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쿠쿵.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등부터 바닥에 닿으며 쓰러졌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두 눈은 완전히 뒤집혀 흰자를 드러내고 있었고, 더 이상 호흡을 하지 못했다. 이형철은 곧장 최현아에게로 걸음을 옮겨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나?”
“다리가… 시원하네요.”
최현아의 왼쪽 허벅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구멍이 뚫린 부위는 뼈째로 사라져있었다. 구멍 안쪽으론 움푹 패인 바닥에 고여있는 피가 보였다.
이형철은 인상을 잔뜩 쓴 채 말했다.
“조금만 쉬고 있어.”
이형철은 강우와 다른 클랜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우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위턱과 아래턱을 잡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려 했지만, 강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고개도 제대로 돌릴 수 없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커헝!”거리며 오른쪽 앞발을 강우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터터터턱.
클랜원 네 명이 달려들어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오른쪽 앞다리를 붙들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왼쪽 앞다리를 휘두르려 했지만, 처음에 앞다리를 감싼 클랜원 뒤로 네 명의 클랜원이 더 달려들어 붙들었다. 클랜원들이 세 명씩 뒷다리를 붙들었다. 두 명의 클랜원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등에 올라타 짓눌렀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주둥이, 네 다리, 몸통까지 짓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클랜원 하나가 소리쳤다.
“꺾어!”
와지지직, 빠직, 우두둑! 뚝, 뚜둑!
모든 클랜원들이 힘을 합쳐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사지를 꺾어버렸다. 강우는 주둥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힘없이 입을 다물었다. 클랜원들이 붙들고 있는 몸에서도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다. 클랜원들도 모두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에게서 손을 뗐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사지를 축 늘어트린 채 눈을 번뜩였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눈빛만은 사냥감을 쫓는 맹수의 것이었다.
이형철이 강우와 클랜원들에게로 다가왔다.
“후… 끝났군.”
이형철은 클랜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최현아의 부상이 심각하다! 어서 병원으로 옮기도록!”
클랜원 두 명이 최현아를 옮겼다.
이형철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정말 큰 힘이 돼주셨습니다. 당신이 없었으면 피해가 더 컸을 겁니다. 생각보다 놈들의 숫자도 많았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클랜원들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
“네, 잠시 기다리세요. 블랙마켓 업자에게 연락하면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올 겁니다. 계산을 끝내면 바로 당신의 몫을 드리기로 하죠.”
강우의 몫은 500만 겔드였지만, 활약이 컸던 만큼 50만 겔드를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 스밀로돈의 검치들에 대한 권한은 강우에게 없었다. 이 조건은 일의 계약 조건마다 달랐다. 몬스터의 시체부터 모든 것을 갖는 경우, 특정 부위 또는 물건만 빼고 갖는 경우,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경우 등이 있었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스밀로돈들의 검치나 가죽은 꽤 비쌀 거 같은데… 좀 적은 거 아닙니까?”
이형철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임무에서 강우를 고용한 건 무투 클랜 측이 아니었다. 익명의 업체 혹은 사람이 블랙마켓에 일을 의뢰했고, 이부선은 그 일을 무투 클랜과 연결시켜줬다. 그러던 중 강우가 일을 원했고, 이부선이 함께 일할 클랜 혹은 사람들을 찾던 중 무투 클랜이 수락해 함께 일을 하게 됐던 것이다.
이형철이 말했다.
“이번에 저희 클랜에서도 몬스터의 시체나 전리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권한이 없습니다. 대신 반드시 확보해야 되는 것도 없었죠. 죽이는 것만을 조건으로 6,000만 겔드를 받기로 했고, 그 중 550만 겔드를 강우 씨에게 드리는 겁니다. 전투에 참여한 저희 클랜원은 스무 명도 넘고, 중상을 입은 클랜원들도 여럿입니다. 그래도 집행자 씨께서 큰 역할을 해주셨기에 550만 겔드를 드리는 겁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없앴는데 전리품만 따져도 6,000만 겔드를 넘을 것 같은데… 손해 아닙니까?”
“아닙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검치를 제외하곤 가치가 없습니다. 그나마 스밀로돈 파탈리스의 경우는 가죽이 좀 팔리긴 하지만, 여기서 모든 스밀로돈들을 돈으로 바꿔도 3000만 겔드가 안 될 겁니다. 다만, 스밀로돈 포풀라토르 한 마리가 예상치 못하게 목숨을 살린 채로 잡아서… 저건 시세를 알아봐야 할 것 같군요.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없겠지만요.”
강우는 팔짱을 낀 채로 이형철을 바라보며 경청하고 있었다. 이형철이 말을 이었다.
“집행자 씨는 이 바닥에 온지 얼마 안 되셨죠? 그래서 처음 일을 맡을 때 조건을 잘 따지고, 시세를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의 역량을 잘 가늠해야 하죠. 예를 들어 이번 일에 스밀로돈들의 검치를 부러트리지 않고, 온전하게 뽑아서 가져오라는 조건이 붙었다면, 1억 겔드는 받아야 했을 겁니다. 물론, 이 멤버들로는 임무를 맡을 수도 없었겠지만요. 압도적으로 강해야 가능하니까요.”
강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조금만 잘못 맡아도 엄청 손해를 보겠어… 때에 따라선 내가 단독으로 몬스터를 처리해서 계산하는 게 나을 거고… 단순 섬멸, 특정 전리품을 구해다주는… 혹은 몬스터의 일부를 가져다주거나 포획하는 조건, 보수가 적은 대신 전리품을 모두 내가 갖는 것… 다양하구만. 으근히 머리 아프네.’
이형철은 이부선과 통화를 한 뒤, 강우를 향해 돌아봤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보다 이형철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원래 이렇게 자주 부상자가 생깁니까?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클랜장님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부상자는 아예 없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상황이 안 좋을 땐 사망자도 나올 수 있죠. 그래서 예거들의 일이 보수가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형철은 씁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클랜장님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셨어도… 저희 무투 클랜은 일본과 중국, 대만에도 있습니다. 모두 저희 클랜장님이 세운 것이죠. 클랜장님이 계신 한국지점이 가장 작고 약합니다. 클랜장님이 워낙 특이하셔서….”
강우와 이형철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블랙마켓에서 보낸 업자들이 도착했다. 업자들은 스밀로돈들과 검치를 챙겨 차에 실었다. 이형철은 업자에게 돈을 건네받았다.
강우가 업자 하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살아있는 스밀로돈 포풀라토르 같은 경우 얼마나 됩니까?”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몬스터파크에서 매입하는 경우 있다면 2,000만에서 3,000만 이상까지도 값을 쳐줍니다. 그런데 새로 들이려는 몬스터파크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고, 저 녀석의 경우는 사지가 다 부러져서 치료비도 엄청 깨질 테니 뭐….”
“그렇군요.”
이형철이 강우에게 다가와 550만 겔드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사실 원하신다면 저희 클랜에 들어오셔도 좋을 텐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무투 클랜은 그렇게 자리를 떴고, 업체들도 금세 스밀로돈을 모두 싣고 떠났다.
강우는 손에 들린 550만 겔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흠… 괜찮은데?”
강우는 이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우가 이부선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앞으로 일을 많이 받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이부선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지. 당신은 이제부터 블랙마켓에서 제공하는 이성 하급 이하의 일들은 혼자서도 맡을 수 있을 거야. 뭐, 아직은 몬스터의 숫자가 많은 경우에는 오늘처럼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해야겠지만. 그리고 단체 임무에는 이성 중급의 몬스터들이 나오는 임무에도 참여할 수 있어.”
“또 연락하도록 하지.”
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로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크르르릉.”
뒤에서 맹수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였다.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넌 대체 어디에 있다가 튀어나온 거야?”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몸 여기저기에는 흙이 묻어있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땅속에서라도 튀어나온 거냐? 그나저나….”
강우는 눈앞에 있는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를 훑어봤다. 딱 봐도 아까 싸웠던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들보다 덩치가 컸다.
“1톤은 나가겠는데… 아무래도 아까 그 녀석들이 부부가 아니었던 모양이야. 엄마와 아들이었나….”
강우는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를 보며 말했다.
“네가 아빠 고양이냐?”
스밀로돈 포풀라토르가 “커흥!”하며 강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무투 클랜원들은 클랜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클랜원 하나가 돌아오는 길을 되돌아봤다. 다른 클랜원이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어? 아니… 스밀로돈의 포효소리를 들은 거 같아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부 처리하고 왔잖아.”
“어, 그거야 그렇지.”
“실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
“어, 피곤한가봐… 오늘 돈 받으면 이따 안마라도 가서 몸 좀 풀어야겠어.”
무투 클랜원들은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가 강우를 향해 오른쪽 앞발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턱.
강우는 왼손을 들어 가볍게 공격을 막아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크어엉!”거리며 오른쪽 앞발을 들어 다시 내려쳤다. 강우는 귀찮다는 듯 왼손을 휘둘러 앞발을 쳐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다시 왼쪽 앞발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강우는 또다시 여유롭게 오른손으로 앞발을 튕겨냈다.
“넌 제법 튼튼한 거 같으니까 연습 좀 해볼까.”
강우가 오른쪽 주먹으로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왼쪽 앞다리를 후려쳤다.
빠악!
강우가 친 방향대로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앞다리가 부러졌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고통과 분노에 가득찬 포효를 하며 오른쪽 앞발을 휘둘렀다. 강우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왼쪽 주먹을 바깥쪽으로 휘둘렀다. 강우의 손등 부분과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오른쪽 앞발이 맞부딪쳤다.
펑!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오른쪽 앞발의 절반 이상이 터져버렸다. 늘어진 가죽과 살갗이 너덜거렸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크허어어어엉!”
스밀로돈 포풀라토르가 포효했다. 강우는 자신의 왼쪽 주먹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신경을 안 써도 이러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가 입을 크게 벌리고 강우를 덮쳤다.
턱.
강우가 양손으로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위턱과 아래턱을 잡았다.
콰직!
“크어어… 커엉.”
강우가 움켜쥐고 있는 위턱과 아래턱을 으스러트렸다. 위턱과 아래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강우는 한 걸음 전진하며 말했다.
“죽어라.”
강우가 양팔을 최대한 펴서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입을 찢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입이 180도 가까이 벌려지며 입꼬리는 점점 찢어져 피가 흘렀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황급히 왼쪽 앞발을 휘둘렀다.
퍽.
왼쪽 앞발이 강우의 몸통을 후려쳤다. 하지만 강우의 몸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강우가 한 걸음 더 전진했다.
와드득! 빠득! 찌이이이이익.
강우가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입을 완전히 짖어 턱을 박살내버렸다. 강우는 걸음을 옆으로 옮겨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입을 완전히 열어 뒤집어버렸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콧등은 두개골에 닿아있었고, 아래턱은 가슴팍에 닿아있었다.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는 그대로 즉사해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강우는 스밀로돈 포풀라토르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심했나….”
강우는 손을 스밀로돈 포풀라토르의 검치로 가져갔다. 강우는 왼손으로 부서진 위턱에 대고, 오른손으로 검치를 하나씩 깔끔하게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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