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강우를 뒤쫓는 바시들은 ‘인간’이라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바시들의 뜀박질 소리 사이로 첨벙거리는 소리와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의 측면과 정면에서도 바시들이 나왔다. 바시들은 강우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얼마나 더 있는 거야? 200마리도 넘겠어.”
강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오는 바시들을 향해 뛰었다. 가장 앞서오던 바시와 강우의 거리는 불과 5m.
바시가 강우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부웅’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강우는 바시가 휘두른 손의 궤적보다 높게 점프했다. 손을 휘두른 바시는 고개를 들어 공중에 뜬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그대로 바시의 얼굴에 도움닫기를 했다.
강우의 발에 얼굴을 밟힌 바시가 쓰러졌다. 다른 바시들이 강우를 향해 손을 뻗고, 무기를 휘둘렀다. 모닝스타가 강우의 왼쪽 정강이를 향해 날아왔다. 강우는 왼쪽 다리를 뒤로 길게 빼며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바시가 휘두른 모닝스타는 허공을 휘두른 뒤, 다른 바시의 안면을 내리쳤다.
“쿠어어어어억!”
모닝스타에 맞은 바시의 괴성과 함께 강우는 정면에서 몰려오던 바시들의 뒤로 착지했다. 하지만 정면에는 또 다른 바시들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고, 뒤에 있는 바시들도 강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강우는 바시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있었다. 강우의 머리 위로 바시들의 손과 휘두르는 무기들이 날아들었다.
“이런 씨.”
터터터텅.
언월도와 모닝스타, 한손도끼 등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바시들의 손은 허공을 저었다. 바시들은 강우가 있어야 할 곳을 보다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강우는 공중에 떠있었다. 강우는 지면에서 5m이상 떨어져있었고, 그대로 바시들의 위로 발을 내딛었다. 바시들은 강우를 향해 손과 무기를 휘둘렀지만, 강우는 자신에게 닿기 전 발을 내딛었다. 강우는 바시들의 얼굴, 머리, 어깨 등을 밟으며 빠르게 달렸다. 강우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 모든 바시들은 강우의 뒤에 있었다.
“크오오오오오오옥! 인가아아아안! 죽인다!”
바시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우가 뛰었고, 바시들이 뒤를 쫓았다. 창동교까지의 거리는 약 150m였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동교를 올려다봤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죽었다고.’
창동교 위에 있는 L.W.W 클랜원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활, 기관총, 저격총, 권총 등 다양했다. 원거리 공격용 무기를 든 클랜원들은 모두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 겨냥을 하고 있었다. 다른 클랜원들은 각자 근접용 무기를 손에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강우와 바시들이 창동교까지 약 100m 거리에 있을 때였다.
“전부 공격 개시!”
한소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바시를 향한 공격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바시에게 날아간 것은 푸른색 빛을 머금은 총알이었다. 총알은 한 바시의 어깨를 관통했다. 총알들과 화살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바시들은 전신에 총알과 화살 세례를 받으며 쓰러졌다.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더 이상 강우의 뒤를 쫓아오는 바시는 하나도 없었다.
바시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 총알과 화살들을 피했다. 뒤로 물러나는 바시들을 향해 굵은 탄환이 커다란 총성과 함께 날아갔다.
저격총을 든 클랜원이 쏜 것이었다. 탄환은 정확히 도망가는 바시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순식간에 200마리에 가까운 바시들 중 전투가 가능한 것은 100마리도 남지 않았다. 저격총을 제외한 다른 공격들이 바시들에게 닿지 않을 때, 한소영이 넘어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클랜원들은 몸에 로프를 달고 창동교에서 내려갔다. 바시들은 몸을 돌려 클랜원들을 노려봤다.
타앙!
바시 하나가 이마를 저격당하며 뒤로 쓰러졌다. L.W.W 클랜원들은 모두 중랑천에 내려와 전투 준비를 했다. 한소영은 양손에 권총을, 김민지는 날이 서지 않은 기다란 검을 쥐고 있었다. 나머지 클랜원들도 각자 다양한 무기들을 쥐고 있었다.
강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죽을 뻔 했다고.”
김민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안 죽었잖아.”
한소영이 전방을 향해 양팔을 펴 쌍권총을 바시를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모두 돌격!”
김민지는 강우를 보며 말했다.
“구경하면서 200만 겔드로 뭐할지나 생각하고 있어.”
“250만이야!”
김민지는 몸을 돌려 바시들을 향해 뛰어갔다. 바시들 또한 괴성을 지르며 클랜원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L.W.W 클랜원들과 바시들이 맞부딪쳤다. 근거리 무기를 지닌 클랜원들이 앞장서 바시들과 전투를 펼쳤다. 원거리 무기를 든 클랜원들은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 전방에서 싸우는 클랜원들이 둘러싸이지 않게 했다.
김민지가 검을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일성 하급 바시의 몸이 한 번에 동강났다. 김민지가 손에 든 검 주변으로는 주황색 빛이 뿜어져 나와 칼날 역할을 했다. 모닝스타를 든 바시가 김민지를 향해 세로로 휘둘렀다.
텅.
한 클랜원이 모닝스타를 양손으로 막아냈다. 클랜원의 양손에는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장갑을 끼고 있었다. 커다란 장갑은 팔꿈치 아래까지 올라와 덮고 있었고, 노란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거리 무기를 든 사람 중 유일하게 전방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클랜장인 한소영이었다. 한소영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붉은색 빛을 품은 총알들이 바시들의 몸을 꿰뚫었다.
타타타타탕!
순식간에 바시 다섯 마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시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L.W.W 클랜원들의 피해는 조금도 없었다.
바시들의 숫자는 L.W.W 클랜원들의 숫자와 비슷할 정도로 줄어있었다. 일성 하급 바시들은 모두 죽어있었고, 쓰러져있는 일성 중급 바시들은 목숨은 붙어있으나 전투불능 혹은 죽어있었다.
전투가 가능한 바시들은 모두 손에 무기를 든 일성 중급이었다. 놈들은 멀쩡히 서서 L.W.W 클랜원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타앙! 팅.
바시가 모닝스타로 저격총에서 발사된 파란색 빛을 품은 탄환을 막아냈다. 저격총을 든 클랜원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들었다. 강우도 놀랍다는 듯 입술을 모았다.
한소영이 중얼거렸다.
“거리가 아까보다 조금 멀어졌다곤 해도 저렇게 막아내다니….”
김민지가 말했다.
“더 이상 저격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저격총에서 몇 번의 총성이 더 울렸다. 하지만 남아있는 바시들은 하나같이 여유롭게 총알을 무기로 튕겨냈다.
한소영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클랜원 모두에게 말했다.
“남은 건 10분의 1정도밖에 안 된다. 단숨에 격파한다. 저격수는 계속 지원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한소영이 양손에 든 쌍권총을 한 바퀴 돌린 뒤, 다시 꽉 쥐며 소리쳤다.
“공격!”
L.W.W 클랜원들이 일제히 바시들을 향해 뛰어갔다. 바시들 역시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강우는 그 와중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한테는 문자로 알리더니… 제일 필요했던 사람은 나 같은데… 그나저나 이제 돈 입금되는 것만 기다리면 되나? 거의 다 끝나가네.”
김민지가 검을 치켜들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쩡!
김민지의 검과 바시가 휘두른 언월도가 맞부딪쳤다. 둘은 검과 언월도를 붙인 채 힘겨루기를 했다. 바시가 언월도로 찍어 눌렀고, 김민지의 왼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다른 클랜원들도 다른 바시들과 전투를 하고 있어 김민지를 도울 겨를이 없었다.
저격을 하던 클랜원이 총구를 김민지와 싸우고 있는 바시로 향했다. 강우도 주먹을 쥐며 발걸음을 뗄 준비를 했다.
‘저거 위험한데?’
강우의 시선에 한소영이 들어왔다. 한소영은 김민지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김민지와 한소영이 눈을 마주쳤다. 김민지가 크게 소리쳤다.
“난 괜찮아!”
김민지의 전신에서 주황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김민지는 다시 일어서며 검으로 바시의 언월도를 튕겨냈다. 무기를 놓친 바시는 급한 대로 양손을 김민지에게 뻗었다. 김민지는 바시이 손이 자신에게 오기 전, 사선으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바시의 몸은 한 번에 썰려나갔다. 강우는 다시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중얼거렸다.
“제법인데.”
다른 클랜원들도 힘을 모아 바시들을 물리쳐나갔다. 남은 바시는 불과 세 마리. 한소영이 바시들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바시들은 동시에 각자 손에 든 무기를 한소영에게 휘둘렀다.
타타타타타타탕!
바시들의 손에서 무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소영은 바시들이 무기를 쥐고 있는 손가락을 모두 날려버렸다. 바시들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뒤에서 클랜원들이 달려와 바시 두 마리를 죽였다. 혼자 남은 바시는 괴성을 지르며 멀쩡한 손을 휘둘렀다. 한소영은 몸을 뒤로 젖혀 가볍게 피해낸 뒤, 바시의 턱을 난사했다. 바시는 얼굴 하관의 절반가량 이상이 날아가며 뒤로 쓰러졌다.
모든 바시가 죽었고, 큰 피해 없이 임무가 끝났다. 강우는 한소영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이제 계산해야죠?”
김민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진짜 구경만 하고 있냐?”
“그게 계약조건이었잖아. 그리고 나 없이도 충분하던데?”
한소영이 휴대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업체 불러서 정산하면 바로 입금 해드릴게요. 고생했어요.”
“입금이요? 바로 현찰로는 안 돼요?”
강우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좌번호를 적어넣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 맞다. 그랬지.’
한소영이 말했다.
“강우 씨한테 가는 돈뿐만 아니라, 저희 클랜한테 지불할 금액까지 치면 액수가 크다보니 현금으로 거래하기엔 무리가 있죠. 게다가 이번 건 같은 경우엔 예거 파티 측에서 의뢰한 거라….”
강우가 물었다.
“그래서요?”
“업체가 와서 확인한 다음에 예거 파티 쪽에 연락이 갈 거예요. 그럼 예거 파티 측에서 우리한테 입금을 해주는 거죠.”
한소영은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지금이 오후 4시니까 강우 씨한테 돈이 들어가려면 6시는 돼야겠네요.”
강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한소영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강우에게 손바닥을 내보인 뒤, 몬스터 관련 거래 업체와 통화를 했다. 한소영은 통화를 마치고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한소영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민지하고 연락이 안 되면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강우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강우는 먼저 돌아가기로 했고, L.W.W 멤버들만 중랑천에 남았다. 돌아가는 강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250만이라… 이 정도 일로도 이 만큼 벌 수 있으면… 아마 블랙마켓 쪽은 보수가 훨씬 세겠지? 돈 버는 것도 금방이네.’
강우는 시종일관 인상을 찌푸리던 김민지를 떠올렸다.
‘내가 너무 딱딱하게 굴었나? 걔는 물 건너간 거 같네. 하긴… 이제 그 정도 수준 애들하고 만날 필요도 없지.’
강우는 집까지 건물의 옥상, 인적이 드문 거리를 통해 뛰어갔다.
강우는 집에 다다를 쯤 한소영의 명함을 꺼내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했다. 강우의 눈에 띄는 전화번호 목록이 있었다. 노예빈이었다.
‘연락한다고 해놓고 안 했네. 내가 미쳤지…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지만. 이제 노예빈 정도 여자들이야… 그래도 문자 정도는 해볼까?’
강우는 서둘러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연락이 늦었지? 일이 바빠서 그랬네.-노예빈에게 곧바로 ‘누구?’란 답장이 왔다. 노예빈은 강우란 것을 알자마자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이모티콘을 섞어 애교어린 문자를 보내왔다. 강우는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은 채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앞에는 택배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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