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걸음을 옮기던 강우가 발걸음을 멈췄다. 강우가 멈춤에 따라 모든 레드 헤드 클랜원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한 클랜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도 조용한 탓에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느껴졌다. 클랜원들의 시선이 침을 삼킨 클랜원에게로 모아졌다. 클랜원은 눈치를 살피며 얼른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강우가 몸을 돌렸다. 클랜원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강우는 클랜원들 사이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강우는 쓰러져있는 신준혁, 윤태수, 이희권, 김진구, 김조훈에게 차례로 들렀다. 강우는 쓰러져있는 이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서 돈을 꺼내갔다. 강우는 클랜원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내가 쓰러졌으면 다 털어갔을 거 아니야? 시체한테 노잣돈이라고 같이 없애진 않았겠지?”
클랜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우는 돈을 셌다. 강우가 챙긴 돈은 89만 겔드. 강우는 돈을 주머니로 넣으며 말했다.
“혹시 내가 돈 가져가는데 불만 있는 사람 있어?”
클랜원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우는 “그래, 그래야지.”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레드 헤드 클랜을 뒤로한 채 공사장을 빠져나왔다. 레드 헤드 클랜원들 중 강우를 쫓으려는 이도, 신준혁이나 윤태수, 이희권, 김진구, 김조훈을 살피는 이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살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 먼저였다. 개중에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클랜원들도 있었다.
강우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멈춰 섰다. 강우는 배낭에서 평상복을 꺼내 갈아입은 뒤, 복면을 벗었다. 강우는 복면과 갈아입은 옷들을 뒤집은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강우는 삼미의료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미의료원에 들어선 강우는 한소영의 병실을 찾았다. 한소영은 4인실에 입원해있었다. 강우는 병원 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세트를 사들고 병실로 향했다.
강우는 조심스레 병실에 들어섰다. 한소영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강우는 침대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야 알아볼 수 있었다. 한소영은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어 눈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드러난 눈꺼풀과 눈 밑 부위는 누런색과 연분홍, 선분홍색이 뒤섞인 살에 검은 실밥이 꿰매져있었다. 드러난 입도 부분적으로 원래의 입술색과 확연히 다른 선분홍색이 얼룩덜룩하게 섞여있었다.
한소영은 강우를 보자마자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김민지에게…….”
“아, 그러셨겠구나.”
강우는 음료수 세트를 내밀며 말했다.
“저… 이거 사왔어요.”
한소영은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사와도 되는데… 하여튼 와주셔서 고마워요.”
“별 것도 아닌데요 뭘… 몸은 좀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금 눈이랑 입 쪽에 보이시죠? 피부이식을 한 건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피부색이랑 거의 구분 안 가게 변한대요. 앞으로 표정을 짓는 게 조금 어려워지긴 해도 괜찮아질 거래요. 생긴 거야 조금 변하겠지만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냥 잠깐 들러봤어요. 다 잘 될 거예요. 나중에 또 봐요.”
강우는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서려 했다. 한소영이 강우의 뒤에다 대고 말했다.
“고마워요.”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몸조리 잘하세요.”
“통장 확인은 해봤어요?”
“네? 아, 네. 김민지가 입금했다고….”
한소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말했다.
“아니요. 제가 입금한 내역이요.”
“네? 아니요, 저는 김민지한테 받았는데….”
“확인해보세요.”
강우는 휴대폰을 꺼내 계좌조회를 했다. 계좌에는 한소영의 이름으로 1,000만 겔드가 입금돼있었다. 강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휴대폰에서 한소영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니, 이 돈을 왜 저한테….”
“처리… 복수를 해주셨으니까요.”
“네? 무슨…….”
“퍼플 헤드… 그리고 신준섭이요.”
강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엄한 사람한테 돈 입금하신 거예요. 이거 돈 다시 돌려드려야 될 거 같은데….”
한소영이 말했다.
“아니요. 그건 강우 씨에게 드린 거예요. 이미 드린 거니까 설사 강우 씨가 신준섭을 처리한 게 아니더라도 가지세요. 참고로 그 돈은 제 사비로 드린 거니까 아무도 몰라요. 강우 씨가 처리한 게 아니라면 이러나저러나 상관은 없겠지만요.”
강우는 얼굴에 웃음을 내비추며 말했다.
“하… 아니, 그래도 정말 제가 아니면 그냥 1,000만 겔드를 날리시는 건데요?”
“신준섭에게 많이 뜯기긴 했었지만, 있는 걸 그대로 다 내줄 만큼 바보는 아니에요. 돈은 있을 만큼 있어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L.W.W 클랜은 해체할 거예요.”
“아… 그런가요.”
“하여튼 가보세요. 고마웠어요.”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 아니라니까 그러네….”
한소영은 병실을 나서는 강우에게 말했다.
“그리고 신준섭에게는 신준혁이라는 형이 있어요. 레드 헤드라는 클랜을 이끌고 있죠. 상당히 위험한 사람이니 조심하세요.”
“제가 조심할 이유가 없다니까요… 하여튼 몸조리 잘하세요.”
강우는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정말 조심할 이유가 없다고요… 신준혁이는 이제 평생 젓가락질도 못하고, 고기도 못 씹는 병신이 됐으니까.’
강우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곧바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자꾸만 휴대폰으로 계좌조회를 했다. 1,000만 겔드라는 돈이 생긴 것이 기뻐서기도 했고, 그새 마음이 바뀌어 입금을 취소하진 않을까하는 마음도 있었다. 강우는 양쪽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올라갔다.
‘대박이네… 대박이야!’
강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집에 도착한 강우는 배낭을 내려놓고, 설렘이 가시지 않은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앉았다. 강우는 예거로 활동을 시작한지 단 몇 일만에 약 2,000만 겔드에 달하는 돈을 손에 넣었다.
‘점점 돈에 무감각해지는 느낌이야. 한 번에 수백만을 벌어들이기도 하고, 수백만을 쓰기도 하고….’
강우는 배낭으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배낭을 열어 복면을 꺼내 뒤집어쓰고 거울을 바라봤다. 강우는 복면을 쓰고 있을 때가 더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 내 모습 아닐까….’
강우는 복면을 쓰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사형집행자다!”
강우는 혼자 소리를 내곤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시발… 맨날 몇 시간 알바 말고는 집에 처박혀서 게임만 했더니 돌아버렸나….’
강우는 저녁을 챙겨먹고는 몇 번이나 복면을 뒤집어썼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통장에 입금된 돈을 보는 것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강우는 처음 예거의 힘을 얻었을 때부터 복면을 쓰고 나서 활동하면서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특히 신준섭과 신준혁을 무너트린 걸 떠올렸다. 강우는 힘을 자제하며 싸워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느니만 못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놨네… 내가 원래 이렇게 악랄한 놈이었나?’
강우는 당시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강우는 병원에서 만나고 왔던 한소영이 떠올랐다.
‘그래… 그 새끼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지.’
강우는 애초에도 죄책감이 없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람찬 일이라고.
강우가 곧 잠자리에 들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노예빈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빠! 답장이 너무 늦었지? 미안해. 요즘 일도 너무 바빴고,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강우는 괜찮다고 답장을 했다. 의미 없는 문자들이 오갔다. 서로의 간을 보는 문자, 서로에게서 무엇을 빼먹을 수 있을지 저울질을 하는 문자들이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직격탄은 절대 날리지 않았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둘 모두 서로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있었다. 둘 모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문자에는 ‘어서 들이대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승자는 강우였다. 답답함을 느낀 노예빈의 문자가 왔다.
-그런데 우리 언제 또 봐? 요즘 나 너무 힘든데 오빠가 기운 좀 나게 해줘.-강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강우는 노예빈이 던진 떡밥을 곧바로 물었다. 둘은 다음 날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강우는 가능한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 만나려고 유도를 했지만, 노예빈이 쉬는 날이라며 오후에 만나기를 원했다. 강우는 응하면서도 ‘저녁에 만나야 딱 술 한잔하고 바로 모텔 데려가기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강우는 기분 좋게 푹 잘 수 있었다.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일어나자마자 물부터 들이킨 다음 샤워를 했다. 강우는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딱히 아침으로 먹을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강우가 예전에 주문했던 돼지고기였다. 문제는 냉동실에 꽝꽝 얼어붙어있었다. 강우는 돼지고기를 꺼내 팩 채로 물에 담가 해동이 되길 기다리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강우는 인터넷으로 블랙마켓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하단 구석에 강우의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어? 이건….’
강우에 관한 기사였다.
<의문의 신성 ‘집행자’ 등장! 퍼플 헤드와 레드 헤드 모두 격침!>
『의문의 사나이가 혼자서 퍼플 헤드 클랜과 레드 헤드 클랜을 무너트려 눈길을 끈다. 이 사나이는 스스로를 엑시큐셔너(사형집행자)라고 칭했다. 하지만 정작 사망자는 없어 ‘집행자’로 불리고 있다.
집행자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두 눈이 그려진 복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 처음 목격한 이들에 의하면 복면과 파란 티셔츠에 바지와 신발은 수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목격한 이들은 진한 회색 바지와 검은 부츠를 신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으로도 복장은 변할 것으로 보인다.
집행자는 최근에 무투 클랜과 함께 스밀로돈 사냥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투 클랜의 관계자는 집행자에 대해 “굉장히 민첩하고 강했다. 특별한 능력은 보이지 않았지만,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녔다. 그가 없었더라면 많은 부상자 혹은 사망자까지 생겼을지도 모른다”라고 전했다.
집행자가 퍼플 헤드와 레드 헤드를 무너트린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퍼플 헤드 클랜과 레드 헤드 클랜은 평소 원한을 많이 샀다. 항간에서는 원한을 가진 이가 사주해 보복을 당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집행자가 이처럼 화제가 되는 이유는 혜성처럼 나타나 혼자서 두 클랜을 무너트린 데 있다. 또 집행자가 쓰러트린 신준섭은 국내 일성급 예거들 중 랭킹 3위였고, 김조훈, 이희권, 김진구, 윤태수는 이성 하급의 능력을 가졌거나 이성 하급의 예거들이었다. 특히 신준혁은 이성 중급으로 등록된 예거였다.
이에 집행자는 최소 이성 상급에 가까운 중급 혹은 이성 상급의 능력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한 블랙마켓 업자에 따르면 집행자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것으로 보이고, 그의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집행자에게 당한 신준섭은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양팔을 예전처럼 쓰는 것은 평생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조훈, 이희권, 김진구, 윤태수는 전치 1개월에서 3개월 정도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신준혁은 아직까지 중태에 빠져있다. 신준혁의 담당 주치의는 “오늘 아침 호전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곧 의식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강우는 기사를 읽으며 씩 미소를 지었다.
“뭐야… 나 제법 유명해졌잖아?”
강우는 뉴스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었다.
-신준섭이나 김조훈, 이희권, 김진구는 몰라도 윤태수는 꽤 세지 않냐?--신준혁을 잡다니… 이성 상급하고 붙어도 전투로는 안 꿀린다는 말도 있었는데.--지랄, 이상 중급이 어떻게 이성 상급한테 안 꿀리냐? 이성 중급하고 상급은 하늘과 땅의 차이임.--집행자는 뭐하는 새끼길래 쟤네를 다 때려잡았지?--집행자는 예거 파티 소속일지도 몰라. 예거 파티 입장에서 거슬리는 클랜들을 하나씩 깨부수는 거지… 나중에는 블랙마켓마저….-
-음모론 좀 펼치지 마라.-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보니까 그냥 코스프레 좋아하는 오타쿠더만.-
-다크 히어로의 탄생인가!-
-히어로는 무슨, 씨발, 그냥 악당이지.--퍼플 헤드 클랜이랑 레드 헤드 클랜 잡았으면 악당은 아니지. 존나 악랄한 새끼들이었는데.--그냥 힘 좀 센 병신 오타쿠야.-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블랙마켓 커뮤니티 메인 페이지로 넘어왔다. 예거 커뮤니티에서도 강우에 관한 기사는 떠있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우의 시선이 다른 기사로 옮겨졌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번 편 같은 경우 여태까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응원의 댓글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가 모든 분들에게 한 분, 한 분씩 인사는 못 드리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쿠폰 보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연참을 하라고 하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 글을 더 읽고 싶다는 말씀... 최고의 칭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0월 중순까지는 우선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연참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주말이 평일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나는 편이니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네요! ^^ 일이 바빠서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올해 초부터 일을 하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을 합쳐서 12시간 이하로 일을 한 적이 손에 꼽는 것 같습니다. 그 외의 시간도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나 병원에 오가고, 업무와 관련된 미팅 및 회식자리였네요.
제 글 읽으시는 모든 분들은 항상 건강하시고, 빚지는 일도 없으시고, 웃음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