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강우와 김민지가 간 곳은 식사 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파스타 전문점이었다. 김민지는 빠네 파스타를, 강우는 치즈 오븐 스파게티와 피자,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김민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걸 다 먹어?”
“피자랑 감자튀김은 같이 먹으면 되지.”
“그래도 너무 많잖아.”
“나 잘 먹어서 괜찮아.”
금세 음식들이 나왔고, 강우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김민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 많이 고팠나봐.”
“어, 여기 괜찮네. 그나저나 하려던 말은 뭐야?”
“비즈니스.”
“비즈니스?”
김민지는 강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저번에 보니까… 제법 강한 것 같더라고? 적어도 나를 낚아챈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었어.”
강우는 피자를 크게 한입 베어 문 뒤,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클랜이랑 사냥 한 번 안 갈래?”
“너네 클랜에 들어오라고?”
김민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는 거야. 너는 앞에서 시선만 끌면 돼. 직접적인 공격은 우리들이 할 거야.”
“나보고 미끼 역할을 하라는 거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아, 괜찮아. 미끼 역할인 거 마음에 들어. 보수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200만 겔드는 챙겨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는 직접적으로 몬스터들과 맞붙을 일도 없으니 괜찮지 않아? 그리고 예거 등록도 안 된 상태에서 이런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아. 뭐, 블랙마켓을 통하면 가능하지만 그곳에서 일을 구하는 건 그 나름대로 또 쉽지 않거든.”
강우는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물었다.
“그런데 블랙마켓은 뭐야?”
“말 그대로 암시장이야. 탈세를 목적으로 한 몬스터 관련 거래부터 유통될 수 없는 것까지도 거래가 이뤄지지. 거기서 일을 구하기도 하고. 주로 범죄자들이나 예거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을 많이 하는 편이야. 가끔은 예거 클랜에서도 블랙마켓에 구인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 블랙마켓이지 그다지 접근이 어려운 것도 아니거든.”
김민지는 강우를 향해 몸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너 제법 날쌔다고 블랙마켓에서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위험한 녀석들도 엄청 많고, 일들 자체도 난이도가 높은 것들뿐이니까. 게다가 다들 서로간의 신분 보장이 되지 않다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른다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마켓… 좋은데? 안 그래도 그게 고민이었는데 말이야. 복면을 쓰고 활동하더라도 결국 몬스터 거래 업체와 일을 볼 때는 내 예거 등록증으로 하는 게 문제였는데….’
김민지가 말했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어?”
“우리 클랜이랑 사냥 갈 거냐고.”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것도 괜찮아. 미끼 역할만 하고 200만이라… 복면이 오늘 밤이나 내일쯤 도착할 테니… 복면을 쓰고 블랙마켓을 통해 활동해도 괜찮긴 하지만… 쉬운 일을 거절할 이유는 없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언제?”
“오늘.”
강우는 스파게티로 포크를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오늘….”
강우는 눈을 크게 뜨며 김민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오늘?”
“응, 갑작스럽게 미안해.”
“아니, 뭐… 미안할 건 없고, 그냥 조금 갑작스러워서 그래.”
“괜찮은 거지?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이렇게 거저먹는 기회 별로 없어. 예거 등록도 안 된 너에겐 더욱 그렇지.”
강우는 피자를 한 조각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런데 나 예거 등록했어.”
“뭐?”
“예거 등록했다고.”
“언제?”
“어제.”
김민지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졌다. 김민지는 강우가 이렇게 빠른 시간에 곧바로 예거 등록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김민지는 몇 번이나 정말이냐고 확인을 하며 호들갑을 떨다가 물었다.
“그럼 등급은?”
“일성 하급.”
김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대단해.”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성 하급이라고 하니까 왠지 좋아하는 거 같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로써 너는 나한테 더욱 고마워해야 되는 거잖아. 일성 하급 예거가 이런 보수에, 이렇게 쉬운 일을 구하는 건 정말 힘들거든.”
“그래, 뭐… 고맙네.”
김민지는 포크를 내려놓고, 옆에 내려놓았던 커다란 가방을 메며 말했다.
“가자.”
“응? 어디를?”
“몇 시간 뒤에 바로 사냥 갈 거야. 가자.”
강우는 급하게 스파게티를 입에 밀어 넣었다. 강우는 김민지 앞에 있는 빠네 파스타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먹었다. 강우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신 뒤에 남은 피자들을 겹쳐서 손에 들었다.
“그래, 나가자.”
김민지는 약간 깬다는 듯 강우를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강우가 밥값을 계산하려고 했지만, 김민지가 계산을 했다.
“갑자기 불러냈고, 일까지 할 거니까 내가 사야지.”
“그래, 잘 먹었어.”
강우는 손에 들고 있는 겹쳐놓은 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김민지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다가 카운터 앞에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콜라도 하나 주세요.”
김민지가 강우에게 콜라를 건넸다. 강우는 고맙다며 콜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둘은 파스타 전문점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강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생각했다.
‘그나저나 블랙마켓이란 게 있으면 예거 등록은 괜히 한 거 아닌가? 예거 등록을 안 해도 활동이 가능한 건데 말이야.’
강우는 먼저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김민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쟤도 내가 예거 등록이 안 된 상태로 알고 있었으면서 일을 도와달라고 했었고… 뭐, 그래도 등록을 해서 나쁠 거야 없지.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도 가능하고….’
강우는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물었다.
“그런데 예거 커뮤니티 사이트에 블랙마켓 정보도 나오나?”
“당연히 안 나오지. 예거 파티는 블랙마켓을 이용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불법적인 일들도 많이 이뤄지고 있고.”
“블랙마켓은 접근하기 쉽다며?”
“응, 쉬워. 블랙마켓은 홈페이지가 따로 있어. 블랙마켓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봐도 쉽게 찾을 수 있어.”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좀 이상한 게 있는데… 그렇게 접근이 쉬운데도 왜 예거 파티에서는 블랙마켓을 그냥 놔두는 거지?”
“음… 필요악이랄까? 분명히 법에 어긋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지만, 예거 파티나 예거 클랜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을 블랙마켓 측에서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거든. 그리고 블랙마켓 전체를 털지 않을 뿐이지, 크게 드러나는 범죄자들은 잡아내는 편이야. 어차피 전체를 털어낼 수도 없을 거고.”
“필요악이라는 점은 알겠는데, 왜 전체를 털어내지 못한다는 거야?”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예거 혹은 등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질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예거 파티에 소속돼 활동하는 예거들보다 많아. 예거 파티가 이들을 털어내려면 예거 클랜들의 힘까지 빌려야 되는데, 그마저도 확실한 승기를 붙잡은 싸움이 아니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규모이기 때문에 이건 세계3차대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까지 있어.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예거 파티, 예거 클랜의 고위층 간부들도 블랙마켓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도 있고… 하여튼 예거 파티와 블랙마켓은 서로 적대적이지만, 서로를 없앨 수도 없는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지. 예거 클랜들은 그 가운데서 왔다 갔다 하는 거고.”
강우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지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강우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왜 그렇게 블랙마켓에 관심이 많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블랙마켓에 일성 하급을 필요로 하는 일거리는 하나도 없을 테니까. 그곳에서 거래되는 몬스터나 물건들도 구하기 쉬운 건 취급하지 않고. 네가 거기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알았어.”
강우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김민지의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뭐야?”
“이거? 내 무기.”
“무슨 무기?”
“당연히 사냥할 때 쓰는 거지.”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당연히 아는데, 종류가 뭐냐고.”
“칼.”
김민지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대검이었다. 수많은 예거들이 다양한 무기를 애용했다. 예거들은 예거 전용 무기를 사용하는데, 이 무기들과 일반 무기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예거 전용 총 중에서는 예거의 힘을 탄환으로 사용하는 종류가 인기였다.
강우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우리 클랜 사무실.”
강우는 김민지와 함께 클랜 사무실로 향했다. 김민지의 사무실은 수유리에 위치해있었다. 둘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이동했다.
둘은 수유역에서 하차했다. 10분 정도 걷자 김민지가 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김민지의 클랜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이었다. 건물은 5층짜리로 1층에는 편의점과 카페가 있었고, 위층으로는 전부 여러 가지 업종의 사무실들이 있었다.
클랜 사무실은 4층이었다. 김민지가 402호 앞에 섰다. 문에는 ‘Ladies With Weapons’라고 적혀있었다. 김민지가 앞장서서 들어갔고, 강우가 뒤를 따랐다.
사무실 안은 왼쪽으로 책상과 컴퓨터 등이 놓여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넓은 책상과 의자가 펼쳐져 있었다. 약 스무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모두 넓은 책상에 둘러앉아있었다. 김민지의 클랜 L.W.W는 클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자로만 구성돼있었다. 김민지와 강우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건너편에 넓은 책상에 양손을 짚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 왔어? 옆에는 네가 말했던?”
김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자가 강우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자는 강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한소영이라고 해요.”
한소영은 노란색으로 물들인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163cm에 마른 체구였고, 몸에 들러붙는 흰색 민소매 티셔츠에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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