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34화 (34/195)

34화

강우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이부선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부선은 강우가 레드 헤드 클랜을 무너트린 데 놀라움을 표했다. 강우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뭐긴, 너한테 다른 일거리를 주려고 그러지.”

“일거리?”

이부선의 제안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몬스터 사냥도, 경호 업무도, 수배자를 잡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F.N.C(Fight Night Championship) for 예거'에서 강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나를 원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지금 네가 국내에서 엄청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퍼플 헤드에 이어 레드 헤드를 혼자 해체해버렸잖아. 덕분에 너를 여러 가지 의미로 노리는 녀석들이 많아졌지.”

“나를 노린다고?”

“너를 자신들의 클랜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녀석들도 있고, 반대로 너를 해치우고 싶어 하는 녀석들도 있지. 그리고 F.N.C 측에서는 네가 선수로 뛰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강우는 이부선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F.N.C는 기본적으로 메디컬 체크 및 신상 확인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우가 말했다.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아닌데? 결국 정해진 룰 안에서 싸우는 거잖아? 거기서 싸울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는 게 돈도 더 될 것 같고.”

“그렇지 않아. 일류 F.N.C 선수들은 한 경기의 대전료만 1억 겔드 이상을 챙기는 녀석들도 수두룩하다고. 그 외 스폰서 비용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지.”

“그건 스타 선수들 얘기잖아. 나 같은 신인은 잘 받아봐야 몇 백만 겔드 아니야? 그리고 내가 괜히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줄 알아? 텔레비전에 나와서 나를 광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이부선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F.N.C 관련 단체도 아니고, 평범한 F.N.C 대회에 연결시킬 것 같아?”

이부선은 자신의 제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F.N.C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출전하는 대회였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출전한 게 발각되면 파이트머니 몰수는 물론, 법적인 제재까지 가해졌다. 하지만 이미 ‘F.N.C for 예거’의 인기에 밀려 인기선수들의 경기 말고는 거의 대회도 거의 열리지 않아 몇 년 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었다.

두 번째는 F.N.C for 예거였다. 일반인 출전도 가능하지만, 예거들만 출전하는 대회였다. 이 대회는 예거 등록을 한 사람만이 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대회는 근래 들어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호구 및 힘을 억제하는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특별한 조치도 없이 대회를 진행했다가 사상자가 너무도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법 등을 사용하는 경우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불러일으키기 쉬워 신체능력만을 가지고 싸워야 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참가자의 경우 자신의 신체에 힘을 더하는 일종의 ‘버프’류의 마법만이 허용됐다.

세 번째는 이부선이 강우에게 제안하는 대회, 블랙마켓이 관련된 F.N.C였다. 블랙마켓이 관련된 F.N.C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무기도 폭탄과 같은 일부를 제외하곤 칼, 총, 활, 둔기 등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었고, 마법에 대한 제재 또한 없었다. 덕분에 매번 경기가 열릴 때마다 사상자가 발생했다.

블랙마켓이 관련된 F.N.C는 직경 20m의 투명 팔각 케이지에서 경기가 치러졌다. 체급도, 시간제한도, 라운드 수도 없었다. 반드시 죽거나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데스 매치에 가까운 시스템이었다. 케이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면이 특수 방탄유리로 제작돼있어 관중들에게는 피해가 미치지 않았다.

블랙마켓 관련 F.N.C는 참가 조건에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노숙자나 범죄자부터 예거 파티의 소속, 경찰, 군인, 대통령까지 그 누구라도 가능했다. 대회는 각국에서 수시로 열리고 있었다. 선수들의 몸값은 끌어오는 관객의 수와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배팅금액, 전적, 그 외의 참고할만한 이력들을 포함해 측정했다.

이부선이 말했다.

“어때? 여긴 따로 선수로 등록이라고 할 것도 없어. 언제든지 출전만 하면 돼.”

“상대를 죽일 수도, 상대한테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이기려고 싸우는 거지, 지려고 싸우는 거 아니잖아? 이기면 죽을 일은 없겠지? 그리고 보통 의식을 잃거나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면 경기가 중단돼. 이겼을 경우에는 네가 죽이고 싶지 않으면, 안 죽이면 되는 거고.”

강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대전료는?”

“지금 너는 이성 중급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과 붙으면 최소 1,000만 겔드는 챙길 거야. 더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보통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밤에 주로 경기가 열리지. 그 외에도 경기는 거의 매일 있는 편이고. 어때? 해볼래?”

“내가 당신한테 수수료를 줄 필요는 없는 건가?”

“물론이지. 나는 네가 경기에 참여만 하면, 소개료를 받는 걸로 끝이야.”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주섬주섬 입으며 말했다.

“좋아. 하겠어.”

“그럼 신청해놓는다? 경기는 내일 모레나 글피에 치르게 될 거야.”

강우는 상의를 입고, 배낭을 메며 말했다.

“좋아… 그전에 할 일은 없나?”

“딱히 할 일은 없지. 컨디션이나 최상으로 맞춰놔.”

“아니, 몬스터 사냥이든 뭐든 할 일이 없냐 이거야.”

“뭐? 지금 일을 하겠다고?”

강우는 모텔 방을 나서며 말했다.

“경기는 빨라도 내일 모레라며? 난 지금 할 일이 필요해.”

이부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알겠어. 대신에 이번 일은 비교적 쉬운 걸로 들어갈 거야. 그 만큼 페이도 적어지겠지. 넌 곧 F.N.C 대회에 나가야 되니까 어쩔 수 없어. 이미 너를 출전자로 넣어놨기 때문에 만약 네가 출전을 못하게 되면, 내가 위약금을 물어야 되거든.”

“알았어.”

“일은 잡히는 대로 자세한 내용 담아서 문자로 보낼게. 아마 늦어도 4시간 안에는 하게 될 거야.”

강우는 이부선과 전화를 끊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강우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자니… 금방 일하러 다시 나와야 할 것 같고… 어디 가지?’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 강우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벌써 일이 잡혔나?’

문자는 노예빈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빠, 오늘 먼저 와버려서 미안해. 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다음에 봐!-강우는 문자를 보자마자 삭제하며 인상을 구겼다.

‘하아… 끝까지 어장관리 질이네… 하긴, 내가 호구 짓을 했으니 좀 호구 같겠냐….’

강우는 노예빈의 연락처마저 삭제했다.

‘60만 겔드짜리 오랄이랑 60만 겔드짜리 떡을 쳤네… 저번에 한 것도 있으니까 같이 계산하면 조금 싸지려나? 뭐, 비싼 *오피 갔다 왔다고 생각할까… 돈 주고 업소 가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는데….’

강우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이부선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청담동 스시오미 일식 전문 레스토랑으로 가서 김현태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 경호를 하는 게 일이야. 대략 2시간 정도 소요, 보수는 300만 겔드. 괜찮으면 5분 내로 답장해.-강우는 곧바로 답장을 했고, 이부선은 바로 가보라는 답장을 했다. 강우는 청담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우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복면을 뒤집어쓰고, 옷을 갈아입었다. 강우는 복장을 갖춘 채 청담역에 들렀다. 몇몇 사람들이 강우를 알아봤고, 집행자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강우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며 지하철역 사물함에 배낭을 넣었다.

강우는 일식 전문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면을 쓴 강우가 들어서자 직원은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강우가 말했다.

“김현태 씨를 찾는데요.”

직원은 강우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기다렸다. 곧 직원이 다시 돌아와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우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스토랑 한쪽 구석의 테이블에 머리숱이 적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앉아있어도 170cm가 안 될 것 같은 작은 키가 짐작이 됐다.

남자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가 남자에게 다가서자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앞을 막아섰다. 식사를 하던 남자가 식기를 내려놓고, 강우의 앞을 막아선 두 남자에게 비키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제야 두 남자는 강우의 앞에서 물러났다. 남자는 냅킨으로 입을 살짝 닦은 뒤. 강우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집행자인가?”

“네, 그렇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

강우는 남자의 앞에 앉았다. 남자는 메뉴를 가리키며 말했다.

“식사는 했나? 뭐 좀 들게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강우는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복면을 벗어야 되기에 거절했다.

‘입에 지퍼라도 달린 복면으로 바꾸던지 해야지 이건 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갑네. 나는 김현태라고 하네.”

“네, 말씀하셨다시피 집행자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러지. 자네 진실생명보험이라고 아나?”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고 있죠.”

“내가 거기 CEO야.”

“아, 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김현태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자네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보험을 든 고객 중에서 가족이 죽었는데, 자격이 안 돼서 보험금을 못 받았다고 앙심을 품은 유족들이 있어. 그 사람들이 나한테 해코지를 하겠다지 뭔가?”

“일은 2시간 정도면 끝나는 걸로 들었는데요.”

“아아, 그건 맞아. 2시간 정도면 끝나.”

김현태는 강우를 부른 이유에 대해 말을 이었다.

“사실 평소에는 경호가 거의 필요가 없어. 나한테까지 닿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사무실에 들르는 날이 있거든. 그게 오늘이야. 직원들의 사기도 복돋아 주고, 점검할 게 있으면 하고… 그 시간만큼은 경호가 필요한 시간이거든. 원래는 내 직속비서가 경호까지 맡기 때문에 괜찮은데, 녀석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리를 비워서 자네를 부른 거야.”

강우는 자신을 막아섰던 두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킨 다음 말했다.

“저 두 사람은요?”

“저 친구들도 우수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일반인이야. 예거인 자네에 비하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

“따지려고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김현태는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가세. 이번에 좋은 인연이 돼서 앞으로 더 큰 일도 맡기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

김현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현태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김현태는 왜 이러냐는 눈빛으로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여전히 김현태의 옆에 붙어서 걸으며 말했다.

“경호는 지금부터 시작해야죠.”

김현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 자세는 마음에 드는구만.”

강우와 김현태는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강우와 김현태는 차로 이동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강우의 앞을 막아섰던 남자들 중 하나가 운전을, 다른 한 남자는 조수석에 앉았다. 강우는 김현태와 함께 뒷좌석에 자리했다. 차는 진실생명보험 본사로 향하고 있었다.

차가 진실생명보험 본사 앞에 멈췄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김현태가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김현태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들어 흔들었다. 강우는 김현태의 옆에 붙어 걸었다. 조수석에 앉았던 남자와 운전을 하던 두 남자도 김현태의 뒤로 따라 붙었다.

김현태가 본사의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안경을 쓴 40대 후반의 남자가 다가왔다. 강우는 한 걸음 나서서 다가오는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남자는 다소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저는….”

김현태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괜찮네.”

강우는 그제야 한 걸음 물러서서 김현태의 옆에 섰다. 남자는 김현태의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가지.”

남자는 김현태의 오른쪽 사선에서 걸으며 안내했다. 김현태의 뒤로는 두 남자가 따랐고, 강우는 김현태의 왼쪽에서 걸었다.

*오피 : 오피스텔에서 이뤄지는 변종 성매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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