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21화 (21/195)

21화

강우는 택배를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강우가 주문한 복면과 티셔츠 세트였다. 강우는 박스를 서둘러 뜯었다. 강우는 곧바로 웃옷을 벗어던지고, 티셔츠를 입었다. 몸에 들러붙는 티셔츠는 나쁘지 않았다. 강우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거울 앞에 섰다.

강우가 씩 웃자 복면의 눈 손톱 끝처럼 모양이 변했다. 강우가 인상을 찌푸리면 도끼눈이 됐고,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두 눈의 크기를 다르게 하면 복면의 눈은 보다 과장해서 크기를 달리했다. 강우의 표정을 복면이 대변하고 있었다.

‘오… 이거 좋은데? 기대 이상이야.’

강우는 “아아.”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강우의 본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이크에 대고 말한 듯 약간의 기계음과 함께 보다 저음이었다.

‘내 인생 최고로 마음에 드는 인터넷쇼핑이야.’

강우는 설레고 있었다. 앞으로 튈 걱정 없이 예거로서 활동하는, 블랙마켓을 통해 큰돈을 버는 것과 동시에 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히어로가 된 것 같은 기분,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된 느낌 때문이었다.

강우는 거울 앞에서 여러 포즈도 취해보고,

“너는 이미 죽어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따위의 말을 내뱉었다.

강우는 복면을 벗지 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강우는 블랙마켓에 대해 검색했다. 블랙마켓에 관한 사이트들을 찾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도 드러났다. 블랙마켓도 예거 커뮤니티처럼 메인 사이트가 있었다.

블랙마켓 사이트의 인터페이스는 예거 커뮤니티를 따라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흡사했다. 단지 예거가 아니어도 접속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랙마켓 사이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오프라인으로 방문을 할 수 있는 몇 군데 말고는 연락처들만이 무수히 많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토론장의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

‘결국 발로 뛰어야 된다는 건가… 우선 연락처 몇 개 따로 적어놔야겠군.’

무수히 많은 연락처들 중 전화번호나 이메일 외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정보를 밝혀도 자신의 국가만을 밝히거나 업종 정도만을 알렸다. 몬스터 관련 거래 업체, 현직 예거, 범죄 소탕 전문, 현상수배 전문, 호위 전문, 협의 등 다양했다. 강우는 서울 지역이고, 몬스터 관련 거래 업체라고 밝힌 사람들의 연락처만을 저장했다.

‘내일 연락 좀 해봐야겠네.’

블랙마켓 사이트를 둘러본 사이 어느덧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돈 들어오겠네. 예빈이나 만나서 저녁이나 먹을까나… 예빈이도 먹고.’

강우는 씩 웃으며 노예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노예빈은 일 때문에 나올 수 없다고 했고, 자신이 일하는 바로 오라고 했다. 강우는 배가 고팠고, 당장 술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 바는 인간적으로 너무 바가지야… 무엇보다 밖에서 따로 만나서 따먹으면 되는 년 가게에 가서 술을 팔아줄 이유가 없잖아?’

강우는 ‘새벽이나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지금 바에 가기는 좀 힘들 것 같아서.’라고 문자를 보냈다. 노예빈은 알았다며, 다음에 연락하라고 했다.

강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노예빈과 보냈던 밤을 떠올렸다.

‘아… 뭔가 좀 아쉽긴 하네.’

강우는 몸을 일으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대충 챙겨먹을까….’

강우는 냉동식품과 즉석 밥, 김치, 탄산음료로 허기를 달랬다.

강우는 밥을 먹고, 블랙마켓 사이트를 둘러봤다.

‘딴 건 볼 것도 없겠어. 몬스터 관련 거래 업체 하나만 제대로 연결되면 다른 일거리도 다 연결시켜주는구만.’

어느덧 오후 6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강우는 계좌를 확인했지만, 입금된 내역은 없었다.

‘조금 늦나?’

강우는 조급함을 달래며 다시 블랙마켓을 둘러봤다.

오후 7시.

여전히 계좌에 입금된 내역은 없었다. 강우는 이미 한소영과 김민지에게 문자도 여러 통 남겼다. 답장은 없었다. 강우는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뭐지? 뭐야? 설마….’

강우는 복면을 벗고, 티셔츠 위로 지퍼가 달린 재킷을 걸쳤다. 강우가 L.W.W 클랜 사무실로 찾아가려 현관문을 열려고 할 때 한소영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 해요…."

한소영은 강우에게 사과부터 전했다. 강우는 무슨 소리냐고 따졌고, 한소영은 계속 사과를 했다. 한소영은 나중에 꼭 대금을 지불하겠다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소영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숨결은 다소 거칠었다.

‘씨발… 뭐지? 이러고 잠수 타는 거 아니야? 숨소리가 거친데… 설마 벌써 튀고 있는 중인가? 아니지. 고작 250만 때문에 튈 이유가… 아니지. 다른 클랜원들의 돈까지 모두 들고 튀는 걸 수도 있… 그렇다고 하기엔 또 김민지까지 연락을 안 받은 게 이상한데?’

강우는 전화상으론 알겠다며 연락을 꼭 달라고 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일단 가보자.’

강우는 복면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복면을 챙긴 것에 대해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복면을 쓰는 히어로들은 항상 자신의 신분을 감출 것들을 챙긴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그런 것들이었다.

강우는 집을 빠져나와 최대속도로 L.W.W 클랜으로 향했다.

L.W.W 클랜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이 소란스러웠다.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들이 늘어서있었다. 강우가 건물에 들어서려고 하자 경찰들이 막아섰다.

“여기 친구가 있어서 그래요!”

“그래도 안 됩니다. 친구분이 안에 계시다면 곧 나올 겁니다. 아니면 이미 구급차로 실려갔을 수도 있고요.”

“아니, 대체 무슨 일인데….”

강우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김민지가 한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민지! 야! 어이!”

김민지가 강우 쪽을 쳐다봤다. 강우가 경찰의 눈치를 봤다.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우는 김민지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김민지는 얼굴에 작은 상처가 있었고, 울었는지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김민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강우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김민지는 나지막이 말했다.

“신준섭…….”

김민지를 부축하고 있는 구급대원이 말했다.

“비켜주세요. 다른 환자들 나올 겁니다.”

강우는 한 발짝 물러났다. 다른 L.W.W 클랜원들도 들것이 실려 나오거나 부축을 받으며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한소영이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한소영을 본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씨발….”이라고 중얼거렸다.

한소영은 부상의 정도가 심각했다. 양팔과 양손은 딱 봐도 이상하게 뒤틀려있었다. 팔꿈치는 정면으로 와있었고, 왼쪽 손목은 완전히 부러져 손등이 팔등에 닿아있었다. 오른손의 손등이 부서져 손등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와있었다.

제일 부상이 심한 곳은 얼굴이었다. 구급대원이 거즈를 올려놓았지만, 누가 봐도 얼굴 가죽이 통째로 벗겨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즈는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고, 살짝 들린 틈새로는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건물에서 혼자 걸어 나오는 L.W.W 클랜원이 있었다. 강우는 클랜원에게 다가갔다. 이제 갓 스물이 됐을 법한 클랜원은 흙이라도 씹어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뺨 위로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강우는 클랜원을 붙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겨우 몇 시간이잖아.”

클랜원은 훌쩍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강우는 타이르듯 재차 물었지만, 클랜원은 여전히 눈물만 뚝뚝 흘렸다. 강우는 클랜원의 양팔을 움켜쥐며 말했다.

“말 좀 똑바로 해봐. 지금 그렇게 징징거리고 있을 때 아니잖아.”

클랜원은 고개를 들어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강우는 당장이라도 클랜원을 잡아먹을 듯 두 눈을 부라렸다. 클랜원은 고개를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준섭… 그 남자 클랜이….”

이야기는 이랬다. L.W.W 클랜은 정기적으로 신준섭의 클랜 ‘퍼플 헤드(Purple Head)’에 정기적으로 상납금을 내고 있었다. 일성급 예거들 중 랭킹 3위인 신준섭의 영향력은 컸고, 덕분에 퍼플 헤드 아래로 있는 클랜들만 오십 개가 넘었다. 신준섭은 노원구, 동대문구, 성동구를 관리하고 있었다.

예거 클랜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진 예거 클랜들이 아니면, 대부분 상위 예거들과 그 클랜들의 관리 아래 있었고, L.W.W 클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시스템의 시작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예거 파티를 제외하고는 중견 기업 이상의 규모를 가진 예거 클랜들이 시장을 모두 먹어치우고 있었다. 덕분에 소규모 클랜들은 일거리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

이에 대비책으로 소규모 클랜들은 각각 협력을 하기도, 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로써 중견 기업 이상의 규모를 가진 예거 클랜들과 비교했을 때도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현재는 대형 예거 클랜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가 많이 사라져서 소규모 예거 클랜들도 새로 많이 생겨나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조직화’였다. 말 그대로의 조직화가 아닌, 조직폭력배들처럼 상위에 있는 예거 클랜들이 소개비,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기 시작했다. 보복이 기다리기에 탈퇴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새로 생겨나는 소규모 클랜들도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산하로 삼아졌다. 범죄조직들과의 차이점이라곤 대외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뿐, 시스템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걸 그냥 놔둬? 정 안 되면 신고라도 해야지.”

예거들의 일은 이미 일반 경찰들의 손에서는 떠나있었다. 예거 클랜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예거 파티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예거 파티는 대외적인 범죄,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예거 파티와 예거 클랜들은 암묵적인 룰이 있었던 것이다. 예거 파티는 예거 클랜들에 대해 단속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았고, 예거 클랜은 예거 파티와 민간인들은 건드리지 않으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너희는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지?”

클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돈은 신준섭 그 새끼… 퍼플 헤드가 다 가져간 거고? 근데 한소영 씨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왜 저래?”

퍼플 헤드가 수금을 하러 왔을 때였다. 신준섭은 평소보다 많은 액수를 요구했고, 한소영은 돈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결국 신준섭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지경으로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강우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런 미친….”

클랜원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강우는 클랜원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퍼플 헤드 놈들은 지금 어디 있는데?”

클랜원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양손으로 훔쳐내며 말했다.

“구청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회식을….”

강우는 클랜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클랜원은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그대로 클랜원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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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는 21일 새벽에 올릴 예정입니다.

이제 다시 연참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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