 가진 여느 남녀처럼 안부로 시작했다. 몇 마디,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다 김민지가 물었다.
“내일 만날래?”
“내일? 뭐… 그래도 되지.”
“할 얘기가 좀 있어서.”
“할 얘기? 뭔데?”
“만나서 얘기해줄게.”
전화를 끊고,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할 얘기?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강우는 저녁식사로 라면을 두 개 끓였다. 건더기스프를 먼저 물에 풀고, 물이 끓은 다음 면과 분말스프와 달걀을 넣었다. 강우는 청소기처럼 라면을 흡입했고, 국물까지 다 먹어치웠다.
‘배고파서 두 개나 끓였는데도 배가 안 부르네. 힘을 써서 그런가?’
강우는 냉장고를 뒤져 음료수와 과자를 꺼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강우는 과자를 먹으며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를 더 들여다봤다. 하지만 강우의 마음에 쏙 드는 일거리는 없었다. 보수와 혼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등급 때문에 지원이 불가능하거나, 보수가 너무 적었다. 강우가 지원이 가능하면서 보수가 알맞으면 여러 예거들과 함께 해야 되는 일이라 내키지 않았다. 강우가 원하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내일 또 올라오겠지. 게임이나 몇 판 할까….’
강우는 이전처럼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강우는 게임을 그렇게 즐겁게 하지 않았다. 이전처럼 게임이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우는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지만, 의무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게임을 계속 붙들고 있었고,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들었다.
강우는 자신의 겉부터 안까지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우가 여태까지 사냥한 몬스터들은 수십 마리 이상이었다. 오늘 잡은 하운드를 제외하곤 모두 한 방에 죽였다. 당연히 전투에 걸린 시간 자체도 오늘이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전투 중 가장 길었다. 그리고 힘을 가장 많이 쓴 것 역시 오늘이었다.
강우는 다른 몬스터들을 죽일 때는 여유롭게 주먹을 한 번 휘두르면 됐다. 하지만 하운드를 공격할 때는 한 방에 죽을지언정, 터트리지 않는 적당한 타격을 위해 힘 조절을 하느라 여태까지 사용한 힘 중 가장 많은 힘을 쓴 것이었다. 그로 인해 강우의 몸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강우가 액션게임에서 흥미가 조금 떨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강우가 액션게임을 가장 즐겨한 이유는 그 타격감과 역동감, 스릴, 적을 쳐부수는 재미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 강우는 하운드와 맞붙으며, 몸이 각성을 시작하고, 몸이 느끼고 있었다.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현실감 있는 액션인 것을.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오전이 돼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강우는 상체를 일으켜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아오… 눈 뜨자마자 배고프네.”
휴대폰에는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김민지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있었다. 강우는 곧장 김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김민지가 전화를 받았다. 김민지는 곧바로 강우에게 만나자고 재촉했다. 강우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켜 입을 적신 뒤 말했다.
“나 씻고 준비도 해야 되고, 밥도 먹어야 되는데.”
“밥은 같이 먹으면 되니까 얼른 씻고 나와.”
“알았어. 어디서 만나?”
“내가 그리로 갈게. 나올 때 연락해.”
전화가 끊어졌다.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리로 온다면서 나갈 때 연락하라고 하면 이번에는 얼마나 늦겠다는 거야?”
강우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놓은 뒤 샤워를 했다.
강우는 나가면서 김민지에게 문자를 했다.
-나 지금 나가. 어디서 만나?-
곧바로 김민지의 답장이 왔다.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옮겨야겠다. 동대문 쪽으로 와.-강우는 집을 나섰다. 강우는 전철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춰서 한 건물의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빠르게 가자.’
강우는 벽을 타고 올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강우는 건물 위를 뛰어다니며 빠르게 이동했다.
강우는 동대문에 다다라서야 도보를 이용했다. 김민지에게 청계천 쪽으로 오라는 문자가 왔다. 강우는 문자를 확인한 뒤 걸음을 옮겼다.
김민지는 커다란 가방을 멘 채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민지는 강우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강우도 손을 들어보였다.
강우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갑자기 뭐야? 불러서 나오긴 했는데… 할 얘기는 뭐야?”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
“뭐, 그래.”
강우와 김민지는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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