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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35화 (35/195)

35화

김현태는 1층에서 근무하는 안내데스크의 여직원, 경비원들에게까지 인사를 건넸다. 김현태는 층마다, 사무실마다 모두 들러서 인사를 건넸다. 이따금씩 김현태가 질문을 던졌고, 과장급이나 부장급 이상의 사람들이 보고를 했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우는 김현태의 옆을 계속 따라다니며 지루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별로 하는 것도 없구만… 뭐하러 빌딩 전체를 돌아다니는 거야?’

김현태가 빌딩의 모든 사무실에 들를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경을 쓴 남자는 돌아갔고, 김현태와 두 남자, 강우가 꼭대기 층에 다다랐다. 김현태는 꼭대기 층 복도에서 강우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별다른 일은 없었구만.”

“좋은 일이긴 한데, 경호를 하러 온 입장에서 뭔가 좀 허무하기도 하네요.”

“내가 이런 구식이 아니었으면 자네가 경호를 하러 올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사실 화상회의까지 가능해진 요즘 세상에 나처럼 일일이 사무실에 들러보는 CEO들은 없지. 그래도 난 그렇게 생각하거든. 직접 얼굴을 맞대고, 그 사람의 표정, 손짓, 몸짓, 온기, 입냄새까지도 모두 직접 느끼면서 하는 일…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거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 받을 점이네요.”

“자네 같이 젊은 사람한테 나처럼 꼰대같이 굴라는 건 아니야. 다만, 진실하게 다가서면 그에 대한 보상은 빠르건 늦건 오게 돼있네.”

김현태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이거 식당에서부터 지금까지 약 2시간 30분이 걸렸구만.”

김현태는 뒤에 서있던 남자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김 비서.”

김 비서가 김현태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김현태는 곧바로 강우에게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조금 더 넣었네.”

강우는 봉투를 받아들며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지. 그 시간을 항상 중요시하고, 시간에 대한 계산을 철저히 한 것도 내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크게 한몫했지.”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손에 든 봉투는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강우의 일은 끝이 났다. 강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실생명보험 본사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강우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김현태가 두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나도 약속이 있어서 또 나가봐야 되거든.”

“바쁘시군요.”

“바쁘지… 바빠. 갈수록 하루가 짧게 느껴져.”

“저도 이따금씩 그렇게 느껴져요.”

남자 중 하나가 1층을 눌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김현태가 말했다.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지. 지금 자네가 몇 살이지?”

“20대 중반입니다.”

“20대라… 좋지. 10대에는 시간의 속도가 10키로로, 20대에는 20키로, 30대에는 30키로, 40대에는 40키로, 50대에는 50키로… 점점 빠르게 느껴지거든.”

엘리베이터는 금세 1층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김현태가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강우는 고개를 한 번 꾸벅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김현태도 두 남자와 함께 걸었다. 김현태가 걸음을 옮기자 모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강우와 김현태, 두 남자가 본사의 현관을 빠져나갔다.

“김현태!”

한 중년의 남자가 사냥용 공기총을 든 채 정면에 서있었다. 주변의 경비원들은 몇몇 남자들과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김현태의 뒤를 따라오던 두 남자는 사태를 파악하고 앞으로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회장님!”

“몸을 피하세요!”

김현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왼팔을 들어올렸다. 두 남자가 김현태의 앞으로 나서기 전, 중년의 남자가 공기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빵!

총알은 김현태에게 닿지 못했다. 강우가 김현태의 앞으로 이동해 손바닥을 펴서 총알을 막아냈다. 총알은 강우의 손바닥을 뚫지 못했다. 총알은 찌그러진 채 강우의 손바닥에 붙어있었다.

빵!

중년의 남자가 두 번째 탄환을 발사했다. 강우는 손을 옮겨 또다시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냈다. 중년의 남자는 연속해서 총을 쐈다.

빵! 빵! 빵! 빵!

강우는 모든 총알을 손으로 다 막아냈다. 강우의 손에서 찌그러진 총알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강우는 주변을 살폈다. 경비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남자들은 모두 제압을 당한 상태였다. 강우는 총을 쐈던 중년의 남자를 향해 뛰었다. 중년의 남자는 품에서 가스총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가 가스총을 빼들기도 전에 강우가 코앞에 다가섰다.

강우는 남자의 양팔을 잡아 뒤로 돌렸다. 강우는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남자의 오른쪽 손목을, 남자의 왼쪽 손목은 새끼손가락을 걸어 잡았다. 남자는 몸부림을 쳤지만, 강우의 손가락 하나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었다.

곧 경비원들이 달려와 강우에게 붙잡힌 남자를 제압했다. 강우는 남자에게서 손을 떼고, 김현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김현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강우가 김현태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괜찮네. 고맙네. 자네가 날 살렸어.”

“결국 절 고용하시길 잘하셨네요.”

“자네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이렇게 총으로 겨눠져본 것은 처음이야.”

강우는 고개를 꾸벅인 뒤 말했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심하시고요.”

“이따가 계좌로 돈 좀 더 입금하겠네. 고마웠네. 또 보지.”

“네, 그럼.”

강우는 발걸음을 돌렸다.

강우는 청담역에 들러 배낭을 챙기고,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배낭까지 뒤집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강우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강우는 김현태가 계좌로 돈을 입금하겠다는 것을 떠올리고, 휴대폰으로 계좌조회를 했다.

계좌에는 김현태가 500만 겔드를 입금했다. 강우의 양쪽 입꼬리가 쫙 올라갔다. 봉투에는 250만 겔드가 들어있었다. 강우는 크게 어려운 일도 없이 약 3시간만에 750만 겔드를 벌어들였다.

‘이런 페이스라면 이사도 금방 갈 수 있겠어.’

강우의 마음은 한껏 들떠있었다.

이부선에게 연락이 왔다. 우선은 김현태의 일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F.N.C 시합의 일정이 당겨져서 내일 저녁에도 출전이 가능한데 괜찮냐는 것이었다. 강우는 흔쾌히 응했다.

강우는 그렇게 스스로 보람차다고 느끼는 하루를 보내며 다음 날 시합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과 어떻게 붙게 될 것인지.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강우는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이부선의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강원카지노로 오후 5시까지 와. 도착해서 출전 등록하는 순간 기본 대전료 500만 겔드 입금될 거야. 늦지 마.-이부선은 문자메시지에 정확한 좌표까지 첨부했다. 강우는 냉장고에서 물을 병째로 꺼내 마셨다.

‘강원도까지 가야 돼? 강원카지노 밑이라… 내가 치르는 경기도 보나마나 도박판이겠구만.’

강우는 장을 보러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을 나섰다.

강우는 집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강우는 카트를 챙긴 뒤,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푸드 코트로 향했다. 강우는 카트를 세워놓고,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한식, 중식, 양식, 분식, 일식, 베이커리까지 메뉴는 다양했다.

‘뭐 먹지? 피자? 파스타? 아니지… 아침부터 피자랑 파스타는 좀… 중국음식도 좀 그런데… 하긴, 내가 언제 뭐 그런 거 따졌나. 대충 먹자.’

강우는 닭다리와 군만두, 짬뽕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먹어치웠다. 밥을 다 먹은 강우는 카트를 끌고 장을 봤다. 장을 본 강우는 집으로 돌아갔다.

강우가 장을 본 것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자 오후 2시가 가까워져 갔다. 강우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옷을 입은 뒤에 집을 나섰다.

강우는 배낭을 멘 채 강원도를 향해 뛰었다. 강우가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강우는 이부선이 찍어준 좌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부선이 찍어준 좌표는 정확히 강원카지노였다. 강우는 강원카지노 앞에 멈춰 서서 이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부선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야?”

“나 지금 강원카지노 앞이야. 어디로 가야 돼?”

“거기 직원 아무나 잡고 F.N.C 때문에 왔다고 해. 그러면 안내해줄 거야.”

“당신이 마중나오는 거 아니었어?”

이부선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난 소개료만 받으면 끝이야. 하여튼 이기고 와. 죽지 말고.”

이부선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전화매너하고는….”

강우는 강원카지노에 들어서자마자 직원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직원은 복면을 뒤집어쓴 강우를 곧바로 알아봤다.

“집행자 님이시군요. 오늘 F.N.C에 출전하시죠?”

“아, 네… 절 아시네요?”

“물론이죠. 블랙마켓 커뮤니티 기사도 봤고, 오늘 F.N.C에 출전하는 선수시니 모를 리가 없죠.”

직원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강우는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직원이 강우를 안내한 곳은 복도의 끝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열어줬고, 강우가 들어섰다. 직원은 강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좋은 경기 펼치시길.”

직원이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버튼은 열림과 닫힘, 지상과 지하 단 네 개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한 30대 중반의 남자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남자는 강우에게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헤이, 집행자. 기다렸어.”

남자는 팔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남자의 손목에 둘러진 시계는 금장이 붙어있고, 다이아가 박힌 화려한 시계였다. 누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그런 시계였다. 남자는 팔을 내리며 말했다.

“대충 시간 맞춰서 왔네. 경기는 1시간 30분 뒤인 6시부터야. 우선 대기실로 가자고.”

강우는 남자와 함께 복도를 따라 대기실로 향했다. 남자는 대기실로 가는 와중에도 강우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대기실은 꽤 넓었다. 약 20평에 샌드백과 각종 운동기구, 샤워실 등이 완비돼있었다. 남자는 그제야 강우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남자는 강우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반가워. 나는 F.N.C 프로모터 이근수라고 해.”

이근수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근수의 어금니는 전부 번쩍거리는 금니였다. 이근수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짧은 머리는 젤을 잔뜩 발라 올려 반짝거렸다. 빨간 나비넥타이에 광택이 있는 파란색 정장, 빨간 악어가죽구두, 흰 뿔테 선글라스까지 굉장히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악수를 하자고 건넨 오른손에도 알이 굵은 반지를 검지와 중지에 하나씩 끼고 있었다.

강우는 이근수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아, 네… 저는…….”

강우가 말을 마치기 전에 이근수가 말했다.

“알아, 알아. 집행자. 맞지? 이름은 네가 지은 거야? 멋진데?”

“아, 네… 그렇습니다만.”

이근수는 강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기대가 커. 퍼플 헤드와 레드 헤드 클랜을 혼자서 무너트렸다며? 신준혁이 그 놈은 나도 만나본 적이 있어서 알아. 쉽지 않았을 건데 말이야… 대단해? 응?”

“아뇨, 뭐….”

이근수는 입에 담배 하나를 꼬나문 뒤,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이근수가 라이터 뚜껑을 열자 ‘핑’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이터 역시 금장이 박혀 번쩍거렸다. 이근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빤 다음 말했다.

“담배 피나? 한 대 줄까?”

“아니요. 안 핍니다.”

“그래? 담배연기 싫어하겠네?”

“아뇨, 괜찮습니다.”

이근수는 웃으며 담배를 한 모금 빤 뒤에 말했다.

“미리 양해를 안 구해서 미안해.”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밖에 몰라?”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대답이 나올만한 말만 하니까 그렇죠.”

이근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강단 있어. 그래, 그래야지. F.N.C에서 싸우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몸 안 풀어도 돼?”

이근수는 미트를 집어들며 말했다.

“미트라도 받아줄까?”

“아니요. 다시 말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랑 붙을 상대는 누구죠?”

이근수는 선글라스를 들어올리며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강우를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보내주시는 응원들, 항상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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